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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은 Sep 28. 2022

산들,






최은영 작가의 <쇼코의 미소>에 이런 대목이 있다.      


‘어떤 연애는 우정 같고, 어떤 우정은 연애 같다.’     


주인공 소유는 불안하고 외로운 시기를 지나와 삐뚜름히 서 있었을 거다. 그리고 우정인 듯 연애인 듯 모호한 지난날을 굳이 새롭게 다 곱씹어 느꼈을 거다. 우정 같았고 연애 같았던 쇼코와의 시간을. 제 안에 생생한 쇼코를 찬찬히 손끝으로 더듬었을 소유를 상상하자 돌이킬 수 없을 쓸쓸함이 혀끝에 남은 가루약처럼 쓰게 감돌았다. 무엇을 그리며 썼을지 모르지만 두 사람이 나눠 가졌을 헛헛한 그리움과 애정이 단숨에 느껴지는 문장이었다. 그렇기에 소유와 쇼코의 모든 사연을 저 한 문장으로 다 담을 수 있다고 감히 단언한다.

그래서 책장 가운데 꽂힌 <쇼코의 미소>를 보며 지나칠 때마다 저 문장을 조용히 곱씹는다. 그러면 불씨가 다 꺼져버린 잔뜩 짙고 탁한 숯가루가 마음에 폴폴 날리는 기분이다.     


지나온 시간은 어딘가 모르게 허한 구석이 있기 마련이다. 분명히 그땐 최선이었고 열심이었고 전부였는데 말이다. 세탁기에 몇 번 들어갔다 나온 청바지처럼 빛을 잃고 늘어지고. 그래서 처음과는 다른 모양이 되기 마련이다. 사람과 시간, 우정과 사랑의 모양은 그렇게 저마다 각기 다르게 변해간다.

후에 변하리라고는 꿈에도 모른 채 빛이 바랜 허한 기억의 장면들 속, 소유와 쇼코는 손을 잡고 있었을 거다. 언젠가 그리도 허무하게 놓아버릴 줄 모르고. 우정인 듯 연애같이. 연애인 듯 우정인 마음을 나누며.     


<쇼코의 미소>를 보는 내내 지혜가 떠올랐다.

지혜. 빨간 머리띠를 하고 어딘가 뾰로통하던 그 애가 처음 짓던 미소는 왜인지 모르겠는데 언제든 어제처럼 선명하다.

삶의 모든 장면을 과학으로 다 설명할 수는 없는 노릇이 아닌가. 그래서 내 앞에 서서 픽 웃던 그 미소, 21번 마을버스에 올라 타던 첫 등장을 감히 과학을 벗어난 어떠한 사건이라 생각하기로 했다.

마치 쟨 이제 너의 둘도 없는 친구가 될 거야. 연애인 듯 우정인 듯한 아주 대단한 마음을 주고받을 거고. 그런 인물이 네 인생에 이제 지금 막 등장한 거야. 잘 봐 둬.

십오년 전에 누가 정해주기라도 한 듯이 그랬다. 신을 믿지 않지만, 엇비슷한 누군가 남몰래 그런 계시라도 내린 게 아니었을까. 그렇지 않으면 나의 산들, 지혜가 내 인생에 처음 등장한 순간을 이리도 강렬하게 기억할 리 없으니 말이다.     



지난날이 그리도 선명한 지혜는 안식년에 건너간 캐나다에서 쓴 산드라, 라는 영어 이름 덕에 십 년간 ‘산들’ 혹은 ‘드라’라고 불리었다. 수백 번 수천 번 그리 불리는 동안 나의 산들, 지혜는 내 안에서 수도 없이 변했다.

긴 머리를 돌돌 말아 묶고 다니던 소녀는 어느새 목이 훤히 보이는 단발을 유지하는 직장인이 되었다. 아무래도 이번 생에 날 사랑하는 사람이 없을 거라고 술 마실 때마다 징징대더니 예상보다 빠르게 결혼해서 놀랍도록 잘 산다. 산책하며 지나치는 아주 작은 강아지도 무서워 내 등 뒤에 숨었던 산들은 이제 제 몸집만 한 매리를 친동생처럼 돌보게 되었다.     


자그마치 십오 년, 머리가 바뀌고 직업이 바뀌고 가족이 바뀌는 동안 나는 내내 산들에게 기대어 있었다. 그건 산들도 그랬다.

그녀와 매일 붙어 있는 연애 초기 같은 시절도 있었다. 그러다가 말도 안 되는 걸로 마음 상해 안 보던 공백도 있었다.

