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딸과 남의 딸
< 사진 임자 = 글임자 >
"언니가 또 그랬어?"
"그래."
"내가 계속 말했는데."
"말해도 안 듣는다."
"그러게 말이네."
그런데,
며느리가 하지 말라는 걸 '또' 했다는데 시어머니의 말투는 한없이 부드러웠다.
"아빠 생신이라고 언니가 음식을 많이 해 갖고 왔다. 너도 갖다 먹어라."
또 올 것(?)이 온 것이다.
엄마의 둘째 며느리가 다녀갔다.
둘째 새언니 덕에 나까지 호강하게 생겼다.
그런데 가만, 시누이라고 하나 있는 것이 너무 염치없는 거 아닌가?
새언니가 힘들게 만든 음식을 시누이가 맨입으로 갖다 먹기만 하는 것도 한두 번이지.
이번엔 뭘로 또 보답을 해야 하나?
둘째 새언니는 손이 크다.
아니, 내 기준에서는 그렇게 보이지만 인심이 후한 편이라고 해야 맞겠다.
평소 나는 끼니마다 음식을 조금씩 해 먹는 편이고 밑반찬이란 게 집에 하나도 없다.
국도 제일 작은 냄비에 한 번 먹을 만큼만 해서 해치워버리고, 만에 하나 양 조절에 실패라도 해서 음식이 조금 남기라도 하는 날에는 그렇게 억울할 수가 없다. 도대체 뭐가 그리 억울한 건지, 어쨌든 음식을 남겨서 냉장고에 보관하는 일은 거의 없다시피 한다.
그런데 둘째 새언니는 음식 한 가지를 하더라도 항상 우리 식구까지 나눠먹을 양을 더해서 부모님께 갖다 드리곤 한다.
친정에는 부모님 두 분만 사시고 음식을 많이 드시는 분들도 아니니까 그렇게까지 많이 해 올 필요도 없는데 가서 보면 항상 큰 냄비에 음식이 넉넉하게 담겨 있는 걸 보면 만드느라 고생했겠다 싶으면서도 나도 좀 얻어먹을 수 있겠구나, 싶은 것이다. 얌체같이.
둘째 새언니만 인심이 후한 게 아니다.
그녀의 친정어머님 또한 그러하시다.
"OO이 고모네도 먹으라고 그러면서 주시더라."
아예 대 놓고 나보고 갖다 먹으라고 하시며 여러 가지 음식을 잔뜩 보내시기도 한다.
얼마 전엔 햅쌀이라며 쌀을 한 포대나 주셔서 친구와도 나눠 먹었다.
그러면 나는 또 그게 고마워서 작업에 돌입한다.
각종 과일청을 만들어 사돈 어른댁에 보낸다.
그래서 내가 그런 것들을 만들 때는 둘째 새언니 몫에 항상 그녀의 친정 몫까지 원 플러스 원이 된다.
사람이 받고만 살아서는 안 되는 법이니까, 그나마 내가 할 줄 아는 게 그거니까, 다행히 맛있다고 해주시니까 말이다.
"하지 말라고 해도 언니가 미역국도 끓이고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고 그것도 하고 고것도 해 왔다. 아빠랑 우리 둘이 다 못 먹는다. 언제 와서 갖다 먹을래?"
보통 부모님 생신이 다가오면 우리 4남매는 미리 집에 모이거나 일주일 정도 전에 다 같이 외식을 한다.
그걸로 끝이 나야 하는데, 그래도 되는데, 그렇게 했으면 그게 생신을 축하한 거라고 여기는 게 마땅한데 둘째 새언니는 따로 또 챙긴다.
아마 부모님과 가까이 사는 편이라 그냥 지나칠 수가 없는지도 모르겠다.
부모님 집과 차로 15분 이내 거리에 사는 둘째 오빠는 평소에도 종종 아내가 해 준 음식을 자주 나른다. 그럴 때마다 좀 많다 싶으면 엄마는 어김없이 내게 전화를 하시는 거다.
