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여덟 살, 부부싸움에 상처받은 나를 만나다.
손바닥에 생긴 점 하나.
과거, 현재, 미래에
우리를 이어줬다.
"이딴 식으로 한다 이거지? 그래! 혼자 살아봐!"
맛있게 먹던 된장찌개가 바닥에 널브러졌다. 나보다 3살 어린 여동생은 얼굴이 눈물, 콧물로 범벅이 돼버렸다. 아직 화가 덜 풀린 아빠는 바닥을 뒹굴던 밥그릇을 들어 엄마에게 던지려 했다. 나는 "안 돼요!"라고 소리치며 있는 힘껏 아빠의 팔을 붙잡았다.
엄마도 화가 머리끝까지 났나 보다. 성큼성큼 거실로 걸어가더니 커다란 가방을 가져와 장롱에 있던 옷들을 뭉텅이로 넣었다. 그리고 어깨에 메더니 아빠와 나를 밀치며 밖으로 나갔다.
"아빠... 엄마 어떡해..."
"몰라 이 새끼야!"
집에서 불장난 친다가 걸렸을 때도 화내지 않았던 아빠가 나한테 욕을 했다. 이걸 본 동생은 더욱 크게 울었다. 엄마도 없고 무섭다. 나는 동생의 손을 붙잡고 집 밖으로 나가 소리쳤다.
"엄마!! 어디 갔어!! 엄마!!"
검은색 철로 된 대문을 열고 고개를 왼쪽으로 돌려 골목 끝을 봤는데, 엄마는 보이지 않았다. 나는 동생과 바닥에 주저앉았다.
“흑흑... 엄마 나가지 마...”
나는 고개를 숙이고 눈물을 흘렸다. 하도 소매로 눈을 닦아서 그런지 눈 밑이 쓰다렸다. 나 때문이다. 내가 엄마, 아빠 말을 잘 들었다면 이런 일 없었을 텐데... 갑자기, 나와 동생을 비추고 있던 가로등 노란 불 빛이 어두워져서 앞을 봤다. 얼굴은 잘 안보였지만 어떤 아저씨가 서 있었다.
“꼬마야. 여기서 뭐 해?"
오전 7시, 퇴사하고 운동은 오전에 다니고 있다. 헬스장에 도착해서 스트레칭 존(ZONE)으로 갔다. 오늘은 등 운동을 하는 날, 손으로 벽을 짚고 등 근육을 늘려본다.
"끙..."
운동으로 아침을 시작하는 것뿐만 아니라 퇴사하고 좋은 점은 여러 가지다. 특히, 누군가와 갈등관계에 놓이지 않는 게 제일 좋았다. 문뜩 나는 왜 갈등이 싫은지 궁금했다. 하지만, 그런 고민할 시간이 없다. 가장 큰 힘을 써야 할 데드리프트를 해야 하니깐.
따스한 물로 샤워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신상 기구들을 맘 껏 사용하고 씻을 수도 있다니... 새삼 헬스장 요금은 비싼 게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졸렸다. 그리고 익숙한 느낌이 들어 손바닥을 봤다. 점이다. 점이 생겼다. 생각해 보니 이 점은 항상 잠들기 직전에 생긴다. 오늘은 내 어린 시절 어디로 돌아갈까? 설레는 마음으로 그 점을 눌렀다.
"흐... 가 볼까?"
눈앞에 낡은 전봇대가 보였다. 고개를 들어보니 요즘엔 보기 힘든 쨍한 주황빛이 나를 비추고 있었다. 전등 주변엔 정리가 안된 전선들이 거미줄처럼 꼬여있었다. 바닥을 보니 빛바랜 낙엽이 겹겹이 쌓여 있었고 입김이 나올 정도로 쌀쌀했다.
사람 두 명이 나란히 걷기엔 좁은 길. 그곳을 지나니 어린 시절 뛰어놀던 집 앞 골목길이 보였다. 바라보는 곳곳마다 조각난 퍼즐이 맞춰진 듯 기억나 아련함이 느껴졌다.
"어! 여기다!"
군데군데 녹슬었지만 꽤나 튼튼해 보이는 검은색 대문. 내가 어린 시절 살던 그 집이다. 잠금장치가 있었으나 손으로 살며시 대문을 밀어봤다.
[끼이이익-]
소름 끼치는 날카로운 소리가 밤공기를 갈랐고, 순간 미간이 찌그러졌다. 열린 문틈으로 안을 들여다니 4층으로 된 연립주택이 보였다. 기억하기로 맨 위층에는 주인댁, 3층은 아무도 살지 않았고 2층에는 혼자 사는 할아버지, 그리고 반지하에 우리 가족이 살고 있었다. 추억에 잠겨있던 그때, 누군가 작게 속삭였다.
"(자네...! 잘 찾아왔구먼...?)"
"어! 할아버지!"