강산이 1.5번 정도 변했을 시간이 흘렀다. 그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다. 어쩌면 산들은 내게 그래도 되고 저래도 되는 유일한 타인일 수도 있겠다.      


얘만큼은 세상에서 가장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처음으로 바라본 사람이기도 하다. 어디에도 쉽사리 마음을 털지 못하는 내가 첫 남자친구와 헤어지던 때, 말 한마디 못 하고 2시간 내내 울기만 했던 걸 산들은 지구 반대편 캐나다에서 조용히 들어만 줬다. 그 흔한 울지 말라는 한 마디 안 보태고 ‘그래.’라는 한 마디로 가장 크고 세게 위로했다.

‘그래’라는 말에는 너무나 많은 게 담겨 있었다. 그래 너 할 만큼 했지, 그래 힘들지, 그래 잘했다, 그래 더 울지 말고, 그래도 밥 먹고 학교는 빠지지 말고.

그 모든 위로와 걱정이 산들의 ‘그래.’ 속에 있었다. 시간이 더 지나서 진심에 굳이 많은 단어가 필요치 않다는 걸 그날의 산들을 통해 배웠다.     


그러고선 희한하게 산들 역시 얼마 안 가 그녀의 첫 남자친구와 대차고 더러운 이별을 했다. 첫 남자와 헤어지는 타이밍까지 그리 비슷할 줄은 몰랐는데 우리는 그것마저 비슷했다.

어쨌건 나 역시 ‘그 미친 새끼 대가리 어떻게 깨트려 줄까.’ 하며 아르바이트를 끝내고 막차가 떠난 버스 정류장에서 식식댔다. 지 까짓 게 어디서 너 같은 애를 만날 수나 있냐고 악을 써댔다. 너무 분하고 억울했다.

사실 끝이 어떨지 빤히 보이는 20대 초반 여자애들 연애였다. 철없이 영원을 꿈꾸며 때때로 찾아오는 불안한 위기를 모른 척하는, 위태롭기 그지없는 서툰 첫사랑임을 이미 알고 있었는데도. 그렇긴 해도 산들이 우는 건 싫었다. 참으로 눈치 많이 보고 속앓이에 특화된 성격이 비슷하게 닮아 있는 우리라서 느끼지 않으려 해도 다 느껴졌다.      

우리는 사랑받고 싶었지만 동시에 사랑 때문에 괴로운 애들이었다. 지긋지긋한데 사랑 없이는 못 살았다. 평생 어떻게 이러고 살지? 다들 어떻게 만나 어떻게 헤어지냐? 이렇게 죽겠는데? 라며. 세상에 지금 돌아보니 지나치게 낭만적이고 순수한 데다 세상 물정 몰라서 귀엽기까지 하다.      


산들이 슬프면 나도 슬펐다. 여태까지도 속상해하면 더 속상하다. 내게 털어놓기까지 얼마나 고달프고 힘들었을지 가늠하지 않아도 다 알겠어서.

모든 사람에게 이럴 리 없었다.

산들은 그렇게 희한한 사람이다.      


그렇다고 또 대단한 우정이라 칭하기가 왠지 멋쩍다. 내내 의식하며 고마움을 느끼고 소중함을 되새기진 않았기 때문이다. 산들은 언제부턴가 내 옆에 있는 게 아주 당연한 사람이었다. 십 년 넘게 험하게 입고 다녔어도 실밥 하나 터지지 않는 튼튼한 청바지 같은 존재랄까. 앞서 말한 세탁기 몇 번 들락댔다고 영 못 입을 싸구려 청바지와는 아주 다르다.

쨍하던 파란 워싱이 더러 희끗희끗해진 데가 있더라도 그깟 게 신경 쓰이지 않을 정도로 늘 잘 입히는 그런 거.

아, 그래서 산들은 리바이스 클래식 같다. 유행이 제아무리 숨 가쁘게 돌고 돈다고 해도 영원히 변치 않을 올타임 넘버원. 변치 않을 질긴 촉감과 언제 뭐랑 입어도 거뜬히 파랗게 싱그러워지는 기분 좋은 멋짐.

쪼르르 나란히 목 뒤에서 춤추는 짧은 머리칼에 마른 몸, 딱 맞게 파란 청바지를 입은 산들은 내 안에서 언제고 그렇게 싱그럽게 젊을 사람이다.          



산들은 나와 가장 가까운 친구지만 참 많이 달랐다. 나의 ‘홍’에 등장했던 승현 언니와 산들, 나 이렇게 셋은 함께 무용과 입시를 준비한 사이인데 셋 다 비슷한 듯 많이 달랐다.

