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교기념일이라면, 이들처럼~

너희는 즐겁고, 나도 즐겁다(만 피곤하긴 하다)

by 글임자
2023. 5. 6. 봄이 다 지기 전에 보자.

< 사진 임자 = 글임자 >


"오늘 하루 어땠어, 얘들아?"

"엄마, 오늘 정말 즐거웠어. 행복한 하루야."

"정말?"

"응, 진짜 진짜 재미있었어."

"그래, 우리 셋이 오늘 정말 보람 있는 하루를 보냈다, 그치?"

학교 개교기념일이라 아이들이 하루 등교하지 않았던 날이었다.

개교기념일 관련 알림 문자가 온 후부터 아이들은 마냥 들떴다.

그저 학교만 안 간다고 하면 기분이 좋아지나 보다.

나도 어렸을 때 그랬겠지, 분명히?


"엄마, 이상해. 꼭 학교 안 가는 날엔 꼭 눈이 빨리 떠져."

"그러게, 그런 날은 늦잠 좀 자도 될 텐데."

"진짜 왜 그러지. 주말에도 그렇고."

"정말 엄마도 그게 너무너무 궁금하다."

아이들은 쉬는 날이라도 실컷 늑장을 부리며 늦잠을 자고 싶은데 주책없이 눈이 일찍 떠지는 바람에 언제나 속상해한다.

정말 미스터리한 일이다. 평소엔 학교 갈 시간이 닥쳐도 뭉그적거리느라 쉽사리 일어나지 않는데 어찌하여 쉬는 날은 더 부지런을 떤단 말인가.

"학교도 안 가는데 오랜만에 바깥바람이나 좀 쐴까?"

"뭐 할 건데?"

"할 거야 많지. 오전에 할 일 먼저 하고 나가보자."

8시가 조금 넘어서 아침을 먹고 내가 몇 가지 집안일을 끝내는 동안 아이들은 매일 학습할 양의 공부를 마쳤다.


일단 장날이니까 장에 나가보자.

지극히 엄마 취향이 반영된 계획이다.

선크림부터 잔뜩 바르고 날이 더 더워지기 전에 말이다.

날씨도 화창하고 공기도 깨끗한 편이라 집 밖으로 나온 것만으로도 아이들과 나는 한껏 들떴다.

"이런 날은 집에만 있기 정말 아깝다니까."

으레 하던 말버릇처럼 나는 우리가 외출을 해야만 하는 당위성을 또 은근슬쩍 언급했다.

"하여튼 엄마는 날마다 그런 말 하더라."

딸은 내 수법을 잘 알고 있다.

"그만큼 날씨가 정말 좋다는 말이지 엄마 말은. 요즘 황사도 정말 심했고 비도 좀 왔었고 밖에 나갈 일이 별로 없었잖아. 그래서 엄마는 이렇게 날씨가 좋을 때 집에만 있으면 억울하기까지 하다니까. 너흰 어때? 그래도 나오니까 좋지?"

"응. 날씨 진짜 좋다."

"더 있으면 이제 더워서 돌아다니기도 힘들어질 거야 금방.(=엄마는 더위에 너무 취약해. 생각만으로도 기운 없어) 엄만 벌써 기운 빠질 때가 있더라."

세월은 사람을 기다려주지 않고, 나는 무더위가 기승을 부릴 때까지 나들이하기를 기다리지 않는다.

순간을 알차게 살자, 그것도 두 다리 성하고 기운 있을 때.

자칫 잘못하다간 자꾸 미루다 다음 생으로 영영 미뤄지는 수가 있다.

집 근처에 유채꽃이 만발한 핫스폿이 있다. 전부터 잔뜩 눈독을 들여놨었다. 언젠가 아이들과 잠깐 산책이라도 하면서 사진도 찍어줘야지 벼르면서 말이다.

"애들이랑 유채다 지기 전에 잠깐 보러 갔다 올까? 10분이면 가는데. 제주도까지 갈 것도 없어. 거기가 완전 제주도 유채꽃밭이라니까!"

지나치게 과장을 하며 어떻게든 그 사람을 유인해 보려 했으나 내 미끼에 걸려들지 않았다.

"그래. 주말에 한 번 가자."

그 사람은 말로만 열두 번도 더 그 유채밭을 다녀오셨다.

어느덧 내년 봄을 기약해야 할 시기가 되어버렸다.

우리 집의 유일한 직장인에게 몇 번 얘기를 해봤지만 적극적으로 협조를 하지 않았으므로, 직장인은 주말에 충분한 휴식이 절실했으므로, 결정적으로 차로 10분이나 걸린다는데 어느 직장인이 선뜻 나설 수 있으랴.

결국 우리 세 멤버만 잠깐 다녀오기로 했다.


일단 아이들이 좋아하는 빵을 사 준 후 슬슬 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나름 심혈을 기울여 짠 스케줄대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한적한 시골길이라 오가는 사람도 거의 없었고 노란 유채밭은 과연 방문할 만한 가치가 있었다, 적어도 내게는.

아이들 또한 사진을 찍고 둘이 까불고 놀면서 오랜만에 바람 쐬러 나와서 늦봄을 만끽했다.

물론 다음 일정은 아이스크림이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이 그들을 더욱 즐겁게 했으리라.

"근데 엄마, 아까 아이스크림 어쩌고 했던 것 같던데요? 그리고 우리 체험학습 갈 때 먹을 과자도 산다면서?"

아들은 사진을 찍다가도 행여라도 가뜩이나 건망증이 심한 엄마가 아이스크림을 사 주겠다는 약속을 깜빡할까 봐 자꾸 상기시켜 주었다.

"우리 아들, 엄마가 안 사줄까 봐 그래? 걱정 마. 사준다고 했으니까 사 줄 거야."

늦봄의 볕이 좋다 못해 따가웠고 덥게 느껴지는 날이었다.

두 초등학생과 함께 한 나들이길에 마트를 건너뛴다는 것은 유죄였으므로, 상식 있는 엄마가 할 짓은 못되었으므로, 아이들 취향껏 과자와 음료수도 사고 간식으로(점심에 더 가까운) 꿀떡도 샀다.

"근데 엄마 이거 길에서 먹어도 돼?"

"저기 의자 있으니까 거기 앉아서 먹자."

평소엔 길을 걸으면서 음식을 먹는 것을 말리는 편이었기에(지나가는 차들이 많은 것도 그렇고 차분히 먹기 힘들었으므로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취향이다.) 아들이 내게 물었다.

마침 장날이니까 장 구경도 하면서 쉬엄쉬엄 놀다 가자.

"엄마, 근데 오늘 합기도 학원 가?"

"그럼! 학교 개교기념일이지 학원 개원 기념일은 아니잖아?(=한 시간이라도 엄마도 쉬고 싶다.)"


이 정도면 개교기념일을 알차게 보낸 것 같네.

아차차, 도서관을 안 갔구나.

어차피 사람 사는 일이 계획대로만 굴러가는 건 아니니까.

그 정도만으로도 나는 충분히 지치고 피곤했다.

더워진 날씨에 갑작스레 두통이 시작돼 머리가 온통 지끈거렸다.

그 와중에도 나는 생각했다.

이 아이들과 이렇게 하루 종일 함께 보낼 수 있는 날이 앞으로 얼마나 더 남았을까...

두통 때문에 얼굴을 찡그렸다가 신나게 하루를 보낸 아이들이 즐거워하며 재잘거리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그 찡그린 얼굴을 활짝 펴주기에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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