닷. 50년 뒤, 나와의 만남

3. 열한 살, 얼굴을 다친 나를 만나다.

by 인프피아재
손바닥에 생긴 점 하나.
과거, 현재, 미래에
우리를 이어줬다.





"깔깔~~~ 넌, 나한테 안돼!!"


열받는다. 우리 학교에서 자전거는 내가 제일 잘 타는데, 웬 처음 보는 녀석에게 세 번 연속으로 졌다. 얼굴은 화끈거리고 심장이 제멋대로 쿵쾅거린다.


"우씨!!! 한 번 더해!!!"


주먹을 불끈 쥐고 씩씩 거리며, 다시 한번 붙자 했고 녀석은 승낙했다. 계속 지는 이유를 생각하니 내리막 길에 겁먹고 페달을 살살 밟았기 때문이다. 이번엔 최고로 힘껏 밟아야겠다.


[하나~ 둘~ 셋~ 시작!]


엉덩이를 들어 힘차게 페달을 밟았다. 이번엔 그 녀석이 내 눈앞에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 내가 이기고 있다. 역시, 우리 학교에서 자전거를 가장 잘 타는 건, 바로 나다!


"어.. 어..! 어!!!"


기쁨의 순간도 잠시, 이쯤에서 속도를 줄여야 하는데 브레이크가 안 먹힌다.


[빵------!]


큰일 났다. 내리막길 끝에 커다란 트럭이 보인다.


"아악!!! 브레이크가 안 잡혀!!"


"위험해!"


.

.

.


따듯하지만 낯선 느낌이 얼굴을 뒤덮는다. 1초도 지나지 않아 왼쪽 눈 밑이 저릿하다. 재빨리 얼굴을 만졌는데 뻘건 피가 손에 흥건하다. 나와 부딪힌 아저씨는 신음소리를 내며 옆에 쓰러져있다. 무섭다.


"으아앙~~!!! 엄마!!"






"자기야, 나 얼굴에 흉터 잘 보여?"

"아니? 잘 안 보이는데?"


만화 원피스(ONE-PIECE) 샹크스처럼, 내 얼굴 광대에도 흉터가 있다. 초등학교 시절, 자전거를 타고 질주하다 넘어져 생겼는데, 다행히 지금은 잘 보이지 않는다.


"야! 너 얼굴에 그 상처 뭐야?"

"얘 무슨, 조폭 같아!"


얼굴에 커다란 흉터. 늘 아이들의 관심과 놀림의 대상이었다. 화나고 슬펐지만 얼굴에 상처는 숨기거나 가릴 수 없었다. 하지만 오랜 시간이 지난 만큼 얼굴과 마음의 상처도 흐릿해졌다.






저녁 10시, 침대에 누웠다. 회사 다닐 땐 정해진 시간에 자고 일어나는 게 당연했지만, 일을 그만두니 그럴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작가란 꿈을 이루고 싶다면 철저한 자기 관리가 필요했다. 그래서 이렇게 규칙적인 하루를 보내려 노력하고 있었다.


그나저나, 하루에도 몇 번이나 손바닥을 확인했지만 '그 점'은 보이지 않았다.


"꿈은 아닌 게 확실한데..."


갑자기 손바닥에 생긴 '그 점'을 만지니 20년 전으로 돌아가 술에 취해 바닥에 자는 나를 깨우고, 50년 뒤 할아버지가 된 나를 만난 '그 일'이 꿈은 아니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 점'은 이젠 없고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그냥 꿈인가..."

눈꺼풀이 무겁다. 그리고 머리가 멍해지는 걸 보니 졸린 듯했다.


"잠이나 자야지..."

크게 하품하며 흐리멍덩한 눈으로 아무 기대 없이 손바닥을 봤다.


"... 어!?"

점이다. 그 '점'이 다시 나타났다. 나는 재빨리 그 점을 손으로 눌렀다.






"헙, 콜록- 콜록-"


따스함. 아니, 이마에 땀이 맺힐 정도로 더움이 느껴졌고, 퀴퀴한 모래 먼지가 콧속으로 밀려 들어와 반사적으로 기침이 나왔다.


"여기가 어디지...?"


인상을 찌푸리고 고개를 좌우로 돌리며 주변을 살폈다. 발아래로 노란 흙모래가 보였고 사방엔 먼지가 가득했다. 왼편에 그물망 없는 낡은 축구 골대가 보였고 저 멀리 세종대왕 동상도 보였다.


