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 해야겠다고 마음먹으면 반드시 해내고 마는 그 양반은 내 앞에서 굳게 다짐하며 사이트를 들락날락하셨다.
"괜찮아. 비록 앞부분이 갈라지고 뒤꿈치가 너덜너덜해지긴 했지만."
연민에의 호소를 노린 것은 단연코 아니었다.
나는 있는 그대로 사실만을 말했다.
없는 말을 지어낸 것도 아니었다.
"그러면 진짜 더 사줘야지. 기다려 봐."
기다리든 안기다리든 그 양반은 저지르고야 말 것이다.
3년 넘게 신어 온 운동화가 있다.
그 운동화도 그 양반께서 심혈을 기울여 고르고 골라 내게 사 준 것이다.
딱히 선호하는 브랜드가 있는 것도 아닌 나는, 신발 같은 건 신었을 때 편하고 보기에 너무 튀지 않고 무게는 가벼우며 내 눈에 이쁘면 그만이었다. 나는 그렇게 까다로운 성격의 소비자는 결코 아니다.(다만 '저렇게' 까다로운 성격의 소비자인지도 모른다고 이쯤에서 양심선언을 하는 바이다.)
"당신은 어떤 게 마음에 들어?"
그 양반은 한 시도 나를 가만히 두지 않았다.
뭔가(?) 목표물을 발견하면 달달 볶아댄다.
"나 그렇게 안 까다로운 거 알잖아?"
"당신이? 당신이 안 까다롭다고? 당신같이 까다로운 사람도 세상에 없어."
우리 둘이 대화를 하다 보면 종종 저런 말을 자주 한다.
나는 절대로 까다로운 사람이 아니라고 하고, 그 양반은 세상에 나처럼 까다로운 사람도 없다고 한다.
그러면서 꼭 이 말을 덧붙이신다.
"그렇게 까다로우니까 나를 골랐지."
라면서 말이다.
헛웃음이 나오지 않을 수가 없는 순간이다.
이에 나도 절대 질 수는 없다.
"그게 바로 내가 세상에서 제일 안 까다롭다는 증거지."
"하여튼, 내가 말을 말아야지."
그럴 줄 몰랐을까?
이런 걸 고급 전문 용어로 '본전도 못 찾았다.'라고 한다지 아마?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다급하게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이거 어때? 당신이 봐봐."
이거였군, 내 신발을 골라 놓고 그렇게 숨이 넘어갈 뻔하셨군.
그런데 왜 숨은 넘어가지 않았을꼬?
"괜찮네."
"다른 것도 있어. 봐봐. 이건 어때?"
"그것도 괜찮네."
"저건 어때?"
"괜찮은 것 같네."
"다른 것도 봐 볼까?"
그 순간 가장 신이 난 사람은 그 양반이었다.(고 나는 믿어 의심치 않는다.)
내 신발을 사 준다면서 왜 본인이 더 신이 난 게지?
그리고 가만, 내 신발인데 왜 그 양반이 고르고 있는 거람?
"그냥 내가 고를게."
"가만있어 봐. 내가 봐줄게."
"나 지금 바빠."
"이거 봐봐. 어디 가지 말고 얼른 봐봐."
"꼭 지금 봐야 돼?"
"생각날 때 주문해야지."
그런데 왜 정말 내 신발 장만에 저 양반이 저렇게 필사적인 것인가.
쇼핑을 할 때에라야 비로소 활기를 되찾는 사람, 무언가를 주문할 때에라야 생의 기쁨을 만끽(한다고 나는 생각한다.)하는 사람, 나는 그를 '프로 쇼핑러'라 부른다.
지금 당장 새 운동화가 '꼭' 필요한 것은 아니다.
괜히 튕기는 것도 아니다.
아직은 더 신을 만하고 내가 정말 마음에 드는 그런 신발로 내가 직접 고르고 싶다.
그런데 정작 신발을 신을 당사자인 나는 그리 급하지 않은데 난데없이 무슨 지름신이 강림하신 건지 다짜고짜 신발을 사주시겠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