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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수목 Jun 26. 2023

꿈은 명사가 아닌 동사

꿈 없던 청년이 미래를 그리게 되었습니다.




 장래희망을 적어야 할 때면 항상 난감했다. 보통은 '없음'이라 쓰고, 필요하다면 적당한 것을 골랐으나 진실되지 못한 대답에 스스로를 속이는 기분이 들었다. 무엇이 되겠다고 말하고 다니는 친구들도 많은데 이거다 싶은 답을 내놓지 못하니 조금은 뒤처지는 기분도 있었다. 번번이 의문이 맴돌았다.



 내 꿈은 뭐지?



 의사, 판사, 요리사… 수많은 직업이 널렸건만 딱 와닿는 것이 없었다. 어릴 적에야 독특한 케이스가 아닌 이상 스스로 앞으로 어떤 직업을 가지겠다 확고한 것 자체가 이상한 일일 것이다. 대부분 부모의 영향을 받거나 TV에서 멋지게 묘사하는 직업을 소망하지 않던가.


 그러나 나의 부모님은 감사하게도 자식의 의사를 존중하셔서 어떤 직업에 대한 말을 꺼낸 적이 없었고, 그다지 감사하지 않게도 디지털 미디어 역시 제한하셨기에 따라서 나는 둘 모두에 해당하지 않았다. 따라서 그러한 소망은 가져본 적이 없다.


 중학생일 때는 어련히 꿈이 생기겠지 싶어 마음을 편하게 먹었었고, 고등학생 정도 되면 입시 자소서를 위해서라도 뭐 하나 골라 창조하기 마련인데 직업백과를 읽어보아도 그럴 수가 없었다. 아무래도 자소설에 재능이 없었지 싶다. (결과적으로 1학년 때 진로 탐색을 하고 2학년 되어 전과하는 자유전공을 선택했다.)


 ‘내 꿈은 뭐지?’라는 의문은, ‘왜 나는 꿈이 없지?’로 옮겨갔다.



 답을 얻지 못했던 전자의 질문과 다르게 후자는 제법 쉽게 해결되었다. 유튜브에서 나이 사십 넘고도 꿈 없는 사람들이 수두룩 태반이라는 소리를 들었기 때문이다. 꼭 꿈이 없어도 괜찮다고, 먹고 사는데엔 지장이 없다고, 그런 삶도 결코 잘못된 것이 아니라고 나를 안심시켜 줬다. 


 그런데 막상 이대로 살려고 하니, 먹고사는 것 말고도 문제가 하나 있었다. 목표를 설정하기 어려워졌다. 입시라는 명백한 골인 지점을 지나니 이제 뭘 바라보고 가야 할지 알 수 없어졌다는 것이다. 다듬어진 길 잘 걷다가 갑자기 탁 트인 평원에 도달한 느낌이었다.


 방향성이 없으니 모든 것에 무기력해졌다. 거즘 졸업할 때까지 털레털레 일상만을 영위했던 것 같다. 3학년 말 즈음 되어서는 다들 취업 준비를 한다던데, 위기의식이 생겨야 하나 싶은 시기에도 자격증이고 뭐고 내게는 한참 까마득한 일처럼 느껴졌다. 어떻게든 되겠지 싶은 심정이었다. 좋게 말하면 낙관적이고, 나쁘게 말하면 안일하게 시간의 흐름에 올라타 있었다.


 모든 것이 침잠하던 그 시절에는 다만 이야기만이 내 세상에 생기를 불어넣었다.

 그것도 홀로 읽는 이야기 아닌, 함께 모여 만드는 이야기가 말이다.





 내게는 다소 독특한 취미가 있다. ‘TRPG’라는 공동 창작 스토리텔링형 게임으로, 납작하게 말하자면 연극과 RPG를 섞어놓은 이야기 창작 활동이라고 볼 수 있다. 중요한 부분은 여러 사람이 창작에 함께 가담함으로 전혀 예상치 못한 전개가 펼쳐지며, 이 흥미로움이 도파민과 카타르시스를 불러일으킨다는 점이다.


 어디에도 없는 이야기를 맛보기 위해 나는 주말을 온전히 바쳤고, 편도 한 시간 반이 걸리는 길을 한 주에 서너 번씩 오가기도 할 정도였다. 그 과정은 몇 달에 걸쳐 할 만큼 길기도 했으며 하루만에 끝날 만큼 짧기도 했다. 


 그러던 한 날, 길게 이어지던 이야기를 마무리 짓게 되었다. 내가 직접 개입하여 만들어가던 스토리가 끝나고 나니 한 발짝 물러나 독자로서 내용을 회고할 수 있는 시간이 찾아왔다. 가만히 들여다보자 당시에는 보이지 않던 것이 보였다. 순간 오래도록 쌓아온 강대한 이야기의 힘이 파도처럼 나를 덮쳤다. 마치 섬광이 스친 양 등골 아래 전율이 흘렀고, 내 영혼은 이야기의 파도와 공명하며 완전히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생각했다. 도무지 이 감각을 나만 알고 싶지 않다고. 더 많은 사람이 누리면 좋겠다고.


 누릴 수 있게 만드는 일을 하고 싶다고.


 바야흐로 꿈이 태어나는 순간이었다.




 인지심리학자인 아주대학교 김경일 교수가 그러더라. 꿈은 명사가 아니라 동사라고 말이다. ‘무엇이 되고 싶다’가 아닌 ‘하고 싶다’가 꿈이라는 것이다. 


 이제 누가 내게 꿈을 물어본다면 부푼 심장을 안고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다.



좋은 이야기가 살아 숨 쉴 수 있도록 세상에 내보내고 싶어요.
그게 내 꿈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나온 것이 누군가의 영혼을 울릴 수 있다면 더할 나위가 없겠다.

 과거의 내가 그러했듯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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