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누이가 오빠 결혼식에 가지 않은 과보를 받는 법
< 사진 임자 = 글임자 >
"엄마, 나는 안 가"
"오빠 결혼식인데 동생이 안 가믄 쓰겄냐?"
"나 없어도 결혼식 잘 해."
"그래도 오빠가 결혼하는데 가야제."
"안 간다니까!"
둘째 오빠의 결혼식날 아침이었다.
엄마는 아침부터 확실한 목적을 가지고 일찌감치 내게 전화를 하셨다.
처음엔 나를 어떻게든 둘째 아들 결혼식에 데리고 가시려고 (물론 어디까지나 내 생각에만) 나를 살살 어르는 눈치더니, 나중엔 급기야 거의 윽박지르는 수준에 이르렀다.(고까지 나는 느꼈다.)
여동생이라고 하나 있는 것이(엄마가 자주 하시던 말씀이다.), 하나밖에 없는 시누이가(이 또한 엄마가 자주 하시던 말씀이다.)왜 결혼식에 가지 않느냐면서 말이다.
시누이가 하나든 열이든, 그런 건 아무 상관없고 난 관심도 없는 일이고, 무엇보다 당시에는 내가 우선일 수밖에 없었다.
와라, 안 가겠다, 왜 안가냐, 엄마와 옥신각신하던 2월의 어느 주말 아침, 엄마와 통화하며 그만 나는 서러워졌다.
"가서 식만 보고 얼른 와라."
"꼭 가야 돼?"
"뭔 소리냐! 당연히 가야제!"
"내가 가든 안 가든 아무 상관 없다니까 그러네."
"가서 친척들 얼굴도 보고 그래야제."
"자주 보는데 뭘 또 봐?"
"그래도 그것이 아니다."
"아니긴 뭐가 아니야?"
"작은 아빠랑 당숙들이랑 고모랑 이모들도 다 오시는데 어째 안 간다고 그러냐?"
"엄마는 오빠 생각만 해? 내 생각은 안 해?"
그렇다.
엄마는 이제 겨우 출산한 지 2주 지난 딸보다, (거짓말 조금 보태자면)엊그제 태어난 둘째 외손자보다 친척들에게 딸이 얼굴을 보이기는 것이 더 중요했다.(고 나는 예나 지금이나 100% 확신하는 바이다.)
내가 괜히 안 간다고 한 게 아니었다.
아들은 2월 6일에 태어났고, 둘째 오빠의 결혼식은 2월 22일이었다.
집에 갓난쟁이가 있다.
나는 (또 거짓말 좀 보태자면)엊그제 출산한 사람이다.
그런데 굳이 그런 모자를 그 추운 겨울날 외출하게 하고 싶었던 걸까?
그때나 지금이나 이해 안되기는 마찬가지이다.
"옛날에는 애 낳고 바로 밭에 나가서 일했다."
라는 말로만 듣던, 그 라테 타령이라도 곧 이어질 분위기였다.
"밭에 나가서 일 하라는 것도 아니고, 실내에서 하는 결혼식에 왜 안 가겠다는 거냐?"
라고 엄마가 계속 나를 닦달하기 전에 나는 미리 차단하고 싶었다.
"엄마, 이제 애 낳고 몸조리 중인데 언니도 이해하겠지. 몸조리 중이라 안 간 건데 누가 뭐라고 하겠어? 그리고 뭐라고 하든 말든 우선은 조심해야지. 내가 가기 싫어서 안 간다는 것도 아니고 나갔다가 애기 아프기라도 하면 어떡해? 날도 춥고 내 몸도 아직 다 회복 안 됐는데 갓난쟁이는 누가 데리고 가? 친척들 얼굴 좀 안 보면 어때? 그리고 우리집처럼 친척들이랑 자주 만나는 집도 없어. "
라고 말했던 것 같다.
아마 더 구구절절 얘기했을 것이다.
그래도 부모님은 쉽게 포기하지 않으셨다.
조금만 더 진도를 나갔더라면,
"입춘도 지났고, 한겨울도 아닌데 왜 못 가냐? 얼른 옷 입어라. 따숩게 입고 가믄 된다."
라든가,
"너무 집안에만 있으믄 못쓴다. 애기도 바깥바람 쐬고 밖에 노출이 돼야 더 건강하다. 너무 조심하면 더 아프다."
라고 엄마는 대꾸하셨을지도 모를 일이다.
언제였던가?
"엄마, 고사리 캐러 갔다가 뱀 많이 봤어."
라고 이실직고 했을 때,
"위험하니까 다음부터는 가지 말아라."
라는 말을 듣기를 은근히 기대했다가,
"너는 속 없이 산에 운동화 신고 갔냐? 장화를 신고 가야제. 다음부터는 장화 신고 가라!"
라는 답변을 엄마에게 들었을 때의 그 황당함이라니.
난 그때만 해도 추위를 아주 잘 탔었다.
고작(이라는 말을 나는 내내 강조하고만 싶다.)출산 후 2주였는데 몸이 회복 되었으면 얼마나 회복 되었겠는가 말이다.
