밤마다 가려움으로 괴로워하던 리초의 식이 앨러지(알레르기)를 이해한 일
우리 가족이 키우고 있는 반려견 리초가 예전에 시중에 파는 간식을 먹고 귀에 염증이 온 일이 있어서 음식에 예민함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설마 앨러지를 갖고 있을 것이라고는 전혀 상상하지도 못했는데, 최근 여러 일들을 겪으며 리초가 닭에 대한 식이 앨러지가 있음을 이해하게 되었다.
리초는 강아지 때부터 여러 부위에 염증을 앓다 낫곤 했다. 먹이를 바꾸지 않았는데 갑자기 어느날 설사 증상이 오기도 했고, 귀와 발바닥의 피부염 때문에 병원에서 여러 번 약을 처방받기도 하였다. 이런 질환들은 강아지가 일생동안 당연히 겪을 수 있는 가벼운 병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런 염증들은 반갑지 않은 스팸 전화처럼 불쑥 불쑥 또다시 찾아오곤 해,
"참 손 많이 간다. 원래 타고나길 약한 개체인가 봐."
"덩치만 크고 약골이네."
"엄마 강아지가 원래 약한 개체인가 보다."
이런 이야기들을 가족과 하기도 했다.
이런 질환들은 사람의 감기처럼 진짜로 강아지에게 슬쩍슬쩍 왔다가는 것이기도 하지만, 이제야 이런 일들이 닭으로 인한 앨러지임을 마침내 이해하게 된 것이다.
장마가 시작되던 무렵부터 리초가 평소보다 발을 더 많이 핥기 시작한 것을 알아차렸다. 발을 보니 발바닥 부위의 피부가 빨갛게 올라와 있었다. 비가 자주 와서 산책길이 늘 젖어 있었기 때문에 발이 괜찮을지 예전처럼 피부염이 오지는 않을지 걱정을 했었는데, 역시나 발의 건강이 나빠져 있었다. 목욕 후 발을 잘 말려주지 않으면 습진이 생길 수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앨러지일 것이라 생각하지 못하고 습기와 외부의 세균 때문에 피부염이 시작된 것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집에 있던 피부 연고를 매일 발라주며 관리를 했고, 병원에서 의사 선생님에게 보이고 소독약과 피부약을 따로 처방받기도 했다.
그런데 이 피부염은 쉽게 나아지지 않았다. 괜찮아지는 것 같다가, 다시 극심 해지는 일이 반복되었다. 염증이 심해지니 리초도 자다 깨어 한밤 중 발을 격렬하게 핥거나 씹었고, 그 작은 소동 때문에 가족들은 자주 잠에서 깰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너무 자주 핥으니 피부가 약해져 산책 중 피가 나기도 했다. 아예 핥을 수 없도록 1회용 자가 점착성 붕대를 감아놓기도 하고, 소독과 연고 바르기 같은 관리를 하루에도 몇 번씩 해주었다.
그렇지만 상태는 쉽게 호전되지 않았고 점점 더 심해져 우리가 제지하더라도 손을 뿌리치면서 계속해서 발바닥을 씹었고 너무 힘들어 헉헉 거리기까지 했다. 리초가 스테로이드 내복약에 대해 과민 반응이 있는 것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어서 병원에서 외부 연고, 소독약만 받고 내복약 처방을 받지 않았는데, 조금이라도 약을 먹여야 할 것 같다고 생각해 다시 병원을 갔다.
약 한 달만에 다시 찾아간 병원.
"선생님, 이제 저희 강아지가 발이 너무 가려워 미치기 직전까지 갔어요. 스테로이드 내복약을 좀 처방받을 수는 없을까요? 소량이라도 먹여야 할 것 같습니다."
선생님께 말씀드렸다. 선생님은 리초의 발을 보신 후,
"지금 어느 브랜드 사료 먹이시나요?"
"사료의 주성분은 무엇인가요?"
이렇게 물어보셨다. 그래서 나는 현재 먹이는 브랜드와 닭이 주원료라고 말씀드렸다. 그랬더니 선생님은,
"앨러지입니다. 닭이 앨러지가 가장 많이 와요."
라고 말씀하셨다.
"사료를 다른 것으로 바꾸셔야 합니다. 물고기 성분, 단일 단백질, 가수분해 이런 사료 찾아보셔야 해요."
선생님은 사료를 바꾸시라고 권고하셨다. 이때 먹이던 사료는 가격이 높고 그만큼 기호성, 영양 가치도 높다고 알려진 비싼 것이었다.
'아니, 사료 값이 얼마나 들었는데... 이걸 못 먹인다고? 에이.. 설마 엘러지는 아니겠지...'
