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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온 Jan 07. 2024

복날을 맞이하다

초짜 가금육 MD의 첫 복날

"과장님, 언제가 가장 힘드세요?

"나? 나는 지금이 제일 힘들다...!"


  내가 복직한 6월 말은 초여름의 화창하고 더운 기운이 거리의 나무들에게 힘차게 뻗은 시기였다. 축산팀의 가금육(닭,오리)담당인 나는 곧 마주할 닭전쟁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가금육 MD의 일년 중 가장 바쁘고 힘들고 보람찬 시기가 복날이다. 축산은 과일처럼 시즌성이 있는 것도 아니고, 수산쪽의 대게, 굴(생물)등 처럼 물량을 예상하기 힘든 것도 아니다. 도계사에서 매 년 계획된 병아리를 입식하여 길러내고 그것을 도계하여 생산하기 때문에, 예상못한 AI(조류인플루엔자)가 발생하지 않는 이상은 대부분 생산과 입고에 문제가 없다.

  요즘은 복날에 백숙이나 삼계탕보다 치킨을 많이 먹는다고 한다. 도계사에서 유통사보다 일반 대리점이나 프랜차이즈에 닭을 납품하는 경우가 더 많다고 하니 그럴만도 하다. 우리집조차 '복날'을 딱히 신경쓰는 편도 아니고 치킨한마리 시켜먹고 말지, 이런 식이니.


  복날이 되면 200여개의 매장의 발주를 더 특별히 신경써야한다. 복날에는 예상물량을 정해서 매장별로 취합을 받고, 그 수량에서 많이 벗어나서도 안된다. 우리 채널만 닭을 파는게 아니기 때문이고, 복날에는 24시간 도계공장이 돌아가도 인력부족, 물류입고지연등의 문제가 발생하고 유통사,대리점,프랜차이즈치킨집 모두 닭의 수요가 커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시기가 되면 물량이 항상 부족하고, 도계사들은 더 예민해질 수 밖에 없다. (파트너사와의 관계에서 '갑'이라고 부르는 유통사지만, '복날'에 만큼은 철저히 '을'이 된다.)


  사회에 복귀한지 얼마되지도 않아 이런 복날을 세번 치르게 되니 '엠디가 원래 이렇게 힘든일인가?'라는 생각도 들었다.

200여개 매장의 발주를 전체적으로 관리해야하고, 직접 발주를 해야하는 것은 물론 가맹점포 물량까지 생각해야했다. 물론 나의 상사분과 처음엔 같이 배워가면서 일을 했기 때문에 큰 어려움은 없었지만 중복이 지나고 말복부터는 오롯이 나 혼자 해내야 했다.

  평소 털털하고 덤벙대는 성격인 나여서 처음에 실수를 정말 많이 했다. 지금도 여전히 실수를 많이 하지만, 이 때는 모든 날 모든 순간이 실수 덩어리였다. 나는 숫자랑 정말 안맞는다고 생각했다. 점포별로 문자,전화,메일을 받으니 걸어다니는 1인 콜센터가 따로 없었다. 자기가 취합한 수량보다 훨씬 많이 닭이 들어왔는데, 어떻게 할거냐고 고래고래 전화기에 소리를 지르는 점장님도 있었고, 아예 안들어와서 팔게 없다고 다른 매장에서 얻어서라도 갖다놓으라는 분도 있었다.

  나의 꼼꼼하지 못한 성격으로 일이 틀어졌기 때문에 처음에는 죄책감도 크고 부담감도 컸다. 그 후로는 같은 파일도 2번, 3번 다시 보게 되었다. 


"담당님, 복날만 지나가면 이제 좀 편해질거예요. 가금육은 복날만 겪으면 그후 일년동안은 아주 루틴하거든요."


  복날을 그렇게 치르고 24년 새해가 밝았다. 올해 7월의 초복은 어떤 일이 벌어질지 두렵지만, 올해는 작년보다 반드시 잘 해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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