"언니, 음식 안 해도 돼요. 평소에도 많이 해 주는데 신경 안 써도 돼요. 내가 할게요."
라고 내가 여러 번 둘째 새언니에게 말했지만 부모님 생신이 되면 어김없이 미역국을 비롯한 이하 맛난 음식이 친정에 도착해 있다.
챙기더라도 부모님 생신은 친자식들이 챙기는 거지 며느리에게 바랄 일도 아닌데, 누가 그녀에게 하라고 한 사람이 한 명 없지만 말이다.
딸은 생신이 다가오면 친정에 전화를 한다.
이왕이면 드시고 싶은 걸로 해드리는 게 좋겠다 싶어서 의견을 듣고 참고도 할까 해서 말이다.
"엄마, 생신인데 드시고 싶은 거 있어?"
"언니가 진작 해 왔다."
"또 벌써?"
"그래."
"그래도 언니는 언니고."
"됐다. 언니가 해 온 것도 많다."
"그럼 전이나 좀 해서 갈까?"
"먹을 것도 많은데 뭐 하러 전을 하냐?"
"그건 며느리가 한 거고."
"있는 음식도 며칠 먹게 생겼다. 너는 뭐 하지 말고 얼른 와서 가져가기나 해라."
나도 슬슬 뭔가 좀 해 볼까 하고 시동을 걸려고 하면 엄마는 사전에 차단해 버리신다.
하필이면 전화할 때마다 언제나 둘째 새언니가 다녀간 후였다.
물론 일부러 그걸 노리는 것은 맹세코 절대 아니다.
솜씨 좋은 며느리의 음식을 드신 부모님은 딸의 음식은 '굳이' 필요 없다고 하신다. 이미 며느리 덕분에 잘 드셨다면서 말이다.
그래도 며느리 음식은 며느리 음식이고 딸 음식은 딸 음식인데 다른 거 아닌가.
어버이날도 다르지 않다.
이번에는 내가 둘째 새언니보다 먼저 음식을 해 가야지 하고 마음먹어도 그녀의 발빠름을 당해낼 수 없다.
그러니까 생신상도 안 차리는 사람은 바로 친딸인 나다.
둘째 새언니 덕분에 하나뿐인 시누이는 하는 일이 없다.
이런 것도 반사적 이익 축에 들 수 있으려나?
물론 그것도 바란 것은 아니다.
나는 둘째 새언니가 의무감에 '굳이'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다고 항상 생각하고 실제로도 그렇게 말한다.
"언니는 평소에도 음식 자주 해서 드리잖아요. 생신이라고 그렇게 신경 안 써도 돼요. 내가 하면 되는데 언니는 이번에 쉬어요."
"알았어요."
하지만 대답만 알았다고 하지 행동을 또 그 반대다.
시가 일이라고,
며느리니까 해야 한다고,
그건 며느리 일이라고,
엄마의 며느리들이 절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녀들이 뭔가를 안 한다고 해도 전혀 서운하거나 기분 상하지도 않는다.
서운 할 일이 뭐가 있고 기분 상할 일이 뭐가 있단 말인가.
기본적으로 뭐가 됐든 우리 4남매가 먼저 해야 할 일이고 당연히 그래야 한다.
그리고 내 부모님에 관한 일이니까 내가 충분히 혼자서라도 할 의향이 있으니까, 부담을 가지지 않기를 바란다.
내가 할 테니 안 해도 된다고 하는 그 말도 절대 그냥 하는 말이 아니다.
나도 결혼해서 살아보니 남의 집 아들과 사는 일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각자 부부사이의 문제는 모르겠으나, 세 남자들도 아내들에 대해 할 말이 무지하게 많을지도 모르겠으나, 내 코가 석자인 마당에 내가 그것까지 생각하고 싶지는 않다. 나도 아내 입장인지라 팔이 아내 쪽으로 굽을 수밖에.
며느리가 시가 일까지 일일이 다 신경 쓰고 살아야 할 의무는 없다.
엄마의 세 아들들과 각각 사는 것만도 어딘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