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다섯 살, 길 잃은 나를 만나다.
"밖에 나오지 말고, 기다려? 알았지?"
전화를 받은 엄마는 급히 집을 나갔다. 몰래 통화를 엿들었는데, 동생이 유치원에서 다쳤나 보다. 나는 엄마가 어디로 갔는지 알고 있다. 나와 동생이 자주 다니던 큰 병원. 집 앞에 큰길을 따라 주욱 걸어가면 나온다. 찾아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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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어디야... 어딨어..."
너무 무섭다. 왜 내가 여기 있는지 모르겠다. 눈물 그리고 콧물이 하염없이 쏟아져 내렸다.
"꼬마야! 너 혹시, 길 잃어버렸니?"
"... 사례금 30만 원..."
매주 화요일은 분리수거 날,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으로 내려갔는데 처음 보는 전단지가 벽에 붙어 있다. 양손에 재활용품 꾸러미를 들고는 뚫어저라 볼 수밖에 없었는데, 그 이유는 그 이유는 '강아지를 찾습니다'라는 빨간색 문구가 보였기 때문이다.
"요크셔테리어... 11살... 사람 잘 따름..."
요즘엔 시스템이 잘 갖춰져 일부러 버린 게 아니면 금방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얼마나 슬프고 불안할까? 플라스틱과 캔이 든 바구니를 내려놓고 핸드폰을 주머니에서 꺼냈다.
[전단지 보고 문자 드립니다. 오고 가며 잘 살필게요. 건강하게 돌아왔으면 좋겠습니다. 힘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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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자에 답장은 없었다. 딱히 답장을 바란게 아니지만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면 좋겠다.
추운 날 분리수거하는 것은 꽤나 귀찮은 일이다. 재빨리 집으로 들어와 포근한 침대에 누웠다. 어제 이불 빨래를 해서 그런지 맡기 좋은 향기가 코로 들어왔다.
"흠..."
그나저나 그 '현상'은 도대체 정체가 뭘까? 확실한 것은 꿈이 아니라는 것이다. 유일하게 이 비밀을 알고 있는 것은 할아버지가 된 나일뿐이다.
익숙한 '그 느낌'이 다시 들었다. 순간 졸음이 밀려왔고 나는 손바닥을 봤다. 점이다.
"큽"
도대체 몇 도일까? 강렬한 햇빛이 정수리를 강타했고 바닥에 아스팔트는 들끓었는데 30도는 족히 넘을 무더운 날씨였다. 숨을 쉴 때마다 뜨거운 공기가 기관지로 들어와 나도 모르게 '큽'소리가 났다.
주변을 둘러봤는데 길 건너편 큰 병원이 보였다.
"아! 여기 유치원 때 살던 곳이네?"
서울에 있는 한 동네. 저기 보이는 큰 병원은 어린 시절 유치원만큼 자주 가던 병원이다. 그리고 오늘은 무슨 일로 여기에 왔는지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아...~ 그날이구나?"
신호등이 빨간색에서 초록색으로 바뀌었다. 길을 건너며 반대편을 바라보니 병원 정문 앞에 할아버지가 보였다. 그는 병원의 경비원과 무언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인상을 쓰며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횡단보도를 건너 나는 할아버지를 불렀다.
"할아버지!"
내 부름에 할아버지는 경비원과 인사하고 내 쪽으로 걸어왔다.
"아~ 할아버지. 덥네요."
"어... 그렇구먼."
할아버지는 내 얼굴은 보지도 않고 어딘가를 계속 두리번거리고 손으로 입을 만지며 대답했다.
"할아버지 왜 그러세요?"
왜 그러냐는 물음에 할아버지는 손목에 차고 있던 시계를 보더니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휴... 오늘이 무슨 날인지 알고 있지?"
"네, 알 것 같네요."
그렇다. 오늘은 내가 길을 잃어버린 날이다. 이렇게 확신할 수 있는 이유는 오늘의 몇몇 장면이 아주 생생하게 기억나기 때문이다.
"할아버지, 근데 저희가 찾지 않아도 괜찮아요~ 그날 어떤 누나들을 만나서..."
내 말을 듣던 할아버지는 오른손을 들며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말했다.
"아니야. 그리 간단하지 않네"
"네? 왜요?"
몇 번이나 함께 과거를 여행했지만 오늘처럼 단호한 모습은 처음이라 낯설었다.
"미래가 결정되어 있어도 그 일은 아직 발생하지 않았네."
"아... 그렇죠?"
"그래서 그 일이 일어나도록 우리가 무언가 해야 된다네"
"예? 안 하면요?"
