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제사에 며느리가 꼭 와야 하는 건 아니잖아요.

셀프 제사를 위하여

by 글임자
2026. 1. 2.

< 사진 임자 = 글임자 >


"언니가 안 해도 돼요."

"그래도 어떻게 그래요, 아가씨?"


어떻게 그러긴요?

그냥 그렇게 그러면 되는 거죠.

친정 제사가 돌아올 때면 나는 미리부터 둘째 새언니에게 당부하게 된다.

행여라도 그녀가 뭐라도 할까 봐.


"내가 하면 되니까 언니는 쉬어요."

"그래도 어머님이랑 아가씨도 하는데 같이 해야죠."

"괜찮아요. 일 년에 한 번인데 나 혼자 해도 다 하니까 걱정 말아요."

"그래도..."

"오빠도 안 하는데 언니가 왜 해요? 할 거면 오빠가 해야지.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 제사인데 당연히 나랑 오빠가 해야죠. 나는 친정 제사니까 하는 게 맞고. 언니는 또 언니 친정 제사 있잖아요. 그냥 하는 소리 아니고 진짜 안 해도 되니까 걱정 마요."

둘째 새언니 듣기 좋으라고 하는 말이 절대 아니다.

친정 제사는 일 년에 딱 한 번이다.

한번 정도야 뭐 나 혼자 하라고 해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서른 가까이까지 부모님과 같이 살며 매년 제사 음식 준비하는 것도 같이 해 와서 새롭거나 힘들 것도 없었다, 나에게는.

결정적으로 나의 할머니, 할아버지 제사니까 당연히 음식 준비 하는 것은 내 몫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제사 지내고 난 후 푸짐한 음식으로 몇 끼를 해결할 수도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

은근히 친정 제사가 기다려질 지경이다.

이런 걸 고급 전문 용어로 '조상 좋고, 자손 좋고'라고 한다지 아마?

그렇다고 해서 염불에는 관심없고, 잿밥에만 눈독들이는 것은 결코 아니다.

제사를 위해 뭔가를 준비해야 한다면 나와 두 오빠들과 남동생이 나서서 해야 마땅하지 않은가.

그래서 나는 매년 친정 제사 때면, 내가 몸이 아프지 않은 이상 직접 장을 다 보고 제사 음식 준비도 엄마와 함께 했었다.

생선을 굽고 밤을 깎는 일(작은 아빠들이 일찍 도착하시면 그분들이 하시기도 했다.)은 아빠가, 나물이나 탕 종류는 엄마가, 집을 청소하거나 전 부치는 일은 내가 도맡아 해왔다. 일종의 불분율처럼 말이다. 엄마가 나에게 넘겨주시면 나물이랑 탕도 내가 할 의향이 있는데 엄마는 아직 내가 거기까지는 아니라고 생각하시는지 넘겨주실 생각을 안 하신다. 솔직히 나 혼자 다 하라고 해도 할 수 있을 것 같긴 하다. 물론 생각과 현실은 다를 수 있겠지만.

그래서 엄마의 세 며느리들에게는 최소한 '제사에 대한 부담'은 주지 않으려고 한다, 우리는.

요즘 '셀프 효도'란 말도 하던데, 내 마음도 비슷하다. 우리집 제사는 우리 형제 자매가 우선 챙겨야 한다고 말이다. 엄마에게 딸이 없었다면 엄마도 며느리들에게 도움을 요청하셨을지도 모르겠지만, 다행히 딸이 하나 있으니 굳이 며느리들까지 부를 필요도 없어 보인다.

우리 친정이 제사를 거창하게 지내는 것도 아니고 그냥 간소하게 음식 몇 가지 준비하고 친척들 모여서 얼굴도 보고 겸사겸사 회포도 푸는, 일종의 가족 모임의 성격이라 나는 부담도 없다.

물론 내가 하는 일의 비중이 그리 크지 않고, 제사란 게 엄마 입장에서는 그렇게 간단한 문제만은 아닐지 모르겠으나, 제사라고 해서 내가 스트레스받을 일도 없다.

직장 생활을 할 때는 매번 친정에 가서 같이 준비하지는 못했지만 갈 수 있는 상황이라면 당연히 가서 같이 했고(그건 시가 제사에도 마찬가지였다.), 육아휴직 기간에는 당연히 내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고 했다.

