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할아버지가 된 나와의 만남
‘닷’
나는 그것을 ‘닷’으로 부르기로 했다.
그리고 그 할아버지와 만남은 아마도 오늘이 마지막이다.
2006년 12월 어느 날,
“하… 송희야…”
나는 헤어졌다. 그리고 오늘이 5일째 되는 날이다. 술을 얼마나 마셨는지 모르겠으나 눈앞이 자동차 바퀴처럼 빙글빙글 도는 걸 보니, 20년 인생에서 최대치로 마신 게 분명하다.
“욱…”
오바이트를 몇 번이나 했을까? 몸 어딘가에 남아있는 지난달 먹은 치킨이 입 밖으로 나올 기세다. 또다시 속이 울렁거려 더 이상 걷기가 어려웠다.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았는데 손바닥에 흙이 느껴지는 걸 보니 도로 위는 아닌 것 같았다. 그래서 그대로 바닥에 누웠다.
아무튼 나는 차였다. 그것도 아주 비참하게 말이다. 그래도 어제까진 그녀가 문자에 답장도 해주고 전화도 받아줬는데 이제는 연락이 닿질 않는다.
슬프다.
결혼해서 신혼여행은 어디로 갈지,
아이 이름은 뭘로 지을지,
집 인테리어는 어떻게 할지,
모두 다 생각해 뒀는데 이제 그녀가 없다니…
세상이 무너진 것 같다. 아니, 이렇게 어지러운 걸 보면 세상이 무너진 게 맞다. 아침에 본 뉴스에서 오늘이 올해 겨울 들어 가장 추운 날이라고 했지만, 추위도 잘 느껴지지 않는다. 그래도 여기서 잠들면 ‘이별로 만취해 노상에서 잠자던 20대 숨져’ 헤드라인으로 뉴스에 나올 것 같았다.
지금 여기가 어딘지 알아야 할 것 같아 누운 자세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곤 주변을 봤는데, 머리 오른쪽 윗 편에 달처럼 하얀빛을 내뿜는 간판이 보인다.
“용용한의원…?”
집 근처에 있는 한의원이다. 어찌어찌 여기까진 온 것 같아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하지만 일어날 기운도 없고 너무 어지럽다. 이대로 나는 죽는 걸까…? 마지막으로 딱 한번, 목소리라도 듣고 싶다. 손을 잠바 주머니에 넣어 뒤적거렸으나 핸드폰은 잡히지 않는다.
눈앞이 더 빠르게 돈다. 모르겠다… 그냥 잠이나 자야겠다.
.
.
.
“저기요. 여기서 주무시면 안 돼요!”
2023년 10월 어느 날,
‘띵띠리리- - - 띵띠리리 - - -“
새벽 6시, 그나마 듣기 좋은 알람소리를 찾았지만 역시, 오리지널이 좋다. 소리 나는 방향으로 손을 뻗어 알람을 끄자마자, 솜사탕 같은 사랑스러운 털뭉치가 내 품으로 달려왔다.
“어푸푸퍼푸.. 보리야, 잠까..엎푸...”
마음으로 낳은 3살 딸, 보리. 아침에 반갑게 뽀뽀하는 이유는 2가지가 있다. 하나는 자기가 좋아하는 간식으로 구성된 모닝세트를 달라는 것, 그리고 다른 하난 빨리 산책 나가자는 뜻이다. 아직 꿈나라에 있는 아내가 잠에서 깨지 않도록 손으로 이불을 조심스레 젖혔다. 그리곤 침대에서 내려와 앞꿈치로 사뿐사뿐 걸으며 거실로 나가 보리에게 모닝세트를 줬다.
“끙차”
손깍지를 끼고 기지개를 켜며 몸을 오른쪽 그리고 왼쪽으로 움직였다.
“어휴, 춥네. 양말 신어야겠다.”
어제저녁부터 새벽까지 쏟아 내린 가을비 덕분에 기온이 많이 내려갔다. 맨발에 슬리퍼, 반바지 입고 산책 나가는 게 편한데 이젠 그럴 수 없을 것 같다. 발목까지 오는 두툼한 양말을 신고 무릎이 축 늘어난 트레이닝 바지를 입었다. 괜찮다. 어차피 누구도 신경 쓰지 않을 테니 말이다.
나갈 준비를 끝내니 보리가 현관문 앞에서 신나게 꼬리를 흔들고 있었다. 빨리 나가 잰다. 조심스레 현관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차가운 새벽 공기가 코로 들어오니 정신이 번뜩 든다. 상쾌했다. 한번 더 깊게 숨을 들이켜 마셨는데 한 여름 퇴근하고 집에 도착해 마시는 맥주 첫 모금 같았다.
작가가 되고 싶단 꿈 하나로 호기롭게 퇴사한 지 석 달이 지나고 있다. 정신 못 차리고 나태해질 것 같아 출근할 때처럼 루틴 하게 하루를 보내고 있다.
새벽 6시에 일어나기,
보리와 산책하기,
아침식사 그리고 운동,
독서와 글쓰기,
자격증 그리고 대학원 준비 등등.
