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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임자 Dec 20. 2024

그래도 잠은 집에 와서 주무시는 그놈

상습범의 지조

2024. 12. 16.

<사진 임자 = 글임자 >


"이놈들이 또 나갔네. 요새 날마다 나간다."


이놈들이 어떤 놈들인지는 자세히 모르겠으나 아무튼 부모님의 심기가 불편해 보이는 건 사실이었다.

이놈들이 대체 누구길래, 자꾸 어딜 나간다는 건지, 체념한 듯 보이는 부모님의 태도를 보니 상습범임에 틀림없다.


친정 집 앞 작은 텃밭에 심어진 푸른 배추 사이로 뭔가 검은 물체가 아른 거린다.

움직이는 걸 보니 살아 있는 놈이다.

다리가 분명 두 개뿐이지만 거의 땅에 붙어 있다시피 한 걸 보니 사람의 형상은 아니로다.

그러나 사람보다 더 재빠르고 사람보다 더 내빼는 재주가 좋다.

"엄마, 아까 닭 나와서 돌아다니던데 잡아야 되는 거 아니야?"

물론 잡는다는 내 말의 뜻은 잡아서 없애버리겠다는 게 결코 아니다.

다시 잡아서 제 자리로, 그의 보금자리고 온전히 돌려보내줘야겠다는 의미였다.

"그놈들이 또 나갔냐. 이참에는 어떤 놈이 나갔던?"

"시커먼 놈이 나가서 돌아다니던데?"

"또 그놈이구만. 그놈이 아주 나가 버릇해서 걸핏하면 요새 나간단 말이다. 이따가 아빠한테 잡으라고 해야쓰겄다."

여기서의 잡으라고 해야쓰겄다는 엄마의 말씀도 당연히 그 이탈자를 안전하게 그의 보금자리로 되돌려 보내겠다는 말이지 당장 닭 털을 모조리 뽑고 가마솥에 물을 팔팔 끓이겠다는 그런 뜻이 아니다, 물론.

"엄마, 어떻게 해놨길래 닭들이 저렇게 밖에 나와서 돌아다녀? 못 나오게 문을 잘 닫아야지."

"그놈들이 어디 문으로 나오는지 아냐? 사과나무 위로 올라가서 저기 위로 날아서 밖으로 나오제."

"어떻게 그렇게 나올 수 있어? 그래도 나무가 높은데 어떻게 올라가?"

"그놈들이 얼마나 잘 나는지 아냐? 너는 알지도 못함서 그런다."

그래, 모르면 잠자코 있는 게 상책이지. 잘 알지도 못하면서 어설프게 나서지 말자.

인간적으로 중간은 가줘야 하니까 말이다.

조신하게 있자.


"그럼 사과나무 위로 올라가서 날아서 내려온다고?"

"그래. 벌써 한 두 놈이 나온 것이 아니다. 요새 아빠는 날마다 그놈들 잡아넣는 것이 일이란다."

"그래도 잡히긴 잡히나 보네?"

"그놈들이 안 잡히믄 어쩔 거냐 잠은 자러 들어 와야제. 속없이 밖에서 돌아다니다가는 들짐승한테 물어뜯겨 죽제. 아빠랑 나랑 살살 몰아서 문 열어 두믄 쏙 들어간단다."

하긴, 나도 왕년에 닭 좀 몰아봤었다.

닭이 머리가 안 좋다고 하지만 그래도 잠자리는 잘 찾아갈 줄 안다.

그 정도의 머리는 있었다.

그리고 다음날 또 탈출을 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꼬박꼬박 잠은 집에 와서 자는 지고지순한 순정파다.

상습범에게도 지조는 있었다.

하지만 한 번 일탈을 맛본 놈들은 그 맛을 잊지 못해 매일 해가 뜨면 또 같은 행동을 하는 것이다.


"아이고 징하다. 사방팔방 다 돌아다니면서 이놈들이 명 재촉한다. 언제 잡아야스겄다."

여기에서의 '언제 잡아야 쓰겄다.'는 엄마 말의 의미는 진심으로 잡아 없애버리겠다는 뜻이다, 물론.

엄마는 여름부터 벼르고 계신다.

그놈들이 엄마 손에 걸리는 날에는 초상날이 될 것이다.

어떤 놈이 선구자(?)가 될 것인지는 그날 미정의 그놈의 운에 달려 있다.


자고로 한 번도 탈출을 하지 않은 닭은 있어도 한 번만 탈출한 닭은 없는 법이다.

가만 보면 나간 놈이 또 나간다.

재미 붙였다.(고 나는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래도,

닭들아 제발, 그 옛날 가마솥에 물 끓여 놓고 아빠와 사이좋게 닭털을 뽑던 그 시절을 재방송하게 하지 말아 주렴.

지금은 너무 추워.

바깥에서 가마솥에 물을 끓이기엔 너무 추워.

이왕이면 봄에 일 치르자.

날이 풀리면 그때.

그러니까 스스로 명 재촉하는 일 그만 좀 하려무나.

당장 가스불에 물 올리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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