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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임자 Jul 09. 2024

2화. 시가에 매일 백일 동안 전화를 하면

깨닫게 된다, 그 무엇을

2024. 7. 8.

< 사진 임자 = 글임자 >


"어머님, 병원은 계속 다니고 계시죠? 아버님도 같이 가시는 거 맞죠?"

"응. 너희 아버님이랑 같이 다닌다."

"번거롭더라도 소독도 꾸준히 하셔야 돼요. 병원 다니기 힘드시면 제가 소독약 하고 멸균 거즈 주문했으니까 그거 쓰세요."

"그래. 안 그래도 집에 소독약이 없었는데, 잘됐다. 고맙다."

"날씨도 춥고 그럴 때는 그냥 집에서 조심히 소독하시고 날 괜찮을 때 병원 가세요."

"그래. 그래야겠다. 우리 며느리 말 들을란다."


흡사 시부모님의 일상을 감시하다시피 하며 나는 매일 시가에 전화를 했다.

그것도 백일 동안 말이다.

그러니까, 백일 동안 시가에 전화를 하게 되면 비로소 깨닫게 되는 것이 있었으니.


뜨내기 내지는 돌팔이에게 뜸을 받으시고 시부모님 다리에 흉터가 생기고 통증까지 덤으로 얻었다는 얘기에 무조건 병원부터 가시라고 등 떠밀었던 나다. 같이 살지 않으니 내가 억지로라도 모시고 갈 수 없어서 선택한 것이 '1일 1 전화'였다.

대단한 효부라서가 아니다.

어른들은(물론 내 주관적인 생각이지만) 가시라고 가시라고 해도 말로만 가신다고 하고 병원을 좀 무서워하시는 것 같다. 우리 친정 부모님만 보더라도 말이다. 하긴 나도 일단 병원 갈 생각을 하면 심란해지기부터 하곤 했으니까.

"어머님 다시 수술받으시려면 거기 뜸 뜬 자리가 깨끗이 아물어야 할 수 있다고 하잖아요. 지금 치료 잘 받아서 완전히 나아야 수술도 할 수 있으니까 귀찮고 힘들어도 병원은 꼭 다니셔야 돼요. 아버님도 꼭 같이 가시고요."

처음 그 흉터들을 봤을 때 그런 쪽으로는 문외한인 내가 봐도 좀 심하다 싶었던 거다.

게다가 통증까지 느껴진다고 하시니 열 일을 제쳐놓고라도 병원을 찾는 게 우선일 것 같았다.

무릎 연골이 너무 닳아서 급기야 수술을 하기로 결정하신 어머님은 그러나 상담차 병원에 가셨을 때 뜸을 뜬 자리가 발목을 잡았던 거다.

의사 말이 그 상태로는 도저히 인공관절 수술을 할 수 없으며 최소한 몇 달은 기다려야 할 거라고, 염증이 너무 심하다며 몇 달 후에 재방문하시라고 했단다.

병원에서 들은 말도 있고 며느리가 닦달하다시피 (그것도 매일) 전화해서 병원에 다녀오셨는지 확인하는 바람에 두 분은 그나마 병원을 꾸준히 다니게 되셨다.

하루빨리 인공관절 수술을 하고 싶으셨던 어머님 마음도 한몫했을 것이다, 물론.


처음엔 할 말도 많았다.

"어머님, 병원 다녀오셨어요? 날씨는 어때요?"

"두 분이 같이 다니시니까 그나마 더 나으시죠? 집에 별 일은 없으신 거죠?"

"요즘 감기가 유행이래요. 조심하세요."

"설마 무릎도 안 좋은데 무슨 일 하고 계시는 건 아니시죠?"

"병원 다니기 힘드시죠? 소독은 잘하고 계세요? 혹시 필요한 거 있으면 말씀하세요."

"흉터는 좀 아문 것 같으세요? 빨리 나아야 수술받으실 텐데요."

"오늘은 애들이 이러고저러고 그랬어요. 애들하고 통화하신 지도 좀 된 것 같은데 다음엔 애들도 있을 때 전화드릴게요."

