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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밀의 화원 Aug 20. 2024

엉망진창 화요일

어제가 개학일이었다. 

1교시 담임시간, 2,3,5,6,교시 수업, 7교시는 봉사(이것도 담임 임장지도).

다행히 학교 에어컨 실외기가 더위를 이기지 못하고 냉방이 작동하지 않는 바람에...

7교시는 단축수업으로 날아가고...5시간 수업을 진행했다.


3학년 2학기의 시작일.

초롱초롱한 아이들의 눈망울을 기대했었다.

이런 망할....

1학기 여름방학 직전의 동태눈깔을 하고...

아이들은 밤새 무엇을 했는지 

정말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잔다.

이건 집단 무의식에 빠진 종교행사같다.


무엇이 문제일까 무엇이 문제일까 무엇이 문제일까를 되뇌인다.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고 몸부림치는 많은 녀석들을 앞에 두고...

나는 도무지 힘이 나질 않는다.

영상을 보여줘도 자고, 이야기를 해 줘도 자고, 수업을 해도 자고...

유일하게 안 자는 때는 자라고 할 때이다.

그동안 수많은 학교를 전전해봤지만,

이런 무력감은 처음이다.

내가 어찌할 수 없는 파도에 실려가는 이 느낌.

하루가 일주일 같던 고단한 시간을 지나,

겨우 맞이한 화요일 아침.



아침부터 딸이 같이 등교하기로 한 친구와의 약속시간에 늦었다고

있는대로 성질머리를 부리고...

더운 날씨에 지칠까봐 얼음 잔뜩 넣어 냉수를 담아둔 물병도 필요없다고 

온갖 짜증을 내며 가버린다.

뒤늦게 일어난 아들은 어젯밤에도 양치를 안하고...

아침에는 꼭 양치하고 나가라고 했더니....

깐족거리며 아침부터 내 약을 바짝바짝 올리면서 

핸드폰 화면 속의 게임에만 몰두한다.

울화통이 터져 살 수가 없다.


남의 자식도, 내 자식도 꼴도 보기가 싫다.

오늘부로 나는.

가르치는 데에 재능이 없음을 인정한다.

오늘부로 나는.

지혜로운 엄마가 되는 것도 포기한다.



엉망진창이 된 기분으로 곤죽이 되어 출근한 하루가

기분 좋게 흘러갈 리가 없다.

수업에 들어가 점점 고꾸라지는 아이들을 보면서 올라온 화가 

임계점을 넘어가는 순간.

이제는 올라오던 화도 힘을 잃고 고꾸라지고 만다.


개학과 동시에 내 기억력도 갈 곳을 잃고,

작업기억을 붙잡지 못해...

계속해서 업무에 진척이 없다.

하나를 하다보면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까먹고 어느새 다른 문서를 열어보고 있고...

그것을 한참 보다보면 내가 왜 이걸 보고있나...

자각하며 또다른 파일함을 찾아 헤매인다. 

내 무능과 싸우면서 늘어나는 것은 무력감.

그리고 앞으로 이 직업을 끝내 해낼 수 없을 것 같은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다.

아...나도 싫고 너도 싫다.


엉망진창 화요일.

혼자서 땅굴파고 들어가 다시는 나오고 싶지 않은 화요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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