기억 못 할 사람들을 위해 말하자면 이 할아버지는 50년 뒤, 나다. 내 손바닥에 생긴 점으로 함께 과거를 여행하고 있다. 아무튼 할아버지는 개미도 못 들을 작은 소리로 날 불렀고, 내가 반가운 마음에 큰 소리 내자 그는 눈을 크게 뜨며 오른손 검지를 입에 붙였다.
"(쉿...)"
"(... 어어... 네...)"
2층 현관문 앞에서 할아버지는 이쪽으로 오라며 손짓했다. 나는 뒤꿈치를 들어 조심스레 계단을 올라 집 안으로 들어갔다.
[칙이이이익---]
주방에 있는 압력솥은 밥이 다됐다는 신호를 줬고, 고소한 밥 향기가 났다. 거실엔 지금은 보기 힘든 커다란 브라운관 TV가 있었고, 옆으로는 유리그릇과 찻잔을 넣어두는 차단스도 보였다. 방바닥은 따스했는데 누워서 한숨 자고 싶었다. 할아버지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아니, 할아버지 오늘은 왜 이렇게 조심하세요?"
"허허, 자네가 호들갑 떨다 들킬까 봐"
"... 네"
유난히 오늘은 조심스러운 할아버지가 어색했지만 곧바로 나도 목소리를 낮췄다.
"그래서... 오늘은 뭘 해야 돼요?"
"잠깐, 기다리게."
[우당탕탕- 쨍그랑-]
갑자기, 아랫집에서 무언가 깨지는 소리가 났다. 그리고 잠시 후.
[으아앙!!!]
한 남자아이가 소리치며 우는 소리가 들렸다. 아래 반지하에는 우리 가족이 산다. 그러니 저 울음소리는 어린 시절 내가 우는 것이다. 그리고 어떤 상황인지 대충 짐작 갔다.
"... 무슨 상황인지 알 것 같아요. 말리면 안 되죠?"
"허허, 배움이 빠르구먼? 잠시 기다려보지"
우리는 2층 창문으로 아래를 바라봤다.
"... 그래도 둘이 치고받고 싸우진 않았어요."
"맞아. 그랬지..."
"이제 곧..."
"이딴 식으로 한다 이거지? 그래! 혼자 살아봐!"
어떤 여자가 소리 질렀고, 잠시 후 누군가 큰 가방을 어깨에 메고 집에서 나왔다. 우리 엄마다. 지금은 꽤나 온화하지만 저땐, 무섭고 성질이 사나웠다.
"엄마!! 어디 갔어!! 엄마!!"
그리고 잠시 후, 한 남자아이가 엄마를 찾으며 달려 나갔고 옆엔 여자 아이도 있었다. 바로, 나와 내 여동생이다. 옆에 있던 할아버지는 내 등을 툭 치며 말했다.
"자, 이제 우리가 나설 차례야. 나는 아빠를 만날 테니 자넨 애들을 만나보게"
할아버지와 떨어져 다닌 적 없는데 갑자기 단독행동이라니... 순간 당황했다.
"에? 왜요?"
"허허, 오늘은 시간이 없다네. 그러니 따로 움직이지"
"에? 애들한테 뭐라 해요?"
"허허, 그냥 하고 싶은 대로 하게!"
할아버지는 말이 끝남과 동시에 현관문을 나갔다. 내가 기억하기로 이땐, 초등학교 1학년 때다. 8살짜리 나한테 뭐라고 해야 할지 고민됐다. 하지만 시간도 없다니... 별다른 대책 없이 우선 밖으로 나갔다.
계단을 내려가 왼쪽으로 돌아 앞에 보이는 대문으로 걸어갔다. 검은색 철문 앞에는 단정한 바가지 머리를 하고 안경을 쓴 8살짜리 내가 있었고 그 옆에는 5살짜리 여동생이 있었다. 둘은 쭈그려 앉아 훌쩍거리고 있었다. 나는 조심스레 다가가 8살짜리 나에게 말을 걸었다.
"꼬먀야. 여기서 뭐 해?"
"..."
뭐 하냐는 내 물음에 나와 동생은 대답하지 않았다. 낯선 사람이 말을 걸어 무서웠는지 몰라도 8살짜리 나는 동생 손을 꽉 쥐고 있었다. 말투가 너무 딱딱했나 싶어 이번엔 부드럽고 상냥하게 말했다.
"얘, 무슨 일 있니~?"
"... 엄마 기다려요."
"엄마?"
"네"
8살짜리 나는 고사리 같은 손으로 눈물을 훔치며 엄마를 기다린다고 말했다. 얼마나 눈물을 닦았는지 소매는 까맣게 젖어 있었다. 이전에도 엄마, 아빠가 말다툼은 자주 했지만 오늘처럼 밥상이 뒤집어지고 엄마가 짐 싸서 집을 나간 일은 처음이었다. 지금이야 웃어넘길 수 있지만, 내가 기억하기로 이 날은 어린 시절 가장 무서웠던 경험 중 하나였다.
"엄마가 왜?"
"아빠랑 싸우고 집 나갔어요..."
"..."
