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직 후 일주일 만에 의원면직을 결심했다.

충분히 신중한 마음

by 글임자
22. 6. 16.


< 사진 임자 = 글임자 >


작년까지는 공무원 신분으로의 마지막 육아휴직 기간이었으므로 '육아휴직 시한부 인생'을 열심히 살았다.

그저 1분 1초가 아깝고 내 목숨만큼이나 소중했다.

종종 남편은 물었다.

"3년이나 육아휴직 한 사람은 자기밖에 없을걸? 슬슬 일하러 나가고 싶지 않아? 다른 여자들은 육아 휴직했다가도 금방 일하고 싶어 진다던데?"

그 여자가 뉘신지요?

이름을 대시오.


"아니, 전~~~~~~혀! 3년 지나면 어차피 정년 때까지 일만 할 건데 무슨 일이 벌써 하고 싶겠어? 난 3일도 안 쉰 것 같다니깐?"

모래알 하나만 한 거짓도 없다.

진심이다.

난 왜 육아휴직을 할 때마다 6개월이 6분 같고, 1년이 하루 같기만 할까.


드디어 내겐 짧기만 했던 육아휴직이 끝났다.

작년 12월 초에 복직 신청서를 제출했다. 그때까지는 전혀 예상도 못 했더랬다.

'의원면직'이라는 단어 들어 본 적도 없고 내가 근무했던 지역에서 누구 하나, 주변에서 한 적도 없다.(고 알고 있었다.)


2022년 1월 3일 자로 복직을 했다.

오랜만에 다시 일하게 되는 거라 정말 신규자로 돌아간 느낌이었다.

아마 신규자보다 더 못했을지도 모른다.

눈 뜨고는 차마 못 볼 정도였을 것이다, 다들 말을 안 해서 그렇지.

3년간 속세와 인연을 끊고 눈 감고 귀 닫고 내 생활, 내 가족에만 온전히 힘을 기울이다시피 했었으므로,

세상이 어찌 돌아가고 있는지, 내가 없는 그곳 공무원 세계는 무사한지 들뜨기까지 했다.

역시나 예상했던 대로 잘 돌아가고 있다. 나 한 명 육아 휴직한다고 내가 속한 지자체 공직 체계가 절대 무너질 리는 없고 더 잘만 돌아간다.

역시나 내가 없어야 더 잘 돌아가는군.

예상 적중이다.

나 한 사람 육아휴직 들어갔다고 해서 티도 안 난다.


3년 만에 만져보는 새올시스템, 육아휴직 기간 동안 만료되어 버려 다시 신청한 행정전자서명, 신규자 시절이 떠올랐다. 남편이 올해 1월부터 육아휴직에 들어가기로 작년 겨울 막바지에 극적 타결을 봐서 복직하게 되는 내가 가족수당을 받겠다고 수당 신청서도 보냈고, 각종 업무 시스템 권한도 부지런히 받았다.

낯선 조직과 모르는 사람들이 더 많은 그 속에서 (남들에게만) 긴 휴직 기간을 마치고 복직할 때 나도 어느 정도 마음의 준비는 한 상태였다.

그나마 같이 근무한 적이 있는 직원이 맞은편 자리에 앉아서 마음이 든든했달까?

복직을 하고 보니 그래도 몇 년 공무원 생활했다고 여기저기에 아는 얼굴들이 있었고 나를 반겨 주기도 하고 나도 반가운 마음에 손부터 덥석 잡았다.

괜히 마음이 든든해진다.


'난 신규자다,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 다 배워야 한다, 무조건 물어보자.'

내 마음은 그랬다.

모르는 것은 어린아이에게라도 물어야 한다고, 그것을 부끄럽게 여기지 말아야 한다고 하지 않았던가.

복직에 대비해 나름대로 책도 보고 강의도 듣고 직장인으로서의 마음가짐을 다잡고자 만반의 준비를 했었다.

그랬었다.

나도 양심이란 게 있는 사람이니까.


당시 나는 7급, 하지만 7급이라고 다 같은 7급은 아니잖은가, 안 해본 일은 7급 10대조 할아버지가 부활하셔도 모르는 거다.

물어보고 배워서 하자.

너무도 단순한 일들도 시스템이 바뀌니 처음엔 어설펐고, 잘 못하는 게 당연한 거다.

어떤 이는 '7급이 저런 것도 몰라?' 그랬을 수도 있다.

태어나자마자 말도 하고 똑바로 걷는 아기는 없지 않은가.

태어나자마자 두 발로 서서 일곱 발자국 뗐다는 분은 부처님 말고는 몰라요, 저는.

