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황청심원 효과가 과하게 나오는지 면접 후반부 가서는 자꾸 웃음이 나오려고 했다. 놀라운 일이지만, 회장 할아버지들의 이야기를 듣는 게 재밌긴 했다. 사실 내가 매출이 조 단위로 나오는 큰 회사의 수장과 이야기해 볼 기회가 얼마나 있겠는가. 내가 잘 모르던 분야라고는 해도, 이 업계에서 오래 일을 해오고 꼭대기까지 올라간 사람이니까 하는 말들을 잘 들어놓는 게 면접의 결과를 떠나서 인생에 유익한 자양분이 될 것이란 생각을 했다. 면접 막바지에는 1차 면접 때와 마찬가지로 궁금한 것이나 꼭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해도 된다고 모두에게 기회를 줬다. 우선 두 번째 지원자가 제일 먼저 시작했다. 자신이 여기저기 경력을 쌓아 놔서 한 가지를 진득하게 못한다고 보실 수도 있겠지만 이제 이 해운업 쪽에서 뼈를 묻고 싶다는 말을 했다. 그 말이 끝나고 내가 손을 들었다. “아까 저에게 성실함만으로 모든 것이 해결되지 않는다는 말씀이 정말 인상 깊었습니다. 그래서 여쭙고 싶은 것이 있었는데요, 회장님께서 지금까지 해운업에서 성공적으로 커리어를 쌓아오시고 회장님이 되시기까지 가장 중요했다고 생각하시는 역량이 있다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이 말을 듣고 별로 말이 없던 회장 1은 회장 2를 힐끗 쳐다봤다. 네가 한 말이니까 네가 알아서 처리하라는 듯이. 우선 회장 2는 쑥스러운 건지 기분이 좋은 건지 너털웃음을 지으며, "난 성공한 것이 별로 없는데, 허허!" 하는 반응을 보였다. 예의상 한 말이었는지 다시 일장 연설이 시작됐다.
“내가 해운업에서 40년을 일했어요. 그동안 정말 많은 일이 있었지. 해운업이라는 게 일 년 벌어서 몇 년을 먹고사는 사업이에요. 잘되던 시절은 많지 않았어. 그 시절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해요.” 좋았던 과거를 회상하는 인간의 눈빛에서 보이는 아련함과 푸근함 같은 것이 한순간 스쳐갔다. “그러면서 내가 느낀 게 세상이 변하는 것이 정말 어떻게 되는지 알 수 없다는 거예요. 처음에 컴퓨터라는 게 처음 나왔을 때 우리는 모두 컴퓨터로 인해 사람이 하는 일이 확연히 줄어들 거라고 생각했어. 하지만 실제로는 달랐어요. 컴퓨터로 인해 오히려 일이 더 많아진 거지. 인생이란 게 이렇게 알 수 없어. 음…그래서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우선 제일 먼저 건강한 몸과 건강한 마음이야. 이것들이 기본이 되어야 어떤 것이 와도 이겨낼 수 있어요. 그리고 계속 지녀야 하는 건 나의 꿈이야. 지원자가 좌우명이 'The best…not come…'이라고 했었나? 어쨌든 그 최고가 오지 않았다 생각하고 내 가슴에 계속 품고 있어야 하는 거예요. 그렇게 산다면, 혹여나 성공을 하지 못하더라도, 행복하게 살 수 있지 않을까?” 생각보다 정성 들인 진솔한 답변에 면접을 떠나 감명 깊었다. 물론 그 사람이 공적으로는 많은 실책을 해왔고 나중에 선배 직원들에게 듣기로 좋은 수장도 아니었으나 그 순간만큼은 연륜이 있는 인생 선배와 인간적으로 독대하는 기분이었다. 자기계발서에서 흔히들 이야기하는 말들과 그렇게 다른 내용도 아닌데 와닿은 건 저 사람의 인생이 담긴 말이기 때문이겠지. “고견 감사드립니다”하고 나는 면접에서 발언을 마무리했다. 계속 적극적이던 세 번째 지원자가 손을 번쩍 들고 다음 질문을 이어서 했다. BDI나 유동성 등 자신이 조사해 온 것을 열심히 이야기했다. 당최 마음을 알 수 없는 회장 2가 우습다는 듯 훨씬 풍부한 정보로 지원자를 다시 공격해 왔다. 임원면접에서는 대부분 면접자가 나이 지긋하고 경력도 길기 때문에 아는 게 많아도 무조건 겸손한 게 안전한 전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면접이 끝났다. 하루 중 가장 강렬한 햇볕이 지글거리는 광화문 거리를 터덜터덜 걸었다. 너무 열심히 면접관들을 쳐다보느라 눈도 잘 못 깜빡였는지 눈이 따가웠고 무엇보다도 너무 피곤했다. 딱히 후회되는 부분은 없었지만 갑자기 지쳐서 다 그만두고 싶었다. 이상하게도 모든 것이 불탄 후의 재처럼 가볍고 헛되게 느껴졌다. 이 생활을 내가 얼마나 더 할 수 있을까… 잠시 교보문고에 들르러 지하로 내려가는 큰 계단을 내려가다가 이대로 굴러 떨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면접비를 쓰러 간 교보문고에서는 우울해져서 아무것도 사지 못하고 버스를 타고 홍대로 이동했다. 면접 의상을 반납하자 슬슬 면접이 끝났다는 실감이 나기 시작했다. 집에 도착하기 전에 면접비를 다 쓸 고민만 하면 되었다. 예전에는 면접비를 집에 들어가기 전에 다 써야 합격한다는 미신에 코웃음 치다가 정말 불합격하고 나서는 간절한 마음에 당일날 다 쓰기로 결심했다. 어릴 때부터 돈은 안 쓰고 봐야 한다고 자라온 내가 계획 없이 탕진하는 경험은 그게 처음이었고 소위 말하는 '탕진잼'이라는 것의 짜릿함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돈 쓰는 재미도 잃어버린 취준생 입장에서 사기 어려웠던 비싼 디저트를 사고 사고 싶었던 책을 중고매장에서 구입했다. 즐거운 마음으로 집으로 걸어가는 길에 배고픔은 느껴지지 않았는데 속이 쓰렸다. 생각해 보니 오후 4시 넘어서까지 아무것도 먹지 못했던 것이다.
