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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밀의 화원 Sep 30. 2024

나는 나를 구원할 것이다.

- 나를 향한 주문-

가만히 있어도,

눈앞이 흐리다.

주말이었던 토요일.

아이 둘은 저마다 친구를 찾아 놀러 나가고,

남편과 둘이 앉아 밥을 먹으려는데,

이상하게 자꾸만 눈앞이 흐리다.

주룩주룩 무언가가 뺨을 타고 흐른다.

눈앞이 흐리기 전.

아무일도 없었다.

나는 그저 밥을 차리고 있었고,

그날은 주말이었고,

남편과 둘이 집에 남아

오후에 어디를 놀러갈까를 고민하던 중이었다.

이렇게 갑자기. 아무런 이유없이도 눈물이 흐를 수 있구나....

생각하던 찰나에 휴지로 눈물을 닦으며 밥 한 숟가락을 입에 넣는 순간.

목이 메여 도저히 밥을 삼킬 수가 없다.

기껏 힘들게 차려놓은 밥그릇과 국그릇을 싱크대로 도로 갖다 놓았다.


남편은 내가 아무런 맥락없이 울고 있음을 알았지만,

"눈에 뭐가 들어간 거 아냐?"라는 장난 섞인 말로

나의 이유없는 슬픔과 직면하는 것을 피해가고 있었다.

그도 알고 있었을 것이다.

이제는 내가 더이상 정상이 아니라는 것을.


둘이서 휴양림에 가서 산책이라도 하고 오려고

차를 타고 가는 내내 내 눈은 흐리고, 주룩주룩 비는 내렸다.

휴양림에 도착해서 걸으면서도

햇살은 눈부신데,

세상은 참으로 찬란한데,

이상하게도 내 눈은 고장난 수도꼭지처럼 마냥 물이 흘렀다.

내가 왜 우는지 정작 나 자신도 알지 못한 채.

그렇게 눈물은 흐르고, 나는 온몸에 힘이 빠진 채 종잇장처럼 흐느적거렸다.


눈물이 흐르던 그 순간 내 머릿 속을 스친 것은 무엇이었을까.

가만히 기억을 더듬어 눈물이 흐르던 찰나의 그 순간을 떠올려보건대,

그것은 나의 심장박동이었다.

교실에 들어가기 직전의 내 심장박동소리.

이상하게 평화로운 주말. 나는 왜 그 생각을 떠올렸는지,

아니면 저절로 내 의식의 수면 위로 떠오른 기억인 것인지...

알 수는 없지만, 분명 내 기억을 스친 그것은

쉬는 시간이 끝나고 수업 종이 칠 때 내 심장의 숨가쁜 두근거림이었다.


얼마전부터 나는 우울증이라는 녀석이 또다시 나를 집어삼키고 있음을 짐작했지만,

이제는 예전보다 그 증상이 한 발 더 심해진 듯 하다.

두근대는 심장의 박동소리는 내 귀에도 울리고 있고,

벌렁대는 내 온몸의 혈관은

지금, 당장, 이곳을 뛰쳐나가고 싶다는 생각으로 내 의식을 지배하는 듯하다.


오늘은 조퇴를 내고 병원을 찾았다.

당장이라도 무너져내릴 것 같은 나를 약물로라도 일으키고 싶었다.

무엇보다 학교에 있고 싶지 않았다.

2,3,4교시를 연달아 소화하고...

학교 밖으로 뛰쳐나올 때에야 비로소 나는

부릉대는 자동차의 시동과 함께 편안한 숨을 쉴 수 있었다.

조금씩. 이제는 내가 학교 밖의 세상으로 나와야 하는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에

확신을 한 스푼씩 얹어본다.


병원에 와서 의사선생님과 상담을 하는데,

지금의 불안과 긴장은 정상적인 뇌기능을 발휘할 수 없는 상태라고 하신다.

내가 ADHD라고 확신했던 검사결과지는

내 일상의 모든 문제를 설명해 줄 수 있을만큼 치명적이거나 중증은 아니며,

지금 느끼는 불안과 긴장이 가장 큰 문제라고 하신다.

그리고 내가 중증의 ADHD였다면,

지금과 같은 성취를 가지고 교사라는 직업을 갖지 못했을테니

내가 현재 교사라는 것은 남들이 5정도의 노력을 할 때,

홀로 8 이상의 노력으로 성취해 온 결과물을 뜻한다는 것이었다.

그랬다. 나는 늘 그것이 힘들었다.

남들은 5정도의 노력으로 쟁취하는 것을

나는 늘 8 그 이상의 노력을 들여야지만 남들과 비슷하게 있는 상태였다.

내가 남들보다 적게 노력할 때 금방 남보다 뒤쳐질 것만 같은 두려움.

내가 평생을 종종거리며 불안함에 갇혀 살게 된 것은,

그것이 가장 큰 원인이었다.

아이를 키울 때도, 일을 할 때에도.

나는 늘 들짐승에 쫓기는 사람 같았다.

이제는 내 평생을 지배해 온 이 긴장감으로부터 멀어지고 싶다.

내 삶의 팽팽한 이 긴장감을 느슨하게 늘어뜨리고 싶은데,

도무지 그 방법을 모르겠다.


나는 안다. 내가 이대로 시들어가지는 않을 것임을.

하지만, 내가 시들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은 찾아야 한다.

그것은 나 아닌 다른 누구도 찾아줄 수 없다.

오직. 나의 두 팔과 두 다리, 내 두 눈과 내 의식을 통해 찾아야 하는

나만의 미로이다.

김미경 강사님의 말씀처럼.

같은 육체를 공유하지 못하는 한,

내 육체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모든 의식과 슬픔,

내 모든 고민과 아픔들은 가장 가까운 남편과도 함께 공명하지 못한다.

지금의 내 무기력과 우울은 남편을 지치게만 만들 뿐이다.


가장 명징한 사실은,

내가 더이상 가르치는 일에서 보람을 느끼지 못한다는 것이다.

사람에 대한 두려움. 가르치는 일의 고단함.

이 모든 어려움으로부터 지혜롭게 멀어지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것을 스스로에게 묻고 또 물어야 한다.

 


가까운 시일에 그 답을 찾지 못하더라도,

나는 언제까지고 그 답을 찾기 위해 발버둥치지 않을 수 없으리라는 것을 안다.

그리고 더 늦기 전에.

나는 나를 구원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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