"언니, 이제 나 육아휴직해서 시간 많으니까 장 보고 제사 음식 준비하는 건 내가 할게요. 나 혼자서도 다 할 수 있으니까 언니가 안 해도 돼요."

본격적으로 친정 제사를 챙긴 건 육아휴직을 했을 때부터였다.

직장 생활을 할 때는 제사를 핑계로 연가까지 쓰기는 좀 그랬지만(연가 사유를 '친정 제사떡 돌리기'라고 차마 쓸 수는 없었다.), 출근을 하지 않게 되면서부터는 아무 부담이 없으니 나도 기꺼이 그 일에 동참하게 된 것이다.

내가 직장생활을 했을 때는 아마 둘째 새언니가 많은 도움을 주었을 것이다.

장 보는 것이며, 음식 장만하는 것, 하다못해 동네에 제사 떡 돌리는 것 말이다.

지금은 내가 동네에 제사 떡을 돌리고 있다.

"언니, 시가 제사라고 부담 갖지 말아요. 평소에 언니가 우리 집에 잘하는데 제사 준비까지 할 필요 없어요. 내가 있는데 뭐 하러 언니까지 해요? OO이도 어린데 어떻게 음식 준비한다고 그래요? 내가 아파서 못 할 때, 그때 부탁하면 해 줘요."


내가 아무리 부담 갖지 말라고 그렇게 말해도 둘째 새언니는 신경을 쓴다.

설마 내가 못 미더운 건가?

둘째 새언니는 우리 친정과 좀 가까운 거리에 살고 있어서 아무래도 다른 올케들보다는 평소에 더 자주 방문해서 여러 모로 도움을 많이 준다. 나는 그런 새언니가 너무 고마워서 가능하면 쉬게 하고 싶은 거다.

게다가 새언니네 친정에서 새언니는 유일한 자식이다, 현재. 그렇잖아도 새언니네 친정은 농사도 많이 지으시고, 이런저런 일이 많고 제사도 좀 있는 편인데 그때마다 새언니가 나서서 많은 일을 하는 눈치다. 그래서 우리까지 부담을 주고 싶지 않다.

그뿐이다.

나도 왕년에는 시가 제사에 몇 번 간 적이 있었다.

어머님이 오라고 해서도 가고, 남의 편이 가자고 해서도 가고, 아무 생각없이 갔다.

두 명의 시누이가 가까이 살고 있었지만 어머님 혼자 음식을 준비하시는 눈치여서 나라도 가야 할 의무감마저 느꼈던 거다.

쉬는 날이면 당연히 갔고, 직장생활을 할 때는 퇴근하고 갔다가 한밤중에 돌아온 적도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 비효율적이고 의미없어 보인다.

도대체 뭐하려고 그렇게까지 했나 모르겠다.

이젠 시가 제사가 언제인지도 가물가물하게 안 간지 몇 년 됐다.

어머님도 더 이상 오라는 말씀을 안 하신다.

아직까지 제사를 지내시는지 어쩐지도 모르겠다.

물론 오라고 하면 갈 의향은 있다.

친정 제사에도 가는데 시가 제사라고 못 갈 건 없으니까.

시조부모님이 안 계셨더라면 나의 두 아이들도 세상에 태어나지 못했을 테니까 즐거운 마음으로 말이다.


"나 살아 있을 때나 제사 지내고, 나 죽고 나믄 다 필요 없다. 자식이니까 느이 작은 아빠들이랑 고모나 오시믄 됐제. 손주랑 손주 며느리들까지 성가시게 하믄 쓰겄냐? 안 와도 된다. 멀고 바쁜디 뭐 하러 오냐? 직장 다니는 사람들이 마음대로 그렇게 휴가 낼 수 있다냐?눈치 보이제. 걱정 말아라."

멀리 사는 두 아들들이 제사에 못 온다고 하면 엄마는 항상 저러신다.

엄마의 시부모님 제사니까 시동생들만 와도 그만이라는 거다.

듣고 보니 그럴듯 하다.

"한 번 왔다 갈라믄 일인디 제사라고 내가 며느리들한테 와라, 말아라 하겄냐? 하던 것인께 내가 그냥 해야제."