"차로 갔다 차로 오는디 뭣이 춥냐?"
라는 엄마 말에 차라리 나는 어이가 없을 지경이었다.
다른 건 다 떠나서, 갓난쟁이가 있는 집은 외출 한번 하려면 짐이 오죽이나 많은가?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서, 혹시 모르니까, 기저귀며 젖병, 분유, 따뜻한 물, 속싸개, 겉싸개, 손수건,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별의 별 걸 다 챙겨야 한다는 것을 엄마는 진정 모르신단 말인가?
비록 4명이나 자녀를 출산하긴 했지만 그것도 벌써 기원 전 2,000년 경이라 다 까맣게 잊으셨단 말인가?
적어도 그 당시에는 엄마랑 진짜 말이 안 통했다.
게다가 (자꾸 또 거짓말을 보태자면)엊그제 애 낳고 내 몸이 내 몸도 아닌 상황에서 수면 양말이며 내복을 껴 입고 완전 무장을 한 채 산모 티를 팍팍 내며 '굳이' 가야만 했단 말인가? 밤낮으로 오롯이 혼자 감당하는 신생아를(게다가 당시 3살이었던 딸도 있었단 말이다.)돌보느라 진심으로 잠다운 잠도 못 자고 두 아기를 보느라 넋이 다 나간 딸을 생각한다면 엄마는 그렇게 나오면 안된다고 (나만 혼자)생각했다.
결혼식이 뭐라고?
사돈댁 보기가 좀 그래서 그러셨을까?
이해는 된다.
둘째 며느리 보기가 그래서 그러셨던 걸까?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내 상황을 알면 다들 이해해 줄 거라고 나는 생각했는데 부모님은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셨던 것 같다.
하긴, 사촌 동생 결혼식에 가지 않겠다고 하니 이기적이라고 하신 아빠다.
뭘 그런 것까지 챙기냐고, 그런 데(?)를 왜 가냐고, 언제까지 사촌들까지 다 챙길 거냐고(난 다 챙긴다고 한 적도 없고 다 챙긴 적도 없는데 말이다.)수입도 없으면서(본인은 축의금을 낼 생각은 전혀 없다는 의미다. 내가 제발 축의금을 달라고 사정한 것도 아닌데 말이다.) 다 챙기려고 하냐고 말하는 이가 한 집에 살아서 애초에 말도 안 꺼냈다. 물로 내 의지로 갈 수도 있었지만 그런 방면에서는 전혀 말도 안 통하는 이가 한 집에 살아서 애초에 입도 뻥끗하지 않았다. 처음으로 내가 사는 곳에서 한 시간 정도 거리에서 하는 이종 사촌의 결혼식에 가겠다고 하니 '왜 그런 데까지 가냐'고 말하는 이가 한 집에 살아서, 그 사건 이후로는 비슷한 일이 생기면 아예 말도 하지 않는다. 어떤 이는 옆에서 그러든지 말든지 그냥 가면 될 일 아니냐고 하지만 그건 같이 살아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세상에는 어느 부분에서 말이 통하는 사람이 있고 꽉 막혀서 말이 안 통하는 사람이 있다. 본인이 똑같은 상황에 처하지 않은 이상 쉽게 말할 일도 아니다. 세상에는 사촌 결혼식은 당연히 가지 않는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고, 가지 않는 건 당연하고 축의금은 꿈도 못 꿀 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이런 사정을 전혀 모르는 아빠는 그때 나를 세상에서 가장 이기적인 딸로 여기셨다.
자세한 우리집 사정은 모르시니 나도 답답했다. 그렇다고 이러쿵저러쿵 말씀드리는 것도(물론 아빠는 절대 저런 사고방식을 이해 못할 분이시기도 하다.)의미없어 보여서 그냥 한동안 이기적인 딸로 살았다.
어쨌거나 사촌 결혼식에 안 가는 것(시간상 이게 훨씬 나중의 일이긴 하지만)도 못마땅한 마당에 친오빠의 결혼식에 안 가겠다고 딸이 버티니 쉽게 받아들일 수 없으셨을 것이다.
솔직히 당시에 나는 갓난쟁이 아들만 오빠 결혼식에 보내고 나 혼자 집에서 푹 쉬고 싶을 지경이었다.
밤낮없이 자다 깨서 우는 신생아를 만난 지 2주였다.
나라고 무슨 정신이 있겠는가 말이다.
그때만큼은 나는 부모님 말씀은 끝까지 안 듣고 결국 오빠 결혼식에 안 가기로 했다.
그런데, 난데없는 복병이 나타났다.
"나도 안 가도 되지?"
남편이라는 사람이 한 말이었다.
애는 내가 낳았는데?
몸조리는 내가 하는 중인데?
갓난쟁이를 업고 가라는 것도 아닌데?
"왜 안 가?"
"나 혼자 어떻게 가?"
"운전해서 가."
"가기 싫어."
"합격이랑 둘이 가면 되지."
"안 갈래."
아무리 사회성이 없기로소니(이건 본인도 인정했으니 적극 활용하겠다.) 아내가 없다고 처가 행사에 가지 않겠다니?
