닷. 50년 뒤, 나와의 만남

2. 스무 살, 이별해서 슬픈 나를 만나다.

by 인프피아재
손바닥에 생긴 점 하나.
과거, 현재, 미래에
우리를 이어줬다.




"저기요 여기서 주무시면 안 돼요!"


꿈이라 확신했다. 하지만 이렇게 추운 겨울, 이별로 만취해 땅바닥에 잠든 나를 지나칠 순 없었다. 지금이 꿈이라도 말이다. 다행히 깊게 잠들지 않아 보였는데, 어깨를 잡고 흔드니 벌떡 일어났다.


"어...!? 아, 네... 감사합니다..."


15년 전 나는 깜짝 놀라며 일어났다. 양손은 허우적거렸고 다리는 꼬여 비틀거렸지만 곧 잘, 집 방향으로 걸어갔다. 상태를 보니 또 어딘가 들어 누울 기세였지만, 걱정은 안 했다. 왜냐? 바로 집에 가서 잤기 때문이다. 이 날을 지나 37살이 된 내가 정확히 기억한다.


꿈, 이건 꿈이라 생각했지만 현실 같은 상황에 기분이 묘했다. 다시 한번 할아버지 얼굴을 천천히 봤는데, 주름졌지만 쌍꺼풀 있는 눈, 작지만 오뚝한 코, 세모난 입, 그리고 얼굴 옆에 있는 흉터, 내가 분명했다.


"이게 어떻게 된..."

나도 모르게 혼잣말을 했는데, 할아버지가 된 나는 특유의 웃음소리를 내며 말했다.


"허허, 나를 깨운 게 자네였구먼, 다행이야. 하마터면 얼어 죽어 아침 뉴스에 나왔을 텐데"

얼어 죽어 아침 뉴스에 나온다니, 생각하는 것도 나와 똑같았다.


"할아버지 이게 어떻게 된 일이죠? 꿈인가요?

"허허, 좀 걸으며 이야기 나누지"


이렇게 추운 날 걷자고? 마음에 썩 내키진 않았지만, 딱히 거절도 어려워 할아버지와 가로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숨을 크게 들이켜 마시니 차가운 공기가 콧속으로 들어왔다. 고개를 돌려 주변을 다시 봤다. 주위에는 사람 한 명 보이지 않았고 찻길에도 자동차 하나 보이지 않았다. 썰렁한 분위기에 추위가 더 느껴지는 듯했다.


"아... 추워..."

"허허, 여기가 꿈이라 생각하면서 추위를 느끼나?"

"그러게요... 꿈인 거 같은데..."


꿈인 것 같다는 내 말에 할아버지는 다시 한번 웃었다. 저 웃음소리도 어느덧 적응됐다. 조금 더 걸으니 큰 사거리가 나왔고, 신호등의 붉은색 빛은 우리를 횡단보도 앞에 멈추게 했다. 6차로나 되는 큰 교차로에 여전히 사람 하나 아니, 개미 한 마리 보이지 않았다.


횡단보도 앞에서 할아버지는 양손으로 뒷짐 지며 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그래, 잠시 여기로 돌아오니 기분이 어떤가?"

"어... 이때..."


몇 년이 지났을까? 기억하기 어려워 마음속으로 손가락을 하나둘 접었는데 무려 15년이 지났다. 오랜 시간이 지나 지금은 웃어넘길 수 있지만, 확실히 인생에서 가장 힘든 날 중 하루였다.


"지금이야 웃으며 이야기할 수 있지만... 이땐, 정말 죽는 줄 알았죠..."

"허허, 맞아, 그랬지..."


신호등이 초록색으로 바뀌었고 우린 횡단보도를 건넜다.


“어이쿠”

할아버지는 길 맞은편에 도착하자 왼 손으로 허리를 짚으며 말했다.


"그래, 오늘을 어떻게 이겨낼 수 있었나?"

"..."


