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언제부터 어른이었을까.
"엄마는 좋아하는 음식이 뭐야?"
"다 좋아한다."
"엄마는 무슨 색을 좋아해?"
"노랑이랑 분홍색."
"엄마는 누구랑 제일 친해?"
"인영 이모지."
"갑자기 그건 왜 묻는데?"
"음... 그냥 내가 엄마에 대해 아는 게 없더라고."
나는 엄마에 대해 아는 게 없다. 정확히는 알려고 하지 않았다. 나 사는 것에 너무 바빠서, 내 한 몸 돌보기도 힘든데 아이를 셋이나 낳아서, 아이들 챙기느라 부모님은 항상 뒷전이었다.
내가 엄마에 대해 알아가야겠다고 결심한 건, 7살 딸과 매일 마주하는 대화의 순간에서 어릴 적 엄마와 나의 모습이 겹쳐 보였기 때문이다.
어릴 적 언젠가 엄마의 머리카락을 잡아당긴 적이 있다. 친구들이 우리 집에 놀러 왔을 때였는데, 나도 갑자기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엄마에게 애정표현을 한답시고 그런 건지, 관심을 표현한 건지. 아무튼 그때 엄마는 나에게 따끔히 혼을 냈다.
나는 아이를 낳고 무릎이 안 좋아졌다. 아직 젊은데 비가 오기 전이나 아이를 많이 안고 다닌 날에는 무릎이 조금 시큰거린다. 8개월 막둥이는 화장대 거울 앞을 가장 좋아하는데, 매일 그곳에 앉혀놓으면 뒤에서 무릎을 굽히고 아이를 잡아줘야 한다.
"아얏!"
갑자기 큰 딸 윤하가 나의 종아리 위로 발을 대고 올라탔다. 자그마치 25킬로그램. 무릎에서 뚜두둑 소리가 났다. 종아리에 배긴 알도 같이 꿈틀거렸고. 순간 너무 아파 억, 소리가 났는데 그 맘을 알리 없는 윤하는 더 세게 한 번 달려들었다.
"아야, 엄마 아파! 그만해!"
그러고는 얼굴이 잔뜩 상기되어 고함을 고래고래 질렀다. 그렇게 화낼 일이었나 싶다가도, 잘못한 건 아니라고 따끔하게 말해야지 하고 잘했다 싶다.
엄마한테 애정표현한 거구나.
아침에 아기와 산책을 하며 유모차에 밟힌 낙엽 하나를 주웠다. 마로니에 공원 은행나무들도 은행잎을 여러 번 뿌려주었다. 그 낙엽들이 어쩐지 지금 내 모습 같아서.
"엄마, 나 낳아준 엄마한테 이런 얘기해서 죄송한데. 요즘 나 너무 못난 거 같아. 왜 이렇게 못생겼지. 주근깨 투성이에 머리도 이상해. 묶어도 이상하고 풀어도 이상해. 잘라도 이상하고. 뽀글 파마하면 너무 아줌마 같으려나? 옷도 봐. 아기 낳고 살은 빠졌는데 뭘 입어도 이상해. 하... 나 어떡해 아직 서른인데. 엄마 나한테 해줄 말 없어? 엄마는 서른에 어떻게 살았어?"
"원래 애 키울 땐 뭘 해도 이상한기라. 지금처럼만 살아. 지금처럼."
아니, 지금이 매우 불만인 사람에게 지금처럼 살라니. 엄마도 참.
서른이 되면 어른이 되는 줄 알았다.
막 스무 살이 되었을 때, 서른 살은 멋지고 대단한 어른처럼 보였다.
"힘들다... 사는 게 왜 이렇게 힘드니."
돈이 없을 때. 주말에 집이 엉망진창이 될 때. 아이 셋이 나만 바라보고 있을 때. 엄마가 나 좀 봐달라고 서운함을 표현할 때. 아빠가 아플 때. 시엄니가 몸이 아프다고 할 때. 시아버님 흉볼 때. 남편이 돈 벌어주면 뭐하냐 푸념할 때. 내가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을 때. 아기가 낮잠을 자는 시간 집 안에 건조기가 돌아가는 소리가 고요하게 들릴 때.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지 생각한다.
왜 나만 힘든 걸까 한다.
어릴 때부터 나는 시시콜콜 엄마에게 나의 속마음을 털어놓는 아이였다.
결혼을 하고 조금은 철이 들고 나는 엄마와의 멀어진 거리만큼 마음도 멀어져 버렸다.
처음에는 엄마가 걱정하는 게 싫어서 딸이 힘들어하는 걸 보여주기가 싫어서 좋은 일만 이야기하고 안 좋은 일은 이야기하지 않았다. 엄마도 역시 내게 그랬다. 좋은 일은 이야기해주었지만, 아프거나 다치거나 안 좋은 일들은 일부러 꺼내지 않았다. 나는 늘 동생을 통해 그런 소식들을 듣곤 했다.
"승희야, 엄마 생일선물로 캐리어 하나 사줘. 5만 원도 안 하더라."
"응, 엄마. 다음 주에 꼭 사줄게."
"승희야, 가족 계모임 통장에 5만 원 넣어라. 아빠 환갑 때 가족여행 가자."
"엄마, 나 생활비 좀 아껴야 해. 나중에 넣을게."
엄마는 뭐든지 나와 함께하고 싶어 했고, 생일이나 특별한 날에도 대단한 용돈이 아닌 '단돈' 5만 원 이하의 작은 선물을 원했다. 예를 들면, 책 한 권, 신발 한 켤레.
그 작은 마음조차도 바로 끌어안지 못하고 항상 미루는 못난 딸.
"엄마, 오늘은 너무 힘이 든다. 사실 나 엄마한테는 힘든 티 안 내려고 했는데. 그냥 애들 키우는 것도 너무 힘들고, 살림도 잘 못하는데 집에 있는 것도 힘들고. 그렇다고 일하고 싶은데 저질체력이고. 돈 있으면 대출이며 보험이며 고정비로 다 나가고. 남편이 일하느라 고생인데 도움도 안 되고. 엄마한테 이렇게 시시콜콜 이야기하기 싫었는데, 그냥 이야기하려고. 나도 어디에다 말은 하고 살아야지. 친한 친구한테 이런 말 못 해."
어른들은 무시하기 쉬운 이러한 상실은 아이의 마음속에 영원히 메울 수 없는 공백을 만든다. 무언가를 잃어버린 적 없는 아이들은 이 감정을 어떻게 다뤄야 할지 모른다. 어른들은 아이가 공백의 자리를 건너뛰고, 상실을 받아들이며 조금 더 어른이 되어 주기를 바란다. - 여름의 피부/ 이현아 p.30 중-
결혼 안 한 친구들이 부러워. 아이가 없는 친구들이 부러워. 혼자 사는 친구들이 부러워. 세계여행을 다니는 친구들이 부러워. 집있는 사람이 부러워. 돈 많은 사람이 부러워. 좋은 차타는 사람이 부러워. 나 말고 다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그 사람이 부러워. 자기 인생의 주인공 같은 그들을 바라보며 내가 가진 것들이 오히려 더 많을지도 모르는데도, 나는 여전히 상실감을 느낀다. 남들보다 조금 일찍 독립하고, 취직하고, 결혼하고, 육아하는 만큼 그 빨라진 속도만큼 빠르게 어른이 될 수 있을 거라 믿었는데.
엄마는 언제부터 어른이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