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느리는 웁니다, 시아버지 때문에

딸은 안 울리고 며느리만 울리시네

by 글임자
2025. 10. 8.

< 사진 임자 = 글임자 >


"아가씨, 난 아버님 문자 보고 눈물이 나서 울었다니까요."

"네? 아빠 문자 때문에요?"


둘째 새언니가 내게 말했다.

우리 아빠가?

며느리를 울렸다고?

설마?

그때까지 30 평생 나도 한 번 울린 기억도 없는데?

남의 딸을 어쩌다가?


둘째 새언니가 막 출산을 한 시점이었다.

그렇잖아도 이제 아기를 낳고 신체적으로나 마음적으로나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을 며느리에게 도대체 아빠는 왜 그러신거람?

"아버님이 저 OO이 낳고 병원에 누워있는데 문자 보내셨더라고요. 축하한다, 그동안 마음고생 많았다, 그러시면서요. 아버님 문자를 보는데 저도 모르게 눈물이 나는 거 있죠. 그동안 일 생각나면서..."

아하! 그거였군.

아빠가 며느리를 울리긴 울리셨구나.

다만, 내가 우려했던 그런 몹쓸 상황은 아니었구나.

둘째 새언니도 어쩌면 기쁨의 눈물을 흘렸을지도 모를 일이다.

"아빠가 그런 문자를 다 보냈어요? 난 둘이나 낳았어도 문자 한 번도 안 보내주시던데."

시누이라고 하나 있는 것이, 새언니 앞에서 괜히 쓰잘데기 없는 소리만 했다.

물론 새언니에게 샘이 나거나 아빠에게 서운한 마음은 전혀 없었다.

새언니 마음도 알 것 같고, 무엇보다 아빠 마음도 잘 알 것 같았다.

사실 새언니는 그 아기를 낳기 전에 여러 차례 유산의 경험이 있었다.

둘째 오빠 내외는 결혼 5년 만엔가 첫아기를 낳았고, 그 아기가 내년이면 초등학교에 들어갈 나이가 되도록 아직도 첫아기다.

첫 유산 때에도 그 슬픔이 크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겠지만, 연이어 또 그런 일을 겪으니 새언니는 더 많이 아파하는 것 같았다. 점점 생기가 없어지고 웃는 일도 적어졌다.

내가 알기로는 결혼 후 한 번도 우리 부모님은 둘째 오빠 내외에게 '아기' 얘기를 하면서 부담을 주지 않으셨고, 적어도 그러지 않으시려고 노력했고, 오히려 여러 번 유산을 경험한 그들에게 더 조심스럽게 대하셨지만 당사자들은 오히려 가족들의 그런 조심스러움이 더 부담스러웠을지도 모를 일이다.

"너 언제 밥값 할래?"

내가 결혼하고 몇 달 지나지도 않았는데 친정엄마는 시도 때도 없이, 전화 통화를 하거나 친정에 갈 때마다 그런 말씀을 입버릇처럼 하신 것 치고는 며느리에게 아무 말씀 안 하고 계셨다는 게 놀라울 만큼 침묵으로 일관하셨다.

"엄마, 밥값은 무슨 밥값이야? 그게 무슨 밥값이야? 임신 안 하면 밥값도 안 하는 거야? 어디 가서 그런 소리 하지도 마슈. 특히 며느리들한테는 절대 그런 말 하지도 마. 남의 집 가서도 그러지 마. 애기 낳으면 밥값 하는 거고 안 낳으면 밥값 안 하는 거야?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가 어딨수?!"

라고 내가 발끈했음은 물론이다.

아무리 옛날 사람이고, 시대가 바뀐 걸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엄마라지만, 이건 해도 해도 너무한 거 아닌가?

남도 아니고 (하긴 남에게 하면 큰일 날 소리, 천부당 만부당하신 말씀이긴 하다.) 딸에게 어쩜 그런 말을 하실 수가 있는 거람?

이왕 나는 그런 말을 들은 마당에 아직 맞이하지 않은(결혼 후 거의 바로 임신을 한 엄마의 큰며느리의 아들은 이미 초등학생이었고, 둘째 오빠와 남동생은 미혼인 상태였다.) 미래의 두 며느리에게는 절대로 입 밖에 내서는 아니 될 말이라며 철저히 단속하기에 이르렀다. 저런 말은 차라리 아니 들음만 못한 소리다. 친정 엄마에게서든 시어머니에게서든 말이다.

