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직 7급 아내의 의원면직, 남편은 결사반대

남편의 의원면직과 다른 풍경

by 글임자

나는 '의원면직을 해야겠다', 남편은 '절대 안 된다' 하며 끝이 날 것 같지 않은 의견 대립에 집안 분위기마저 암울해져 부부의 감정의 골은 마냥 깊어져 갔다.


나는 이미 마음을 정했다.

그 무슨 말을 하더라도 결심을 바꾸지 않을 것이었다.

남편은 나랑 같이 산 세월이 11년이 넘는데 아직도 나를 잘 모르고 있는가.

하긴 나도 그 속을 알다가도 모르겠으니.


나의 의원면직을 둘러싸고 그 불꽃 튀는 감정대립이 극에 다다를 때쯤, 다시 한번 확고한 내 의지를 밝혔다.

"내가 내 일을 결정하는 건데 자기가 반대한다고 해서 못해야 돼? 지금 내 상태로는 일이고 살림이고 뭐고 아무것도 안된다니까. 애들이라도 구하자."

"다른 여자들은 직장 잘 다니면서 애들도 잘 키우고 그래."


그 여자들이 도대체 누구인지 나는 늘 궁금해했었다.

평소에도 남편 말이 '다른 집 여자들은 뭐든 다 잘한다'를 달고 살았다.

정말 그 여자들 얼굴이라도 한 번 봤으면 좋겠다.

유령회사 못지않은 실체도 확인할 바 없는 유령 여자들, 그런 워킹맘들은 다 어디에 숨어 있는 걸까.


내 경험상 직장 생활하면서 육아를 병행하는 일은 세상 몹쓸 짓이다.

하기는 해도 잘하는 것은 여간 어려운 게 아닐 터인데?

물론 나만 그럴 수도 있다.

왜 내가 저렇게까지 극단적인 느낌을 가지게 됐을까.

남편은 그에 대해 일말의 책임도 없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가.

"내가 육아휴직하는 동안은 애들도 다 보고 자기 뒷바라지도 하고, 복직하면 자기랑 같이 일하게 되니까 그땐 나도 많이 도와줄게."

어디서 자비로운 적선자 행세를 하신담?

"도와준다고? 누가 누굴 도와? 결혼은 공동체 생활이라고 했잖아. 누가 누굴 돕는다는 건지 모르겠네. 둘 다 같이 일하면서 누가 주가 되고 누가 보조역할을 하겠다는 거야? 집안일이든 육아든 '같이'하는 거야. 돕는 게 아니라고! 그럼 내가 지금 직장 생활하는 것도 자길 돕고 있는 거야? "

11년 째다.

돌고 돌고 그 말을 하고 또 하고 끝이 없을 것 같다.

영원한 반복 재생이다.

영원한 사랑보다도 더 치명적인 맞벌이 부부의 돌림노래다.


저렇게 대꾸하고 있는 내 금쪽같은 시간도 아깝다.

"10년도 넘었어. 진짜 달라진 게 없잖아. 솔직히 앞으로도 달라질 거란 기대는 없어. 내가 이 몸을 해가지고 일까지 해야 돼? 그건 불가능해. 난 알아. 내 몸이 먼저야. 나 일 안 할 거야."

"어쩜 그렇게 자기밖에 몰라?"

정말 속이 터진다.

그동안 찢어발겨진 내 마음은 그 어떤 명의의 손길이 닿는다 해도 회복이 불가능인 상태였다.

내가 도지사를 그만둔다고 했어, 대통령을 그만둔다고 했어?

내 몸 아파서 일 안 하겠다는데, 내가 결정하겠다는데 남편이란 사람이 계속 그런 식으로 나와야겠어?


언제는 나 일 안 해도 괜찮다며?

아이들만 잘 키워줘도 좋다며?

그게 돈 버는 거라며?

내가 돈 왕창 벌어준다잖아.

왜 그 돈뭉치에 묻어 죽을까 봐서?

감당 못하겠어?

물론 나도 남편의 그 말을 전부 다 믿지는 않았지만, 만약의 사태에서 내가 일을 그만둘 수도 있겠다는 여지를 나에게 준 셈이지 따지고 보자면.

누가? 바로 남편이.

