ㅣ첫경험ㅣ
난 정말 추위에 약하다.
한 여름에도 전기장판 없인 잠을 잘 수가 없다.
겨울엔 너무 끼어 입어서 부자연스럽게 뚱뚱해진 나를 회사 동료들이 이상하게 쳐다보곤 했다.
내가 처음으로 스노보드를 접해 본 것은 내 나이 삼십 대, 함께 일하던 동생 B의 권유 때문이었다.
'언니, 저 요즘 스노보드 타러 다니는데 정말 재미있어요! 언제 한 번 같이 가요.'
그때 난 열심히 태권도를 배우고 있었고, 타고난 운동신경에 자신감이 넘칠 때였다.
당연히 새로운 도전을 거절할 이유가......?!
대충 집에 있던 10년 묵은 스키복을 찾아 입고, (물론 보호장비 따위는 없었다.)
B의 진두지휘 아래 스키샵에서 스노보드 부츠와 데크 등을 빌려서 스키장으로 향했다.
'추워도 너무 춥다...!'
이빨이 부서질 정도로 떨렸지만 포기할 내가 아니었다.
리프트를 타고 슬로프의 정상으로 올라간 나와 B, 그리고 B의 친구 A양.
(나중에서야 안 사실이지만 이곳은 중급코스였다는...!)
우린 나란히 앉아서 스노보드 부츠를 데크(정확한 명칭을 모르는 나는 이를 '판때기'라고 불렀다.)에 장착했다.
먼저 일어선 B가 말했다. '언니, 뒷 발로 이렇게 이렇게 방향 잡고 내려오시면 돼요.'
하더니 먼저 휙! 가버리는 것이 아니던가.
'......?'
뭐 보기엔 쉬워 보였다. 당시 나는 겁대가리 없이 스노보드를 우습게 생각한 것 같다.
'그냥 해보면 되겠지 뭐.'
하지만 이것이 잠시 후 일어날 절망적인 일들의 서막인 것을 난 전혀 알지 못했다.
A양도 이미 출발했는지 보이지 않았다. 혼자 남은 난 좀 멍한 기분이 들었다.
어찌어찌 바닥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B가 알려준 것을 떠 올리며 뒷 발을 살짝 움직여서 출발을 해 보았다.
쿵! 난 1미터도 채 못 가서 넘어지고 말았다. 무엇 때문인지 알 수가 없었다.
같은 행동을 반복하면서 내 오기는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더 세게! 더 힘차게!
쿵! 쿵! 쿵! 이미 심하게 넘어져서 무르팍이 완전 부서져 나간 느낌이었다.
(덕분에 난 몇 달 동안이나 계단을 피해 다녀야만 했다.)
중간쯤 왔을 때, 난 완전히 지쳐있었다.
'아직도 많이 남아 있잖아! 끝까지 못 내려가면 어떡하지?'
(그땐 그냥 장비를 들고 걸어 내려올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아니, 그래도 되는지 몰랐다.)
이미 추위 따위는 내 안중에도 없었다.
상단에서 하단까지 내려오는데 얼마나 많이 넘어졌고, 얼마나 오래 걸렸는지 짐작조차 할 수가 없다.
밤이라 더 그랬는지도...... 악몽이 따로 없었다.
가끔 옆에서 누군가 날 짠하게, 또는 이상하게 보는 시선들이 느껴졌다.
어찌어찌 겨우겨우 하단으로 내려온 나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순간, 긴장이 풀렸는지 강추위가 다시 느껴지면서 이제는 다리 아픈 것도 잊힐 지경이었다.
잽싸게 매점으로 향한 나는, 그곳에서 B양의 친구인 A양을 다시 만나게 되었다.
A양은 보드를 타고 내려오다 누군가와 추돌사고가 나서 머리가 아프다고 쉬는 중이었다.
결국, 우리는 그날 리프트를 다시 타지 못했다. 그저 매점에서 간식이나 털면서 시간을 보낸 게 다였다.
지금은 안다. B가 얼마나 무책임하게 나를 버렸었는지.
일. 가장 중요한 보호장비를 추천해 주지 않았으며, (본인은 다 갖추었으면서)
이. 스노보드의 가장 기초인 '넘어지는 방법', '일어서기' 등, '낙엽 타기'조차 알려 주지 않았으며,
삼. 스키장에서의 기본적인 매너들을 알려주지 않은 건 그렇다 치더라도,
사. 그나마 가르쳐 준 뒷발차기는 아주 잘못된 자세였던 것이었다.
기타 등등...
이쯤 되면 살인미수 아닌가?!
모르는 사람들은 '뭐 그게 대수인가'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아주 위험천만한 일이었다.
하기사 이제 와서 누굴 탓하리오.
무지해도 너무 무지했던 내가 바보였다.
내가 사전조사에 너무 안일했었고, 그녀 또한 초보자였다는 걸 내가 인지하지 못했던 것이었다.
이제 와 생각하면 어찌나 그리 겁이 없었는지...
'낙엽 타기'의 '낙'자도 모르는 초짜가, 심지어 직할강으로 내려가다 고꾸라지는 꼴이라니!
모르긴 몰라도, 그때 내 주변에서 스키나 보드를 타고 있던 사람들에게 엄청난 민폐를 끼쳤을 것이다.
다들 무모하게 굴러 다니고 있는 나를 피해 다니기 바빴겠지......
그렇게 허무하게도 내 스노보드 인생은 끝이 났다고 생각했다.
아니, 시작과 함께 끝이라고 해야 하나......
- 다음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