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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임자 Jul 17. 2024

7월엔 월급도 받고  정근수당도 받잖아

공산당은 싫지만, 정근수당은 좋아요

2024. 7. 16.

< 사진 임자 = 글임자 >


"내일은 정근수당도 나오는 날이네?"

나는 내 것도 아니면서 반가운 마음에 그 양반에게 한마디 했지만 정작 그 수당의 주인은 말이 없었다.

다만 조용히 한숨만 쉬었던가?

"나한테도 콩고물 좀 있어?"

내친김에 언감생심, 콩고물까지 다 바랐다.

그러나 '정근수당'이라는 말에는 침묵하던 이가 내가 '콩고물'이라는 단어를 내뱉은 직후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내게 말했다.

"나도 없어."

없긴, 없긴 왜 없어, 다 있으면서.


"얘들아, 엄마 어디 있어?"

저녁을 먹고 난 후 느닷없이 분리불안에 시달리는 어린아이마냥 그 양반이 나를 급히 찾았다.

그 양반이 나를 찾을 때는 반드시 볼 일이 있어서다.

뭔가 원하는 게 있다.

뭔가 요구할 게 있다.

뭔가 아쉬운 게 있다.

그러니까 그럴 때만(나는 그럴 때만 나를 찾는다고 진심으로 느끼고 있는 중이다. 그건 어쩌면 그 양반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일 것이다.) 나를 급히 찾는 것이다.

또 뭘 하려고 저렇게 호들갑을 떠는 게지?

그 양반은 도서관을 가려는 나를 붙잡고 방으로 '끌고' 갔다.

정말 나는 끌려가다시피 했다.

"바빠?"

"안 바빠도 바빠."

"뭐 하고 있어?"

"뭐 안 하고 있어도 뭐 하고 있어."

"나 좀 도와줘."

내 이럴 줄 알았다.

걸핏하면 세상 물정도 모른다며 나를 타박하더니 본인이 부탁할 일이 있을 때만 도와달라고 한다.

다행히 나는 한글을 안다.

무사히 그 양반이 원하는 대로 일을 마치고 방을 나서려다가 갑자기 그 생각이 난 것이다.

어느 시인의 고장의 7월은 '청포도가 익어가는(이육사의 '청포도')' 계절이지만, 내게 7월은 정근수당의 계절이다.

물론 내 것은 아니고 그 양반 것이지만 말이다.

남의 것이라도, 내가 받는 것은 아닐지라도 7월은 괜히 기분 좋아지는 계절이 되는 것이다.

마침 내가 그 양반의 일도 도와줬으니까(물론 아주 미미하게였지만) 그 은혜(물론 그런 것도 '은혜씩이나'라고 이름 붙이기엔 양심상 좀 거시기하긴 했지만 도와준 건 도와준 것이니까)를 모른 척하지는 않으렷다?

그래서 아무 말 대잔치를 또 해 본 거다.

"내일은 월급도 받고 정근수당도 받겠네. 나한테도 콩고물 떨어질 거 좀 있어?"

느닷없이 왜 콩고물 타령을 했냐고 묻는다면, 돌이켜 보건대 정근수당이 나오는 달에는 내게도 뭔가가 떨어지는 게 있었던 것도 같은 착각이 갑자기 들어서였다.

혹 과거에 그런 게 전혀 없었다 하더라도 이참에 콩고물을 좀 노려볼까도 싶었던 거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나 혼자만 잘 먹고 잘 살자고 그러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꼭 뭘 바라서가 아니었다, 솔직히.

마침 '월급날 이브'라서 그냥 생각난 김에 해 본 말일뿐이었다.

그런데 그 양반이 정색을 하고 말하는 게 아닌가.

"나도 없어."

이 양반이 말은 똑바로 해야지.

있으면서 그러시네.

다 아는데 그러시네.

주기 싫으면 주기 싫다고 그럴 것이지.

내가 언제 뭘 달라고 했나?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 !"

라고 외치던 30년 전의 이 연사는 오늘날 다시금 외쳐 본다.

"그러나 나는, 정근수당은 좋아요!"

라고 말이다.

즐거운 월급날에 '또' 회식을 하신단다.

내게 콩고물을 떨어뜨려주기는커녕, 술 냄새만 풍겨 줄 것이다.

콩고물은 무슨,

콩나물이나 사러 나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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