거의 50년 가까이 시가 제사를 지내 오셨으니 엄마도 이제 그만하셔도 될 텐데 아직도 손을 놓지 못하고 계신다.

그동안 당신이 한 것만으로도 족하다고 굳이 며느리들에게는 강요하고 싶지 않으시다면서 말이다.


"나는 이제 안할란다. 제사 준비는 너 혼자 알아서 다 해라!"

라고 시어머니가 일방적으로 통보하셔서 너무 황당하고 어이없고 기가 막혔다는 친구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나 결혼해서 가자마자 그렇게 말씀하시더라니까. 아니, 뭘 어떻게 하는지 알려 주기나 하고 나한테 물려주든가 해야지 다짜고짜 나보고 다 하라고 하면 어떡하냐고. 내가 언제 제사를 지내보기나 했어? 뭘 알아서 다 하라는 건지 진짜 어이없더라."

"제사 음식 준비해 본 적 있어?"

"아니. 친정에서도 안 지내."

"그래서 정말 했어?"

"했지."

"어머님한테 어떻게 하는 건지 가르쳐 달라고 하고 배워서 하지 그랬어?"

"가르쳐 주기는. 하나도 안 알려주고 무조건 나보고 다 알아서 하라는 식이었다니까."

"그래? 그래도 계속 물어보지 그랬어? 하나도 모르니까 좀 알려 달라고."

"그러게 말이다. 뭘 알려 줄 생각은 않고 나 결혼하니까 바로 나한테 넘겨 버리시더라."

"듣고도 믿기 힘들다. 거짓말 아니지? 진짜 그런 집이 있긴 있구나."

"응. 설마설마했는데 진짜로 있더라니까."

"근데 너는 시누이도 셋이나 있고 시동생도 둘이나 있잖아. 왜 그 사람들은 같이 안 해? 시가 제사잖아. 너희 친정 제사도 아니고. 자기 집 제사면 그 사람들이 나눠서 같이 준비해야 하는 거 아니야? 네가 하더라도 말이야."

"당연히 며느리가 해야 한다는 식이더라."

"그런 게 어딨어? 하면 같이 하는 거지. 자식들도 안 하는 걸 며느리한테 다 하라고?"

"몰라. 나도 그렇게 생각하는데 우리랑은 생각이 완전 달라."

"그래도 너희 남편은 같이 하지?"

"입 아프다."

"그래도 제사 지낸 그 복이 다 너희 딸한테 간다고 생각해, 이왕 하는 거."

"응, 나도 그렇게 생각하려고."

어디서 들은 소리를 읊어줬다.

내가 남의 시가에 가서 같이 해 줄 수는 없으니 말이라도 저렇게 할 수 밖에 없었다.

어차피 해야 할 일이라면 말이다.

내 입장에서는 참 이해하기 힘든 시가다.

세상에는 놀랍게도,

설마설마했는데,

그런 건 드라마에서나 있을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맏며느리라는 이유로 며느리 한 명에게만 제사 음식 준비하는 일을 '떠맡기는' 시가가 있다고 한다.

나는 그저 안타깝기만 했다.

같이 하면 좋을 텐데 왜 그럴까, 대체.


내가 다 하겠다고 큰소리 뻥뻥 쳐 놓고, 가끔 내가 갑자기 몸이 아프면 어쩔 수 없이 새언니에게 부탁을 할 때가 있긴 하다.

하기 싫어서 아픈 것도 아닌데 최근 몇 년 동안 느닷없이 아프면 속수무책이다.

조용히 나 혼자 준비하려고 해도 새언니는 하다 못해 전 한 가지라도 부쳐 온다.

고맙기 그지없다.

내가 한 말에 책임을 지기 위해서라도 그만 아파야 할 텐데 나이가 들 수록 건강만큼은 내 의지로 어찌할 도리가 없으니...

이 겨울이 지나면 따뜻한 봄날에 또 친정 제사가 돌아온다.

연말에 한차례 아팠으니 올해는 나 혼자서도 할 수 있겠지?

둘째 새언니 성가시게 안 하려면 내 몸부터 튼튼해져야지.

행여 아쉬운 소리 할 일 없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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