88년생, 89년생, 90년생. 저마다 다른 해에 태어나 같은 해 입시를 준비한 세 사람의 가운데가 산들이었다. 그런데다가 산들은 집에서도 둘째였다. 쌍둥이 언니 지은, 늦둥이 동생 종수의 사이에서 이리저리 치이며 둘째 딸 포지션으로 자랐다.

그래서일까. 산들은 모든 걸 잘 참았고 신중했다. 교수가 개소리하는 바람에 그 앞에서 바락바락 대들고 돌아왔다는 나를 우리 엄마보다 더 걱정해줬다. 학교 때려치우고 돈이나 벌겠다는 나를, 이제 더는 교수도 붙잡지 않는 나를 다른 학교 학생인 주제에 몇 번이고 말렸다.

결국 나는 대학을 중간에 때려치운 제적생이 되었고 산들은 학기 중간에 안식년으로 캐나다까지 다녀왔건만 성실히 학업을 마쳤다. 그래서인가 아직도 세검정이나 효자동 너머 종로 어디쯤 지나가면 산들을 생각한다. 이야, 이 산자락에서 학교 다니며 졸업하다니! 하긴 그런 성실함을 지녔으니 내가 얼마나 갑갑했을까,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음과 동시에 우직할 정도로 성실하기만 했던 어린 산들을 떠올리며 지나치곤 한다.     


아니 근데, 그렇게 잘 말리더니 내 결혼은 안 말렸다.

봄인데 눈이 내리던 결혼식 날, 보랏빛 히아신스 부케를 받고 환히 웃던 산들은 신부였던 나보다 더 환히 잘 웃었고 빛났다.

얼른 집에나 가고 싶다, 는 마음을 숨기고 있던 나는 가장 좋아하는 친구가 이리도 축하하고 기뻐하는데 당연히 잘 살 거라 여겼다. 드라의 바로 뒤에서 우리 둘을 번갈아 보며 숨차게 손뼉 치던 승현 언니도 몰랐을 거다. 내가 그렇게 될 줄은.     


잘 사는 줄 알았던 내가 이제 더는 안 되겠다며 단톡방에 그간 있던 일을 주르륵 읊고 이혼할 거라고 했을 때, 산들은 무슨 일인지 모르겠지만 좀 가라앉히고 다시 생각하라고 했었다.

대체 이게 다 무슨 일이냐며 하나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던 산들의 목소리는 바들바들 떨렸다. 아마 손까지 떨렸을 수도 있다.

대체 이게 다 무슨 소리냐는 목소리가 윙윙 울렸다. 회사 화장실 어느 칸에 숨어들어 전화를 걸 만큼 내 이혼은 산들에게 다급하고 당황스러운 이슈였다.

사람이 극에 치달으면 눈물도 나지 않고 흥분도 되지 않는 바람에 담담했던 나와 달랐다. 아마도 나 대신 놀라 주고 당황해줬던 게 아닌가 생각한다.     


모두가 응원해준 이혼을 얼추 정리하고 만났던 날, 산들은 내 눈을 한참 보다가 고개를 돌렸다. 승현 언니는 입을 꾹 다물고 눈만 깜빡였다. 팡, 터트리면 와르르 걱정을 꺼내놓을 눈동자였다.

모두 나만큼 빡쳐 있구나. 그 점이 너무 든든하고 좋아서 오히려 더 오버를 해 댔다. 이제 다 끝났다고. 더 말할 것도 없이 이제 다 됐으니까 나 다 괜찮다고. 맛있는 거나 사달라고 속없이 구는 날 보며 산들의 눈이 시뻘게졌었다.     


아니 어떻게 너한테 그래.      

못내 참지 못하고 전한 그 한 마디에 억장이 무너지는 기분이었다. 그래서 화장실에 가서 몰래 울다 나왔다.

그런 게 있다. 내 상처도 내게 참 큰 충격이긴 하다. 하지만 누군가의 걱정이 되고 아픔이 되어 슬프게 했다는 게 못 견디게 미안했다. 그 순간은 그게 더 충격이었다.

가장 가까운 두 사람에게만은 정말 잘 살고 행복한 것만 보여주고 싶었다. 열심히 살아도 부침 많던 내가 이렇게도 잘 풀린다는 걸 억지로라도 보여주고 싶을 만큼. 그러지 못해 미안했고 마음 아프게 해 미안했다.

