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12. 15. < 사진 임자 = 글임자 >
"내가 김치 세일하길래 사 왔어. 여보, 나 잘했지?"
나는 그 양반의 말을 듣고 본능적으로 한숨이 나왔다.
속된 말로 '세일'이 없으면 시체인 사람,
그런 사람이 우리 집에 한 명 거주하고 계신다.
잘했군 잘했어.
그래, 자~알 했다.
"내가 배추김치 담갔어."
라고 내가 분명히 그 전날 그 양반에게 말했었다.
"이거 어젯밤에 내가 담근 배추김치야."
라면서 그 김치를 아침에 밥을 차리고 내놓기도 했었다.
게다가 믿기 힘들겠지만
"괜찮네."
라고 시식도 하셨단 말이다, 분명히.
그리고 또 마지막으로 몇 번이고 내가 덧붙인 말도 있었다.
"엄마가 내일모레 김장 하신대. 곧 새 김장 김치 먹겠다. 그럴 줄 알았으면 나도 김치 안 담그는 건데 그랬어."
라고 쐐기까지 박았었단 말이다.
그런데, 내가 몇 번이고 한 말을 하고 또 하고 재방송하고 지겹도록 말을 했는데 '굳이', '당장', '또' 김치를 사 올 필요가 있었을까?
"내가 어젯밤에 배추김치 담갔다고 했어 안 했어?"
"그랬나?,
"그랬나가 아니라 그랬어."
"기억 안 나네."
"그리고 오늘 아침에도 내가 어젯밤에 담근 거라고 하면서 밥 차려 줬잖아. 멀쩡히 잡수고 가 놓고 집에 새 배추김치가 있는 거 뻔히 알면서 김치를 사 와?"
"아, 그랬나?"
"그랬나가 아니라 그랬다니까!"
"그리고! 내가 내일모레 엄마가 김장한다고 했잖아. 그래서 일찍 가서 같이 김장할 거라고 했잖아. 그 말은 진짜 한 두 번 한 것도 아닌데 이렇게 김치를 사 오면 어떡해? 이제 김장하면 김치 냉장고에 넣을 자리도 별로 없어서 있는 반찬들도 얼른 먹어 치워야 할 판에 새로 김치를 사 오면 어쩌냐고?"
"아, 그랬었나?"
"그랬었나가 아니라 그랬다니까."
정말 아무리 남의 말을 귀 기울여 듣지 않는 성격이라고 하더라도 같은 말을 그렇게 수 차례 했었는데 어쩜 그렇게 건성으로 들을 수가 있는 걸까?
"그래도 세일했잖아."
"내가 말했지. 하루라도 마트에서 세일 안 한 적이 있긴 있었어?"
"그날까지만 한다고 했어."
"그랬겠지. 그 주에는 그날까지만 하겠지. 그리고 다음 주에 또 하겠지."
"그런가?"
"그런가가 아니라 그래. 경험상 자주 그래. 내가 그 얘기도 여러 번 했었는데. 그런 데 넘어가지 말라고."
역시나 나를 실망시키는 법이 없으시다.
이런 걸 고급전문 용어로 '미운짓만 골라서 한다.'고 한다지 아마?
배추김치가 딱 떨어져서 김장을 할 때까지 어떻게 버텨볼까 하다가 작은 배추 한 포기를 사서 며칠 먹을 김치를 담갔다. 그때까지만 해도 친정에서 김장을 정확히 언제 할지 몰라서 당분간 먹으려고 그냥 한 거다. 미리 알았더라면 절대 안 했을 거다. 김장을 하면 곧 새 김치를 먹을 수 있으니 굳이 많이 할 필요도 없었고, 앞으로 김장 김치를 가져오면 냉장고에도 빈 공간이 있어야 했다. 하필 몇 주 전부터 내가 계속 몸이 안 좋아서 음식을 거의 못 먹고 있었고, 냉장고에 재료가 있어도 음식도 거의 못하다시피 하고(거의 집에서 음식을 해 먹는 편이라 식재료가 보통 냉장고에 좀 있는 편이다.), 있는 과일도 못 먹고 있어서 냉장고에 빈 공간이 별로 없었다. 그런데 그 와중에 그 양반이 김치를 사 오셨다. 세일을 한다고 하시면서 말이다.
"김치 살 수도 있지. 그럼 한 봉지 제일 작은 걸로 사면되잖아. 우리가 그렇게 김치를 많이 먹는 집도 아니고 작은 거 하나만 사도 일주일은 먹을 텐데 이렇게 큰 걸로 사 오셨어?"
"두고 먹으면 되지."
그러니까 두고 먹는 것도 김치가 없을 때 사 와서 먹는 거지. 이제 여기저기서 김장 김치가 들어올 예정인데 이렇게 세일의 유혹에 넘어가면 안 되지.
"그리고 엄마가 언니네 친정에서 김장했다고 갖다 먹으라고 전화하셨는데. 에휴."
왜 하필 일 년 내내 잠자코 있다가 내가 김치를 새로 담근 다음날, 왜 하필 새언니네 김장 김치를 받으러 갈 예정인 전날, 도대체 왜 하필이고 하필이면 내일모레 친정에서 김장을 할 거라고 하시는데 굳이 그때 맞춰서 김치를 사 오시는 건지.
결정적으로 그 양반은 이제 일주일 출장 예정인 상태였다.
나도 아이들도 김치를 많이 먹는 편이 절대 아니다. 그래서 평소에도 김치는 배추 한 포기씩만 사서 담그곤 한다. 그 한 포기도 (거짓말 조금 보태면) 한 달 넘게 먹는다. 게다가 친정과 나눠 먹기도 한다.
"이왕 사 왔으니까 그냥 먹자, 여보."
"그럼 먹어야지 버릴 수는 없지."
천덕꾸러기 같은 그 김치를, 200g 정도면 며칠 먹을 수 있는데 자그마치 3kg에 달하는 그 어마어마한 양의 김치를 시식했다.
"근데 왜 이렇게 짜?!"
짰다, 심하게 짰다.
"정말 그러네. 왜 이렇게 짜지?"
그 양반도 그 김치를 감싸줄 수준의 짠맛이 아니었다.
사 먹는 김치는 원래 이렇게 짠 건가?
"그럼 놔뒀다가 익으면 먹자. 찌개 해 먹으면 되잖아."
말이나 못 하면.
찌개를 할지 비벼 먹을지 볶아 먹을지는 내가 정한다고!
"어머님이 주신 김장 김치 3년 된 것도 아직 남았어."
"아, 그랬어? 몰랐네."
"어머님 옛날 김장 김치 아직도 많이 남았다고 그 소리도 백만 번은 한 것 같다. 그 김치도 많아서 먹기 바쁜데 지금."
"그랬나?"
"그랬나가 아니라 그랬다니까. 김치는 내가 알아서 할게. 사 먹더라도 내가 살게."
그 양반은 뭘 그리 하고 싶으신 걸까?
사 온 김치가 너무 많아서 나중에 아들, 손자, 며느리에게까지 물려줄 수 있을 것만 같다.(물론 이건 개인적인 감정이 담긴 지극히 극단적인 나만의 생각이긴 하지만 말이다.)
그날도 나는 그 양반에게 기원전 5,000년경부터 하던 말을 또 할 수밖에 없었다.
단군이 고조선을 세운 이래 대한민국에서 세일을 하지 아니한 적은 없었노라고.
그냥,
제발,
아무것도 하지 마시고,
가만히나 있어 주셨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