밥값이라는 어무무시한 표현은, 그러니까, 나도 어쩔 수 없는 엄마의 생각이니 이 글을 보시는 분들은 너그럽게 이해해 주시길 바란다. 가끔 말이 안 통하는 사람들도 만나게 되는 법이니까 말이다.

"결혼을 했으믄 애기를 낳아야제. 나는 니 나이 때 막둥이까지 다 낳고 진작에 국민학교 댕기고 있었다."

엄마는 꽉 막힌 소리만 했다.

아니 이게 또 무슨 해괴망측한 소리란 말인가?

나랑 엄마랑 같나?

엄마는 진정 전국의 며느리들이 봉기하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단 말인가!

엄마, 지금 이러시면 곤란해요.

"내가 애기 낳으려고 결혼했수? 그리고 이제 결혼한 지 몇 달 지나지도 않았어. 아직 멀었다고!"

"이것아. 벌써 결혼한 지 몇 달이나 지났는디 뭔 소리냐?"

정말 난 결혼한 지 몇 달 지나지도 않았다.

내가 1월에 결혼을 했고, 엄마는 겨우 두세 달 밖에 안 된 새댁에게 저런 말씀을 서슴지 않고 하셨던 거다.

나는 '겨우'라고 했고, 엄마는 '벌써'라고 했다.

"그리고 시가에서도 아무 말 안 하시는데 엄마가 왜 그래?"

"아무 말 안 하셔도 속으로는 기다리고 계실 거다. 말만 안 하시제 어째 안 기다리시겄냐?"

"몰라. 기다리시든 안 기다리시든 내가 알아서 한다고. 애를 누가 낳으란다고 낳아? 내가 다 알아서 할 테니까 걱정하지 마슈."

"아이고, 이 속없는 것아. 하루라도 젊을 때 낳아야제."

"내가 알아서 한다니까!"

이렇게까지 딸에게는 강요하다시피 한 2세를, 아들 며느리에게는 입도 뻥끗 안하셨다는 게 실로 경이로울 지경이었다.

아무렴, 그럼 안되지. 아니 되고 말고.

자식이 2세를 낳든 말든 부모가 무슨 간섭이란 말인가.

"엄마, 진짜 나중에 또 며느리 들어오면 절대 그런 말 하지도 마. 그런 말 듣고 좋아할 며느리는 세상에 하나도 없어. 알겠수? 낳든지 말든지 아들 며느리 보고 알아서 하라고 냅둬. 시어머니가 간섭하면 어떤 며느리도 안 좋아해."

엄마가 딸에게만 저런 얼토당토않은 소리를 하시고(그러나 차라리 아니하셨으면 좋을 소리긴 했다.) 남의 딸들에게는 절대 절대 못 하시도록 단단히 약속받아 놔야 할 의무감마저 느꼈다.

만에 하나라도 미래의 두 며느리들에게 저런 말씀을 하시는 날엔?

생각만으로 끔찍하다.

아무래도 엄마는 내 시가에서 손주를 기다리실까 봐 그게 신경 쓰였나 보다.

나름 나는 시가에서는 맏며느리였고, 당시 서른두 살의 나는 주위에서 노산으로 여겨졌고(지금이라면 저 나이는 이팔청춘 아닌가 말이다.) 시아버지는 연로하셨으며(은근 남의 편은 집에서 늦둥이였고) 당시 그분은 내 기억에 이미 칠순을 넘기신 것 같다.

그러나 내게도 친정에 말 못 할 사정이 있긴 했다.

남의 편이 신혼여행을 다녀오자마자 국가직 공무원은 자신에게 안 맞다며 사직서를 내고 다른 직렬에 응시하겠다고 다시 공시생이 되어 버렸다. 그러니까 나는 결혼 일주일 만에 부부 공무원에서 외벌이가 된 셈이다. 이 사실을 친정에는 굳이 말하지 않았고, 시가에는 휴직했다고 남의 편이 직접 말한 상태였다. 당시 우리에게 급한 건 시험에 합격하는 것이지 2세를 낳는 게 결코 아니었다. 이런 사실을 알 턱이 없는 엄마는 아무것도 모르고 순진하게도 손주 타령만 하셨다. 게다가 나는 아기를 꼭 낳아야겠다는 생각조차도 없었으니 내겐 이도 안 들어갈 소리일 밖에.