얜 모르지만 나는 알고 있다. 잠시 후에 무슨 일이 생길지 말이다. 하지만 굳이 그걸 이야기할 필요 없었다. 그것보단 지금은 8살짜리 나와 그저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과거를 여행하는 일을 몇 번 했지만, 오늘처럼 대화가 길어지는 것은 처음이다. 잠시, 할 말을 고르고 있을 때 8살짜리 내가 말했다.
"우리가 말 안 들어서 그래요..."
"왜 그렇게 생각해?"
"우리가 엄마, 아빠 말 잘 들었으면 싸우지 않았을 거예요."
온종일 웃기에도 시간이 부족할 8살, 그런 꼬맹이가 고개를 푹 숙이며 스스로 탓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니 굳이 애들 앞에서 전쟁을 치른 엄마, 아빠가 한심했다.
"아니야, 너흰 잘못한 거 없어. 엄마, 아빠가 잘못한 거야."
"... 서로 사랑하는데 왜 싸워요?"
"엄마, 아빠도 사람이라 그래. 사람은 항상... 지나고 후회하거든."
어린 시절 나는 울음을 그치고 나를 또렷이 보고 고개를 갸웃했다.
"... 후회가 뭐예요?"
"음... 다시 돌아갈 수 없어서 속상한 거?"
후회라는 단어를 이렇게 배웠다는 사실에 묘한 기분이 들었다. 아이들이 좋은 말만 배우고 이해하며 사는 건 어렵지만, 나쁜 말들은 최대한 늦게 배우고 경험하는 게 좋지 않을까 생각했다.
"엄마가 아빠 혼자 잘 살아보래요... 엄마가 돌아오지 않을 것 같아요..."
"아니야. 화나서 그래"
"..."
"어른들이 화나서 하는 말은 거의 다 거짓말이거든~"
어린 시절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옆에 있던 여동생은 울음을 그치고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나는 고개를 돌려 골목 끝을 바라봤지만 아무도 없었다.
"저는 엄마 아빠가 싸우는 게 싫어요."
"그래, 맞아. 나도 그래 갈등..."
속상한 단어는 조금이라도 늦게 알려주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오늘 후회를 배웠으니 갈등이란 말은 다음에 배우길 바랐다.
"맞아. 아저씨도 사이좋게 지내는 게 좋아"
"..."
"꼬마야, 엄마 아빠가 사이좋게 지내기 위해 우리가 해볼 수 있는 게 있을까?"
.
.
.
"얘들아!!!"
엄마다. 골목 끝에서 어린 시절 나와 그리고 동생을 부르는 엄마의 목소리가 들렸다. 작별인사 할 시간은 없었다. 나는 8살짜리 나와 여동생의 머리를 손으로 만지며 말했다.
"또 보자"
대문 안을 들여다봤는데 할아버지가 보였다. 할아버지는 아무 말 없이 들어오라는 손짓을 했고 나는 재빨리 대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우린 2층 집으로 들어갔다.
"어? 벌써?"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니 할아버지와 나는 반투명하게 하얗게 빛나기 시작했다. 평소에는 2~3시간은 과거에 머물렀는데 오늘은 벌써 현실로 돌아가는 것 같았다. 아빠를 만난 할아버지는 어땠는지 궁금해 물었다.
"할아버지, 아빠랑은 어떠셨어요?"
"허허, 그건 아빠한테 직접 물어보게"
오랜만에 본가에 왔다. 결혼해서 멀리 떨어져 살고 있지만, 자주 만나는 게 효도라고 생각해 두 달에 한 번 정도는 본다. 점심을 어떡할지 한껏 토론을 하다가 엄마, 아빠 의견이 엇갈렸다.
"아니, 여보 그냥 짜장면이나 시켜 먹자니깐?"
"에~ 뭔 짜장면이야! 나가서 먹어야지!"
아. 참고로 엄마, 아빠는 그날 이후로 나와 동생 앞에서 싸우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는 다투더라도 우리가 보는 곳에선 싸우지 않았다. 아무튼 나가서 먹기로 결정하고 나와 아빠는 집 밖으로 먼저 나와 엄마를 기다렸다.
그리고 나는 아빠에게 물었다. 그날 할아버지와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이다.
"아빠, 옛날에 아빠가 밥상 엎은 날 기억나?"
"어? 그거 아직도 기억해? 아들 미안해~"
"그날 위층에 살던 할아버지가 내려왔다고 했잖아. 뭐라셨어?"
"아~ 그 치매 있던 할아버지?"
.
.
.
"아빠 잘 지냈어요?"
"예? 아... 할아버지... 소란 피워 죄송합니다."
"오랜만이에요. 보고 싶었어요."
"..."
"저는요. 두 분한테 혼나는 것도 속상했지만 엄마, 아빠가 싸우는 게 제일 무서웠어요."
"..."
"괜찮아요. 누구나 실수해요. 그리고 오늘 일은 되돌릴 수 있어요."
아들아.
그날 이후로 깨달은 게 있는데,
자식 잘 키우는 방법은 다른 게 아니라
하지 말아야 할 행동은 하지 않는 것.
그게 잘 키우는 거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