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돈 사이
처음 만났을 때 엄청나게 아름다운 외모에 나는 본능적으로 끌렸었다. 어차피 사랑과 사람이라는 건 다 제 눈에 안경이라서 남들은 모두들 늙어보인다는 그녀의 눈가에 있던 주름마저도 나에겐 매력이었다. 널 보았던 첫 날 엄청나게 컸던 가슴이 사실은 엄청나게 큰 뽕이었다는 걸 알고나서도 나는 오히려 그녀의 사람다운 모습에 더 끌렸던게 기억이 난다.
네 뽕만큼이나 엄청나게 비싼 밥을 처음 먹고 내가 좋아하던 걸 알고 있었는지 몰랐었는지 폴 바셋에 들어가 차나 한 잔 더 하고 가자던 너의 말을 듣고 조금은 기회가 있다는 걸 느꼈지만 기본적으로 탑재되어 있던 너의 예의바름이었을지도 모른다고 지금은 생각한다.
지하철의 계단을 올라오면서 내 얼굴을 보곤 약간 실망한 기색의 비웃음어린 네 표정이 기억이 난다. 어찌됐든 너는 보통 이상의 외모를 지닌 사람이었기에 어떤 남자든 쉽게 너를 좋아할 수 있었겠지.
그리고 두 번 세 번 만나던 날, 너에게 심하게 도취되어가는 내가 부담스럽다며 그만하자는 말을 했을 때, 어차피 나랑은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라고 처음부터 생각을 해왔던 터라 나에게도 별다른 미련 따위는 없었다.
영화 한 편 밥 세끼 술 몇 잔 전시회 하나 디저트 몇 번이 다였던 데이트였지만 살면서 이런 사람을 또 만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나에겐 행복한 시간이었음을.
그리고 그 뒤로 이주일 뒤 금요일 밤에, 문득 외로움에 못이겨 잠을 뒤척이다 네 생각이 나서 그래도 정말 좋아했다고 내가 먼저 연락하자마자 너는 다음 날 만날 수 있느냐고 물어왔지.
일주일 사이에 뭔가 일이 있었구나.
..라는 생각을 하기도 전에 나는 당연히 그러자고 했고 우리는 만나서 일주일치 이상의 시간을 보냈지. 와인과 한강. 돗자리까지 준비해서 가지고 나온 너의 모습을 보고 뭔가 작정하고 나온건가 싶었지만 그런 너의 얄팍한 마음이라도 나에겐 너무나 기쁜 순간들이었다.
그 뒤로 당연하게도 나는 너에게 더 급속도로 빠져들었지.
알고보니 나를 만나지 않았던 그 일주일동안 너는 다른 남자를 소개 받았고 정말 용납할 수 없을 정도로 한심한 외모에 치가 떨리던 와중에 나에게 연락이 온 거라고 너는 그 남자와 본 영화와 나랑 본 영화를 헷갈려가며 대답을 했다.
그런데 용납할 수 없을 정도로 한심한 외모라는게 있기는 한가 싶다가도 같이 있으면 쪽팔리지 않을 정도의 외모면 된다는 대개의 여성들의 이성을 만나는 기준이 문득 생각이 나, 그러려니 하게 되었지.
살면서 여자에게 쓸 수 있는 돈의 리미트가 있진 않겠지만 아마 내가 가장 돈을 많이 썼던 여자였을거야 너는.
물론 너의 기준에선 평균에도 못미치겠지만.
한 번은 너에게 꽃을 선물하고 싶어서 인터넷으로 주문하면 현장에서 받을 수 있는 꽃배달 서비스를 신청했었지. 영화를 보고 나와서 바로 받을 수 있게 시간을 맞춰놨지만 배달하시던 아저씨께서 주문이 밀려, 극장 안에서 조금 시간을 떼워야 했음에 너는 뭔가 의아해하다가도 이내 꽃을 받고는 아이처럼 좋아하던게 기억이 나.
아마 내가 너를 만나면서 가장 행복해하던 너의 표정이었다고 생각해.
내가 지금도 차가 없지만 그 때도 차가 없어서 우리 집에서 대중교통으로 두 시간 넘게 걸리는 너희 집을 신촌에서 꽃다발을 들고 버스를 탄채 바래다줬지만 인증샷까지 찍어서 보내주는 너의 의외의 모습을 보고
아 역시 여자는 꽃인가
라는 생각이 지금까지 박혀버렸지. 기분이 좋다며 그 날 비싼 식당에 날 데려가, 와인을 신나게 마셔대던 너의 모습이 아직도 선명해.
여름이 다가올 무렵, 광주가 고향이라며 네 친구 하나가 돌잔치를 한다고 했던 날. 둘 다 차가 없던 차에 너는 기차를 타고 혼자 가려고 했지만 굳이 나도 가도 되냐고 물었었지. 너는 흔쾌히 좋다고 했고 우릴 기다리던 광주의 네 오래된 친구들도 드디어 너의 애인을 볼 수 있는거냐고 다들 즐거워했어.
기차나 고속버스를 타고 갈 수도 있었지만 나는 뭔가 너와 함께 승용차를 몰고 여행처럼 다녀오고 싶은 마음이 커서 렌트카 하나를 빌려, 출발 당일 서울에서 결혼식이 있던 너를 픽업해 야간 운전을 시작했지.
이제와서 밝히는 거지만 그런 장거리 야간 운전은 살면서 처음 해본 거였어. 둘 다 아무 사고없이 살아돌아와서 다행이긴 하다만.
서울에서 다섯시간 정도가 지난 후 도착한 광주. 그쪽에 사는 너의 친구가 미리 예약해둔 숙소에 짐을 풀고, 나는 운전으로 너는 결혼식 참석으로 둘 모두 매우 피곤한 상태였지만 우린 다음날 아침까지 잠을 자지 않았지. 너에겐 언제나 나를 열정적이게 만드는 무언가가 있었어.
한 두시간 자고나서 간 돌잔치. 너의 친구들을 만났지만 나의 직업과 외모를 보고는 다들 별다른 말이 없었지.
광주까지 내려온 김에 목포에 들러 하루 더 묵고 가자던 너의 제안에 나는 렌트카 업체에 돈을 지불하고 하루 더 계약 연장을 했었어. 돌잔치를 열었던 친구네 집에서 부족한 잠을 조금 더 자고나온 우리는 저녁 즈음에 목포로 출발해 나는 잘 먹지도 못하는 회를 맛있게 먹었다.
다음날 너를 서울의 너희 집에 바래다주고 우리집에 도착하니 밤 아홉시 쯤이었나? 렌트카 업체는 이미 영업시간이 아니라서 어쩔 수 없이 대여를 하루 더 연장하게 되었고 다음날 낮에 차를 반납하며 우리의 첫 장거리 여행은 그렇게 끝이났다.
잠실과 제네시스 2부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