라고 생각했다. 먹이고 있던 것도 꽤 남았고 또 창고에는 쟁여둔 사료도 있었기 때문에 곤혹스러운 결론이었다. 사람도 암으로 최종 판정되기 위해 다른 병원 2~3곳을 가봐야 한다는 말이 있는데 다른 동물병원도 가볼까라는 생각도 했다. 사놓은 십 수만 원이 든 사료들을 폐기해야 한다는 것이 너무 아까웠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동물 병원들이 의료 수가제와 정찰제를 시행하지 않기 때문에 치료비가 높고 병원마다도 가격이 너무나 다르다. 사람과 달리 정밀 기계를 통해 병의 원인을 판단하기도 쉽지 않다. 그러다 보니 수의사 선생님의 경험에 비추어 결론이 나는 경우가 많고, 또 선생님마다 지식과 경험의 차이로 판단이 다르기까지 한다. 게다가 동물을 데려가는 보호자들이 반려 동물의 건강에 대해 무지하기도 하니 보호자들은 일단 비싸서, 동물병원과 수의사들을 마구 비난하고 매도한다. 불신 문화가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수의사 선생님들도 처방을 내릴 때 주저하는 부분이 없지 않아 있을 것이다. 잘못하면 고객이 떨어져 나가니까. 나도 이런 영향으로 다니는 병원을 100% 신뢰를 하지 않았다. 폐기해야 하는 현실도 받아들이지 못했다.
또 반려견의 건강, 그리고 또 행동에 대해 수의사 선생님들, 훈련사님들마다 같은 현상에 해석이 다른 경우도 많이 봐와서,
"내가 강아지에 대한 이야기들을 때 믿는 사람은 딱 두 사람뿐이야."
이런 이야기를 주위에 자주 한다. 믿을 수 있게 기준을 세워주는 사람들을 정해놓고, 나머지 의견들은 참고만 해오고 있다. 그래서 이번 리초의 앨러지에 대해서도 다시 한번 자세히 알아보려고 했다. 집에 돌아온 후 관련 영상들을 서베이 했다.
[강아지가 겨드랑이, 배, 사타구니 이런 부위를 평소보다 더 자주 핥으면 앨러지가 맞습니다.]
내가 믿는 분이 이런 설명을 해주었는데, 무릎을 탁 치고 말았다. 리초가 평소보다 훨씬 더 자주 이런 부위를 핥거나 물기도 했기 때문이다. 앨러지가 맞다고 생각했다.
동물병원에서 선생님이 똑같은 이 이야기를 해주셨더라도 내가 처음부터 믿지 못했을 것 같다. 하지만 지금까지 여러 번 병원에서 선생님으로부터 들은 말씀들은 대부분 판정이 맞았다. 여러 진료 기록으로 우리 개의 특성을 축적하고 있으니, 더 신뢰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닭 식이 앨러지가 명확했다. 먹이던 것을 모두 중단하고 약간의 채소만 먹였더니 그날 밤 리초는 중간에 깨는 일 없이 아침까지 푹 잘 잤고, 아침에는 오랜만에 생생하고 기분이 좋아 보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 사료는 반년 가깝게 먹여오고 있었기에, 요즘 이런 증상이 갑자기 심해진 이유가 궁금했다. 지난 반년 동안 이번처럼 심각한 긁기나 핥기가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 아내는,
"교육 갈 때, 닭 가슴살 먹이잖아. 그것 때문이야."
라고 이야기해주었다. 리초는 음식 중 닭고기를 가장 좋아한다. 그래서 닭 가슴살 삶은 것을 보상 간식으로 준비해 교육센터에 다녀왔었다. 리초가 잘 따를 때마다 닭 가슴살 보상을 했고, 하루 만에 닭 가슴살 한쪽을 거의 다 소진할 정도로 먹였다. 문득 생각해보니 발이 빨갛게 올라오던 것이 가라앉다가 마지막 레슨을 다녀온 다음날 다시 또 심해진 것이 기억났다. 아내 말이 맞았다. 지금까지 닭 원료의 사료를 먹여왔어도, 앨러지 반응이 생길 정도까지 많이 먹이지는 않았던 것이다. 물컵에 물이 담겨있다 넘치듯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 앨러지 반응이 격렬하게 시작된다고 한다. 원래 닭고기에 예민한데 교육 중 더 먹였으니, 역치라는 그 수준을 뛰어넘어 버린 것이다.
사료를 중단한 이후 며칠 동안 잘 관찰해보니 닭 앨러지가 확실함을 알 수 있었다. 발을 심하게 핥거나 깨무는 행동이 나타나지 않았다.
