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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에 며느리가 왜 낄까?

이런 시월드, 저런 시월드

by 글임자
2025. 5. 25.

<사진 임자 = 글임자>


"언니, 그만 해체합시다."

나는 차라리 그러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도대체 이게 누구를 위한 것이란 말인가!


그 채팅방이 한 달이나 갔으려나?

어느 날 큰 새언니가 채팅방을 만들고 종종 좋은 글과 썩 괜찮아 보이는 고급 정보 비슷한 것들을 올리기 시작했다. 처음엔 나도 그녀의 기대에 부응하고자 꼬박꼬박 대꾸를 했었다.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라든가,

"이런 게 있었어? 난 몰랐네. 고맙소."

라는 식으로 말이다.

그녀가 좋은 음악이나 글귀라며 링크를 걸어오면 이 시누이는 인정상 반드시 클릭을 해 보고 반응을 보여줬었다, 물론 처음에는.

그러나 그 채팅방에는 나와 그녀만 있는 게 아니었다.

그녀의 두 동서들, 그러니까 나의 둘째 올케와 막내 올케도 있었다.

그런데 가만 보니 나 혼자만(아니지, 나와 큰 새언니만) 북 치고 장구치고 하는 모양새로 되어가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그게 언제 시작됐었더라?

"아가씨, 우리 방 하나 만들어서 얘기 좀 하자."

라는 말 한마디 없이 방이 만들어졌고 나는 별생각 없이 새언니가 초대하길래 수락했던 것이다.

나는 단순히 그게 친정 관련 일에 대해 긴히 얘기하려는 의도에서 만들어진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의 세 올케들과 나만 넷이서 여자들만의 방이 만들어지고 큰 새언니는 종종 그 방에 무언가 흔적을 남기기 시작했다. 내가 보기엔 일방적으로 큰 새언니가 뭔가를 올리면 그나마 내가 좋네, 괜찮네 정도로 대꾸를 하고 다른 두 올케들은 별 반응이 없었다.

이런 식으로 시간이 가자 나는 중대한 결정을 했다.

이건 아니다 싶었다.

애초에 큰 새언니가 우리에게,

"이러이러한 목적으로 채팅방을 만들까 하는데 어떻게 생각해?"

라든지,

"우리 방 하나 만들어서 얘기 좀 할까?"

라는 정도의 양해를 먼저 구했어야 하는 거 아닌가 싶었다.

아니, 내가

"언니, 일방적으로 이러는 게 어디 있어? 먼저 우리 의견을 들어봐야 하는 거 아니유?"

라고 얘기했었어야 했는지도 모르겠다.

특히 다른 두 동서들 말도 들어보고 그녀들이 원한다면 그때 만들었어도 됐을 거 아닌가 싶었다.

이 부분은 확인해 본 바 없으니 내 마음대로 판단하기는 힘들지만 저렇게 동서들에게 물었다고 하더라도 그녀들이 단칼에 거절하기도 어렵지 않았을까?

가뜩이나 시도 때도 없이 울리는 알람음에 다들 피곤하게 사는데 우리까지 굳이 보태 줄 필요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렇게까지 할 필요도 없어 보였다.

또 결정적으로 불현듯 친구의 말이 생각났던 것이다.

"우리 시누이는 시도 때도 없이 우리 딸 사진을 단체 채팅방에 올리라고 해. 그것도 한두 번이지. 적당히를 몰라. 진짜 아무 때나 연락한다니까."

친구는 정말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했다.

"왜 그런 데다가 사진을 올리래?"

"보고 싶다고."

"그렇게 조카가 보고 싶을까?"

"보고 싶기는 뭘 보고 싶어? 말만 그렇게 하지."

"그래도 그런 데다가 사진 너무 올리는 것도 좀 그렇지 않아?"

"내 말이 그 말이야."

"근데 네가 왜 거기 있어?"

"시가 사람들이 단체 채팅방 만들었어."

"거기도 형제자매 많으니까 수가 좀 될 거 아니야?"

