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나 카레니나를 생각해
< 사진 임자 = 글임자 >
"언니, 나 진짜 답답해."
"아가씨, 우리 집도 그래."
"오빠랑은 또 다르지."
"아휴, 다 비슷비슷하지."
큰 새언니는 세상에 별 다른 사람은 없다고 했지만, 니는 어디엔가 꼭 별다른 사람이 있는 것만 같았다.
사람들 사는 건 다 거기서 거기라고 했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도 같았다.
그저 내 바람일 뿐일지도 몰랐다.
친정엄마에게는 차마 못할 말을, 다른 남자 형제들에게는 입도 뻥끗 못 할 소리를 새언니에게는 할 수 있었다.
새언니에게라도 털어놔야 했다.
"언니, 오빠도 그래?"
"언니, 이럴 때 언니는 어떻게 해?"
"언니, 나 진짜 이해가 안 돼."
가끔, 하나밖에 없는 시누이는 시시콜콜한 본인의 가정사를 들고 첫째 올케에게 상담을 받는다.
친한 친구에게 털어놓는 것과 올케에게 털어놓는 것은 또 엄연히 달랐다.
나의 오빠들이나 남동생에 대해서는 내 친구보다 나의 세 올케들이 더 잘 알고 있을 테니까, 내 고민을 털어놓자면 그들은 또 집에서 어떠한지 들어보고 가늠해 봐야 하니까.
"아가씨, 우리 어디 조용한 데 가서 얘기 좀 하자."
이렇게 말하고 그녀가 날 이끈 곳은 친정집에서 거의 사용하지 않는 빈 방이었다.
그곳은 다른 가족들이 거의 드나들지 않는 곳이었고, 큰오빠나 남의 편은 들어올 리가 없는 곳이었던 거다.
"아가씨, 아가씨가 더 사랑해 줘. 그러면 돼."
"에휴, 내가 언니한테 뭘 바라겠어."
새언니는 늘 사랑으로 시작해서 사랑으로 마무리 짓는다.
어쩌면 그게 바로 힘든 시기가 닥칠 때마다 그녀가 버텨내는 비결인지도 모르겠다.
"사랑은 무슨 사랑이야?!"
"서로 사랑하면 돼, 아가씨."
"언니, 그런 말 하지 말고. 나 진짜 심각하다니까."
"그래도 사랑하면 다 가능해."
"언니 말이 맞네. 원수를 사랑하라고 했으니까."
"아가씨, 나도 살잖아. 그러니까 아가씨도 그냥 살아. 응?"
"언니는 몰라!"
"그럼, 내 얘기 한번 들어볼텨?"
"아니, 아니야! 안 해도 돼!"
종종 나도 언니의 넋두리를 들어 본 과거가 있었으므로, 그녀가 얼마나 파란만장하게 큰오빠와 살고 있는지 어느 정도는 들어서 잘 알고 있었으므로 굳이 다시 들을 필요까지는 없어 보였다.
이런 걸 고급 전문 용어로 '혹 떼러 갔다가 혹 붙여 온다.'라고 한다지 아마?
내 고민들 털어놓으려다가 뜻하지 않게 새언니의 심란한 마음을 듣고는 내가 다 한숨이 나오곤 했다.
시누이의 투정을 단번에 멈춰버리게 하는 마법의 그 말,
"나도 사는데, 아가씨도 그냥 살아."
더 이상 진도를 나갈 수 없게 만든다.
"내가 아가씨 가족 편안하게 지내게 해달라고 매일 기도할게."
"고맙소."
새언니와 답답한 마음을 나누어서 딱히 해결된 건 하나도 없었지만 그래도 마음 한 켠이 좀 가볍게 비워진 기분이랄까.
철없는 시누이 넋두리도 항상 진지하게 들어주는 올케가 있어서, 올케만 믿고 시누이는 올케를 귀찮게 하기 일쑤다.
그녀 말대로 따라 할 자신은 없지만, 적어도 더 나빠지지는 않았으니까.
그러니까, 큰 새언니는 우리 큰오빠도 구원하고 나까지 구원해 준 셈이네?
새언니와의 상담을 마치고 나면 난 늘 '안나 카레니나'의 첫 문장을 떠올리곤 한다.
'행복한 가정은 모두 비슷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
가지가지로 불만만 터뜨리면 만족을 모를수밖에.
역시, 이유가 많으면 안 되는 거야.
그리고 또 생각한다.
행복도 내가 만드는 것이오, 불행도 내가 만드는 것이오.
진실로 그 행복과 불행, 다른 사람이 만드는 것 아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