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서 이런 며느리가 왔을꼬?

딸이랑 막내며느리는 달라

by 글임자
2026. 1. 21.

< 사진 임자 = 글임자 >


"나는 안 갈란다."

"애들이 오시라는데, 왜?"


멀쩡한 내 집을 두고 '왜', '굳이', '뭐 하러' 아들 며느리 집에 가느냐며 엄마는 완강히 거부하셨다, 물론 처음에는.


"거기서 맨날 내가 뭐 하겄냐? 아파트는 답답하다."

"엄마, 아들 며느리가 오시라고 할 때 가셔야지."

"내 집에서 내 맘대로 하고 사는 것이 세상 편하제."

"그래도 한번 가셔. 오시라고 할 때 가시지."

"거기 가믄 징역살이밖에 더 하냐?"

"계속 그렇게 안 가신다고 하면 나중에는 오시라고도 안 한다니까."

"내가 내 집 있는디 뭣이 걱정이냐."

"나중엔 가고 싶어도 아들 며느리가 초대 안 하면 못 가. 그때는 가면 안 돼. 그러니까 지금, 오시라고 할 때 얼른 가시라고."

남의 집도 아니고, 아들 며느리만 단 둘이 사는 집에, 그 집에서 오시라고, 오시라고 초대하는데 엄마는 자꾸 안 가시겠다고 고집을 부리셨다.


"누나, 엄마랑 아빠 우리 집에서 한 달 정도 계실 거야."

다짜고짜 남동생이 일방적으로 통보해 왔다.

엄마도 엄마지만 아빠도 (거짓말 조금 보태자면) 그 시골집을 떠나서는 하루도 못 사실 분인데?

"갑자기 왜?"

"수술하셨으니까 일하시면 안 돼. 집에 계시면 분명히 일 하실 거야. 그러니까 내가 모시고 가려고."

"아무래도 집에 있으면 그렇겠지. 근데 OO랑 상의는 했냐? 네 맘대로 하지 말고."

"걱정하지 마. OO가 먼저 그러자고 했어."

엄마의 막내아들은 갑자기 효자로 돌변했다.

물론 그 효자를 만든 이는 그의 아내였다.

"근데 어떻게 한 달씩이나 있어?"

"그냥 계시면 되지. 내가 알아서 할게."

저 혼자 알아서 하는 건 하나도 없는 것 같은데 큰소리다.

"엄마는 그렇다 치고, 아빠는 안 가신다고 하실걸?"

누구보다 아빠를 잘 알고 있다고 자부하는 나는 자신했다.

"같이 오시라고 하면 되지."

처음엔 두 분 다 안 가시겠다고, 거기 가서 하루 종일 뭐 하냐고 버티시더니 아들 며느리가 어떻게 설득했는지 마침내 짐을 꾸리셨다.

아들만 있으면 몰라도 며느리까지 있으니까 모르긴 몰라도 부모님도 내심 부담스러우셨을 거다.

그때까지만 해도 정말 한 달씩이나 남동생네서 머무실 줄은 몰랐다.

10년도 훨씬 오래전의 일이다.

부모님은 같이 부부동반으로(?) 어깨 수술을 하셨다.

당연히 어깨와 팔을 쓸 수가 없었다.

쓰기가 힘들었다.

써서도 아니 되었다.

당시 직장생활을 하고 있던 나는 빈 말이라도 그런 말을 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막내며느리가 선뜻 두 분을 당분간 모시겠다고 나선 것이다.

친정 부모님도 같이 살기 힘든데, 아니 부부끼리도 가끔은 사이가 삐끗하면 한집에서 지내기 껄끄러운 마당에 시부모라니? 하루 이틀도 아니고 한 달씩이나?


나는 생각만 해도 부담스럽다.

나야 그 당시에는 출근을 해야 하니 (게다가 고만고만한 아들, 딸까지 있어서) 말도 꺼낼 수 없는 상황이었다.

딸도 안 나선 일에 며느리가 부모님을 모시겠다고 하니 나는 말만 들어도 기특하고 고마웠다.

하지만 내심 걱정되는 것도 사실이었다.

어른들 모시기가 쉽지 않을 텐데.

신경 쓰이는 것도 많고 둘이서만 지낼 때처럼 편하게 있지도 못하고 불편할 텐데.

"괜찮겠어? 갑자기 한꺼번에 두 분 다 가시면 힘들 텐데."

"아니에요, 언니(막내 올케는 나를 언니라고 부른다.). 저 옛날에 할머니랑 같이 오래 살아서 어른들하고 같이 사는 거 괜찮아요."

