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如是我聞

by 글임자
2025. 10. 9.

< 사진 임자 = 글임자 >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날, 친정어머니께서 막내아들 집에 방문하기 위해 짐을 꾸리고 계실 때였다.

그때 당신의 둘째 아들은 태연히 앞에 앉아 이렇게 말씀하였다.


"엄마, 이번에 가시면 한 일주일 정도 막둥이 집에서 푹 쉬다 오셔."

나는 그저 어서 빨리 둘째 오빠가 자리를 뜨기만을 기다렸다.


한 일주일 정도라니?

하루라면 모를까, 일주일씩이나?

그것도 아들 혼자만 사는 집도 아니고 며느리도 있고 손주도 있는 집에?

어쩜 이렇게 엄마 아들은 세상 물정을 모를까?

비단 엄마의 막내며느리가 아니더라도 세상의 며느리들이 들었더라면 '청천벽력 같은 소리'였음에 틀림없었을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나는 둘째 오빠가 나가자마자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 설마 일주일씩이나 있을 건 아니지?"

"어차피 인자 집에 할 일도 없다."

그럼 설마 정말 둘째 아들이 추천한 것처럼 오래 있다 오시려나?

"그래도 일주일은 너무 기네. 거기서 그렇게 오랫동안 혼자 뭐 해?"

"TV도 보고 놀제, 뭐 하긴 뭐 하냐?"

혹시 그동안 집에서는 거의 아빠가 TV를 독점하시다시피 해서 원하는 채널을 쟁취하지 못한 한을 막내아들네까지 가서 풀려고 그러시나?

"엄마, 그래도 가시더라도 하루나 이틀만 있다 오셔. 며느리도 일하고, 손주도 어린이집 가면 없고, 하루 종일 엄마 혼자 집에 있을 텐데, 할 일도 없는데 오래 있을 필요도 없잖아."

"할 일이 왜 없냐? 애기들(아들+손주+며느리) 밥도 해주고, 운동도 하러 나가고 바람도 쐬고, OO이 어린이집 갔다 오믄 같이 놀아주고 그러제."

어라?

내가 예상했던 대답과 다르다.

"아이고, 나는 아파트에서는 하루도 못 살겄더라. 갑갑해갖고 어떻게 사냐?"

라고 말씀하시던 분이 아니었던가.

다 그렇지는 않지만 대부분 시골에서만 평생 사신 어른들은 아파트를 답답해 못 견뎌하신다.

우리 부모님도 마찬가지인데 이상하다.

"오빠는 뭐 하러 쓸데없는 소리는 해가지고. 아들은 아들이고, 며느리 어려운 줄도 알아야지. 며느리 일하느라 바쁜데 엄마가 거기 오래 계시면 신경 쓰이지, 반찬 하나 하는 것도. 좋은 것도 하루 이틀이라니까."

"내가 가서 애기들 성가시게 하냐? 나는 하나도 성가시게 안 한다."

"그래도 엄마가 거기 계신 것 자체가 부담스럽다니까, 며느리는."

"내가 뭣을 어쨌다고 그러냐?"

"뭣을 어쨌다는 것이 아니라(하지만 방문 자체가 뭣을 어쩐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이다.), 아무튼 아들은 엄마니까 그렇다 치고 며느리는 남인데 어렵지."

"OO가 너 같은 줄 아냐? 성격도 활달하고 너랑은 다르다."

아파트 같은데서는 하루도 못 살겠다고, 그런 데서 사람이 어떻게 사냐고 하실 땐 언제고?

그건 그렇고, 이런 식으로 딸 성격을 은근히 디스 하시다니!


하여튼 아들들이 문제다.

다른 집은 모르겠지만 우리 집은 말이다.

그중 단연 가장 문제인 아들은 역시 막내아들이다.

"엄마. 이제 시골에 일도 없는데 우리 집에 오셔서 한 두 달 푹 쉬셔."

라든가,

"누나, 애들 방학하면 보내. 언제 방학해? 와서 한 달 동안 놀고 개학 전날 가면 되지."

라는 말을 서슴지 않고, 결정적으로 제 아내와 합의도 보지 않은 채 일방적으로 선심성 발언을 아무 생각 없이 하는 것 같다.

엄마가 아무리 집에 일이 없다손 치더라도, 아무리 아들 집이라 하더라도, 남의 집에 한 달씩이나 가서 뭐 한단 말인가.

동생은 내 아이들이 방학할 때만 되면 귀찮게 전화를 걸어온다.

