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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임자 Dec 21. 2024

신발 살 땐 "이거 어때?"

2024. 12. 1.

<사진 임자 = 글임자 >


"여보! 얼른 와 봐. 빨리빨리. 얼른!"

"왜?"

"일단 빨리 와 봐."

"나 바쁜데."

"얼른 오라니까. 빨리!"


또 갑자기 숨 넘어가는 소리를 하시던 그 양반,

그러나 여느 때처럼 내가 가서 확인한 결과, 숨은 넘어가지 않았다.

다만 스마트폰 화면이 자꾸 이리저리 넘어가고 있을 뿐이었다.


"여보, 저번에 그 운동화 당신이 좋아했지. 내가 하나 사 줄게."

 라는 말을 시작으로 그 양반은 폭풍 검색에 돌입하셨다, 아주 본격적으로.

"아니야. 아직은 더 신을 수 있을 것 같은데?"

막아야만 한다.

저지해야만 한다, 마구 클릭하는 그의 검지 손가락을.

"아니야, 내가 사 줘야지."

한 번 해야겠다고 마음먹으면 반드시 해내고 마는 그 양반은 내 앞에서 굳게 다짐하며 사이트를 들락날락하셨다.

"괜찮아. 비록 앞부분이 갈라지고 뒤꿈치가 너덜너덜해지긴 했지만."

연민에의 호소를 노린 것은 단연코 아니었다.

나는 있는 그대로 사실만을 말했다.

없는 말을 지어낸 것도 아니었다.

"그러면 진짜 더 사줘야지. 기다려 봐."

기다리든 안기다리든 그 양반은 저지르고야 말 것이다.


3년 넘게 신어 온 운동화가 있다.

그 운동화도 그 양반께서 심혈을 기울여 고르고 골라 내게 사 준 것이다.

딱히 선호하는 브랜드가 있는 것도 아닌 나는, 신발 같은 건 신었을 때 편하고 보기에 너무 튀지 않고 무게는 가벼우며 내 눈에 이쁘면 그만이었다. 나는 그렇게  까다로운 성격의 소비자는 결코 아니다.(다만 '저렇게' 까다로운 성격의 소비자인지도 모른다고 이쯤에서 양심선언을 하는 바이다.)

"당신은 어떤 게 마음에 들어?"

그 양반은 한 시도 나를 가만히 두지 않았다.

뭔가(?) 목표물을 발견하면 달달 볶아댄다.

"나 그렇게 안 까다로운 거 알잖아?"

"당신이? 당신이 안 까다롭다고? 당신같이 까다로운 사람도 세상에 없어."

우리 둘이 대화를 하다 보면 종종 저런 말을 자주 한다.

나는 절대로 까다로운 사람이 아니라고 하고, 그 양반은 세상에 나처럼 까다로운 사람도 없다고 한다.

그러면서 꼭 이 말을 덧붙이신다.

"그렇게 까다로우니까 나를 골랐지."

라면서 말이다.

헛웃음이 나오지 않을 수가 없는 순간이다.

이에 나도 절대 질 수는 없다.

"그게 바로 내가 세상에서 제일 안 까다롭다는 증거지."

"하여튼, 내가 말을 말아야지."

그럴 줄 몰랐을까?

이런 걸 고급 전문 용어로 '본전도 못 찾았다.'라고 한다지 아마?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다급하게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이거 어때? 당신이 봐봐."

이거였군, 내 신발을 골라 놓고 그렇게 숨이 넘어갈 뻔하셨군.

그런데 왜 숨은 넘어가지 않았을꼬?

"괜찮네."

"다른 것도 있어. 봐봐. 이건 어때?"

"그것도 괜찮네."

"저건 어때?"

"괜찮은 것 같네."

"다른 것도 봐 볼까?"

그 순간 가장 신이 난 사람은 그 양반이었다.(고 나는 믿어 의심치 않는다.)

내 신발을 사 준다면서 왜 본인이 더 신이 난 게지?

그리고 가만, 내 신발인데 왜 그 양반이 고르고 있는 거람?

"그냥 내가 고를게."

"가만있어 봐. 내가 봐줄게."

"나 지금 바빠."

"이거 봐봐. 어디 가지 말고 얼른 봐봐."

"꼭 지금 봐야 돼?"

"생각날 때 주문해야지."

그런데 왜 정말 내 신발 장만에 저 양반이 저렇게 필사적인 것인가.


쇼핑을 할 때에라야 비로소 활기를 되찾는 사람, 무언가를 주문할 때에라야 생의 기쁨을 만끽(한다고 나는 생각한다.)하는 사람, 나는 그를 '프로 쇼핑러'라 부른다.

지금 당장 새 운동화가 '꼭' 필요한 것은 아니다.

괜히 튕기는 것도 아니다.

아직은 더 신을 만하고 내가 정말 마음에 드는 그런 신발로 내가 직접 고르고 싶다.

그런데 정작 신발을 신을 당사자인 나는 그리 급하지 않은데 난데없이 무슨 지름신이 강림하신 건지 다짜고짜 신발을 사주시겠다고 한다.

 나는 그런 그 양반의 행위를 '충동구매'라 부른다.


"이거 어때?"

또 목표물을 발견하신 게 틀림없다.

아무렴,

신발을 살 땐 '이거 어때?'지.

그렇고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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