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안온 Jan 08. 2024

팀장님, 저 매장 보내주세요

'초딩'소리 듣는 초딩엄마

  회사를 다니며 월급을 받는 직장인이지만, 분명 내가 얻는게 '월급'만은 아닐 것이다.

매일을 똑같이 정해진 시간에 일어나, 샤워를 하고 머리를 말리고 깔끔한 출근복으로 갈아입는다. 적당히 은은한 화이트머스크향이 나는 향수를 뿌린 후 화장을 하고 집을 나선다.


  큰 딸과 남편은 내가 나갈 때쯤 일어나, 아침을 먹고 함께 등교와 출근을 한다.

그 시간 둘째와 셋째는 할머니집에서 자고 일어나, 어린이집 갈 준비를 한다. 우리가족은 모두 어딘가에 간다. 아이를 낳고도 '우리가족'외에 어딘가에 속해져있다는 사실이, 평일 아침에 일어나 사람공기 가득한 지하철을 타고 출근할 수 있다는 사실이, 좋아하는 노래를 들으며 오늘은 어떤 일을 해야할까 핸드폰 메모장에 적으면서 가는 그 아침이, 너무도 좋다.


  여름엔 적당히 비치는 눈부신 햇살과 스르르 나뭇잎이 흔들리는 소리, 가을엔 하나 둘 씩 계절에 스며든 단풍과 은행잎이 적당히 내 마음을 따스히 감싸준다. 겨울은 역시 추워야지하며 벌벌 떨면서도 미세먼지 하나 없는 차가운 공기가 나를 깨운다. 아직 복직하고 봄을 느껴보지 못했다. 올 봄은 또 어떤 기분을 느낄 수 있을까.

.

.

.


"초딩도 아니고 누가 이렇게 쓰냐?"

  출근하기 전에 느끼는 모든 것은 나의 오감을 깨우기에 충분하다. 출근해서는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지만, 사무실의 공기는 마치 닭장처럼 쾌쾌하고 답답했다.

  나는 이렇게 감정과 생각을 줄글로 쓰는 것이 좋다. 회사라는 곳에서는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을 '간단명료하게','정확'하고도 '짧게''수치로'전달해야 한다. 지금도 그렇지만, 이게 제일 힘든 것 같다.

긴 내용을 짧게 정리해서 적당한 용어를 써서 보고해야 한다. 처음에 어떻게 써야할 지 몰라 옆에 앉은 대리님을 괴롭혔던 기억이 난다.


"팀장님, 저도 일이 너무 많은데 왜 가금육까지 제가 해야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초짜엠디 가르치느라, 자신의 일을 쳐내느라 너무 힘든 대리님이었는데 내가 너무 민폐였다.

처음에 매출 계획을 어떻게 짜야할지도 모르겠고, 보고서작성은 더더욱 힘들었다. 내가 이 팀에 오고 한달정도 되었을 때까지 대리님이 많이 도와주셨다. (유대리님 감사합니다! 지금도 우리 팀에 유대리님이 있어 많이 힘이 된다. 나도 언젠가 이렇게 팀원에게 힘이 되는 상사가 되고 싶다...!)설명도 하나하나 천천히 잘해주시고, 나에게 없는 꼼꼼함과 세심함이 돋보여서 정말 닮고 싶은 분이다.


 "유대리가 홍md많이 도와줘. 아직 잘 모르잖아. 보고서 작성이 초딩수준인데 저래서 어떻게 보고하겠니?"

나는 초딩엄마지만, 초딩소리를 듣는다. 글쓰는 게 가장 즐겁고 좋아하는 일이였는데 글을 제대로 짧게 못써서 초딩소리를 듣다니. 갑자기 눈물이 울컥 쏟아질 것 같았다.


  급하게 화장실로 가서 문을 잠갔다. 

'나는 엄마야, 나는 잘할 수 있어.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괜찮아!'

애써 나오는 눈물을 닦고 내마음을 추스렸다. 다시 업무를 하려고 의자에 앉자마자 내 귓가에 맴도는 또 한번의 말.

"다 됐어? 빨리 마무리 하도록 해."


"팀장님, 저 매장 보내주세요...."

"지금 뭐라고 했...어? 1대 1로 면담하는 것도 아니고 갑자기 울면서 이렇게 이야기하면 내가 뭐가 되니? 사람들 다쳐다보잖아. 너땜에 팀 분위기 다 망쳤다. 니가 애니? 애엄마지 애도 아닌데 왜 울고 그러니. 엠디로 어중간하게 일하다가 매장가면 이도저도 안되는거 모르니? 진심으로 하는 말이니?"


  처음에는 배움으로 알고 좋든 싫은 팀장님의 모든 말을 받아적고 되새기고 결과가 좋지 못하면 '내가 못해서, 내가 능력이 부족해서' 하며 내 자신을 깎아내리기 바빴다. 지금 생각해보면 뼈가되고 살이 되는 말도 많았지만 다소 충동적이였던 상사분의 가스라이팅 때문에 내마음도 많이 너덜해진것 같다.


  울고나니 좀 괜찮아졌다. 

엄마라고 울면 안되나? 어른이라고 울면 안되나? 좀 억울하고, 쌓인게 많으면 울 수도 있지! 하고 내 자신을 위로했다. 이상하게 울고나니 기분이 나아졌다. 항상 나는 강하다고, 강해져야만 하고, 약해지면 안된다고 너무 내자신을 슈퍼우먼이 되게 하려고 노력했다. 이제는 완벽해지지 않아도 괜찮아, 하고. 지금도 충분히 잘해내고 있다고!



매거진의 이전글 복날을 맞이하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