자업자득이니라.


"옛날에 결혼할 때 나보고 뭐라고 했더라? 언제는 굳이 돈 안 벌어도 된다며?"

"그때는 그랬지."

"근데 지금은 왜 안된다는 거야?"

"아니, 이제 애들도 다 컸고. 자기가 없어도 이제 알아서 잘하겠지."

우리 애들이 엄마도 몰래 도둑결혼이라도 해서 살림 차렸단 말이오?

도대체 말할 때마다 달라지는 그 '애들도 다 컸다'는 그 말, 그 기준이 뭐냐고요.


나는 기본적으로 다 큰 애들은 없다고 보는데, 다 안 컸으니까 애들이라고 그러는 거야.

다 컸으면 어른이게?

어른도 다 안 큰 것 같은 사람 많이 봐 왔잖아?

아기 때는 아기 때 나름대로, 유아기, 어린이, 청소년기 다 자라고 있는 중이고, 부모의 관심과 보살핌은 여전히 절대적으로 중요하고, 필요하다고 보는 사람이다.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생각이다 물론.


나는 아이들을 낳고 '정말 사람답게 키우는 일' 그거 하나에 주력하고 살았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아이들은 낳은 후에는.

사람 하나를 '진짜 사람'으로 만드는 거 그거 정말 어려운 일이더군.

하지만 그런 면에서는 나와 남편은 완전히 생각이 다르다.

"우리 때는 그렇게까지 안 했어도 잘만 컸잖아"

지긋지긋하게 하는 그 소리.

그건 니 생각이고!

그리고 누가 잘 컸다고 말하는 거야?

설마 본인이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남편은 어떤 환경에서 자랐는지 모르지만 나는,

'항상 부모님이 나에게 관심과 사랑을 끊임없이 주고 계시는구나.'

하는 느낌을 늘 받았다.

정신적인 지지, 믿음, 격려, 사랑의 언어들 속에서 내 지난날이 지금의 나를 살게 해 주었다는 확신은 변함없다.

정신적으로 유복한 가정환경, 나에겐 그것이 전부였다.

그것이 나를 키웠다.


자녀에 대한 부모의 관심과 사랑은 어느 시기고 중요하지 않을 때가 없다.

특히나 청소년기, 사춘기가 나는 부모의 역할이 또 중요하다고 보는데 남편은 기저귀만 떼고 직립보행만 하면 애들은 다 큰 줄 아는 것 같다.

부부가 서로 육아에 동참하고 아이들과 어떻게 시간을 보내면서 서로 부대끼며 어울렸는지가 중요하다고 본다, 키워 볼수록, 아이들이 커 나갈수록.

아이들은 크고 자라고 성장하기도 하는 법이니까.


여러 말해 봤자 서로 더 기분만 상할 것이다.

어쨌거나 나는 이왕 건강은 나빠져버렸고, 더 이상 일은 할 생각이 없었으므로 이젠 기왕 이렇게 된 거 아이들 뒷바라지라도 힘써야겠다고 마음먹은 것이다.

아이들에게 더 신경 써 주고 뒷바라지해 줄 기회라 생각하니 오히려 더 고마울 지경이다.

내게 닥친 시련의 뒷모습이 그랬다.

게다가 성치 않은 몸으로 오히려 아이들에게 부정적인 역향이라도 끼치게 될까 봐 그 걱정 또한 컸다.

과거 아픈 몸으로 아이들을 대하자니 좋지 않은 모습들도 많이 보였었고, 그 기억이 아프게 남았었다.


넋 놓고 있을 수야 없는 일이지.

엄마니까 해 나가야 한다. 내 몸을 추스르면서 아이들을 뒷바라지할 수 있는 만큼, 내 힘이 닿는 데까지는, 절대 무리하지는 않고.

내 한계를 내가 잘 아니까.


아이들에게 중요하지 않은 순간은 단 1초도 없는 것 같은데, 무슨 말로 더 남편을 설득해야 하나.

저런 순간마다 나는 정말 남편과 대화가 안 된다고 느끼곤 한다. 남편도 나 못지않겠지 물론?

서로 자기 생각만 고집하고 상대를 포섭하려고 하면 언제나 제자리걸음일 뿐일 테지.