나로선 좀처럼 이해하기 힘든 행동이었다.
아무리 사람마다 생각하는 게 다르다고 해도 이건 좀 그랬다.
하긴 남의 결혼식에 가기 싫을 수도 있겠지.
남은 남이니까.
아내가 안 가니까 본인도 안 가겠단다.
그게 그렇게 되나?
아니, 그래도 되나?
이건 예상도 못한 일이다.
내가 못 가니까, '대신에' 갈 수도 있는 거 아닌가?
이런 걸 고급 전문 용어로 '대타'라고 한다지 아마?
훗날 남편이란 사람은 자신의 조카가 스물 한 살엔가 출산을 해서(내 아들과 그 조카의 아이는 한 살인가 두 살 차이밖에 나지 않는다.) 나와 두 아이들까지 데리고 조카의 조리원까지(둘째 오빠의 결혼식장 가는 거리의 10배는 족히 되는 먼 곳까지) 친히 가셨다.
딸은 안 가겠다고 못 박고 사위는 딸도 안 가니 본인도 안 가겠다고 하고, 결혼식 시간은 다가오는데 서로 고집만 부리고 있었다.
"나도 안 가는데 아무도 안 가면 안 되지. 가는 게 최소한의 도리 아닌가? 오빠는 우리 결혼식에 왔었어. 식장이 먼 것도 아니고 좀 갔다 와."
어렵사리 합의를 보고 나와 아들을 남겨 놓고 (내가 보기에는)뭔가 못마땅한 얼굴로 남편은 갔다.
식장까지는 집에서 길어야10분 정도의 거리, 먼 거리도 아닌데, 원수지고 사는 것도 아닌데, 게다가 (이렇게까지 따지고 갖다 붙이는 것 자체도 난 우습게 느껴졌지만 오죽했으면 내가 그랬을까)오빠는 내 결혼식에 왔는데 안 가는 건 정말 아닌 것 같았다.(고 나는 생각하지만 당사자 입장은 나도 잘 모르겠다.)
생판 남인 사무실 직원들 결혼식에는 잘도 가더니만, 참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아침부터 오빠 결혼식 참석 문제로 진을 다 빼고 잠시 평화의 순간이 찾아왔나 싶었을 때였다.
"임자야, 애기 보느라 고생한다. 이따가 얼굴이나 보자."
평소 가장 살갑게 대해 주시는 막내 삼촌이(당시 막내 삼촌은 내일모레 50을 바라보는 연세이셨음에도 불구하고 놀랍게도 미혼이셨다.) 친히 전화를 하셨다.
정신이 번쩍 나는 것같았다.
하필이면(?) 오빠가 결혼하는 곳과 내 주거지는 가까운 편이었다.
게다가 식이 끝나면 으레 그렇듯 아빠의 동기들은 친정 부모님 댁에 들렀다 가실 예정이었다. 부모님은 그들의 손에 하다못해 시금치 한 봉다리라도 들려 보내줘야 하는 분들이었으므로. 또 하필이면 친정 부모님 댁은 우리 집을 지나서 가게 되어 있었다. 지나가는 길에 겸사겸사 들르기 딱 좋은 위치였다.
결혼식만 안 가면 될 줄 알았는데 2차 복병이다.
정말 상상도 못했다.
물론 그분들은 조카 얼굴도 볼 겸, 아기도 볼 겸(내가 엊그제 출산했다는 것은 잘 모르셨을 테니) 순수한 의도에서 들르시겠다고 한 말씀이란 건 아주 잘 안다.
하지만 내가 매우 부담스럽다.
그냥 가셔도 되는데, 굳이 안 들르셔도 되는데.
부담은 나의 몫이 된 지 오래였고, 급하게 손님맞이 집안 정리라도 해야 하는 것 또한 산후 2주째인 산모의 몫이었다, 물론.
이럴 줄 알았으면 차라리 결혼식장 가서 한번에 끝내버리는 게(?) 나았으려나?
결국 그분들은 우르르 좁은 집에 '굳이' 오셨고, 하루 종일 널브러져 있고 싶은 마음 따윈 진작에 포기하고 나는 손님을 맞아야 했다.
오빠 결혼식에 결석한 과보를 이런 식으로 받을 줄이야.
그나마 아빠쪽 동기들만 오시고 이모며, 당숙들까지 오시지 않은 게 천만다행이라고 위안삼았다.
겨울이 되어가면 난 항상 둘째 오빠 결혼식 때가 생각난다.
아들 생일이 다가오면 어김없이 나 없는 결혼식을 떠올린다.
아침에 불현듯 또 그때 생각이 나서 둘째 새언니에게 그날 일은 '느닷없이' 미안하다고 했다.
그랬더니 언니는 신경도 안 쓴다고, 내가 그때 갔더라면 본인이 더 미안했을 거라고 했다.
말이라도 나는 정말 고마웠다.
그렇잖아도 평소에 항상 고맙게 생각하고 있는 새언니인데 말이다.
새삼 또 고맙고 고마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