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임자 Dec 09. 2024

김장을 했더니 용돈을 주셨다

김장의 맛

2024. 12. 2.

<사진 임자 = 글임자 >


"오늘 김장하느라 고생했다. 용돈이다."


친정 아빠가 저녁 식사를 마치고 갑자기 용돈을 주셨다.

딸이든 며느리든 가리지 않고 모두 공평하게, 그것도 결코 적은 금액이 아닌 용돈을 말이다.

내가 가장 먼저 도착했고, 안타깝게도 이번 김장 작전이 실패로 돌아가서 며느리들이 예상보다 일찍 오는 바람에 나중에 김장에 합류하게 되었다.


"아버님, 안 주셔도 돼요."

며느리들은 말은 그렇게 했지만 결국에는 시아버지의 용돈을 받았다.

"고맙습니다."

나는 사양도 않고 단번에 받았다.

아빠는 정말 우리에게 고마워하며 용돈을 주신 거니까 굳이 사양할 필요가 없었다.(고 나는 믿었다.)

어차피 우리가 먹을 김치 만들러 온 거였는데, 남의 집 김장도 아니고 친정 김장이니까 하는 건데 용돈까지 받다니 이런 걸 고급 전문용어로 '일석이조'라고 한다지 아마?

사실 전에도 이런 적이 있었다.

물론 나 혼자에게만 해당되는 일이긴 했지만 말이다.

그땐 사정상 나 혼자만 참여해서 친정 부모님과 셋이 김장을 했을 때였는데 당시에도 많은 금액의 용돈을 받은 기억이 있다. 이미 그 용돈은 백골이 진토 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 한 지 오래지만 말이다.

딸과 며느리들에게는 똑같이 용돈을 주셨지만 생각해 보니 가장 고생한 엄마에게는 아무것도 없었다, 최소한 그 자리에서는 말이다. 엄마도 드렸으면 좋았을 것을. 하지만 결국엔 아빠 돈이 엄마 돈이 되는 매직을 경험한 지 백 년도 넘었으므로 그런 것을 내가 걱정할 건 아니었다.

최근 몇 년 동안은 김장하는 날에 친정 아빠의 생신을 미리 쇠는 중이다.

아빠는 아직도 음력으로 생신을 쇠기 때문에 매년 날짜가 살짝 달라진다. 근래에는 운이 좋게 김장 날과 아빠 생신 날이 비슷하게 맞아떨어져서 우리 4남매도 한꺼번에 일을 치를 수 있게 돼서(?) 훨씬 수월하게 됐다.

편한 건 부모님도 마찬가지일 거다.

그 많은 자식들과 손주들이 와서 바글대면 은근히 피곤한 건 사실이니까 말이다.

김장을 일찍 끝내고 아빠 생신도 쇨 겸 오랜만에 친정 식구들이 다 모인 주말이었다.

맛있게 저녁을 먹고 케이크를 준비해서 손주들이 불러 주는 생일 축하 노래가 다 끝난 후 그날의 마지막을 용돈으로 마무리하셨다.

"그래, 고맙다."

매년 비슷한 내용의 소감을 말씀하시고 난 후 손주들에게도 거금을 전달하셨다.

친손주, 외손주의 구분도 없었고, 어린이집에 다니든 초등학교에 다니든 고등학교에 다니든 그런 것도 전혀 아랑곳하지 않으셨다. 이미 적지 않은 금액인데도 갑자기 엄마가 한마디 하셨다.

"그래도 우리 OO 이는 더 줘야제. 고등학생인디."

최소한 큰 손주는 뭔가 달라야 한다는 말씀이었다.

사실 엄마는 며칠 전에 내게 손주들의 용돈과 관련해 책정한 금액을 미리 밝혀 두셨다.

부모님에게는 첫 손주이니만큼 항상 그만한 대우(용돈의 금액을 가지고 대우를 논한다는 게 좀 그렇긴 하지만 그래도 큰 손주는 달라야 한다고 주장하신다.)를 하고 싶어 하시는 것 같다.(고 나만 느끼는지도 모른다.)


생각해 보면 친정 부모님은 자식이나 며느리, 손주들에게 용돈이 후한 편 같다.(아들과 며느리들이 집에 오는 방문 횟수에 비해 상대적으로 사위는 가뭄에 콩 나듯 방문하기 때문에 이런 면에서는 사위는 좀 불리한 편이다.) 가뜩이나 아들 며느리들이 집에 자주 오는 편인데 내가 목격한 바에 의하면 절대 그냥 보내시는 법이 없다. 하다 못해 주유비라도 하라고 슬쩍 봉투를 넣어 주신다, 그것도 아들이 아닌 며느리들에게 말이다.

"아가씨, 내가 이래서 더 자주 어머님한테 오고 싶다니까."

"언니는 좋겠수. 또 언제 올 거야?"

큰 새언니가 농담을 다 했다.

물론 나는 그녀가 하는 말이 농담인 줄 잘 알고, 굳이 시부모님이 며느리들에게 용돈을 주지 않아도  그녀이 시가에 오기 싫어하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았으므로 나는 전혀 그 농담에 개의치도 않았다.


비단 현금이 오가지 않더라도 고마우면 고맙다고 말하고 고생했을 때는 고생했다고 말하며 미안하면 미안하다고 말하는 최소한의 감정 표현을 잘 사람들이니 나는 친정 부모님도 그분들의 며느리들도 그저 다 고맙다.

지금까지 시가에 와서 분란 한 번 일으키지 않고 우리 부모님에게도 살갑게 잘해주는 그녀들을 자랑하고 싶어 입이 근질거릴 지경이다.

물론 각자 나름의 고충은 있겠지만 말이다.

아무리 집에서는 둘이 지지고 볶고 싸우더라도 최소한 시가에 와서는 환한 표정으로 다녀가는 그녀들이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그런 그들의 태도를 보고 나도 많이 배우기도 하고 시가에 가서 실천하려고 노력해 보는 중이다 .


정말 다행이다.

그녀들이 우리 부모님의 며느리들이어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