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은 언덕 꼭대기에 살았다.
결혼해서 애까지 낳더라도 만날 것 같은 친한 지인들을 집에 초대했을 때, 바로 앞에 마을버스 정류장이 있고 창문 밖으로 보이는 야경이 예쁘다고 둘러댔지만, 그곳을 선택한 이유는 그저 전세보증금이 저렴했기 때문이다.
버스가 올라오는 찻길은 직각에 가까웠다. 종종 퇴근길에 버스를 놓쳐 언덕길을 오를 때, ‘누가 이런 언덕에 살까?’라며 실소했지만, 갖가지 사연을 가진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있었다. 그들은 대부분 율의 또래로 스무 살 중반부터 서른 살을 바라보는 연령대였고, 신혼부부나 아이를 키우는 부모는 찾아볼 수 없었다.
그래서 이리저리 뚫려있는 작은 골목 사이는 언제나 고요했다. 그리고 율은 그 조용한 마을에 작은 소란을 만들었다.
그녀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차는 생각보다 빨리 도착했고, ‘윙’하는 첫 사이렌 소리를 제외하고는 요란스럽지 않았다. 그저 자동차 지붕에 달린 경광등에서 붉고 푸른 불빛만이 번쩍거리며 골목 어귀를 채우고 사라지길 반복했다.
“아. 그러니깐…….”
청록색 셔츠에 회색 점퍼를 입은 한 경찰관은 그녀에게 몇 가지 질문을 던지더니, 머리를 긁적거렸다. 또 다른 경찰관은 가로등 밑에 서 있는 후드티. 그와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었다.
율의 눈에 비친 가로등 아래 후드티는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다고 확신했다. 단순히 그냥 서 있었다면 담배라도 한 대 태우나 보다며 무시할 법했지만, 멀리서 자신을 향해 오른손을 흔드는 그 모습. 율에게 그것은 간담이 서늘해지는 공포영화 한 장면과 다름없었다.
그래서 율은 민지가 당부한 것처럼, 벌벌 떨리는 손으로 경찰에 신고했다. 그녀는 종종 다니는 직장에서 말을 일목요연하게 잘 한다는 소리를 듣곤 했다. 그러나 당혹스러움에 수화기 너머로 흘러가는 그녀의 말솜씨는 형편없었다. 아니. 그럴 것이 당연했다.
율의 앞에 서 있던 경찰관은 손가락으로 미간을 긁적이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그…. 처벌하기 위해서는 뭔가 행위가 있어야 하는데, 조금 애매하네요. 손을 흔들었다고 어떻게 하기는 좀 그래요. 그리고 어제는 뭐라고 했다고요?”
율은 손에 핸드폰을 꽉 쥐더니 눈동자를 아래로 떨궜다.
“결혼…. 하자고요…….”
“허.”
율은 민망했다. 우선 그 말을 경찰관이 믿어주지 않을 것 같았다. 그리고 결혼하자는 그 짧은 문장 어디에다가 죄를 씌울 수 있을지 자신도 난감했다. 경찰은 예리했다. 창피함과 미안함이 오묘하게 섞인 그녀의 미소를 보더니, 그도 따라 웃었다.
“참나. 일반적이지는 않네요. 뭐…. 워낙 이상한 사람들이 많으니 이해는 합니다.”
율의 나이 또래로 보이는 경찰관은 손에 든 서류에 몇 가지를 적고 있었는데, 얼굴 곳곳에 보이는 주름과 함께, 희끗희끗한 머리카락이 모자 밑으로 삐져나온 경찰관이 가로등 밑에서 뚜벅뚜벅 걸어왔다.
“그 저기 말이야. 신고한 사람이 아가씨예요?”
혹여나 자신에게 면박을 줄까? 하는 걱정에 율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그러나 지그시 나이가 든 경찰은 제법 진지한 얼굴로 그녀를 걱정하더니 말을 이어갔다.
“아니. 내가 이야기를 나눠봤는데요. 조금 엉뚱하긴 하더라도 이상한 놈은 아닌 것 같아. 아. 그리고 말이야. 아가씨를 아는 사이라고 하던데?”
“저를요?”
율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재빨리 초등학교 입학식부터 대학교를 졸업하는 날까지 마주치던 남자들을 샅샅이 뒤졌다. 그러나 여자 중학교, 여자 고등학교 그리고 여대까지. 다니던 교회나 패스트푸드점에서 아르바이트하며 마주친 남자야 있겠다만, 저렇게 허우대는 멀쩡하고 비루한 옷차림을 한 사내는 그녀 기억에 존재하지 않았다.
“저는 모르는 사람인데…요?”
“그래요?”