"엄마, 엄마 말마따나 진정한 밥값이란 것은 시험 합격이 아닐까? 자식이 밥 먹여주지는 않지만 직장은 밥을 먹여주잖아. 엄마 사위 일 그만뒀어. 다시 공시생 됐다고. 사위가 지금 어떤 지경인지도 모르면서 그런 말 좀 그만하시죠!"

라고는 엄마 앞에서 '공밍아웃'을 하지는 않았다, 물론.

생각해 보면 엄마가 서두르는 이유가 다 있었다.

하지만 엄마의 기대에 부응하고자, 확실하지도 않은 시가의 은근한 기다림에 보답하고자, 결정적으로 아직 미래가 까마득한 공시생 신분인 남의 편을 두고 내가 덜컥 아기를 낳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그러나 결과적으로 엄마의 사위가 수험 공부를 게을리한 게 너무 괘씸한 나머지 몇 달 후 나는 임신을 하긴 했다. 그리고 운명처럼 태명을 '합격이'라고 지었던 거다.)

처음에 내 나이가 많다며 시가에서 반대했다는 얘기가 불현듯 떠오르긴 했지만 그런 것쯤 가볍게 무시하기로 했다.


어쨌거나, 우여곡절 끝에 둘째 새언니는 어여쁜 아기를 낳았다.

그리고 시아버지로부터 장문의 축하 문자를 받았다고 한다.

"아빠가 뭐라고 문자 보냈는데요?"

"그동안 저보고 마음고생 많았다고, 애썼다고 어려움 끝에 손녀가 태어나서 더 기쁘다고, 진심으로 많이 축하한다고요. 아버님이 그렇게 얘기해 주시니까 너무 고마웠어요."

그 말을 하면서 그녀는 새삼 눈시울을 붉혔던가.

우리 부모님도 말씀만 안 하셨지 은근히 손주를 기다리셨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마음 아픈 일을 여러 번 겪은 둘째네에 그런 내색을 할 수도 없었을 것이고, 해서도 아니 됐을 것이다.

둘째 오빠 내외도 당연히 그랬겠지만 우리 부모님도 손녀가 태어났을 때 아주 기뻐하셨다.

"인자 우리 집에 손녀가 둘이네. 그동안 합격이밖에 없었는데. 합격이도 여동생 생겨서 좋겠다."

아빠는 그 옛날 내가 태어났을 때 그러셨던 것처럼 둘째 며느리가 딸을 낳자 그렇게 좋아하셨다.

우리 친정 집안은 여기저기를 봐도 모두 딸이 귀한 집이었다.

아빠도 여동생만 달랑 한 명이고 남동생만 다섯이었다.

큰집, 작은 집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며느리가 몇 년을 기다린 끝에 아기를 낳은 것도 기쁜 일인데 게다가 딸이라니!

아빠는 문자를 보내지 않고는 못 배기셨을 거다.

아빠는 은근히 섬세한 면이 있으시다.


"아빠, 새언니한테 문자 보내셨다면서요? 딸한테는 외손주를 둘이나 낳아도 문자도 안 보내셨으면서 며느리한테만 보내셨구랴? 언니가 아빠 문자 보고 울었다고 합디다. 어째 며느리를 울리고 그러슈?"

어른께 이런 말 하는 게 좀 버릇없어 보이긴 하지만, 나는 아빠가 너무 기특해서 또 저런 하나마나한 소리를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아빠는 아무 말 없이 빙그레 웃기만 하셨다.

정작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따로 있었다.

아빠, 정말 잘하셨어요.

그동안 새언니가 많이 힘들어했는데 대단할 것도 없는 시아버지의 문자에 너무너무 고마웠대요.


"하나라 외로울 것인디, 하나 더 있으믄 좋겄는디...

"엄마!"

"하긴 그것이 사람 마음대로 되냐."

몇 년 후, 엄마는 슬그머니 아쉬운 마음에 내게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이었다.

이런, 내 약발이 다 했나 보군.

그렇다면 내가 또 나서는 수밖에.

자꾸 시누이가 나서면 좋을 게 없겠지만 눈 한번 질끈 감고 또 나서보자.

나는 다시 한번 엄마를 단속했다.

"엄마, 그런 소리 며느리 앞에서는 하지도 마. 알았지? 절대로,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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