"누나. 언제 방학해? 애들 보내라니까."

라거나,

"내가 애들 데리고 놀러 다닐게. 보내."

라거나,

"집에서 맨날 뭐 해. 여기 와서 놀면 좋잖아."

라고 끈질기게 말이다.

어쭈?

혼자 인심은 다 쓰시네, 그려.

물론, 아이들이 방학 내내 집에 없다고 생각하면, 생각만으로도 천국일 것 같다.(얘들아, 엄마를 용서하렴.)

달랑 태권도 학원 하나 다니는 아드님과 아무 학원도 다니지 않는 따님이랑 한 달 동안 하루 종일 집에 있을 생각을 하면 그것도 생각만으로도 피곤해진다.(얘들아, 한 번 더 엄마를 용서해 주겠니?) 아무도 없는 빈 집에 나 혼자만 남을 생각을 하면 밥을 안 먹어도 배부르다.(얘들아, 한국인은 '삼 세 번'의 민족이야. 알지? 또 한 번 더 이 엄마를 용서하거라.)


이 철없는 것이 또 아내와 상의도 않고 혼자 마음대로 말하네.

분명히 제 아내에겐 저런 심한(?) 말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시부모도 부담스러운데, 난데없이 시조카라니? 그것도 하나도 아니고 둘씩이나?

"너, OO랑 상의는 미리 하고 말하는 거냐? 너도 일하고 OO도 일하는데 어떻게 거기에 우리 애들이 가 있냐? 네 맘대로 혼자 결정하지 말고 미리 상의를 해야지. 그리고 네가 우리 애들 밥도 다 차려줄래? 그러지도 않을 거면서 누구를 성가시게 하려고 오긴 어딜 오라고 해? 네가 다 할 거야? 다 할 거면 생각해 보고."

나는 당장 현실적으로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에이, 그냥 오면 되지."

"되기 뭐가 돼?! 안 가. 안 간다고! 가더라도 하루나 이틀만 있지 무슨 방학 내내 있으라고 그러냐?"

"애들이 외삼촌 집에 올 수도 있지."

"외삼촌 집만 되냐? 외숙모 집도 되지. 너 혼자만 사는 거 아니다. OO도 같이 사는데 맘대로 혼자 하지 마! 생각을 해 봐라. 너는 장모님이랑 처조카들이 거기 가서 한 달씩 있으면 좋겠냐? 안 부담스러워?"

나는 마치 남편이란 사람이 나와 미리 상의도 하지 않고 시부모님과 조카들을 초대해버리기라도 한 것처럼 발끈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런 걸 고급 전문 용어로 '빙의했다'라고 한다지 아마?

물론, 평소 막내 올케의 성정상 시조카를 내치거나 싫어하지 않을 거라고는 생각한다.

하지만 부부관계란 배우자와의 현재 사이가 어떠한가가 중요하고, 하루에도 몇 번씩 좋았다가 나빠질 수도 있는 거고, 그것이 시월드의 모든 것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남편이 꼴도 보기 싫어질 땐 괜히 아무 상관없을 시월드의 모든 것까지 다 싫어지지 않던가.

나보다는 확실히 올케는 더 사교적이고 활달하고 아이들 눈높이를 더 잘 맞춰준다.

그래도 친조카가 아니라 시조카다.

그러면 또 말이 달라질 수가 있는 것이다.

결정적으로 내 의견도 듣지 않고 일방적인 의사결정을 해버리는 남편은 최악이다.

행여라도 올케가 나의 아이들을 환영한다고 지금 당장 어서 오너라, 하더라도 냉큼 보따리를 싸주는 시누이는 되지 말아야지.

동생은 그렇다 치고 올케와 나는 남이 아닌가.

서로 어느 정도는 조심하는 부분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단순하게 조카들을 초대하고 싶은 마음만 앞서서 다른 생각은 전혀 못하는 동생이 차라리 어이없을 지경이다.

아,

참 다행이다.

내 남편이 아니라서.(올케, 날 용서해.)


"엄마, 갔다 금방 오실 거지?"

엄마의 반응이 영 탐탁지 않아 나는 쐐기를 박아야 했다.

"말로는 괜찮다고 해도, 며느리는 시어머니 있으면 신경 쓰인다니까. 그러니까 오래 계시지 말라고."

"거기서 내가 뭐 한다고 혼자 징역살이하냐? 하룻밤만 자고 와야제."

역시 우리 엄마야.

내 기대를 저버리지 않으신단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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