부부란 부(득부득 상대를) 부(정하는 사이), 그런 건지도 몰라.


그래도 새엄마보다는 친엄마가 애들 키우는 게 더 낫지 않겠어?


어쩌면 남편의 마음을 동요시킨 한마디.

생각해 보시라.

오래 생각할 필요도 없다.

물론 남편은 새 아내를 원할지도 모르지.

그 '일도 잘하고 아이들도 잘 키워낸다는 다른 집 그 여자들' 중 한 명을.


나는 2년 전 건강이 무너지고 나서 별의별 생각이 다 드는데 역시 남편은 자기 일이 아니라 그런지 별다른 반응도 없었다.

"내가 일을 그만둔다고 해서 달라지는 건 경제적으로 수입이 반으로 줄어든다는 것 밖에 없어."

"하지만 그건 무시할 수 없는 부분이야. 현실적으로 생각해야 돼."

"경제적으로 수입이 주는 대신 나는 생긴 시간을 더 가치 있게 쓰고 싶어."

"앞으로 애들이 학원 가게 될지도 모르는데."

우리 아이들은 현재 9살, 11살, 작년까지는 여태껏 그 흔한 태권도나 피아노 학원 가 본 적이 없다.


아이들에게 학원에 가고 싶은지, 배우고 싶은지 의견을 물었으나 그다지 원하지 않았고, 나중에라도 가고 싶은 학원이 생긴다면 계획서를 잘 써서 어떤 식으로 학원을 다닐 것인지 엄마 아빠에게 구체적으로 알려 달라고 했다.

배우고 싶다면야 내가 무슨 일이든 해서 뒷바라지 못해주랴.

하지만 친구들이 다 다닌다고 생각 없이 무조건 따라가는 일만은 허용하지 않겠다는 게 우리 부부의 철칙이다.

어디까지나 남의 시간을 살지 말고 아이들 스스로의 시간을 계획하고 의미 있게 썼으면 하는 바람에서다.

줏대를 가지고 확고한 신념 속에서 자신의 시간을 소중히 다루고 가치 있게 썼으면 해서 말이다.


자신이 스스로 결정하고 행동하고 책임을 지는 것, 그것만 제대로 된다면 더 이상 뭘 더 바라랴.

스스로 결정하고 계획하고 실천하는 힘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이 바로 성공한 사람이다.

그럼 자식농사 성공한 거지 뭐.



너무 무리해서 공부할 거 없다 얘들아.

자신이 할 수 있는 만큼 해라.

공부를 하려거든 스스로 원할 때 자신을 위해서 해야 한다.

밤새 코피 나게 공부해 봐야 SKY밖에 더 가겠느냐, 그래 봤자 하버드 밖에 더 가겠냐고?

저 대학들을 무시해서가 절대 아니다.

절대 무시할 대학들이 아니란 거 누구나 다 아는 사실 아닌가.

내 말 뜻을 알아듣겠지?


나는 아이들이 자기 나름의 생각을 갖고 인생을 살았으면 한다.

자신이 잘하는 것을 찾고 보람을 느끼는 일을 하거라.

사람은 누구나 한 가지 잘하는 게 있다고 하니 그 한 가지만으로도 최고가 된다면(굳이 최고가 안되더라도),

자신의 분야에서 자부심을 느끼고 살 수만 있다면 그걸로 된 거다.

스스로의 기준에 만족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라.

남의 기준에 어슬렁대지 말아라.

돈?

그거 많아봐야 어디다 쓸까 하고 걱정만 많아진다.

엄마는 그런 경험이 없어서 잘은 모르지만 그렇잖아도 생각 많은 인생들인데, 굳이 저런 걱정까지 하고 살 필요가 있겠느냐.

돈도 가치 있게 써야 하고, 그러는 게 중요하다는 거 너희들도 잘 알 테지.


엄마처럼 가진 게 없어봐라, 없으니까 어떤 걸 골라야 하나 어디로 가야 하나 고민할 필요도 없지.

사람은 자신이 가치 있다고 확신하는 분야에 집중할 줄도 알아야 해.

엄마 이래 봬도 약간의 결핍이 있을 뿐이지 궁색하진 않다.