"많지."

"각자 한 마디씩만 해도 장난 아니겠다."

"누가 아니래. 거기다가 쓸데없는 'ㅎㅎ', 'ㅋㅋ' 이런 것도 자기들끼리 얘기하면서 얼마나 자주 올리는지 몰라."

"그건 좀 그렇겠다."

"나랑은 아무 상관없는 얘기나 자기 남매들끼리만 할 얘기도 거기서 하니까 나도 너무 귀찮아. 진짜 시간 안 가리고 올려."

"우린 우리 친정 쪽만 방 만들어서 얘기하는데. 친정 쪽 행사나 급한 일, 부모님 병원 가시는 일 그런 건 우리 넷이서만 얘기하고 우리끼리 해결하는데. 며느리들까지 성가시게 할 필요는 없잖아. 너흰 좀 다르다?"

"나도 그랬으면 좋겠다. 근데 어쩔 땐 내가 알아야 될 일을 말도 않고 자기들끼리 느닷없이 강행하고 그런 적이 좀 있어서 내가 미리 알아두려고 탈퇴 안 하고 있는 거야. 나도 돌아가는 사정을 알아야 대비를 하지."

"그래. 또 그렇긴 하겠다."

"근데 쓸데없는 말을 너무 많이 해. 그게 문제야. 한 두 명이 있는 것도 아니고 꼭 필요한 말만 해야 하는데."

친구가 몸서리치던 생각이 나자 나도 더는 미룰 수가 없었다.


우리 4남매의 채팅방에서는 거의 비슷한 내용의 대화가 오간다.

이번 달 회비 정산 보고나 잔액이라든지(우리는 매달 회비를 내고 부모님 관련 일에 사용한다.), 생신에 갈 건데 모일 수 있는 사람은 오라든지, 부모님이 어디가 편찮으신데 넷 중에 이번에는 누가 모시고 갈 거라든지, 그 후의 경과보고 정도로 말이다.

가장 흔한 대화는 단연코 병원 관련 일이다.

4남매가 각자 번갈아가며 일을 처리한다. 기본적으로 우리 부모님의 자식들인 두 오빠들과 나, 그리고 남동생이 나선다.


부모님 신상에 대해 그나마 가장 잘 알고 있는 내가 뭔가 변화가 생기면 제일 먼저 연락을 해준다.

부모님은 언제나 '꼭' 나에게 먼저 알려주시기 때문이다.

"엄마 OO 검사하셔야 한대."

라고 내가 운을 떼면

"그래. 그럼 각자 병원 어디가 좋을지 알아보고 연락 줘."

라고 큰오빠가 시작을 하면 비로소 채팅방이 바빠지기 시작한다.

서로 의견을 주고받고 갈 병원이 정해지면 다시 2차가 시작된다.

가령,

"엄마, 이번에 병원 가실 때 3시 기차로 가실 거야. 내가 역까지 모셔다 드릴게."

라고 내가 기차표를 끊고, 연락을 하면,

"알았어. 도착 시간 맞춰서 내가 나갈게."

라고 큰오빠가 답장하고,

"이번에 내가 병원 모시고 갈 시간이 안 될 것 같다."

라고 큰오빠가 사정을 얘기하면,

"내가 어차피 갈 일 있으니까 모시고 갈게."

라고 둘째 오빠가 바통을 이어받는다.

그리고 또 누가 시키지 않아도 남동생이 나선다.

"그럼 병원 모시고 가는 건 둘째 형이 하고 끝나고 오실 때는 내가 할게."

라고 말이다.

생각해 보면 4남매가 이런 일로 서로 미루거나 의견 충돌이 있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서로 '네가 해라, 나는 못한다, 왜 나만 하냐' 이런 식의 대화는 절대 찾아볼 수 없다.

이런 일에 자식이 안 나서면 누가 나선단 말인가?