둘은 딱히 이어서 할 말이 없었다. 몇 초간 정적이 흐르더니, 아버지뻘로 보이는 경찰관은 가슴에 찬 무전기를 몇 번 만지더니 잠깐 기다려보라며, 다시 후드티를 향해 걸어갔다. 둘의 이야기는 길어졌고 격양된 경찰관의 목소리도 종종 들렸다. 그리고 잠시 후. 경찰은 깊은 한숨을 내쉬며 다시 율에게 왔다.
“우선은 말이야. 상대방 동의 없이 접근하거나 이상한 소리 하지 말라고 했거든? 문제가 커질 수 있다고, 그러니깐 좀 알아듣는 거 같아. 그 우리가 이쪽으로 순찰 자주 다니니깐, 혹시라도 무슨 일 있으면 곧바로 신고해요. 알았죠?”
율은 경찰관이 말을 이어가던 중 시시각각 변하는 표정에서 진심을 느꼈다. 무엇보다 저 후드티가 자기 말을 알아들었다. 무슨 일 있으면 신고하라고 말한 점은 놀라서 벌떡거리던 맥박을 조금은 느슨하게 해줬다.
그때, 건물 중앙 현관문 앞에서 젊은 경찰관이 율에게 이쪽으로 오라며 손짓했다. 그녀는 고개를 꾸벅 숙이더니, 그곳으로 뛰다시피 걸어갔다. 문 앞에 도착하자 율은 가로등을 향해 눈을 돌렸다. 그리고 그곳에는 후드티 모자를 깊게 눌러쓴 그가 손바닥에 쥔 메모장을 들여다보며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었다.
현관문 키패드 위로 올려진 율의 손이 주저했다. 그때 그녀는 이대로 집에 들어가도 되나 싶었고, 혹여나 경찰에 신고한 일로 그가 해코지하는 건 아닐지 걱정스러웠다. 때마침, 이상한 낌새라도 보이면 곧장 붙잡아 갈 경찰관들이 둘이나 있었다.
율은 젊은 경찰관에게 잠시만 기다려달라며 고개를 숙이더니, 후드티가 서 있는 가로등을 향해 걸어갔다.
후드티 앞에 그녀가 도착했지만, 그는 무언가를 중얼거리며 손에 들린 낡은 메모장만 쳐다봤다. 율은 흘끔거리며 뭐가 쓰여 있는지 보려 했지만, 그곳까지 불빛이 미치지 않아 짙은 그림자가 가려져 있었다.
“저기요.”
율이 후드티를 불렀다. 그 소리에 그는 어깨를 움찔거리더니 재빨리 고개를 들어 그녀를 바라봤다.
경찰차 지붕에서 돌아가는 경광등 불빛이 일정한 간격으로 그를 지나쳤다. 그리고 율의 눈에는 그의 얼굴이 선명하게 보였다.
쌍꺼풀 없는 그의 눈매는 집요하거나 고집스러워 보이지 않았다. 율이 자세히 들여다보니, 눈동자는 흔들렸고 눈썹은 움찔거렸다. 이어서 굵은 목젖이 몇 번이나 꿀렁이기도 했다. 율은 억지로 입꼬리를 올리고 슬쩍 고개를 숙였다. 어디서든 원수를 만들지 말라는 그녀 아버지의 말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녀가 옅은 한숨을 내쉬자 하얀 입김이 짙게 어두운 허공으로 번져나갔다.
“저기…. 제가 너무 당황해서요. 놀라셨다면 죄송해요. 근데.”
“……?”
“아무래도 오해하신 거 같아요. 저는 그쪽 뵌 적 없거든요. 그러니깐…….”
핸드폰을 쥐고 있던 율의 손은 떨리다가 이내 멈췄다. 그리고 후드티 밑으로 보이는 눈매를 바라보며 또박또박 말을 이어갔다.
“그러니까 앞으로 이상한 말씀 하지 말아주세요. 부탁드립니다.”
보통에 그녀는 상냥하고 차분했다. 그러나 해야 할 말이 있을 때, 이따금 그녀는 강단 있는 모습을 보이곤 했다. 율은 눈동자를 동그랗게 뜨더니, 그에게 고개를 숙였다. 이 정도 했으면 그도 더 이상 황당한 언행을 이어가지 않을 것 같았다. 명치 부근에 쌓였던 체증이 내려가는 듯했다. 얼른 집으로 들어가 창문을 열어 환기를 시키고, 며칠 미뤘던 빨래를 정리해 서랍장에 넣어야겠다며 생각하던 그때였다.
“아악!”
그의 새하얗고 가느다란 손가락을 지나 손등에는 퍼런 핏줄이 서 있었다. 그런 그의 손이 율이 걸친 감색 코트 끄트머리를 붙잡았다. 그리고 굵직하지만, 억양은 부드러운 그의 목소리가 들렸다.