"어! 우리 학교네?"


앞에 보이는 스탠드 그리고 건물과 시계탑을 보니 내가 다니던 초등학교라 확신했다. 시계는 3시 55분을 가리키고 있었는데 수업이 끝나고 시간이 꽤 지났는지 몇몇의 아이들만 삼삼오오 모여 있었다.


잔디가 아닌 흙모래가 깔려있고, 운동장 한편에 폐품 수집하는 초록색의 커다란 트레일러가 보였다. 때문에 여긴 현재가 아닌 과거 어디쯤이라 생각했다.


학교 정문 쪽으로 걸었다. 어린 시절 다니던 문방구 그리고 분식점이 보였다. 달콤히 입맛을 돋우는 향은 떡볶이 냄새가 분명했다. 길바닥에 신문지 한 장이 떨어져 있어 손으로 집어 오른쪽 윗 편을 봤다. 1995년 6월 3일, 내가 초등학교 4학년 때다. 그렇다. 또다시 과거로 돌아왔다.


순간 인기척이 느껴져 뒤 돌아봤다. 기다란 집게, 까만 비닐봉지를 양손에 들고 있는 한 할아버지가 나에게 다가왔다. 또 만났다. 기억하지 못할 사람을 위해 말하자면 이 할아버지는 50년 뒤, 나다. 반가운 마음에 나도 모르게 소리쳤다.


"어! 할아버지!"

"허허, 또 만났구먼 거기 우유갑 좀 줍게"

"아... 넵"


오른편 바닥에 옆구리 터진 우유갑이 보였다. 두세 걸음 걸어가 허리를 숙여 우유갑을 주었다. 할아버지는 내 앞으로 비닐봉지를 가져오며 고개를 끄덕였다.


"안녕... 하세요?"

"어떤가? 확실히 꿈은 아니지?"

"어... 그런가..."

"허허~"


조금은 고전적인 방법이지만, 오른손으로 왼손 등을 살짝 꼬집어봤다. 아픔이 느껴지길래 여긴 꿈이 아닌 현실이라 확신했다.


"여기... 제가 다니던 초등학교 같은데..."

"허허, 잘 알고 있구먼"

"여긴 또 무슨 일로 온 거죠?"


내 물음에 할아버지는 웃음을 멈추고 왼쪽 검지 손가락으로 정문 앞 언덕을 가리켰다. 나도 고개를 돌려 그쪽을 바라봤다.


언덕에서 엄청난 속도로 자전거 한 대가 내려오고 있었다. 넘어지면 최소, 팔 하나는 부러질 것 같았는데 생김새를 보니 초등학교 4학년 짜리 나였다. 그리고 큰 문제가 있었는데 바로 언덕 아래로 큰 트럭이 들어오고 있었다. 장담컨대 부딪치면 팔 하나로 끝날 일이 아니었다.


"아니, 저 미친놈이!"


나도 모르게 순간, 입 밖으로 욕이 나왔다. 잽싸게 언덕 아래로 달려가 자전거를 붙잡았다.


"위험해!"


.

.

.


사실 붙잡았다는 표현은 적절하지 않았다. 일종의 교통사고 수준이었는데 정신을 차리니 초등학교 4학년 짜리 나, 그리고 현재의 나는 뒤엉켜 넘어져 있었다. 바닥엔 어린 시절 내가 얼굴이 찢어져 흘린 피가 물감처럼 퍼져 있었다.


"꼬마야... 괜찮니?"

"으앙- 엄마... 엄마..."


괜찮냐는 물음에 '어린 시절 나'는 들어 누워 엄마를 찾으며 울기 바빴다.


"하... 여기서 엄마를 부른다고 오냐?"

"흑... 엄마..."


어린 시절 나와 지금의 나는 바닥에 누워있었는데, 뭘 해야 할지 몰라 당황하고 있었다. 그때, 초록색 번호판이 달린 검은색 승용차 한 대가 우리 옆에 섰다.


"이보게! 둘 다 괜찮나? 빨리 여기 타게나"


할아버지는 굴러나 갈지 모를 낡은 자동차를 어디선가 갖고 왔다. 나는 '어린 시절 나'를 일으켜 세웠다. 다행히 얼굴 말곤 크게 다친 곳은 없어 보였다.


"아악..."