내가 괜찮으면 된 거다.

없으면 안 쓰면 되는 거야, 꼭 필요한 게 아니라면 굳이.

얼마나 단순하니.

가끔 인생을 단순하게 살 필요도 있더라니까.

어차피 너희가 자라면서 겪어보고 판단할 일이지만 엄마 경험상 느낀 점을 얘기해 주고 싶구나.


희한하게 저 부분만 둘이서 의견 일치를 보았다, 자녀 교육에 대한 신념 말이다.

좀처럼 보기 드문 일인데 아버님이 결혼 전에 둘이 궁합이 좋다고 하시더니 딴 건 다 빼고 자녀 교육관에 대한 궁합만 보고 오신 걸까?


어쨌거나 남편이 거의 넘어온 것 같은데.

"지금 내가 일 그만 안 두고 억지로 계속 다닌다면 그 하루하루가 수 천만 원씩 손해 보는 느낌일 거야."

"틀린 말은 아닌데. 그래도 아깝잖아. 그 고생을 하고 붙었는데. 이제 몇 년 좀 더 있음 6급 승진도 할 거고 월급도 오를 거고 더 편해질 건데."

이 사람, 아직 멀었다. 말귀를 못 알아듣는구나.

"진짜 아까운 게 뭔지 알아야지. 그 돈, 그 월급이 탐났으면 그만두지도 않을 거라니까. 내 몸 아파 봐, 돈이고 공무원이고 다 소용없어. 그딴 게 뭐가 중요해, 나 죽고 나면?"

좀 무리해서 너무 멀리 갔나 싶었지만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틀린 말은 아니니까.


직장 다니고 돈 벌고 고생하고 그러는 이유가 다 뭔데?

잘 살아보자고 다들 그러는 거잖아.

그것도 나중에, 지금은 힘들지만, 지금은 지옥이지만 나중엔 천국이 기다릴 거라고 단단히 착각들을 하면서 말이야.

지금이 지옥이면 나중에 천국은 없다더라.

나중에 행복하려면 지금 당장 행복해야 한다더라.

나중은 없다더라.

지금뿐이라더라.

내가 지금 행복하자는 게 아니잖아, 우선 살겠다는 거잖아.


나는 지금 평화를 원한다.

나에게 나중은 없다.

게다가 내가 충동적으로 일하기 싫다고 그러는 것도 아니고 건강상 이유로 일을 그만하겠다는 거잖아.

지금 그게 제일 중요한 건데 왜 자꾸 엉뚱한 얘기만 자꾸 하실까.

영어 시험 문제에서 그런 문구 많이 봤잖아.

"Now or never."

라든지,

"Better late than never."

저런 훌륭한 말씀들, 기억 안 나?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들어간 덴데."

지긋지긋하다.

적당히 좀 하시구랴.


어떻게 들어가긴 어떻게 들어가? 공무원 수험서 보고 인강 듣고 몇 번 떨어져 보기도 하고 그러고 커트라인 맞아떨어져서 들어갔지.

계속 이렇게 나오시겠다 이거지?

그럼 나도 할 말은 있지.

치사해서 이런 말까지는 안 하려고 했는데


"자기도 그때 우체국 그만뒀잖아, 전과자가 이럴 수 있어, 나한테?"

찔끔하는 것 같긴 했지만 이내 평정심을 되찾고 되받아친다.

"그때랑은 다르지."

"다르긴 뭐가 달라."

"자그마치 결혼하고 일주일 만이었어. 신혼여행 갔다 오자마자 그만둬 놓고는."

"나는 그때 다 계획이 있었지만 자긴 계획이 없잖아."

얼씨구, 나를 숫제 완전 계획도 없는 사람 취급하잖아?

"내가 계획이 왜 없어? 일단은 건강 관리하면서 살림도 하고 애들 돌볼 거라니까."

여태 뭐 들은 거야?

여태껏 입 아프게 말하니까 내 말 안 듣고 어디 1박 2일 휴가 갔다 왔수?

"그러니까 우선 병가 내고 다 쓰면 질병 휴직을 하자. 그러다 보면 건강도 좋아질 거야."

아니, 딴 건 몰라도 현재의 남편하고 동거하는 이상 그건 장담 못하겠다 솔직히.

