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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이라오 Dec 19. 2024

폭죽이 터졌다. 팡!!

쏙'집어 라오

"축하해요~ 넷이네요!"

뱃속에 '넷'이 있다는 청천벽력 같은 의사 선생님의 축하인사였다. 내 뱃속이 아니고 우리 집 고영희 씨, 이름하야 '팡'이의 뱃속 얘기다.

라오스로 온 뒤 우리 부부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딸이 타지 생활에 잘 적응하도록 돕는 일이었고 지금도 그렇다.

한국에서 이제 막 절친한 친구들과 추억을 쌓으며 우정을 키우던 차였는데  갑. 자. 기 라오스에 떨어진 데다가
의사소통이 아직 불통에 가까웠고  하교 후에 자유롭게 친구들과 어울리기엔 다들 저마다의 스케줄로 쉽지 않았다.


게다가 학교에서 영어로 모든 수업과 활동이 진행되는데 우리 부부는 딸과 이 산들을 어떻게든 함께 넘어야 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남편은 부쩍 외국에서 딸이 외로움을 타지는 않을까를 염두에 두고 지냈고 핸드폰 세상으로만 놀러 다닐 것에 대한 우려도 큰듯했다.


 결론은, 딸을 위해 '애완동물 딱! 한 마리만 들이자, 애완동물은 내가 전담하겠다.'남편의 말에 내가 설득당했고 그것이  현실이 된 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은 시점이었다.

"여보, 팡이 배가... 설마, 아니겠지?"
무디고 둔한 남편이 며칠 간격으로 팡이의 배에 관심이 예민이다. "아니야. 고양이 배는 장기 보호를 위해 지방이 많데." 딱 잘랐다. '아니다! 안된다!' 주문을 외우듯 매번 똑같은 말로 빠르게 부정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털들이 뭉텅뭉텅 집안을 굴러다니기 시작했고 털뭉치들이 눈에 띌수록 드러나는 팡이의 분홍분홍한 뱃살과 쭈쭈가 내 주문이 엉터리라고 비웃는 것 같았다.
'하... 설마...'


여전히 아니길 바라면서도  '엄마'살이최적화 돼버린 내 뇌는  휙휙 돌아가며 지시했다. 혹시라도 팡이가 정말 임신이라면 뱃속에 몇 마리가 있는지 알아놔야 한다고. 야심한 밤에 출산이라도 하게 되면 새끼고양이들이 남김없이 출산됐는지를 알아야 위험에도 대비할 수 있다며 휙휙.

낯선 나라에서 나도 적응하랴, 딸 적응시키랴, 남편 챙기랴 머털도사 머리털 마법(옛 만화 주인공이 머리카락을 몇 가닥 뽑아 공중에 후~불어 날리면 똑같은 주인공이 여럿이 돼서 일을 헤쳐나간다.)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인데 팡이가 임신이라니!!...


할 수없이 병원을 찾았고 우리 집 고양이가 어미포함 다.섯.마.리가 되었다고 축하를 받는 중이었다.

'오, 마이.. 갓...'

[팡이 엑스레이사진. 4마리가 보인다.]




그렇게 팡이가 우리 집을 찾아온 지 두 달 이채되지 않은 어느 날 밤. 딸과 자려는데 팡이가  이불을 파고 들어왔다.  팡이를 보려고 이불을 들춰보는데, 

'어?'
직감적으로 출산이 임박했다는 느낌이 왔다.


팡이도 초산에 처음 겪는 진통이 무서웠는지 따로 마련해 준 보금자리로 못 가고 이불속에서 몸을 잔뜩 웅크린 채 겁을 먹고 가시나무 떨듯  떨고 있었다. 

무엇이 나를 이끌었을까?  딸에게 팡이를 잘 보고 있으라고 한 뒤 서둘러 장갑을 끼고 깨끗한 수건들을 챙기고 가위를 불로 소독하고 소독약을 둘르고 팡이 옆에 있었다. (고양이를 전담키로 호언장담을 한 남편은  한국가있었다!! 한국에!!)

