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내며느리와 딸
< 사진 임자 = 글임자 >
"OO이 어매는 날마다 코팡에서 뭣이 오더라. 집 앞에 보믄 택배가 몇 개씩 와 있어. 뭣을 그라고 많이 사는가 모르겄다."
지난 달이었던가?
남동생네 집에 이틀 정도 머무시다 집으로 컴백하신 친정 엄마는 내게 말씀하셨다.
그날도 우리 모녀는 전국에 흩어져 사는 친척들에게 보낼 택배를 준비하며 이런저런 농산물들을 챙기는 중이었다.
"그렇게 날마다 사믄 돈을 모으겄냐? 아무리 둘이 번다고 해도 그라고 맨날 쓰믄 언제 돈을 모으냐?"
시어머니 입장이라 그런지, 하필이면 주문자가 항상 며느리 이름으로 온 것이라 그런 건지, 어쨌든 엄마는 그날 좀 그러셨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맞아, 엄마. 둘이 벌기만 하면 뭐 해? 그만큼 다 써 버리는데 버는 게 버는 게 아니지. 둘이 번다고 그렇게 마구 사 들이면 못 쓰지. 엄마 말이 백 번 맞수. 암, 맞고 말고. 돈 벌기 쉬운 것도 아닌데 아껴 쓸 줄도 알아야지. 그치, 엄마? 맞벌이라고 해서 꼭 외벌이보다 두 배 버는 것도 아니라고 합디다. 1.5배 번다고 했나? 아무튼 그렇게 더 많이 버는 것도 아니래. 많이 차이나는 것도 아니었던 것 같아. 번다고 또 그만큼 쓰니까. 엄마 말이 다 맞아."
라며 때리는 시어머니보다 (시누이라고 하나 있는 것이) 더 얄밉게 말리는 소리 같은 건 하지 않았다, 물론.
아니, 이럴 수가! 우리 엄마가 또 뭔가 오해를 하시네.
엄마는 기원전 100년 경부터 내게 "시누이짓 하지 말아라"라고 내내 당부해 오셨지만, "너는 빠져라."라는 말을 골백번도 하셨지만 (어디까지나 지극히 내 생각에만) 내가 나서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잖아?
"엄마, OO가 뭘 얼마나 샀다고 그래? 다 필요하니까 샀겠지. 아무 생각 없이 무조건 돈 쓰겠어? 그리고 일하느라 바쁘니까 나가서 살 시간이 없으니까 코팡에서 산 거지. 그런 것 가지고 뭐라고 하면 되겠수?"
나는 어디까지나 또 지극히 내 개인적인 생각에만 객관적인 의견을 내놓았다.
"그래도 정도껏 사야지. 맨날 뭣이 그라고 살 것이 많다냐? 가서 보믄 하루도 택배가 안 온 날이 없드라."
"하필이면 엄마가 택배가 오는 날에 거기 계셨던 거겠지. 그리고 하필 그때 그게 필요했었나 보지."
"아들 하나 있는 거 둘이 벌믄 그래도 키울 만할 것인디 지금 돈을 모아야제."
엄마의 막내아들에겐 아들만 하나 있다. 맞벌이니까 둘이 벌어서 키우면 그렇게 힘들지는 않을 것 같다고(물론 이것도 어느 선까지 뒷바라지해 주느냐에 따라 말이 달라지겠지만 말이다.) 엄마는 생각하시는 거다.
"엄마, 돈을 벌었으니까 쓰기도 해야지. 돈을 쓰려고 버는 거지. 벌어서 쓰지도 않고 쟁여만 놓으려면 뭐 하러 힘들게 일하겠어? 돈 쓰는 맛에 돈도 버는 건데. 안 그렇수? 그리고 OO가 그렇게 과소비하는 것도 아니고, 그 정도면 괜찮지 뭘 그래? 요즘 자기 분수도 모르고 주제넘게 빚까지 내서 막 쓰는 사람들도 많다고."
나는 엄마의 막내며느리도 아닌데, 엄연한 딸인데, 갑자기 막내며느리가 된 기분마저 들었다.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지만 차라리 내가 다 억울할 지경이었다.
어머니,
이러시면 곤란합니다.
막내며느리는 잘못이 없어요.
그 정도는 잘못 축에도 못 낀다고요.
"너는 내가 뭐라고 했다고 그러냐?"
"OO가 코팡에서 맨날 뭐 산다며? 맨날 사는 건 아니겠지. 그리고 맨날 사더라도 그건 아들 며느리가 알아서 할 일이니까 엄마가 신경 쓸 일도 아닌데 왜 그래? 엄마한테 돈 달라고 한 것도 아니고 빚내서 사는 것도 아닌데, 안 그래? 그리고 나도 거의 다 온라인으로 주문해서 사. 그게 훨씬 싸기도 하고 시간 없을 때 얼마나 좋은데. 설마 거기서 며느리한테 뭐라고 한 건 아니지?"