"그래도 시부모님은 다르잖아."

"비슷하죠, 뭐."

"그런가? 그래도 부모님 가 계시면 고생 많을 텐데."

"고생은 무슨 고생이에요? 수술하셔서 몸이 불편하시니까 어머님 아버님이 더 고생이죠."

어쩜, 내 남동생은 천사랑 결혼한 것이란 말인가?

말도 어쩜 저렇게 예쁘게 할까.

사실, 부모님을 모셔야 한다면 응당 내가 되어야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한 달이든 두 달이든, 아니 몇 년이 되더라도 말이다.

친정 부모님은 내가 육아휴직을 마치고 복직하면서부터 내 딸을 5년 넘게, 아들은 3년 넘게 키워주셨다.

외손주를 두 명씩이나 몇 년간 키워주셨는데 딸인 내가 마땅히 그래야 하지 않겠는가 말이다.

하지만 나는 '직장 때문에'라고 핑계를 댈 수밖에 없었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속으로는 그동안의 농사일도 농사일이지마는 내 두 아이들을 키워 주시느라 어깨가 다 망가진 것 같아(어디 어깨뿐이랴?) 죄책감이 많이 들었지만 말이다.


"나도 안 모시는데... 고마워."

"언니는 일도 하고 애들도 있잖아요. 그리고 어차피 전 아직 애도 없으니까 괜찮아요."

어쩜, 정말로 내 남동생은 천사 중의 천사와 결혼한 게 틀림없다.

(그런데 어쩌다가 저런 천사가 내 남동생과?)

직장 생활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아기가 아직 없다고 해서 선뜻 시부모님을 한 달간 모시겠다고 나서는 며느리가 세상에 얼마나 있을까.


"엄마랑 아빠 대접 잘 받고 왔다."

"처음에는 안 가신가고 그러시더니?"

"내가 그랬냐?"

"그래."

"내가 이참에 며느리 덕 많이 봤다. OO가 나 목욕도 시켜줬다."

전국 며느리 자랑대회라도 있다면 엄마는 온 동네에 추천서라도 받아서 틀림없이 당신의 막내며느리를 내보낼 것이다.

"그랬어?"

"그래. 나 어깨 아프다고 혼자 목욕 못 한다고 그럼서 살살 잘하더라."

"그러니까. 가시길 잘했지?"

"그래. 날마다 먹고 놀기만 했다. 나는 아무것도 안 하고 호강만 하고 왔다."

"며느리가 그렇게 잘해 줬수?"

"OO가 끼니때마다 맛있는 음식 차려줘서 잘 먹고 왔다. 집에만 있으면 답답하다고 날마다 산책도 같이 가고."

어라? 난 부모님 하고 산책 한 번을 가 본 역사가 없는데?

"그렇게 잘 있다 오실 거면서 왜 처음에는 안 가신다고 그랬수?"

"......"

시부모님이 방문해 계시는 동안 끼니는 차려 줄 수 있다.

매일 들판으로 일하러 나가시던 시골 어른들이 외출도 안 하고 집에만 갇혀 있으면 답답하실까 봐 산책까지도 같이 가 줄 수 있다. 그런데 목욕까지는 생각도 못했다.

나도 엄마랑 목욕탕 간지 100년도 더 된 것 같은데 시어머니 목욕을 시켜주는 며느리라니!

찰나, 나는 나의 시어머니와 함께 목욕하는 불편한 상상을 해봤다.

도리질이 쳐졌다.

아무래도 나는 힘들 것 같다.

그런데 그 부담스러운 걸 엄마의 막내며느리는 해냈다.


둘이 지지고 볶으며 사는 건 내가 상관할 것도 아니다.

부부가 어떻게 맨날 좋은 날만 있겠는가.

그래도 시부모님을 생각해 주는 그 마음 씀씀이가 너무 예쁘고 고마우면서도 나는 막내 올케에게 미안한 마음이 있다.

저 철없는 것(=나의 남동생)이랑 사느라 얼마나 마음고생이 심할까.

내 부모님께 저렇게 정성스럽게 해 줬다는 점 하나만으로도 그녀가 최고였다, 내게는.

마음이 없다면 결코 실천할 수 없는 일이다.

그때 나는 완전히 막내 올케 편이 되고 말았다.

그리고 나는 그녀에게 빚을 진 셈이다.

언젠가는 반드시 갚아야만 하는 것.

훗날, 고맙게도 그녀는 그 빚을 갚을 기회까지도 주었다.

완벽했다.


* 올케에게 빚 갚은 시누이 이야기는 바로 다음 편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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