앨러지임이 명확해졌으니 바로 사료를 탐색하는 일부터 시작했다. 명확한 수치가 있는지 찾아봤는데 없었고, 아마도 앨러지 면역 반응이 개의 개별 개체마다 다르고, DNA 나 생활하는 환경 등 많은 변인들을 통제해서 앨러지 값을 산출하기 어려워 그런 것 같다. 대강 아래의 음식들이 강아지에게 앨러지를 잘 보인다고 알려져 있다.
소
돼지
닭
계란
우유/치즈 같은 낙농 제품
밀과 같은 곡물에 포함된 글루텐
콩
원래 선천적으로 앨러지를 갖고 있는 식재료가 있을 수 있으며 또 비슷한 제품을 오랫동안 먹일 경우에도 그 제품의 원료에 대해 식이 앨러지가 나타날 수 있다고 한다. 사람도 특정 음식 앨러지가 있는 사람이 있는 것처럼 다른 개들이 잘 먹고 아무 문제없는 음식이라도 어떤 개체는 앨러지가 심하게 나타난다. 우리 개의 경우 앨러지 검사를 받은 적이 없어 선천적으로 닭에 문제가 있는지, 다른 원료는 앨러지가 없는지 아직 알 수 없다.
사람의 경우도 마찬가지인 것처럼 강아지의 앨러지도 면역세포가 정상적인 먹이의 단백질에 반응해버려 생긴다. 면역세포가 반응하려면 열쇠가 자물통에 맞물리듯 맞아야 하는데, 이런 면역 반응이 일어나기 힘들도록 미리 식재료의 단백질을 효소로 분해한 사료도 시중에 많이 판매된다. 이런 사료의 단백질은 이미 크기가 줄여져 있어서 열쇠가 더 작아져 자물통에 딱 맞물리지 못해 면역세포가 반응하지 않는다. 이렇게 효소로 단백질을 미리 잘게 잘라놓은 것이 가수분해 사료이다. 이런 사료들은 전처리가 한 번 더 필요하니 일반 사료보다는 조금 더 가격이 높고, 가수분해 된 원료로 만든 사료들을 앨러지 사료라고도 부른다.
이외에도 사료에는 여러 성분이 많이 포함된다. 앨러지 있는 강아지들을 위해서 염증 반응을 줄이는 영양소나 물질이 추가되기도 하고, 유산균이나 비타민 같은 건강 물질이 추가로 들어간다. 사료 브랜드마다 원료, 첨가물, 조성 비율은 다 다를 것이다. 하지만 크게 뼈대를 이루는 고기, 채소, 곡물류 등의 원료는 대동소이한 것 같다.
주 단백질로 먹일 고기 원료 한 가지 또는 여러 가지 (닭이나 소 같은 가축, 물고기 등)
사료를 뭉쳐서 굳히기 위해 쓰이는 재료 (건식인 경우) - 글루텐
식이섬유와 필수 비타민을 위한 채소류
반려동물을 기르는 보호자라면 한 번쯤 자세히 보고 다른 제품들과 비교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바꿀 사료에 닭이 없더라도 다른 물질 때문에 앨러지가 되풀이될 수 있다고 보고, 첨가물도 주의 깊게 분석했다. 되도록 앨러지 유발 물질은 가짓수와 비율이 최소화될 수 있게 하여 사료를 선정해서 먹이기 시작했고, 다행히 원래 먹이던 사료가 물고기 원료를 쓰고 있어서인지 문제없이 리초의 장이 소화를 해내는 것 같다. 그리고 단백질이 면역 반응의 주범이니 단백질의 가짓수를 최대한 줄여야 한다. 이런 사료는 LID 사료로 따로 제품이 나온다. 고기류 외엔 아예 단백질이 포함되어 있지 않다.
주위 아는 지인의 강아지는 귀가 빨갛고 항상 긁는다고 한다. 키우시는 분들이 강아지가 이쁘고 달라고 조르기도 하고 하니 사료 외에 사람이 먹는 음식을 나눠주기도 한다고 한다. 그 강아지는 아직 극심하지는 않더라도 귀가 빨갛다고 하니 앨러지를 보이고 있다고 생각이 된다. 이런 강아지는 나이가 더 들면 심하게 아플 수도 있고 또 곁을 빨리 떠날지도 모른다. 이런 일을 바라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나라도 더 베풀고 싶은 마음도 이해는 하지만 우리 못지않게 반려견의 건강도 잘 관리해주어야 할 것 같다.
우리 반려견이 밤마다 괴롭게 발을 깨물던 것을 생각해보면 먹이는 것을 언제나 엄혹하게 관리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매년은 아니더라도 정기적으로 앨러지 검사를 받게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