아이를 부축하려 팔을 움직이니 오른쪽 팔에 큰 아픔이 느껴졌다. 한눈에 봐도 팔이 상당히 부어 있었는데 부러지진 않은 듯했다. 나는 그렇게 초등학교 4학년 짜리 나와 함께 차에 탔다.


"자네도 기억나지? 여기 근처에 큰 병원 말이야. 얼른 거기로 가겠네!"

긴박한 말투에 비해 운전이 굉장히 느렸는데 차라리 자전거를 타는 게 더 빠를 듯했다. 우리 셋은 어찌어찌 병원에 도착했다. 아이를 데리고 차에서 내리자 주차장을 지나던 간호사가 화들짝 놀랐다.


"어머! 애가 왜 이래요?"

"아, 자전거 타다 저랑 부딪혔어요..."


"아이 부모님은요?"

"저도... 잘..."

"우선, 이쪽으로 오세요."


간호사는 나와 아이를 데리고 응급실로 향했다. 병원 관계자가 아이에게 몇 가지 묻더니 응급실 안으로 아이를 데려갔다. 긴장이 풀렸는지 다시 오른팔이 아프기 시작했다. 하지만 지금 치료받을 때가 아니란 생각이 들어 우선, 할아버지가 있는 주차장으로 걸어갔는데 도착하니 할아버지는 흰색 옷가지를 들고 있었다.


"허허, 팔은 괜찮나?"

"하... 미친놈, 진짜 큰일 날 뻔했네"

"허허, 저 나이 때는 다 그렇지"

"제가 막아서지 않았으면..."


어린 시절엔 잘 몰랐지만, 그때 누군가 나를 막아서지 않았다면 그대로 트럭과 부딪혔을 것이다. 그랬다면 얼굴 상처 하나로 끝나지 않았을 것이다.


워낙에 정신없이 상황이 흘러 할아버지와 편히 이야기할 시간도 없었다. 조금 진정된 상태로 보여 나는 할아버지에게 물었다.


"그럼 할아버지, 오늘 할 일은 끝났나요?"

"허허, 아니. 아직 하나 남았네"

"예? 또요?"


할아버지는 왼손을 들어 자신이 차고 있던 손목시계를 쳐다봤다. 그러더니 주차장 옆 쪽에 있는 병원 입구를 바라봤다. 잠시 후, 한 아줌마가 인상을 잔뜩 쓴 얼굴로 잽싸게 병원으로 들어갔다. 거리가 멀었지만 한눈에 누군지 알 수 있었다.


"어!"

"자, 얼른 이거 입게나"


할아버지는 들고 있던 하얀색 천을 내게 건넸다. 한 손으로 그걸 털어보니 병원명과 모르는 사람의 이름이 쓰인 가운이었다. 한쪽 팔이 불편해 가운을 입기 어려웠는데 할아버지가 두 손으로 가운을 내 어깨에 걸쳐줬다.

주차장에선 병원 대기실이 보였는데, 병원으로 뛰어들어간 아줌마가 소리치며 말하고 있었다.


"우리 아들!! 어디, 어디에 있어요?"

빠글빠글한 파마머리, 회색 작업복을 입고 당장이라도 눈물을 쏟아낼 것처럼 글썽이는 눈을 한 여자, 다름 아닌 우리 엄마였다.


"자, 가자고!"

할아버지는 손으로 내 등을 밀며 대기실로 향했는데, 엄마가 우릴 알아볼 것 같아 걱정됐다. 나는 할아버지에게 속삭였다.


"(아니... 할아버지! 엄마한테 들키면 어떡해요?)"

"(그럴 일 없네, 자네라면 30년, 80년 뒤 아들이 갑자기 여기 왔다고 상상할 수 있겠나?)"

"(...)"


틀린 말은 아니었다. 할아버지와 나는 다시 병원 안으로 들어갔다. 엄마는 응급실 앞에서 두 손을 모으고 어쩔 줄 몰라하고 있었다. 할아버지는 성큼성큼 걸어 엄마에게 다가갔다.


"저기, 아이 어머님 되시죠?"

"네... 담당 의사 선생님이신가요?"

"네, 맞습니다."


담당 의사라는 말에 엄마는 할아버지의 손을 붙잡고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흑... 선생님... 우리 아들 어떡해요..."

"..."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는 모습에 할아버지도, 나도 잠시 말을 잃었다. 할아버지는 묵묵히 엄마의 손을 잡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모두 제 탓이에요... 나가서 일하면 얼마나 번다고... 제가 잘 챙겼어야 했는데..."