나를 그냥 신생아라고 생각하고 다 가르쳐 달라고 했다.

내가 집에서 느낀 3년의 시곗바늘과 공무원 세계에서 3년간의 시곗바늘은 완전히 재질부터 다르게 만들어진 느낌이었다.


처음 9급 공무원으로 임용되고 신규자 때 모르는 게 있으면 물어보면 될 것을, 물어보는 일, 그거 하나를 못해서 애먹었던 걸 생각하면 내가 생각하기에도 답답하다.

왜 그땐 물어보지도 못했는지.

이젠 결혼도 하고 승진도 하고 아이도 낳은 직장인은 오래 생각할 거 없이 일단 부딪쳐 보기로 했다.


맞은편 직원만 빼고 팀장님, 다른 직원들, 과장님 다들 처음으로 같이 근무는 사이이다.

분위기는 나쁘지 않은 것 같았고, 무엇보다도 과장님께서 아주 '양반'이라 하신다.

칭찬이 자자하다.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단다. 무조건 직원들 편이란다. 과장님 최고란다.


휴~ 안심이다.

윗분들은 언제나 부담스럽고 어려우니까.

난 운도 좋지.

어딜 가나 다들 좋은 직원들만 만난단 말이야.

그동안 그 사실 하나만큼은 진심으로 고맙게 생각한다.

하나님이 보우하사, 부처님의 자비로 은혜 가득가득 받은 공무원 시절이다.

일도 일이지만 어떤 이들은 사람 때문에 더 힘들다고들 하기도 하는데 난 인복이 정말 많은 사람이었다.

잘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 어떤 어려움도 다 견디고 헤쳐나가리라.

모르면 배우고, 일이 많으면 밤을 새든 주말에도 출근을 하든 어떻게 살아지겠지.


복병이 튀어나왔다.

내 의원면직 사유의 99%는 건강상 이유이다.

복직하고 바로 건강이 급격히 안 좋아졌다.

이런 상황이 닥칠 수도 있으리라고 그동안 예상은 했었다.

육아휴직 기간 동안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싶을 만큼 아픈 적이 있었다.

죽을 만큼 아프다는 그 표현 나는 그때 몸으로 체험했다.

겪어 보지 않은 사람은, 남의 말만 듣고는 절대 모른다.

그때 결심했었다.

만에 하나 복직을 한 후에 또 건강이 안 좋아지면,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선다면 퇴직을 해야겠다고.

작년, 재작년 끔찍한 공포를 느끼고 나는 세상에서 의미 있는 일, 나에게 가치 있는 일, 나에게 소중한 것들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내 목숨은 하나뿐이다.

하나뿐인 목숨에 두 어린 목숨들이 또 매달려 있었다.

목숨을 담보로 하고 꾸역꾸역 공무원 생활을 하고 싶은 마음은 조금도 없었다.

"어떻게 해서 합격했는데, 고생하고 들어왔는데, 그 좋은 직장을 왜 그만둬?"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은 죽을 만큼의 고통을 겪어보지 않은 사람일 거라 거의 확신한다.

정말 죽을 만큼 아파 본 사람이라면 내 마음을 알까?

내 몸이 죽어가고 있는데 그깟 7급 공무원이 나한테 뭐 그리 대단하다고.

대통령이었더라도 나는 그만뒀을 것이다, 물론 절대 일어날 수 없는 불가능한 일이지만 말이다.

시골 지방직 7급 공무원 한 명 의원면직한다고 해서 세계 경제가 휘청거리거나 인류 평화가 깨지는 것은 절대 아니다.

그 조직이 잘 안 돌아갈 리는 더더욱 없다.


누군가는 '때려치운다'라는 식으로도 표현을 하고, '도저히 나랑은 안 맞아서', '지긋지긋해서' 등등 이유는 다양하다.

하지만 나는 그 어느 쪽도 아니다.

건강상의 이유로 매일 꾸준히 출근해서 일할 수 있는 상황이 전혀 못됐다.

병가 쓰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언제까지 질병휴직으로만 버틸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결단을 내려야만 했다.

그곳과 원수진 일도 없고 안 좋은 기억보다는 좋은 기억이 훨씬 배는 더 많았으므로 오로지 내가 결정을 해서 정말 내가 원해서 한 '의원면직'이다.

사고 치고 쫓겨난 것도 아니고 직원들 간의 불화로 빠져나온 것도 아니고, 정말 내가 간절히 원했던 '의원면직'이었다.


죽지 말고 생명이 붙어 있을 때 의원면직을 하자고 결심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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