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누이가 뒤늦게 하는 말
< 사진 임자 = 글임자 >
"엄마, 다 어디 갔어?"
"갔다."
정말 다 가버렸나 보다.
아주 조용했다.
뛰고 까불고 놀던 조카도 보이지 않았다.
설날 친정에 갔더니 집이 텅 비어 있었다.(고 느껴질 정도였다.)
당숙 두 분과 부모님이 전부였다.
오빠나 남동생, 그리고 그의 아내들은 보이지 않았다.
"엄마, 벌써 갔어?"
'벌써'라는 말은 어디까지나 '전지적 시누이 시점'뿐이었다, 물론.
나도 어쩔 수 없는 시누이란 말인가?
나름 서둘러서 간다고 갔는데 아무도 없어서 살짝 어리둥절하기는 했다.
때는 바야흐로 설날 오후, 그리 늦은 시각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은 1시경, 보통 그 시간이면 다들 집에 있었다.
그래서 굳이 꼭 나를 기다리라는 의미는 아니고, (친정에서 방학 동안 한 달 살기를 한 바로 그) 조카 세뱃돈이라도 챙겨 주려고 부랴부랴 갔는데 아무도 보이지 않으니 차라리 당황스러울 지경이었다.
하지만 올케에게는 시누이를 기다려야 할 의무 같은 건 전혀 없다.
오랜만에 같이 수다 좀 떨어 볼까 했는데, 어른들 식사하시면 내가 나서서 설거지라도 하려고 항상 서둘러서 가려고는 하지만 마음처럼 그게 잘 되지 않는다. 명절 내내 올케들이 나서서 했을 게 뻔하니 내가 최대한 빨리 가서 바통 터치를 하려고 하는데 말이다.
"진작에 갔다."
엄마는 심드렁하게 말씀하셨다.
"이번에는 빨리 갔네?"
"새벽 4시에 갔단다. 차 막힌다고."
"그렇게 빨리? 아침밥도 안 먹고 갔겠네?"
"절도 어제 미리 다 하고 갔다."
"하긴 쉬어도 집에 가서 쉬는 게 좋지. 여기는 불편하지. 잘 했네."
이제 명절이라고 무조건 자식들이 올 거라는 기대, 와서 몇 날 며칠을 머물다 갈 거라는 막연한 그런 기대는 슬슬 접어야 할 것 같다, 부모님은.
큰 오빠네는 다음 주에 오겠다고 하고, 둘째 오빠네는 처가에 가고, 남동생네는 설 전날 와서 설날 새벽에 가 버리고, 나는 설날 당일에 잠깐 갔다.
나는 막내 올케에게 갈 때 꼭 챙겨 가라고 신신당부한 그것을 과연 가져갔는지 확인부터 했다.
"챙겨 가라는 거 안 챙겨 갔네?"
"그러게요. 깜빡했네요."
"빨리 여기서 탈출하고 싶어서 뒤도 안 돌아보고 갔구만?"
"호호호. 가져가려고 했는데 잊어버렸어요."
내가 그녀에게 가져가라고 한 게 있었는데 그게 덩그러니 친정집에 남아 있는 걸 보니 나 혼자만 너무 아까웠다.
"근데 어머님이 하도 많이 챙겨주셔서 넣을 데도 없었어요, 언니."
"그래도 그렇지. 그거 넣을 자리가 없어? 엄마가 뭘 얼마나 많이 주셨길래?"
"너무 많아서 겨우 다 실었어요."
엄마가 뭘 그리 바리바리 싸 주셨는지 나는 또 사실 확인에 들어갔다.
"엄마, OO보고 내가 가져가라고 한 거 있는데 그거 안 가져갔네. 엄마가 얘기하지 그랬어. 근데 엄마가 뭘 하도 많이 싸 줘서 실을 자리도 없었다고 그러구만 뭘 얼마나 많이 싸 주셨수?"
"나중에 친정 갈 때 갖고 가라고 내가 시금치랑 참기름이랑 깨랑, 고춧가루랑..."
과연 엄마의 이바지는 골고루 많기도 했다.
엄마는 항상 며느리들이 친정에 갈 때 가져가라고 잔뜩 준비해 두신다.
아마 트렁크가 꽉 차서 빈틈이 없었다는 올케의 과장은 어느 정도 맞는 말일지도 모르겠다.
뒤도 안 돌아보고 갔다는 말은 그냥 나 혼자 하는 하나마나한 소리고,
왔다 가느라 고생했어.
그리고 나도 알아,
내 동생이랑 사느라 더 고생한다는 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