"..."

"어떡해요. 우리 애... 얼굴에 흉 지면..."


자책하는 엄마의 두 손을 꼭 잡은 할아버지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얼굴에 상처는 시간 지나면 옅어질 겁니다. 오늘 어머니 마음에 난 상처도 그랬으면 좋겠네요."


맞다. 그랬으면 좋겠다. 나는 아이가 없어 온전히 부모 마음을 이해하기 어렵다. 하지만 키우는 강아지가 어디선가 크게 다쳤다고 생각하니 눈앞이 캄캄했다. 잘되면 아이 탓, 잘 안되면 내 탓, 부모 마음이란 그런 것 같다. 잘 못은 내가 했는데 본인을 탓하며 자책하는 엄마를 보니 코 끝이 찡했다.


"얼마나 절 원망할까요...?"


나는 아무 말 없이 병풍처럼 할아버지 옆에 있었는데, 계속 자책하는 엄마를 위로하고 싶어 말했다.

"아니요. 그럴 일 없을 거예요. 제가 장담해요."


조금 단호한 내 말투와 목소리에 엄마는 눈이 똥그래졌다. 순간 '아차' 싶었다. 늙었지만 여전히 눈치 빠른 할아버지가 자연스레 이어 말했다.


"허허, 어릴 때 얼굴 다치는 경우 많이 있습니다. 크게 다친 게 아니라 다행이죠."

"... 네"


"환자분 어머니 들어오세요."

응급실 안에서 다른 의사가 엄마를 찾았다. 엄마는 손으로 눈물을 훔치며 우리에게 목례했고 응급실 안으로 급히 발걸음을 옮겼다.


"난 괜찮아 엄마. 또 만나자"

들리지 않을 작은 목소리로 엄마에게 인사했다. 옆에 있던 할아버지는 손으로 내 어깨를 치며 귓속말했다.


"(보는 눈이 많네, 이제 나가자고)"


우린 가운을 벗어 병원 대기실 의자에 올려두었다. 그리고 빠른 걸음으로 병원을 나왔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니 주황색, 하늘색이 오묘하게 섞여 노을이 지고 있었다.


"하늘이 예쁘네요..."

"허허, 그렇구먼."

"아... 그래서 엄마가 일을 그만뒀구나..."


기억났다. 이 날 이후로 엄마는 다니던 직장을 그만뒀다. 그리고 낮엔 나와 동생을 돌보고 저녁이나 새벽에 일을 나갔다. 일 다니는 것만으로도 지치고 힘든데 애들까지 키워냈다니 새삼 대단하게 느껴졌고, 그걸 잊고 사는 내가 한심했다.


"허허, 마음의 상처는 온전히 내 것만이 아니야. 누군가와 항상 이어져있네"

"..."

"그러니 힘들어도 주변을 잘 보살피게"

"... 네..."


어느덧 노을은 저 멀리 지나가고 하늘이 어두워졌다. 그때, 할아버지와 나는 다시 반투명하고 환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허허, 오늘은 여기 까지는구먼"

"확실히 꿈은 아니네요... 이 현상의 비밀을 안다 하셨죠?"

"허허, 맞네, 지금은 잘 알고 있지."

"이렇게 함께 다니다 보면, 저도 그 비밀을 풀 수 있죠?"

"흠... 아마도?"


애매한 대답이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우린 겨우 목소리만 들릴 정도로 더욱 투명해졌다.


"흉터 때문에 힘들었지?"

"뭐... 어렸을 때 일이니깐요. 지금은 괜찮아요."


"다행이네, 앞으로도 많은 일들이 우릴 지나가고 상처도 받는 일도 많겠지. 하지만"

"하지만?"

"그 상처를 숨기려 하지 말게, 당당히 들어낸다면 그땐 상처가 아닌 누군가를 이해하며 사랑한 증표가 될 테니 말이야."





[따르릉 - 따르릉 -]


"여보세요?"

"어~ 아들~ 웬일이야?"


"그냥 전화해 봤어. 엄마 나 얼굴에 흉터 이제 잘 안 보이지?"

"흉터? 그건 갑자기 왜?"


"그냥 궁금해서"

"안보이긴 뭘 안 보여... 잘 보이지"





그날, 엄마 마음에 난 상처는 아직 아물지 않았나 보다.
그 상처는 내겐 무슨 의미였을까?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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