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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임자 Nov 04. 2024

시몬, 너는 좋으냐 라떼타령 소리가

라떼에서 급식까지

2024. 10. 31.

<사진 임자 = 글임자 >


"엄마는 좋겠다."


라고 아드님이 내 앞에서 말씀하시자마자 나는 본능적으로 알았다. 그다음 말이 어떻게 나올지에 대해서 말이다.

아드님이 또 본전도 못 찾는 시간, 바야흐로 그때가 다시금 도래한 것이다.


"엄마는 학교도 안 가고 집에 있잖아."

"그래서 엄마가 좋을 것 같아?"

"응. 물론 엄마가 집안일도 하고 이것저것 많이 하긴 하지만..."

"우리 아들은  엄마가 학교 안 가는 게 그렇게 부러워?"

"응."

나는 학교'만' 가면 되는 네가 더 부럽다.

"또 엄마가 시작해야 하는 건가?"

얘가 또 다 잊어버렸나 보다.

그렇다면 다시 시작하는 수밖에.

"잘 들어 봐. 엄마도 너만 할 때 다 학교 다녔어. 너는 지금 집에서 학교까지 길어야 10분이지? 엄마는 초등학교 다닐 때 거의 한 시간씩 걸어 다녔어. 알지?"

"그랬어?"

"저번에도 얘기했잖아. 외할아버지 집에서 학교까지 걸어가면 그 정도 시간이 걸려 그러면 학교 한 번 갔다 오는데 왕복 2시간이 걸려. 유치원 때부터 그렇게 걸어서 다녔어."

(6.25 때 얘기 아님 주의!)

"정말 멀었네."

"너처럼 학교만 다닌 줄 알아? 주말에는 할머니 할아버지 일도 다 도와드리고 그랬지. 농사지으시니까 외삼촌들이랑 다 같이. 여름에는 담배밭에 가고(피우러 간 거 아님에 각별한 주의 요망) 겨울에는 시금치 밭 가고. 아무튼 어린이날 이런 날도 너희처럼 선물 받고 어디 여행 다닌 적도 없었어."

"근데, 엄마. 옛날에는 토요일에도 학교 갔다며? 엄마도 그랬어?"

"그럼. 중학교 때까지 갔던 것 같은데? 너흰 일주일에 5일밖에 안 가잖아."

"정말 피곤했겠다."

"그땐 그랬지."

유치하지만, 사실은 사실이니까 짚고 넘어가고 싶었다.

걸핏하면 나보고 학교도 안 다니는 엄마가 부럽다는 아들에게 오랜만에 라떼 한 잔을 타면서 말이다.

가끔 보면 아들은 착각을 하고 계신 것 같다. 엄마는 학교도 안 다녀 보고 공부도 안 해 본 줄로 말이다.

모르긴 몰라도 내가  아들보다는 더 파란만장하게 살지 않았을까?(하고 지극히 내 중심적인 생각을 다 해 봤다)

"너는 지금 학교만 갔다 오고 자유잖아. 엄마도 지금 네 나이 다 지나왔어. 고등학교 다닐 때는 도시락 두 개씩 싸서 밤 10시 넘게 학교에서 공부하고 그랬어. 너희는 지금 학교에서 맨날 맛있는 급식 먹지? 엄마 때는 엄마가 직접 반찬 만들어서 도시락 두 개씩 싸가지고 다녔다니까. 너 새벽 두 시, 세 시에 일어나서 공부해 본 적 있어? 옛날에 공무원 시험 본다고 하루에 서 너 시간만 자고 새벽에 일어나서 공부하고 그렇게 살았어. 네가 보기엔 엄마가 편하게만 지내는 것 같지? 엄마는 너보다 몇 배를 더 살았잖아. 엄마도 그 과정을 다 지나온 거야. 그냥 갑자기 엄마가 된 게 아니야. 무슨 말인지 알겠어?"

이런 걸 의도한 건 아니지만 나는 저런 말이 술술 잘도 나왔다.

아드님은 말씀이 없으셨다.

이런 걸 고급전문용어로 '본전도 못 찾는다'라고 한다지 아마?

"사람이 갑자기 나이가 드는 건 아니잖아. 너만 한 때도 지나고 누나만 한 때도 지나고 그렇게 시간이 계속 흘러서 지금 엄마가 이렇게 있는 거지."

"그래. 그렇구나."

"학교 가기 싫어?"

"아니 뭐..."

"물론 안 가고 싶을 수도 있지. 엄마도 그런 적 있었으니까. 하지만 넌 지금 학생이고 학생은 학교 다니는 게 일이야."

"그렇긴 하지."

"엄마도 어쩔 땐 아무것도 하기 싫을 때 있어."

"그럼 안 하면 되잖아."

"엄마가 하기 싫다고 아무것도 안 하고 있으면 어떻게 될까? 하기 싫어도 해야 할 때가 있고 하고 싶어도 하지 말아야 될 때가 있고 그런 거야. 아무리 하기 싫어도 최소한 어느 정도는 해야 하는 게 있어, 엄마도."

"그래."

"우리 아들이 지금은 학교 안 가고 싶어 하지만 또 막상 학교에 가면 친구들이랑 잘 놀고 오잖아. 그치?"

"그렇긴 하지. 친구들이랑 같이 놀면 재미있어."

"가서 친구들하고 놀고 싶지 않아?"

"놀고 싶어."

"그럼 학교에 가야지. 친구들 보고 다 우리 집에 오라고 할 순 없잖아.  선생님도 만나고 친구들도 만나고 학교 가면 좋잖아. 생각해 보면 엄마는 학교 다닐 때가 정말 좋았던 것 같아."

"그래?"

"응."

"하긴, 학교에 가서 친구들이랑 놀면 재미있긴 해. 집에 있을 때는 학교 가기 싫은데 학교 가면 또 좋아."

"그렇지? 그런 의미에서 이제 준비하고 나가 볼까?"

"그래."

"그리고 학교에 가면 맛있는 급식이 있잖아. 엄마도 정말 먹고 싶더라. 오늘은 또 얼마나 맛있을까? 오늘은 엄마가 네 대신 학교 갈까?"

"에이, 그건 아니다."

"그럼 할 수 없지. 네가 가야지."

"오늘 급식은 뭐야?"

"이거랑 저거랑 그거야."

"와, 맛있겠다. "

"정말 생각만 해도 벌써 맛있다. 넌 좋겠다. 오늘도 맛있는 급식 먹을 수 있으니까."


기승전, 급식.

나도 어쩔 수 없다.

아드님을 벌떡 일으키는 힘, 그건 엄마의 오만가지 설득의 말보다도, 지긋지긋한 라떼 타령보다도  '오늘의 급식' 그것 하나면 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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