밤에 퇴근한 부모님에게 마지막 할 말을 어떻게 했는지 이야기해 주니 우선 아빠가 굉장히 칭찬했다. 임원이 가려운 곳을 제대로 긁어준 거라며. 그 늙은이들은 젊은 사람들한테 자기가 이뤄낸 것을 얼마나 자랑하고 싶었겠냐고 했다. 그런 상황에 자기 회사 지원하는 젊은 애가 먼저 “어떻게 하셔서 그렇게 성공하셨습니까?”하고 물어보면 얼마나 기분이 좋겠냐고 했다. 이 마지막 질문에서 아빠는 좋은 예감을 느꼈던 것 같다. 이상하게 여기 회사 면접은 두 번 다 마지막 발언이 회심의 일격처럼 잘 먹혔다. 별 생각도 없이, 잘 알지도 못하고 넣은, 나와 관련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 곳이 나를 최종합격 시켜준 첫 회사가 되었다. 인간의 삶이라는 게 참 묘하다. 내가 작년 초에 누군가의 이직을 위해 학술정보원을 뒤져서 해양 폐기물 처리와 IMO의 환경 규제 관련한 논문을 조사하지 않았던가. 내 첫사랑이 일하던 분야… 그곳에 나도 가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합격 전화가 걸려왔을 때 나는 시끄러운 더현대 5층에 있었다. 소음을 뚫고 겨우 전화 내용을 알아들으려 노력해 보니 합격했다, 축하한다는 거였다. 처음에는 잘된 건지 판단이 안 돼서 얼떨떨한 상태였고 기쁨보단 걱정이 가득 차 있었다. 그래도 집에 와서 부모님이 나보다 좋아하는 걸 보고 그나마 안심이 됐다. 아빠가 회사를 조사해 봤더니 괜찮은 것 같다고, 직원 수는 적은데 매출은 많이 나와서 지금 주체를 못 하는 상태라고 했다. 예상보다는 갑작스럽게 취준이 끝났다. 졸업도 전에 대단한 직장을 구하는 대단한 동문들에 비하면 초라할 수도 있지만 졸업도 못할 줄 알고 근근이 학교를 다니던 내게 취업이란 감히 꿈꾸지도 못할 목표였다. 이런 절박함과 비굴에 가까운 겸손이 나를 도운 것일까?
비상경 문과로서 닥치는 대로 지원서를 내며 다양한 분야를 접했다.지원하는 회사마다 속한 산업을 공부해야 해서 한국 산업의 전체적인 구조에 이해가 생긴 것 같다. 나에게 익숙한 건 매출 규모도 작고 소비자에게 직접 오는 B2C이지만 실제로 돈을 많이 벌고 시장을 움직이는 건 일반인에게 보이지 않는 B2B업종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리고 수출 중심에 문화적 역량이 부족한 이 나라에서 가치 창출을 해내는 업종은 제조업, 자동차, 해운 등 평소에 관심 가지던 것과 먼 것들이라는 것도. 내가 좋아하는 문화, 예술, 교육, 관광 등은 실제로 일하기에는 열악하고 산업 자체가 만들어내는 돈도 적다는 슬픈 현실도 알게 되었다. 시사에 관심을 가지고 산업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보이니 재무제표도 조금씩 이해되고 주식시장의 움직임도 좀 더 가깝게 느껴졌다. 글로벌 동향이나 여러 금융 용어도 조금씩 알게 되었다. 고통스럽지만 동시에 많은 걸 배울 수 있어 취준의 경험이 값진 것 같다.
취준을 하며 신기했던 건 난 똑같은 나인데 어떤 회사는 어여삐 보고 어떤 회사는 한심하게 본다는 거였다. 입사 후 인사과에서 듣기로 나에게 인생과 성공에 대해 일장연설을 늘어놓던 회장 2는 나를 콕 집어 꼭 뽑으라 했다고 한다. 그러니 어떤 한 회사에게 인정받지 못했다고 스스로의 가치를 의심할 필요가 없는 것 같다. 포기하지 말고 여기저기 문을 두드리다 보면 나와 맞는 회사를 찾는 순간이 올 것이다. 이후에 더 큰 난관이 기다린다고 해도 우선은 기뻐할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