인생의 벼랑 끝에 서 있다는 결연한 각오로 나름 성실한 하루를 보내고 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걱정은 커진다. 정말 아무런 준비 없이 무작정 퇴사한 것이 후회된다. 열심히 글을 써보고 있지만 만만하게 봤다. 일로 글을 쓰다는 것은 즐겁지만 정말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오. 준비 다했어? 조심히 다녀와!”
출근 준비를 마친 아내에게 애써 미소를 보이며 잘 다녀오라고 인사했다. 이것저것 걱정이 많지만, 그래도 매번 용기를 주는 아내가 있어 다행이다.
아침부터 걱정 릴레이를 시작하니 머리가 조금 아팠다. 운동을 가야 했지만 우선, 눈앞에 보이는 포근한 침대에 몸을 뉘었다.
“어휴~ 졸려. “
침대는 위험하다. 특히 이 시간엔 말이다. 눕자마자 잠이 오길래 정신을 차리고자 고개를 도리도리 흔들었다.
근데, 최근 신경 쓰이는 게 하나 있는데 그건, 손바닥에 처음 보는 점이 하나 생겼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별생각 없이 넘겼는데 점점 또렷해졌다.
“하… 뭐지?”
침대 옆 탁상에 둔 핸드폰을 손으로 집어 인터넷 검색창을 열었다.
[손바닥에 점이 생기는 이유]
인터넷에 검색하니 썩 마음에 드는 내용은 없었다. 그냥 뇌피셜로, 운동을 너무 열심히 해서 생긴 것이라고 잠정 결론을 내렸다. 고개를 갸우뚱하며 손바닥에 있는 점을 지그시 눌러봤다.
그런 느낌이다. 깜빡 잠이든… 몽롱하고 기운 없이 피곤한 느낌이 들었다. 깊게 잠든 건 아니지만 꿈 속이란 건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이 든 것은 그때였다. 굉장히 추운 느낌이 들어 깜짝 놀라 양손을 겨드랑이에 꼈다.
“후~ 추워. “
나도 모르게 입김을 불었다. 그러자 뿌연 입김이 마치, 담배연기처럼 몽글거리더니 사라졌다. 주변을 둘러봤다. 나는 도로변 어느 횡단보도 앞에 있었는데, 꽤 늦은 시간으로 지나다니는 자동차나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목이 조금 뻐근했는데 고개를 올려 하늘을 봤다. 깊은 새벽 같았고 별 한 쿰 보이지 않았다.
이토록 ‘리얼’한 꿈을 꾼 적 있었나? 아니면, 얼핏 들었던 자각몽이 이런 느낌인가 했다. 팔짱을 낀 채 주변을 다시 두리번거렸다. 저 멀리 하얀색 불빛을 내뿜는 간판이 보였다. 마땅히 할 것도 없어서 다리를 그 방향으로 움직였다. 바닥을 보니 빨간색 그리고 회색 보도블록이 보였다. 어딘가 정감이 갔다. 1분도 안되어 간판 앞에 도착했다.
“용용… 한의원?”
어디서 많이 들은 한의원 이름이다. 인도가 끝나는 길 넘어 화단에 웬 한 남자가 쓰러져 있었다. 대학생 정도로 보였는데 빨간색 점퍼를 입고 있었고 큰 숨소리가 나는 걸 보니 자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 남자가 누군지 곧바로 알아봤다.
”뭐야… 나잖아…? “
그 순간, 내 오른편으로 무언가 인기척이 느껴졌고 고개를 돌렸다.
”허허, 저 날은 많이 힘들었지 “
”… 예? “
내 옆에 한 할아버지가 서 있었다. 키는 나와 비슷했고 체격은 다부졌는데 머리카락 한 올 없이 머리는 반들반들했다. 정돈된 콧수염이 꽤나 잘 어울렸고 뿔테안경을 쓰고 있었다. 옷차림을 보니 단정한 체크남방과 갈색 코르덴바지를 입고 있었는데 할아버지치곤 스타일리시했다.
”누… 누구시죠? “
누구냐는 물음에 할아버지는 살며시 미소를 띠었다. 무슨 잘못을 해도 화내지 않을 것 같은 인자한 표정이었다.
”허허, 나는 눈치가 빠른 편인데 말이야. 아직도 모르겠나? “
”예? “
영화의 한 장면처럼 희미한 달빛이 이곳을 비췄고 할아버지의 얼굴이 조금 더 선명하게 보였다. 낯설지 않았고 얼굴의 왼쪽 광대에 나와 똑같은 흉터가 있었다.
”어…! 어? “
“허허, 우선 저 친구 깨워야 할 것 같네. 저기서 얼어 죽으면 나도 자네도 존재하지 않을 테니깐”
”어? 아… 네…“
할아버지 말에 급히, 빨간 점퍼를 입고 만취해 있는 어린 시절 내가 있는 쪽으로 몇 걸음 옮겨갔다.
그리곤 손을 뻗어 어깨를 쥐고 흔들며 말했다.
“저기요. 여기서 주무시면 안 돼요!”
이 날을 시작으로 50년 뒤,
나를 만났다. 그리고 그와 함께 내 모든 생애를 여행했다.
다가올 미래까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