친정에도 매일 전화하지는 않았는데(거의 필요에 의해서만 전화하는 편이다.) 시가에는 세 달 넘게 전화를 하게 되었다.

한 달은 거뜬했고, 두 달 째도 그럭저럭 간단히라도 안부를 서로 주고받으며 무난하게 넘어갔다.

며칠 안 된 것 같은데 전화드린 지가 한 달이 훌쩍 넘었고 어느새 두 달째 접어들었던 거다.


"응, 며늘아."

한 달이 지날 무렵에는 전화를 걸고 내가 입도 뻥끗하기 전에 어머님은 상대가 나라고 확신을 하고 저렇게 받으시는 경우가 많아졌다.

문제는 세 달째 접어들자 비로소 시작됐다.

이젠 무슨 말을 한담?

그동안 할 말은 다 했는데?

며느리 입장에서 하는 말은 한정되어 있고, 어차피 몸이 안 좋으셔서 전화드린 거라 마침 대화거리가 똑 떨어진 느낌이었다.

솔직히 그동안에도 그 말이 그 말이었고 오가는 대화는 대개 거기서 거기였다.

하긴 시부모와 며느리 사이에 주고받는 말이 얼마나 거창한 게 있겠는가?

시부모님과 세계 평화에 대해 논할 것인가, 세계 경제 위기에 대해 주거니 받거니 할 것인가.

(나 혼자만 느낀 거겠지만) 더 문제는 시부모님과 통화할 때 점점 (그다지) 반기는 것 같지 않더라는 느낌적인 느낌이었달까? 물론 내 오해일 수도 있다.

나를 반기는(반기셨겠지?) 목소리에 담긴 '여보세요?' 하는 그 한마디가 처음엔 100이었다면 점점 줄어드는 느낌, 아마도?

하긴 내가 시부모님이라도 살짝 귀찮은 생각이 들 수도 있겠다 싶었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귀찮게 해서라도 두 분이 치료를 잘 받으셨으면 하는 마음이 컸다, 솔직히.

다른 마음은 전혀 없다.

내가 끈질기고도 집요하게 전화를 하는 바람에 두 분은 마지못해 병원에 다니셨을지도 모르겠다.

최소한 차마 내게 거짓말을 하실 분들은 아니라고 믿으니까 말이다.

"어머님, 이젠 소독은 더 뜸하게 하시겠네요? 상처는 어때요? 약도 잘 드시고 계신 거죠?"

"으응, 어제는 안 했다. 매일 안 돼도 되더라. 이제 많이 아물었다."

어머님은 솔직하신 분이라고 알고 있다.

그래도 백일 정도 신경을 쓰면 그 흉터가 많이 나을 거라고 시작한 일인데 어느 순간 전화하는 나도, 받는 시부모님도 은근히 일처럼 느껴진 것은 아닌가도 싶었다.

이런 게 과유불급인가?

내가 과연 두 분의 안부를 살피기 위해 전화를 드리는 것인가 아니면 마치 '백일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는 것인가.

뭐든지 좋은 의도로 시작했더라도 '일'이라고 느껴지는 순간, 애초의 순수했던 마음은 오간데 없어지기도 하지 않던가.

"며늘아, 이제 그만 좀 해라. 지긋지긋하다."

라는 말은 듣지 않아 그나마 다행이었다.

물론 그렇게 말씀하실 분들도 아니거니와.


그저 나는 두 분만 사시니까 안부도 전할 겸, 겸사겸사였다.

마침 핑계가 좋았던 거다.

그러나,

나는 비로소 깨달았다.

느리가 매일 시부모님께 전화를 하면, 할 말이 없어진다.

시가에 전화는,

그것도 매일 백일 동안 하는 전화는...

적당히, 뭐든, 적당히가 좋다.

그래도,

지겹게 매일같이 전화해도 단 한 번도 싫은 내색 안 하시는 두 분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내가 전화를 드리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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