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신한테는 절 안 해요.
< 사진 임자 = 글임자 >
"어머님, 전 절 안 할게요. 귀신한테는 절 안 해요."
첫째 새언니, 그러니까 친정 부모님의 맏며느리는 저렇게 단호하게 말했다.
부모님과 우리 4남매, 그리고 또 누가 그 자리에 있었던가.
아, 나의 첫 조카, 오늘 수능을 마친 그 첫 조카가 아무것도 모르는 순진한 얼굴로 함께하고 있었다.
차라리 나는 그 말이 충격적이었다.
"할머니, 증손주 보시게 생겼어요."
라며 살갑게 임신 소식을 전했던 먼 먼 옛날, 나의 친할머니의 첫 손주 며느리는 들떠서 그렇게 소식을 전해왔었다.
그리고 그녀는 과연 첫아들을 낳았고 할머니 품에 증손주를 안겨 드렸으며, 그 작고 꼬물거리는 어린것을 안고 할머니는 어떤 표정을 지으셨던가?
가뜩이나 왜소한 체구의 할머니는 더욱 몸을 웅숭그리시며 처음으로 손주 내외가 세 명이 되어 집으로 온 날 당신의 증손주를 한참이나 내려다보셨다.
무뚝뚝한 성격의 나와는 달리 큰 새언니는 조잘조잘 어른들께 살갑게 말도 참 잘했었다.
저세상 것인 줄로만 알았던 '애교'라는 것도 다 부렸다. 천성 자체가 밝고 긍정적인 성격으로 보이던 큰 새언니가 그때만큼은 나 못지않은 무뚝뚝한 사람으로 보일 정도였다.
할머니를 '귀신'이라고 부를 줄은, 그런 말을 할 거라고는 아무도 짐작조차 못 했을 것이다.
할머니가 집에서 돌아가시고(거의 임종을 지켜보다시피 한 사람은 나였다.) 그때만 해도 집에서 장례를 치르는 집이 아직 남아있던 시절이었다.
수도 없이 나는 절을 했었다.
다른 가족과 친척, 그리고 문상을 온 많은 사람들도 자연스레 절을 했다.
마지막에 상여가 나갈 때 정말 마지막 인사라며 아빠가 내게 할머니께 절을 하라고 말씀하셨을 때 나는 마지막 절을 마치고 갑자기 울음이 터져 한동안 일어나지도 못했었다. 아직도 선명하게 내 무릎에 한겨울의 차디찬 흙바닥의 서늘함이 느껴진다.
할머니와 같은 방을 오래 썼고, 공시생 행세를 하며 잠깐 나가서 자취했다가 시험에 떨어지면 다시 조용히 집으로 돌아와 할머니 옆에 나란히 누웠던 나로서는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부모님과 함께 보낸 시간보다 할머니와 보낸 시간이 더 많았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할머니는 내게 특별한 분이었고 친하다면 나름 친한 사이였다.
엄마와 별 것도 아닌 걸로 관계가 서먹해지면 할머니는 내 자취방 문을 지팡이로 탁탁 두드리며 갑작스레 방문하시는 일도 잦았다.
"왜? 또 엄마가 뭐라고 했어? 명산댁, 무슨 일이야?"
자못 의기소침해진 얼굴로 손녀를 찾아오신 할머니께 나는 실없는 소리를 잘도 했다.
할머니 마음도 달래줄 겸, 당신 입맛에 맞게 조기찌개도 끓이고 부침개도 만들어 드리면 항상 잊지 않고 이렇게 말씀하시곤 했다.
"니 엄마보다 니가 한 것이 더 맛나다."
엄마한테 서운한 마음에 살짝 과장을 보태시는 것도 잊지 않던 분이다.
그런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그런데 그때까지만 해도 유일한 손주며느리인 그녀가 할머니 보고 갑자기 '귀신'이라고 했다.
우리 모두는 잠시 어리둥절했던가.
"아니, 절을 안 하다니! 할머니가 돌아가셨는데 손주 며느리가 돼가지고 절을 안 하겠다고? 지금 그게 무슨 소리냐? 왜 돌아가신 분한테 절을 안 해. 당연히 해야지!"
라고는, 우리 가족 중 그 누구도 저렇게 말하는 사람은 없었다 물론.