그저 자식으로서의 할 일을 하고 서로 의견 조정을 하니까 부딪칠 일도 없다. 이건 오빠들이나 남동생에게 참 고마운 일이다.

이렇게 우리 남매끼리도 무리 없이 일이 진행되니 굳이 세 며느리들에게까지 부담을 줄 필요도 없고 1에서 10까지 전부 미주알고주알 알리지 않는다. 어차피 중대한 일이나 각자 하고 싶은 얘기는 배우자에게 알리고 있는데 시가 채팅방에 며느리들까지 초대할 이유는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그녀들을 소외시킨다거나 무시하는 것도 절대 아니다.

나도 며느리 입장이 되니 시가의 세세한 일까지, 어쩔 때는 굳이 알지 않아도 될 (남인 나와는 아무 상관없는 남매들끼리의) 일을 모두 듣고 아는 건 피곤한 일로 생각됐다. 게다가 며느리들은 각자 그들의 친정이 있지 않은가.

결혼을 했어도 배우자가 함께 반드시 알아야 할 일도 있고 그렇지 않은 일도 있다, 분명히. 그리고 남편 선에서 해결가능한 건 거기서 하는 게 맞는 것도 같다.

특히 건강과 관련해서는 오빠들이나 남동생은 우리 부모님이 수술을 해야 한다거나 입원을 해야 할 정도의 상황에서만 아내들에게 전달하는 것 같다. 어쩌다가 며느리들이 시부모님과 통화하다가 자연스럽게 알게 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말이다.

가능하면 우리 4남매 선에서 해결하려고 하지만 며느리 중에 자원하는 사람이 있을 때도 있다. 각자 다들 친정이 있는데 시가까지 신경 써주니 고마울 따름이다.

나도 시가가 생기니 너무 잦은 연락을 하고 사는 것보다는 정말 필요할 때 적정한 선에서 연락하는 게 서로 부담스럽지 않고 좋았다. 나까지 시가 채팅방에 포함시키고 자주 연락하면 많이 부담스러울 것 같다.

지금까지의 방식으로 별다른 문제없이 무난히 지내왔으므로 아마도 우리 4남매는 이런 식으로 쭉 갈 것 같다.

사위 며느리까지 다 포함시킨 단체 채팅방이 잘못 됐다거나, 친정 형제자매로만 이뤄진 그것이 옳다거나 그런 걸 말하고 싶은 게 아니다. 사람마다 생각도 다르고 사는 방식도 다르니 사정에 맞게 그저 알아서 할 일이다.


큰 새언니가 채팅방을 만든 건 우리를 귀찮게 하기 위해서가 아니란 걸 잘 안다.

분명 그녀는 좋은 뜻에서 시작했을 것이다.

20년 가까이 봐 왔는데 그 마음을 나라고 어찌 모를까.

하지만 나는 그렇다 치더라도 두 올케들에게는 부담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자 낄 데 안 낄 데 모르는 시누이는 또 오지랖을 펄럭였다.

"손 여사. 이제 그만합시다. 언니랑 나만 연락하는 것 같지 않수? 할 말 있으면 각자 연락하면 될 것 같아. 이제 해체하는 거야, 알았지?"

내 말에 그녀가 조금 서운해했던가?

내가 너무 단도직입적이었으려나?

두 올케들의 반응이 거의 없다시피 한 것도 어쩌면 '그다지' 꼭 필요하지 않아서 그랬던 건 아닐까?

그렇다면 더더욱 우리는 해체되어야 마땅했다.

친구도 아니고 가족도 아니고, 방까지 만들어가며 얘기할 만큼의 그런 사이도 아닌 것 같은데 어쩌면 다른 올케들은 부담스러워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까지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나는 마지막으로 큰 새언니에게 한마디 보냈다.

갑작스러운 해체 (어쩌면 일방적 통보에 가까운) 제안에 살짝 서운해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서 말이다.

"손 여사, 그동안 즐거웠어."

그 단체 채팅방은 해체되었지만 나와 세 올케는 각자 연락 잘~ 하고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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