할아버지는 반들반들한 머리를 손으로 만지며 말했다.
"... 미래가 바뀔 수 있다네. 상상하지 못할 정도로 말이야."
"!?"
"(그리고... 그날 기억이 전부가 아니기도 하고...)"
"네?"
할아버지는 혼잣말을 하더니 오른손으로 내가 건너온 횡단보도를 가리킨 후 걸어가기 시작했다.
"아마도 저기로 곧 올 거야."
"누가요?"
"우리 엄마"
이글거리는 날씨로 거리 곳곳에 아지랑이가 피어올랐다. 양손으로 햇빛을 가리며 횡단보도 반대편을 보니 한 여자가 안절부절못한 모습으로 서 있었다. 바로 우리 엄마다. 엄마는 신호가 바뀌자마자 우리가 있는 쪽으로 달려왔다.
"저기... 호... 혹시 근처에서 남자... 애... 아니, 꼬마애 못 보셨어요?"
엄마에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 있었는데, 슬픔과 답답함 그리고 분노도 느껴지는 모습이었다. 옆에 있던 할아버지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니요. 근데, 경찰애 신고는 하셨나요?"
"아... 정신이 없어서 아직 경찰엔..."
"그렇군요. 우선 경찰에 신고부터 하세요. 어머니."
"아... 네..."
엄마는 할아버지와 이야기를 나누더니 고개를 꾸벅이며 인사를 하고 어디론가 달리기 시작했다. 내가 기억하기로 근처에 작은 파출소가 하나 있었다. 여기서 뛰어간다면 3분도 걸리지 않을 것이다.
"지구대, 아니. 파출소로 간 거죠?"
"맞아. 저렇게 정신없을 때, 가장 먼저 해야 할 일도 떠오르지 않는 법이니..."
"... 그렇죠."
할아버지와 나는 이야기를 나누며 길 건너편 상가들이 모여있는 곳으로 향했다.
"그때, 우리가 만난 여학생들 나이가 어느 정도로 보였지?"
"어... 글쎄요... 대학생 같았는데..."
"또 기억나는 게 있는가?"
"그리고... 맞아. 기찻길. 기찻길 근처였어요."
"맞아. 그랬지."
그때, 한 건물에서 대학생으로 보이는 여자 2명이 나왔다. 너무 오래전 일이라 그녀들이 나를 찾은 사람인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2명은 분명했기에 우선 말을 걸어봤다.
"저기! 안녕하세요!"
"네?"
갑작스러운 내 인사에 여대생 2명은 흠칫하며 놀랐다. 그리곤 경계하는 눈빛으로 나와 할아버지를 바라봤다.
"아. 저기 다른 게 아니라..."
"... 네?"
"여기 근처에서 꼬마 남자애가 없어졌나 봐요. 혹시 보시면, 경찰에 신고 좀..."
내 말을 듣던 한 여대생은 손으로 입을 가리고 깜짝 놀라며 말했다.
"야! 어떡해. 뉴스 안 봤어? 요즘 우리 동네에 유괴범 있다며!"
유괴범이라는 말에 순간 놀랐지만, 내가 유괴된 적은 없어 크게 걱정되진 않았다. 하지만 옆에 있던 할아버지가 작은 소리로 내게 말했다.
"(막아야 한다네, 시간이 얼마 없어.)"
"(네!?)"
할아버지는 갑자기 앞으로 나서며 여대생들에게 물었다.
"저기, 학생들 여기 근처에 기찻길이 어딨죠?"
"기찻길이요?"
그중 한 여대생이 손으로 한 방향을 가리키며 말했다.
"기찻길은 저쪽으로 쭉 가시면 돼요."
"허허, 고마워요."
할아버지는 미소를 띠며 고마움을 표현한 것과 다르게 곧장 여대생들이 가리킨 방향으로 빠르게 걸어가기 시작했다.
"할아버지! 막아야 한다니 무슨 말이에요?"
"설명할 시간이 없어. 미안하네.'
"아니... 그래도..."
답답함이 섞인 내 볼멘소리에 할아버지는 가던 걸음을 잠시 멈추고 말했다.
"이날 자네가 기억하는 게 전부가 아니란 말이네."
"... 네?"
"그리고 시간이 없다네"
할아버지는 다시 걷기 시작했다. 분위기를 보아하니 더 이상 캐묻기는 어려웠다. 그렇게 여대생들이 알려준 방향으로 조금 더 걷다 보니 양갈래로 나눠지는 골목이 보였다.
"... 이쯤에서 따로 찾아보자고."