'으흥... 주.. 여...'
장비를 챙기고, 진통하는 팡이 앞에서 튀어나온 한마디가 진동모드다. '침착해. 침착해. 으... 침착하라고!' 속으로 열두 번도 더 내게 단도리를 시키며 팡이를 주시했다.


팡이의 엉덩이 쪽에서 작고 동그란 새끼고양이의 머리가 보였다. 팡이는 멈칫 새끼고양이를 보더니 이내  정신이 들어온 듯, 행동에 들어갔다. 우리 침대 위에서 낳게 된 첫째 고양이를 물고는 보금자리 굴로 들어갔다.


일단은 어미본능을 계속 믿기로 하고, 비닐장갑을 바스락바스락 연신 당겨 끼며 부디, 나 같은 초짜 집사가 저 생명 탄생 질서에 끼어들 일이 없기를 간절하게 바랐다.


조금 뒤 두 번째 새끼 고양이가 태어났고 한동안 진통이 더 이어지고 나서 세 번째, 네 번째 고양이가 이어서 태어났다.


문제는 초산인 데다가 이미 지칠 대로 지친 팡이가 세 번째 새끼부터는 탯줄과 막을 처리하는데 힘에 부쳤는지 기운 없이 숨을 헐떡였다. 


'으... 결국 끼어들어야 되는 건가.'

망설이다가 이내  마음먹고 나도 행동에 들어갔다. 고양이들이 다치지 않게 조심스럽게 탯줄을 자르고 막을 정리했다.

팡이도 어미젖을 찾아 파고든 새끼 고양이들을 품은 채 잠이 들었다. 아니, 뻗어버린 것 같았다. 나도 뻗어버렸다.

아침이 됐다.
불현듯 지난밤이 떠올라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내가 애를 받았다니! 하나가 다섯이라니!...' 얼떨떨함이 다 떨어져 나가기도 전이지만 이 난리통속에 아무것도 모르고 있을, 한국에!!있는 남편에게 새 식구 사진을 보내줬다.


엄마 뱃속에 숨어 우리 집에 불법이주를 해온 아주 사랑스러운 녀석들 사진이었다. 남편에게 원망, '앓는 소리'는 일단 라오스로 귀국하는 대로 장전하기로 하고 새 생명을 축하하기로 했다.

[새끼들과 팡이]

새끼 고양이들이 어미젖을 물고 잠든 모습을 한참 바라보다가 문득 하늘에 물었다. '1이  5가 됐네요, 하나만 바랬는데 어떻게 다섯이나 주셨나요'


할 일도 태산인데 보태진 일거리들도 걱정이 되었고 입양을 보내려 해도 내 손으로 받은 새끼들에게 벌써 이입된 특별한 감정을 처리해야 하고 게다가 이 모든 순간을 함께 지켜본 딸도 정이 순식간에 더해져 애틋한데, 그 마음 달래주는 것도 다 내 몫임을 투덜거리고 싶었던 것 같다.

그러다 불현듯 팡이가 라오스의 우리 집 현관문을 넘어 거실로  들어오던 첫날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약간의 걱정이 기대와 설렘과 뒤섞인 채였지만 분명 우리 가족은 팡이를 선물같이 기다렸었다.


그리고 잠시 뒤, 하늘이 내게 말을 걸어오는 것 같았다. '그렇게 선물 같은 일들이 하나가 다섯같이 펼쳐질 것'이라고.


팡이는 그날 이후로 우리 가족에게 기쁨을 알리는 폭죽이 되었다.

축하 폭죽이~ 팡!팡!


*팡'이라는 이름은 예전 주인이 지은 이름 그대로다.  새 환경이 낯설 팡이가 조금이라도 편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그대로 '팡'이라고 부르기로 한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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