그러니 알량하고 얕은 자존심과 애정이 뒤범벅된 내 아픔을 자기 상처처럼 동일시하는 산들을 봐서라도 수렁에 오래 머무를 수가 없었다.      


어떻게 너한테.

말도 다 못 잇고 음식이 그대로인 앞접시에 시선을 고정한 채 바들바들 떠는 산들을 차마 또 볼 수가 없었다. 내 아픔이지만 산들이 아픈 건 곧 죽어도 싫었다. 무엇이든 어떻게든 나아져야만 하겠다고 다짐했다. 산들이 산들산들 가벼이 나부끼는 건 언제 봐도 좋지만, 바들바들 떠는 건 보기 힘들었다.

누구보다 행복하길 바라는 친구가 슬프다니. 나를 보며 슬프다니. 견딜 수가 없어서 얼른 잊기로 했다.

그리고는 정말 금세, 잊힌 척이라도 하게 될 수 있었다.     


연극은 언젠가 끝난다고 했던가. 졸작(拙作)이었던 연극을 마친 나를 감싸준 그녀들은 숨 쉬듯 매일 말해줬다. 네 잘못이 아니라고. 누가 그렇다 해도 우리말만 들으라고. 넌 지금부터가 진짜 시작이라고.

그 주문은 아주 제대로 먹혔다. 가까이 살다가 저마다 결혼하며 물리적 거리가 제법 멀어졌음에도 그 주문은 참으로 강했다.

주문이 광역버스를 타고 신분당선을 타고 전해지기라도 하는 걸까. 아니면 누군가를 위하는 염원과 사랑이 그리도 강력한 걸까.     


내가 뭔 짓을 한다 해도 다 좋으니 응원하겠다는 사람이 있다는 데에 감사하다. 사람은 나이를 얼마를 먹건 잘한다, 잘한다 식의 우쭈쭈와 오냐오냐의 토닥임에 힘을 얻는다. 내가 산들에게 얻은 것은 단지 그 힘 만일 리 없다. ‘나 요즘 너무 못나서 거울 보기가 싫다?’라는 소리에 말도 안 된다는 표정을 지어주고, ‘인생 내일쯤 셔터 내렸으면 좋겠다.’란 헛소리에 나도 그랬으면 싶은데 일단 잘살아 보자며 기운을 불어넣어 준다. 자기도 힘들면서. 어른의 무게에 휘청대느라 볼 때마다 마르는 데도 나를 먼저 살핀다.

대체 이게 사랑이 아니고 뭘까.     


불안하기 그지없던 20대, 함께 그리도 열심히 사랑을 찾아 헤맸고 떠돌았다. 하지만 생각해보니 진정으로 간절하지 않았었다. 함께 헤매는 서로가 있었기 때문일까.

남자친구는 없어도 네가 있으니까. 누가 와도 산들이 아까웠고 넌 왜 남자 보는 눈이 왜 그 모양 그 꼴이냐며 답답해했다. 근데 그건 산들도 마찬가지였다. 아무도 우리에게 주목해주지 않는 동안 우린 서로를 그렇게 과대평가해 줬다.


거칠고 힘든 세상, 나만은 너를 지나치게 어여삐 여겨주겠노라고. 네가 최고라는 위안을 어찌나 많이 했는지 기억도 안 난다.

어쨌건 이젠 이름도 기억 안 나는 사람들이 내뱉던 가볍고 달콤한 말보다 숨 쉬듯 서로에게 토닥인 우쭈쭈가 더 진득하게 양분이 되어 남아 있다.

아니 이럴 줄 알았으면 소개팅하고 미팅하는 시간에 짐 싸서 훌쩍훌쩍 여행이나 많이 다녀둘걸, 뒤늦게야 아쉬워하는 거다.     


지나와 보니 젊은 날 그토록 찾아 헤매던 사랑은 사실 옆에 있었다. 입을 맞추고 밤을 함께 하지 않을 뿐, 20대 내내 내게 가장 큰 사랑을 쏟아부어 준 건 그 누구도 아닌 지혜, 산들이었다.

     

누가 보면 그 나물에 그 밥인 조합이었겠지만 우린 그 시간이 남겨준 힘으로 30대를 버티고 있다.

여전히 서로가 서로에게 가장 기특하고 대견한 존재로. 연애보다 애틋했던 우정과 믿음이 어느새 삶의 한 부분이 된 것에 새삼스레 고마워하며. 우리는 더 세게 쓰러지고 버틸 힘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을 때가 와도 여태 그랬듯이 서로를 향해 주문을 걸어줄 거다.     



나한테 너는 그래 지혜야. 언제나 네가 짱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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