"그럴까요? 저는 이쪽으로 가볼게요."
"그래, 난 이쪽으로. 몸 조심하게."
"... 네"
나는 기찻길 방향으로 골목 여기저기를 뛰어다녔다. 핸드폰만 있으면 어디든 쉽게 찾아갈 수 있겠으나 90년대니 그런 건 기대할 수 없었다. 무더운 날에 사람도 없어 오로지 감각에 의지해 기찻길을 찾아다녔다.
"어! 헉... 헉..."
숨이 꼴깍 넘어가던 찰나, 눈앞에 기찻길 옆에 있는 방음벽이 보였다.
"여기... 여기가 맞아...!"
30년도 지난 일이지만, 기찻길과 방음벽. 그리고 이 길 어딘가에서 울던 모습은 또렷이 기억났다. 나는 좌우를 두리번거리며 그 길을 계속 걸어갔다.
"으아앙---"
방금 지나친 골목에서 남자아이 울음소리가 들렸다. 나는 발걸음을 멈추고 다시 돌아 그쪽으로 향했다. 골목에 도착하자 저 멀리 남자 꼬마아이가 울고 있었다. 멀리 있었지만 단번에 알아볼 수 있었다. 바로 나다. 하지만 웬 아저씨와 함께 있었다.
"엥? 저런 아저씨도 만났었나?"
나는 아무런 이유 없이 본능적으로 주차된 트럭 뒤에 숨었다. 남자는 모자와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요즘에는 미세먼지나 코로나로 마스크 쓰는 게 자연스럽지만, 이땐 그렇지 않았다. 누가 보더라도 수상한 모습이었다.
"꼬마야. 길 잃었지? 아저씨가 데려다줄게~"
멘트는 친절했지만 태도는 그렇지 않았다. 그 아저씨는 4살짜리 내 팔을 잡아끌며 자신의 차에 태우려 했다.
남자의 정체가 뭔지 몰라도 이젠 나서야 할 것 같았다.
"저기요! 아저씨, 얘 알아요?"
나의 갑작스러운 등장에 남자는 깜짝 놀라며 자신의 차에 타려 했다. 나는 잽싸게 뛰어가 그의 어깨를 붙잡았다.
"뭐야? 당신. 유괴범이야?"
유괴범이냐는 내 물음에 남자는 자신의 바지 뒷 주머니에서 손바닥만 한 칼을 꺼냈다.
"이거 놔."
"!?"
칼을 보니 다리에 힘이 풀렸다. 하지만 여긴 현실이 아닌 과거. 그리고 꿈이 아닌 그 어딘가. 만화 속 주인공처럼 용기를 내어 그의 양팔을 붙잡았다.
"꼬마야! 도망가!"
"으아앙---"
도망치라는 내 말에 4살짜리 나는 울며 기찻길 쪽으로 뛰어갔다. 이 상황을 기억하지 못한 건 어린 시절 내가 너무 무섭고 놀랐기 때문인 것 같았다. 이걸 트라우마라고 하나보다.
몸싸움은 길어졌다. 남자는 호리호리한 체격으로 굉장히 말랐는데, 마스크 위로 보이는 눈엔 살기가 느껴졌고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힘에 셋다. 어느새 나는 바닥에 드러누워 그의 공격을 막는데 급급했다.
"살려... 살려주세요!"
아무리 여기가 현실이 아니더라도 칼에 찔리는 건 사양이었다. 나는 있는 힘껏 소리를 질렀다.
"윽!"
몸에 힘이 풀려가던 그 순간, 남자의 뒤에서 누군가 양 팔로 목을 잡아챘다.
"하... 할아버지!"
할아버지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 순간, 나와 할아버지는 하얗게 빛났다.
"아악-!"
마치 악몽을 꾸다가 깬 것처럼, 나는 소리 지르며 일어났다.
"헉... 헉... 뭐야..."
손과 겨드랑이에는 땀이 가득했고 심장은 쉴 새 없이 쿵쾅거렸다.
"뭐야... 다시 돌아온 거야?"
[띠링-]
적막한 방안에 핸드폰 알람이 들렸고 문자가 하나 왔다.
[덕분에 방금 제리 찾았어요! 정말 힘들었는데 응원해 주셔서 감사해요!]
"야. 안 되겠다. 우리도 좀 찾아보자."
"에이? 굳이? 알아서 찾겠지~"
"야. 너도 알지? 얼마 전에 나 톰 잃어버렸다가 찾았잖아."
"아..."
"혹시 모르니깐 도와주자... 어려운 일 아니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