헤어지고 한 달은 매일 혼자 방에 틀어박혀 울었다. 집착하지 않는 게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사랑의 형태라 생각했다. 그리고 나중에 다시 만나면 멋진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 열심히 살았다. 하지만 적어도 5년은 힘들어했고 누군가에게 마음을 열지 못했다. 할아버지 물음에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냥, 시간이 해결해 준 것 같네요..."

"허허, 진부하구먼. “


할아버지는 손으로 내 등을 두어 번 툭툭 치더니 오른손으로 길 한편에 있는 벤치를 가리켰다. 할아버지와 나는 조금 거리를 두고 앉았다. 밤하늘을 다시 올려다봤다. 반달이 환희 빛났고 아깐 보이지 않던 별들도 보였다.


“맞아. 흐르는 시간은 생각보다 많은 일을 해결하지 “

할아버지도 고개를 들어 밤하늘을 올려보며 말했다.


"정말이지. 견딜 수 없는 일이 많았다네, 매번 이겨내려 노력했지"

"... 그런데요?"

"근데 말이야. 힘든 일이 나를 지나가기까지 견디고 버티는 것도 해결이라네"

"아..."


듣고 보니 맞는 말이었다. 시간이 지나 해결한 일들은 사실, 내가 애를 쓰고 견뎌냈기에 가능했다.


"듣고 보니 그렇네요..."


[부르르- 부르르릉-]


아무런 기척 없던 도로 멀리서 파란색 버스 한 대가 우리 쪽으로 다가왔다. 그때였다. 순간 따스한 기운이 얼굴을 감쌌다. 깜짝 놀라 할아버지를 봤는데, 그는 반 투명한 상태로 밝게 빛나고 있었다. 신기함과 무서움이 느껴졌는데 내 손도 반 투명한 상태로 빛났다. 할아버지는 양손을 팔짱 끼고 웃으며 말했다.


"자~ 오늘은 여기까지인 것 같구먼"

"네? 오늘은요? 아니, 그러면 우린 또 만나요?

"허허, 그렇다네"


할아버지는 무언가 아는 눈치였다. 여기가 꿈이던 그렇지 않던, 지금 헤어지면 궁금한 게 너무 많을 것 같았다. 할아버지를 감싸고 있는 빛은 더욱 밝아졌고 급한 마음에 나는 그에게 물었다.


"할아버지, 근데 여긴 어딘가요?"

"허허, 이렇게나 나이를 먹도고 나도 이 현상이 무엇인지 몰랐다네 하지만,“

“하지만?”

“최근에 그 비밀을 풀어냈지”

"오! 그게 뭔가요?"


비밀을 풀었다는 할아버지 말에 나도 모르게 감탄하며 오른손을 꽉 쥐었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말했다.


"허허, 지금은 알려줄 수 없다네"

"엥? 왜요?"

"때가 되면 알게 될 테니 말이야"

"그럼, 만나서 뭘 해야 되죠?"


할아버지는 고개를 끄덕이며 내 오른손을 잡았다. 조금의 축축함 그리고 따스한 온기가 느껴졌다. 꿈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도 생생하다고 느낄 찰나, 할아버지는 내 물음에 말했다.


"인생에서 중요한 순간을 나와 함께 여행할 것이네, 그리고"
"그리고?"
"오늘처럼 위험한 상황에 놓여 있다면 우리가 도울 것이네"


할아버지와 나는 더욱 환하게 빛나며 투명해졌는데 이젠 형태를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였다. 묻고 싶은 게 많았지만 직감적으로 이 상황이 곧 끝난다는 것을 알았다.


*저는 꿈을 이루나요? 작가로 성공해요?"


편안한 톤의 베이지 색 천장, 다시 눈을 떴을 땐 내 방에 누워있었다. 잠에서 깬 듯한 느낌이지만 꿈이라 확신할 수 없었다. 손바닥, 손바닥을 봤다. 점이 사라져 있었다.





며칠이 지났고
손바닥에 다시 점이 생겼다.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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