"내가 뭐라고 말한다냐? 아무 소리도 안 했다."
"둘이 알아서 할 일이니까 아무 말하지 마. 더 잘 알아서 한다니까."
"그러제. 둘이 알아서 하겄지."
"그러니까 엄마는 그냥 보고만 계셔."
"알았다. 너는 내가 뭐라고 했다고 그라고 잔소리가 많냐?"
"그리고 엄마처럼 돈을 벌기만 하고 안 쓰면 안 돼. 벌었으면 써야지. 내 시금치는 팔고 싶고 남의 물건은 사기 싫수? 그러면 안 돼. 내가 돈을 벌었으면 쓰기도 해야지. 그래야 경제가 돌아가는 거지. 엄마처럼 돈 벌 줄만 알고 쓸 줄을 모르면 경제가 안 돌아간다니까! 그러니까 며느리가 뭐 산다고 뭐라고 하지 마슈!"
"아따, 너 진짜 잔소리 많다. 내가 언제 안 썼다고 그러냐?"
맞다.
물론 이건 좀 과장된 말이다. 엄마 말씀도 틀린 것 하나 없다.
엄마는 쓸 때 정말 통 크게 쓰시는 분이다.
4남매에게 심적으로는 물론 경제적 지원을 아낌없이 하셨고, 지금도 하시는 중이고, 이젠 손주들에게까지 그 영역을 확장해 나가시는 중이다. 내년에 풋풋한 대학 새내기가 될 자랑스러운 당신의 맏손주의 등록금을 깜짝 전달할 생각에 벌써부터 신이 나신 눈치다.(물론 이건 나와 엄마만의 일급비밀이지만 말이다. 제발 이 글이 큰오빠 내외에게만은 발각되지 않기를.)
"나도 날마다 인터넷으로 주문한다니까. 훨씬 싸고 고를 것도 많아서 좋다고."
요즘엔 덜한 편이지만 맞벌이였던 왕년에 인터넷 쇼핑 좀 했었던 나는, 지레 발이 저려 발끈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람들에게 사라고 인터넷 판매도 하는 건데 그럼 사줘야 하는 거 아닌가? 판매자가 온라인 출시를 한 보람도 없이 다들 외면해 버리면 어쩐담? 그래서는 아니 되지 않나?
딸이 잽싸게 온라인 주문으로 필요한 것을 주문해 주면 그렇게 세상 좋다고 다음에도 또 해달라고 그러시면서, 며느리가 하는 건 또 보기 그러신 건가?
이런걸 고급 전문 용어로 '내로남불'이라고 한다지 아마?
"하기는 그렇더라. 니가 저번에 주문해 준거 맛나드라. 얼마라고 했냐? 밖에서는 그 돈 갖고 택도 없다. 그거 큰 오빠네도 주문해 주라. 엄마가 돈 줄게."
엄마는 최근 인터넷 주문으로 내가 갖다 드린 음식이 맛있었다고, 진짜 싸다고, 시중에서 사 먹으려면 돈이 얼마냐고 감탄까지 하시며 재주문을 요청하신 적이 있다. 시가에도 어떤 음식을 인터넷 주문으로(물론 후기를 꼼꼼히 살핀 후) 보내드린 것이 맛있더라는 얘기를 듣은 이상 나도 온라인 구매를 끊을 수가 없다.
어머님들, 며느리들이 하는 일에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고요.
"그리고 요새 그런 며느리 없다니까. 그만하면 됐지."
"그러긴 하다."
"그러니까 엄마, 아들 며느리 하는 거 그냥 보기만 하셔. 뭐라고 하지 말고. 둘이 더 잘 알아서 하니까. 알았지? 간섭하면 아들이고 며느리고 아~무도 안 좋아한다니까! 한 번에 택배 두세 개 와도 큰 일 안 나. 알았지?"
나는 마지막까지 엄마에게 당부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그리고 기어이 엄마에게
"너 진짜 잔소리 많다. 그만해라!"
라는 말을 듣고야 말았다.
사위가 부엌에 있으면 그렇게 흐뭇하고, 내 아들이 부엌에 있으면 느닷없이 부아가 치민다는 그런 얘기도 어디서 들은 것 같은데 엄마들은 이렇게 내 자식과 남의 자식을 보는 시각이 달라지는 것일까?
시누이가 끼면 안 좋다던데,
시누이는 빠지는 게 좋다던데,
시누이라고 하나 있는 것이 너무 나섰나?
이참에 주문자든 수령자든 무조건 남동생 이름으로 바꿔버리라고 막내 올케에서 슬쩍 말이라도 해 볼까?
나중에 행여라도 엄마가 쌓인 택배 운송장에서 막내아들의 이름을 발견하고 더는 무슨 말씀을 못 하시게?
그날도 시누이의 오지랖은 마구마구 펄럭였다, 친정에서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