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을 좋아하는 사람이지만, 애엄마이기 때문에
"담당님, 안녕하세요? HR 인사담당자 000이라고 합니다. 이제 곧 복직이신데 마음의 준비는 되셨어요?"
"하하... 안녕하세요. 마음의 준비요? 일단 복직은 해보자!라는 마음입니다. 저 어디로 가는 건가요?"
"안 그래도 그것 때문에 연락드렸어요. 이전에 있었던 매장은 폐점해서 자리가 없는데, 다시 매장으로 가신다고 하면 점장직은 못하실 거예요. 혹시 본사에서 근무해 보실 생각은 없으신가요? 점장경험도 있으시고 하니 MD일 하시면 잘하실 것 같은데요?"
고민이 되었다. 나는 지독히도 '현장파'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언젠가 매장에서 산 도토리묵을 먹고 복통을 호소하는 고객 때문에 두 달은 시달린 적도 있었고, 신입 때는 고객이 던진 두부로 맞거나 같이 일하는 아주머니 사원에게 "너네 부모가 그렇게 가르쳤니?"라는 소리까지 들으며 일했었지만 그보다 훨씬 좋은 사람들이 많았다. 사람냄새가 폴폴 났던 구의동에서 근무했을 때는 동네 고객들이 다 이모고 삼촌에 어머니였다. 하루하루 출근하는 게 재밌었다. 나의 노력으로 매장의 분위기가 밝아지고 매출이 오르는 것도 너무 보람 있었다.
사실 지금의 나 자신을 못 믿었다. 아이 셋을 낳아 육아에 지친 내 모습. 반복된 출산으로 근력은 하나도 없는 축 처진 뱃살. 예전의 열정과 생기 있는 눈빛은 없어진 지 오래였다. 나에겐 지금 회사가 첫 입사였고, 처음부터 현장에서 근무를 했기 때문에 사무직으로 일하는 내 모습이 가늠이 되지 않았다.
하지만 나도 어느덧 30대에 접어들었고, 마냥 열정 넘치고 체력 좋은 20대가 아니었다.
애 셋 엄마니 적당히 세상과 타협하고 살자고 다짐했다. 내 몸을 좀 더 생각해서, 아이들을 생각해서, 그리고 아이를 봐주실 어머니를 생각해서 '해보지 않은 길'을 가보자고. 그렇게 나는 매장에서 본사로의 이직을 강행하였다. 일단은 나 자신을 믿고 맡겨보기로 했다. 이 일이 나의 적성에 맞을까라는 생각은 버리고 새로 적응할 조직에서 내가 잘할 수 있는 것을 찾자라고, 그렇게 첫 출근 전날 밤 되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