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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임자 Jul 12. 2024

오오, 나는 당신께 이웃 추가를 원하지 않았어요.

당신이 차단 당한 이유

2024. 7. 11.

<사진 임자 = 글임자 >


"왜 나 차단했어?"


조신하게 부추를 다듬고 있던 그 양반이 느닷없이 내게 불쑥 물었다.

아니, 따졌던가?

따진 것 같다.


"얘들아, 얼른 와서 같이 부추 다듬자."

라고 말한 사람은 내가 아니라 그 양반이었다.

또 장바구니에 뭘 잔뜩 담아 두셨나?

아니면 무슨 사고라도 친 건가?

'부추'를 발음하기 위해 나는 양쪽 입술을 붙여 본 적도 없는데 갑자기 남매를 동원했다.

그러더니 다짜고짜 내게 묻는 것이었다.

"차단은 왜 한 거야? 차단한다고 해서 내가 못 보는 것도 아닌데."

"그러게 뭐 하러 날 추가했어?"

"난 격려도 해 주고 그러려고 그랬지."

"안 해줘도 돼."

"도대체 왜 차단한 거야?"

"난 소수 정예반으로 갈 거야. 내가 이웃 추가한 사람들이랑만 조용히."

뭔가 떨떠름한 반응을 보인 그 양반은 아마도 내가 많이 못마땅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게 정말 내 진심이었다.

애초에 블로그를 시작한 목적이 '하나라도 배워 보자.'그런 마음이었고, '이왕이면 기록해 보자'그런 마음이었던 거다.

블로그를 시작하던 첫 해에는 '모닝 스페셜'을 집중적으로, 그러다가 '진짜미국영어', 간혹 '귀가 트이는 영어'와 '입이  트이는 영어'까지 기억해 두고 싶은 표현을 메모하는 식이었다.

블로그가 무엇인지도 모르던 컴맹이 어쩌다가 블로그를 알아가지고 처음엔 신세계를 경험하며 마냥 신기하고 재미있었던 거다.

하지만 마구마구 이웃이 늘어나는 것은 바라지도 않았다.

나는 분명한 목적이 있었으므로 나와는 아무 상관도 없이 그저 무의미하게 시간 보내게 만드는 그런 건 딱 질색이었다.

딱 내가 관심 있는 그런 분야에 공통점이 있는 그런 이웃, 내 처지(?)와 비슷한 그런 이웃, 나의 이웃은 그런 것 같다.

그래서 서로이웃한 사이에 있는 이들은 많지 않다.

온전히 관심사가 똑같이 맞아떨어지지 않더라도 한 분야라도 뭔가 통한다 싶으면, 그러면 이웃이 되었다.

확히는 내가 이웃으로 그들을 '추가'했다.

치는 대로 이웃 추가부터 하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었다.

어차피 세상은 넓고 마음만 먹으면(?) 이웃은 정말 '만들 수도 있는 세상'이 되어버렸으니까.

이웃이 되는 것과, 이웃을 만드는 것은 적어도 나에겐 서로 다른 차원의 의미다.

나는 다른 이웃을 원했다.

서로 시간 낭비를 하지 않게 하는 이웃, 내가 모르고 있던 것을 알려주는 이웃, 내게 좋은 영향을 끼치는 이웃, 그런 이웃을 바라 왔다.


양반을 이웃 차단한 이유는 아주 단순하다.

'굳이' 온라인상에서까지 그럴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걸핏하면 엉뚱한 소리나 하면서 할 말 안 할 말 구분 못하고 마구 하면서 그러면서 이웃이라니?

그런 이웃은 원하지 않는다.

그런데 격려라니?

격려씩이나?

나보고 '쓸데없는 것만 한다'고 핀잔주고 불만을 터뜨릴 때는 언제고?

쓸데 있는지 없는지를 왜 본인이 판단하는 거지?

내가 하는 일에 대해서 말이다.

남의 일에 이렇다 저렇다 판단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는 걸까?

판단은 각자 본인이 하면 될 일이다.

내 앞가림하고 살기에도 바쁜 세상 아니던가.

이웃이 고 싶은 사람은 추가를 하면 될 일이고, 내가 이웃이 되고 싶지 않으면 차단하면 될 일이었을 뿐이다.

더도 덜도, 그 이상의 이유는 없을 뿐이다.

본인 일도 바쁘실 텐데 뭐 하러 쓸데없는 짓만 하는 사람이 하는 일에 격려를 하겠다는 건지 모르겠다.

(저 한마디 했다고 내가 끝끝내 앙금을 남아 유치하게 반응하는 것은 결코 아님을 분명히 밝힌다.)

나는 격려를 바라지도 않고 겉과 속이 다른 댓글 같은 것도 원하지 않는다.

격려는,

그러니까 그날 밤처럼 부추를 다듬어 주는 일로 승화시키면 될 일이다.

얼마나 만족스러운지 느닷없이 그 양반의 블로그로 찾아가 보이는 글마다 공감을 백 만 스물아홉 번씩이라도 눌러주고 싶을 지경이다. 그러나 나는, 그 양반의 블로그 이름도 모른다.

그러니까 내 말은  거기에서까지 '그럴 필요'가 없다 이 말이다.

입덧 때문에 낮이고 밤이고 토하랴 일하랴 정신없을 때도 본인은 공무원 시험 합격 기념으로 제주도 여행 시고, 나는 원하지도 않는 사진 세례를 퍼부어서 내' 업무 집행'을 상당히 방해한 죄로 수신 차단 당한 전과도 있으시면서 그깟 이웃 차단당한 게 뭐 그리 놀라운 일이라고?

물론 기원전 2,000년 경의 까마득한 옛날 일이지만 말이다.


상대가 원하지 않는 일을, 그저 본인 기준으로 본인 생각이 상대방 생각인 줄 착각하고 행동하는 것, 그건 끝까지 그저 본인 입장일 뿐이라는 걸 모르는 걸까.

다른 사람은 몰라도 적어도 나는 그렇다.

내가 호의를 베풀면 상대는 무조건 고마워해야 하는 건가?

꼭 그렇지만도 않다.

적어도 나의 경우에  말이다.

그저 본인 만족감에 상대를 의식하고 하는 행동이 진심으로 상대를 '위해서'라고 단정 지을 수 있을까.

그것도 그냥 본인이 좋아서, 본인 기분에 취해서 하는 것으로밖에 안 보인다. 적어도 내 경우에는 말이다.

그리고 그런 많은 일들은 모두 경험에 의해 지금 내가 이렇게 느끼는 것이고 말이다.

어쨌거나, 나의 경우는 그렇더라 이 말이다

그저 의무감 비슷한 것  때문에, 왠지 그래야 할 것 같아서 어떤 행동을 한다면, 그것만큼 쓸데없는 일이 또 있을까.

나와 관련된 일 말고, 정말 쓸데 있는 일에, 진심으로 마음이 가는 일에 시간과 마음을 쓰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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