큰 새언니는 할머니 영정 앞에서 절 하기를 단호히 거부했고 그녀를 제외한 나머지 가족들은 크게 개의치 않았다.
"그래. 너는 교회 다니니까. 교회 다니는 사람들은 절 안 한다고 하더라. OO이 어매는 하지 말아라."
엄마도 예상치 못한 맏며느리의 반응에 처음엔 조금 당황스러워하는 기색이더니 이내 그녀의 결심을 받아들이신 눈치였다.
"어머님, 전 기도할게요."
그녀는 눈을 감고 잠시 기도를 했다.
"근데, 언니. 왜 할머니가 귀신이야?"
나는 다른 뜻은 없었고, 그냥 단순히 궁금함을 참지 못해 물었다.
"아가씨. 사람이 죽으면 귀신이지."
나는 평소 그런 생각을 전혀 해 본 적이 없어서 새언니의 답변이 의아했다.
"할머니는 할머니지 왜 귀신이라고 그래?"
"돌아가신 분이잖아."
"그래? 그런가?"
"그럼, 아가씨. 귀신한테는 절 안 해."
그녀의 대답에도 여전히 나는 의문스럽긴 했다.
귀신은 전설의 고향에서나 본 건데?
몽달귀신, 처녀귀신, 한 맺힌 무서운 그런...
귀신은, 내가 생각하는 귀신은 그런 게 아닌데?
좀 안 맞는 것 같은데?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새언니의 대답이 쉽게 이해되지 않았다.
나는 할머니가 돌아가셔도 돌아가신 할머니로 남아있을 뿐이지 할머니를 귀신이라고 여긴 적은 단 한순간도 없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에도 몇 달 동안이나 내 옆에 계속 계신 것 같은 느낌이었으므로.
그런데 그런 할머니를 귀신이라고 말하다니!
"언니, 언니는 어떻게 말을 그렇게 해? 어떻게 우리 할머니한테 귀신이라고 할 수가 있어? 할머니한테 귀신이 뭐야? 할머니가 언니를 얼마나 이뻐하셨는데 어쩜 그렇게 말할 수 있어? 응? 어떻게 이럴 수가 있냐고?"
라고는 득달같이 달려들며 따져 묻지는 않았다, 물론.
교회에 다니는 사람은 제사를 지내는 않는다는 말을 듣긴 들었었다.
그런데 대놓고 귀신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처음 본 터라 나는 고개가 갸우뚱해지는 것이었다.
"아, 그래?"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수긍은 그뿐이었다.
아, 다른 종교에서는 그렇게 생각하는구나.
종교가 다르니 이건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다.
복잡하게 생각할 것도 없다.
우리가 절을 하는 걸 당연시하는 것처럼 그녀 입장에서는 절을 하지 않는 게 당연한 거였다.
그 누구도 그녀에게 절을 하라고 강요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고, 그래서도 아니 되었다.
이건 강요할 일도 아니고 그저 서로 다르다는 것을 인정만 해주면 아무 탈이 없다.
그녀가 절을 하지 않았다고 해서 그 누구도 트집을 잡는다거나 서운해한다거나 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종교가 다른 것을 어쩌랴.
우린 그저 다른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들인 것을.
아빠는 할머니를 절에서 49재까지 모시기로 하셨다.
우리 가족과 온 친지들이 절로 갈 채비를 마치고 엄마는 당신의 맏며느리에게 물었다.
"우리는 다 절에 간다. OO이 어매야, 너도 갈래 어쩔래?"
엄마의 말이 무색하리만치 그녀는 일관성을 보여주었다.
"어머님, 전 절에 안 가요. OO이랑 집에 있을게요. 다녀오세요."
함께 나서지 않는 그녀를 보고 다른 친지들은 의아한 얼굴이었다.
"OO이 어매는 교회 다녀서."
엄마가 조용히 한마디 하셨던 것 같다.
할머니께 반드시 절을 해야만 애도를 표하는 것일까?
아닐 거다.
절에 모시기로 한 할머니를 위해서 억지로 일주문 앞까지 따라가는 시늉이라도 해야 그 마음이 전해지는 걸까?
아닐 거다.
각자의 방식으로 하면 그만일 것이다.
우리는 우리대로, 큰 새언니는 큰 새언니대로.
우리는 그저 다른 사람들일 뿐이다.
사람들이 모두 같을 수는 없으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