악화되지나 않으면 다행이지.


남편도 정말 끈질기다.

그렇다고 거기서 굽힐 내가 아니지.

"내 직업인데 왜 자기가 해라 마라야?"

"그건 그렇지만 우린 부부잖아."

부부? 부부라고? 부부가 대관절 뭣이간디?

한 사람이 이렇게 말하면 딴 사람은 절대 그렇게는 안된다고 머리띠 둘러매고 핏대 올리는 거?

아니야, 부부라면 이래선 안돼.

남편이라는 사람은 그래선 안돼.


내가 말했다시피 본인도 국가직 의원면직한 전과가 있는 사람이. 벌써 그때 일을 다 잊었단 말인가.

"아니 전과자가 그렇게 말하면 안 되지? 그리고 난 그때 금방 받아들였잖아. 본인 인생이니까 알아서 하라고."

"그땐 애들도 없었고."

"애들이랑 나 일 그만두는 거랑 무슨 상관이냐고. 그 얘기 좀 그만해!"

"애들 생각을 해야지."

"그러니까 애들 생각해서 더 그러는 거잖아. 솔직히 나 이 상태로 일하면서 애들까지 돌볼 자신 진짜 없어."


나만 죽어날 게 뻔히 보이는데. 내 눈에는 훤한데, 그걸 아직도 몰라?

그러게 평소에 잘 좀 했어 봐.

"내가 옛날에 자기 많이 못 도와준 거 인정해. 미안해, 그때 일은."

또 돕는다고 표현하는구랴.

이미 늦었단다 남편아. 이젠 돌이킬 수 없어.

"지난 일은 더 이상 얘기하지 말고 앞으로 일만 얘기합시다. 겪어보니까 앞으로 달라질 게 없을 것 같아."

"내가 더 도와준다니까!"

끝까지 말이 안 통하는 사람이다.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기나 하는 거야?

사람은 잘 안 변하고, 변하면 또 어떻게 된다더라?


어쩔 수 없다.

"나 없다고 생각해 그냥.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없는 사람이 돈 안 벌어 오는 거 당연하지 않아?"

"그게 무슨 소리야?"

내가 보기엔 그리고 남편 입으로도 말했다시피 나는 지금 내 몸이 중요하고, 남편은 현실적으로 경제적인 부분을 절대 무시할 수 없다고 주야장천 주장해 온 사람이다. 나도 아예 무시할 수는 없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하지만 세상 사람들이 다 맞벌이로 살지 않으며, 외벌이도 많이 있고, 그렇다고 외벌이 가정이 기아에 허덕이며 끼니 걱정하는 세상은 아니지 않은가. 부부공무원? 그딴 게 지금 뭐가 중요해, 나한테?



임진왜란 때도 살았고, 6.25 때도 살았고, 보릿고개 때도 다 살아남았다.

나는 더 잘 살아낼 수 있다.

아들도 있고 딸도 있고 저녁에 돌아와 잠잘 방 한 칸 있고, 부모님 그런대로 건강하시고, 이 정도면 됐지. 뭘 더 바라?

밥을 굶길 해, 아이들이 속을 썩이길 해?

내 두 다리로 어디든 갈 수 있고.

아프리카에선 돈 천 원이 없어서 며칠씩 밥도 굶고 마실 물도 흙탕물이나마 그것도 못 구해 목마르게 산다는 얘기도 못 들었나 보지?

거기에 비하면 나는 얼마나 가진 게 많은 사람인가.

복 받았지.


우리 할머니가 생전에 그러셨어.

올려다보고 살지만 말고 내려다보고 살 줄도 알아야 한다고, 사람이.

사람 욕심은 끝이 없으니까 만족하고 사는 게 중요하다고.

내가 만족스러운데, 더 바라는 것도 없다는데 뭐가 그리 부족하고 아까워서 내려놓질 못하고 있는 거야?

지금 내 상황에서 저만큼만이라도 그저 고마운 거야.

내 마음 알기나 해?


그러나,

더 이상 남편도 무턱대고 반대할 수만은 없었다, 내가 비장하게 던진 그 말에.

"그래? 정 안된다면 할 수 없지. 우리 관계를 정리하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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