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집이 아들 집이라는 착각

기습 방문을 며느리가 싫어할 겁니다.

by 글임자


< 사진 임자 = 글임자>

3026. 2. 4.

"내가 내 아들 집에 가는디 아무 때나 가도 되제!"


엄마가, 딱한 우리 엄마가, 저렇게 말씀하셨다.

전국의 며느님들이 듣는다면 깜짝 놀랄 소리를, 눈 하나 깜짝하지 않으시고 말이다.

나만 그만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

이를 어쩐다?

큰일 날 엄마야, 정말.

아니, 큰일 '낼' 엄마로군.


엄마와 함께 둘째 오빠네 집 근처를 지날 때였다.

"올 때 언니한테 들렀다 가자."

"갑자기 왜?"

"갑자기는 뭐가 갑자기냐? 온 김에 한번 갈라고 그러제."

"미리 연락도 안 했잖아."

"내 아들 집에 내가 가는디 연락은 무슨 연락을 하냐?"

갈수록 태산이었다.

엄마는 점점 환영받지 못할 시어머니로 빙의하시고 말았다.

더는 두고 볼 수가 없었다.

새언니, 걱정 마.

언니에겐 이 시누이가 있다우.

하나밖에 없는 언니의 시누이가 이번만은 좀 나서주겠어.

"엄마! 그게 무슨 소리야? 가긴 어딜 가신다고 그래? 언니가 집에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는데."

"언니가 가긴 어딜 가겄냐?"

"그거야 모르지."

"집에 있겄지."

"없을 수도 있잖아."

"그냥 가믄 될 것인디, 너는 무슨 잔소리가 그라고 많냐?"

"다음에 갑시다."

"온 김에 갈라고 한디 어째 다음에 가라고 하냐?"

"나한테도 미리 말도 안 해놓고 갑자기 이러면 안 되지."

"그런 것을 뭐한디 미리 말하냐?"

"아무튼, 오늘은 그냥 집에나 갑시다."

"어차피 여기까지 왔는디 이것도 주고 갈라고 그러제."

엄마에게도 나름의 이유는 있었다.

그날 우리는 무언가를 샀는데 그걸 아들 며느리에게도 주고 싶으셨던 거다.

그리고 '이왕이면' 온 김에 들르자는 거다.

떡 본 김에 제사 후다닥 지내버리는 건 우리 엄마 특기다.

나중에 어느 세월에 전달해 주나 싶어서, 마침 잘 됐다 싶으셨던 거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엄마 생각이지 않은가.

알겠어요, 알겠어요.

무슨 말씀이신지 알겠지만, 그건 엄마 생각이시고!

그래도 그렇지.

아무리 좋은 마음으로 주고 싶은 생각에 들르자고 하셔도, 그래도 그건 아니었다, 적어도 내 생각에는.

"엄마, 그거 오늘 안 주면 큰일 나는 것도 아니잖아. 다음에 주면 되지."

"다음에 언제 주냐? 오늘 주고 가자."

엄마가 계속 말도 안 통할 소리만 하셨다.

나도 시가가 있고, 시부모님도 계시고, 시누이도 둘이나 있고, 시동생도 있는 사람이다.

미리 연락도 없이 갑자기 시가 사람들이 우리 집에 들이닥친다고 생각하면, 생각만으로도 부담스럽다.

그래서 이런 일에서는 내가 필사적으로 엄마를 막아야 할 의무감마저 느꼈다.

엄마는 할머니를 30년 넘게 모시고 살았던 분이라서 나랑 생각이 다르신 건가?

할머니가 돌아가실 때까지 모시고 살았으니 고생도 많이 하시고 불편하기도 하셨을 텐데, 따로 사는 아들 며느리 집에 갑자기 가신다고 하면 당사자 입장에서는 정말 당황스러울 수 있는 일이다.


엄마는 내가 꼭 일일이 다 알려줘야 아시나?

엄마도 며느리 생활을 수 십 년 하셨으면서 이젠 오래돼서 며느리 입장 같은 건 다 잊어버리신 건가?

어차피 내가 오빠집을 가볍게 스쳐 지나가버리면 그만이긴 하다.

운전은 내가 하니까 내 마음대로, 가고 싶지 않은 곳은 안 가는 거다.

"내가 내 아들 집에도 마음대로 못 가냐?"

급기야 엄마는 전국의 며느님들이 듣는다면(우선 나부터라도) 당장 봉기할 말씀을 하시고 말았다.

"엄마, 거기가 오빠 집만 돼? 언니 집이기도 하잖아. 오빠만 사는 곳도 아니잖아. 거기가 왜 아들 집이야? 아들 며느리 집이지."

엄마가 뭔가 착각하고 계신 것 같았다.

엄마는 침묵하셨다.

"그 집 살 때 언니도 보태서 같이 샀잖아. 오빠 혼자 산 것도 아니고. 그리고 언니가 안 보태고 오빠 혼자 산 집이라고 해도 그러면 안 되지. 아무리 아들 집이어도 며느리한테 먼저 가도 되는지 물어봐야지. 집주인이 오라고 해야 가는 거지 가고 싶다고 갑자기 마음대로 가면 되겠어? 연락도 없이 갑자기 오면 아무도 안 좋아해!"

여전히 엄마는 침묵으로 일관하셨다.

나는 당장 나의 시부모님이 우리 집에 오시겠다는 전화라도 받은 것처럼 흥분하고 말았다.

며느리뿐이랴?

사위는 또 어떤고?

처가 사람들이 아무 연락도 없이 느닷없이 집으로 들이닥치면 세상에 좋아할 사위가 세상에 얼마나 있을까?

가고 싶으신 건 엄마 마음이고, 오시라고 하든, 거절을 하든 그건 새언니 마음 아닌가, 엄연히?

만약 갑자기 전화해서 당장 집에 가겠다고 하면 오지 마시라고 하기도 힘들 텐데, 느닷없는 시어머니와 시누이의 방문은 유쾌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래서 내가 기를 쓰고 엄마를 말렸던 거다.

하지만 여전히 엄마는 이해 안 되는 눈치셨다.

"내 아들 집에 내가 마음대로 가지도 못 하냐?"

내가 지금 드라마를 보고 있는 건가?

가실 수는 있지, 물론.

하지만 오시라고 하면 그때 가시는 거지, 최소한 미리 양해는 구하고 가셔야지.

어째 그날따라 엄마는 고집불통 시어머니 같았다.


"진짜 잔소리 많다. 너는 가자고 하믄 운전이나 할 것이제, 뭔 잔소리가 그라고 많냐?"

어라?

그래도 말이 안 통하네.

어쩔 수 없지.

이럴 땐 마지막 카드를 꺼내는 수밖에.

"엄마! 엄마는 연락도 안 하고 갑자기 작은 아빠들이랑 고모가 오시면 좋겠어?"

유치하지만 그것 말고는 없었다, 내겐.

엄마는 단번에 대답하셨다.

"그냥 집에나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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