“율아. 아니야. 너는 기억하지 못하겠지만, 우린 서로를 잘 알고 있어.”
“뭐…뭐야. 왜 이래요!”
율은 그에게 붙잡힌 코트 끄트머리를 손으로 붙잡으며 몸을 비틀었다. 그러나 그의 완력을 뿌리치기는 어려웠다. 그녀는 급히 오른손을 허공에 들어 이리저리 흔들며, 멀찍이 떨어진 경찰들을 불렀다.
“이 사람! 이 사람이 도와주세요!”
후드티는 기회라도 잡은 듯이 코트를 쥔 손을 놓고는 율의 앞으로 섰다. 그러고는 양손으로 그녀의 어깨를 붙잡으며 다급하게 말을 이어갔다.
“율아 놀라지 마. 사실이야. 사실이라고. 자 이거 봐봐.”
***
“헐…. 대박. 언니 안 되겠다. 그 집에는 우선 들어가지 마. 내가 엄마, 아빠한테 이야기할 테니까 당분간 우리 집에서 지내자. 거길 다시 어떻게 가?”
민지는 율과 같은 고등학교 그리고 대학교를 나왔고 한 살 어렸다. 심지어 회사도 같았기에 둘 사이에는 말하지 못할 비밀은 없었다. 서로의 아픈 가족사라든지 빌어먹을 인간관계와 특히, 연애 문제에 있어서는 서로가 서로에게 전문가였다.
율에게 동생은 없었지만, 있었다면 민지와 성격이 비슷했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래서인지 어쩌면 가족보다 더 가깝다고 느끼곤 했다. 그런 의미에서 어제 있던 황당무계한 일은 민지에게도 적지 않은 충격이었다.
“에이. 어떻게 그래…. 경찰들이 한 번 데려갔으니 이제 정신 차렸겠지.”
입에서 나오는 말과 다르게 율의 어깨는 축 처져 있었고, 눈동자는 총기 없이 멍했다. 이어서 테이블 위에 놓인 허브티가 우러난 차를 한 모금 마시더니,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하. 거봐. 언니도 신경 쓰이잖아. 진짜 미친놈이네! 그거.”
“그러게…….”
최근 율에게는 이렇다 할 고민거리가 없었다. 한참 마주치기만 해도 스트레스가 쌓이던, 박 팀장도 다른 부서로 발령을 받았다. 그리고 꽤 오랜 시간 마음 한편을 지그시 짓누르던 본가 빚 문제도 마무리 되어가던 상황.
율은 대학 시절까지 꽤 성실하게 교회를 다녔지만, 지금은 그렇지 못했다. 언제나 걱정거리는 주문하지 않은 택배 같았다.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문제가 발생하고 꼬이기도, 번잡스러워 지기도 했다.
율은 다시 찻잔을 입으로 옮기며 생각했다. 후드티와 관련된 일들. 그 모든 게 교회를 멀리해서 그런가 싶었다.
“교회라도 다시 나가봐야 할까?”
“참나. 뭐라는 거야 갑자기?”
“아니. 그래야겠어…. 아무래도 요즘 뭔가 잘 풀린다 싶었어. 그래서 다시 시련을 주시나 봐.”
누가라는 민지의 물음에 율은 미소를 짓더니 고개를 저었다. 그러고는 작은 창문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햇빛에 반사되는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밤이는 잘 지내려나?”
그녀는 혼잣말과 물음의 경계에 있는 말을 내뱉더니, 핸드폰 화면을 손가락으로 터치해 비치는 화면을 바라봤다. 그리고 손바닥보다 작은 공간에는 주황색 털에 흰색 부분이 군데군데 보이는 고양이 한 마리가 있었다.
“이제 3개월 조금 지났지?”
“응. 97일째네.”
율이 옅은 한숨을 내쉬고는 손바닥으로 핸드폰 액정을 쓸어내렸다.
“잘 지낼 거야. 언니 아들인데 오죽하겠어? 아. 근데 말이야.”
율은 말을 끝맺지 않은 민지를 향해 고개를 올렸다. 그러자 민지는 눈썹사이를 한껏 구기더니, 손가락으로 테이블을 툭툭 치며 율에게 물었다.
“아니. 그래서 그놈이 뭘 보여줬는데?”
그리고 그 물음에 율은 터져 나오는 웃음을 간신히 참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
“율아 놀라지 마. 사실이야. 사실이라고. 자 이거 봐봐.”
율은 그의 예상치 못한 행동에 이내 웃음을 터뜨렸다. 때마침 둘에게 도착한 경찰관들이 후드티의 양옆으로 다가가 그의 목덜미를 잡았다. 그리고 그는 필사적으로 양쪽 볼에 주먹 쥔 손을 올리고 율을 바라보며 소리 냈다.
“야옹. 야옹. 야옹. 야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