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 게 다 걱정이었던 하나뿐인 시누이
< 사진 임자 = 글임자 >
"나는 시누이가 없어서 좋아. 있어서 괜히 사사건건 간섭하면 싫잖아."
누군가는 그렇게 말했다.
"시누이는 차라리 없는 게 낫지."
라고까지, 그런 말을 하는 이도 있었다.
아니,
어쩜 그렇게 심한 말을!
하지만 어쩌랴, 나는 이미 3남 1녀의 자녀를 둔 부모님의 딸이고, 남자 형제들이 결혼을 하게 되면 시누이가 될 수밖에 없는 운명인 것을.
왜 사람들은, 특히 (일부) 며느리들은 '시누이'라면 질색을 할까?
시누이가 뭘 어쨌기에?
물론 뭘 어쩌는 시누이도 있긴 있는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며느님들,
세상의 모든 시누이가 다 시누이짓 하는 것도 아니고 잘 찾아보면 썩 괜찮은 시누이도 많다우.
고등학교 다닐 때 같은 반에 정말 다정한 오빠를 둔 친구가 있었다.
여동생을 그렇게 살뜰히 챙겼다.
여동생 일이라면 발 벗고 나섰다.
여동생은 그런 오빠를 동해 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지 않을 정도로만 칭찬을 했다, 그것도 내 앞에서.
나는 듣고도 믿기 힘든 그 간증에 차라리 나의 남자 형제들이 없었으면 하고 잠깐 망측한 생각까지 다 했었다.
그러니까 나의 두 오빠들과 남동생은 어떤 편이냐면, 그냥 모든 면에서 내 친구의 오빠와는 딴판이었다.
좀(은 아니고 매우) 권위적이었던 큰 오빠, 살짝(보다는 살짝 더) 반항적이었던 둘째 오빠, (남들도 그렇다고 하긴 하던데) 시도 때도 없이 나랑 싸웠던 남동생, 우리 집 남자 형제들은 아무짝에도 쓸데가 없어 보였다.(그 시절 내가 사춘기였음을 감안해 주기 바란다.) 물론 그들이 나에 대해서도 똑같은 마음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넌 좋겠다. 오빠가 둘이나 있고. 난 오빠 있는 친구들이 너무 부럽더라."
언니만 둘인 딸부잣집 막내딸인 내 친구가 말했다.
"넌 좋겠다. 언니가 둘이나 있고. 난 언니 있는 친구들이 너무 부럽더라."
남자 형제만 득시글한 나는 진심이었다.
항상 언니나 여동생이라도 있었으면 하고 바라왔다.
그렇다고 해서 이제 와서 엄마에게 언니까지는 무리인 거 아니까 여동생이라도 어떻게 안 되겠냐고, 늦둥이에 대해 진지하게 토킹 어바웃해보자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사람들은 언제나 내가 가지지 못한 것에 더 미련이 남는 듯하다.
하지만 다른 이가 가진 그것의 실체를 잘 알지는 못한 채 말이다.
그리고 우리는 내가 가진 것의 진가를 모르고 살기도 일쑤다.
딱하긴.
오빠라고 다 같은 오빠인 줄 아시나.
오빠도 오빠 나름이란다, 친구야.
나는 조금의 거짓도 없이 우리 집 남자 형제들의 실체를 낱낱이 고백했다.
"이래도 오빠가 있으면 좋겠어? 이런 남동생 좋아?"
이렇게 내가 심드렁하게 말하면,
"아니! 그냥 오빠는 없어도 되겠다."
라며 내가 부럽다던 그 말이 쏙 들어가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렇게 없는 언니들을 마냥 동경하던 나는 나이가 들면서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기 시작했다.
오빠가 둘이나 있으니까 만약 둘 다 결혼을 하게 되면 나도 언니가 생기는 거잖아?
물론 친언니는 될 수 없겠지만 그래도 새언니도 언니는 언니니까.
이건 흡사 며느리를 맞이하는 시어머니가 없는 딸이 생겼다고 착각하는 그런 종류의 착각이었을지도 모른다.
새언니가 생기는 기분은 어떨까?
새언니들은 어떤 사람일까?
아직 실체도 드러나지 않은 그녀들을 상상하며 뭔지 모를 기대를 했었다.
하지만 이내 정신이 들었다.
시누이와 시어머니가 한 편이 돼서 며느리를 힘들게 하고 골탕 먹이는 그런 몹쓸 드라마를 보다가 반대로 미래의 나의 세 올케들이 한 편이 되어 나를 골탕 먹이지는 않을까 그런 쓸데없는 걱정까지 다 했다.
자그마치 3대 1이다.
아무리 엄마와 내가 힘을 합쳐 봐야 3대 2가 고작이다.
우리가 밀릴 것이다.
게다가, (물론 이것도 세상 쓰잘데기 없는 상상이지만) 더욱 최악의 상황을 가장해 보자면 두 오빠와 남동생이 모두 제 아내 편에 선다면? 그때는 나는 완전 망하는 거다.
이런 걸 고급 전문 용어로 '걱정도 팔자' 내지는 '쓰잘데기 없는 걱정 한다.'라고 한다지 아마?
이런 가당치도 않은 상상이 다 무어란 말인가.
남남이 만나서 결혼을 하게 되면 당사자 둘은 그렇다 치더라도 원래의 가족들도 낯설고 어려운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몹쓸 드라마에서는 걸핏하면 그저 시월드라면 치를 떠는 며느리가 등장하고, 그중에 특히 시누이 욕을 하기 위한 임무를 띠고 결혼한 것은 아닌가 싶게 유독 시누이만 세상 못된 사람으로 묘사하는 올케들도 왕왕 나왔으며, 안타깝게도 부부 싸움의 단골 주제의 8할은 '시월드'였음이 나를 지레 당황스럽게 했다.
내가 세 올케들과 잘 지낼 수 있을까?
우리 엄마랑 며느리들의 관계가 원만해야 할 텐데.
또 미리부터 머리가 무거워졌다.
물론 둘이 잘 살면 그만이고, 둘이 알아서 할 일인데 내가 뭐라고 그런 것(?)까지 신경을 쓰고 있나.
벌써부터 시누이짓 하려고?
이왕이면 그녀들과 잘 지내보고 싶은데, 의욕은 앞섰지만 방법은 몰랐다.
세 명의 올케가 생긴 지 오래인 지금, 3대 1이든, 300대 1이든 그런 건 중요한 게 아니었다.
다만 나는 엄마의 그 말만 되새기며 잊지 않으려고 한다.
너는 시누이짓 하지 말아라. 말아라. 말아라라라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