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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키리카 Aug 23. 2023

뒷마당 노스탤지어

햇살, 바람, 구름 삼종세트

8월 11일(금)


그렇게 한 달 내내 비만 내리더니, 갈 때가 되니까 날씨가 반짝반짝하다. 이틀을 쉼 없이 달려 코츠월드 투어를 하고 나니 오늘은 마지막 여유를 집에서 부리고 싶었다. 한국의 너저분한 집구석을 생각하면, 이 집이 너무 그리울 것 같다. 공간 크기는 그리 크지 않지만, 프랑스인 집주인이 꾸며놓은 아기자기한 소품들, 집 안 가득히 불어오는 상쾌한 공기와 햇살 이곳에서 쉬는 숨도 그리울 것 같다.

아이들 방에는 침대 위에 창이 하나씩 놓여있다. 그곳에 누워서 구름의 움직임을 보고 있으면, 마치 하늘 위에 누워있는 것 같다. 그곳에 한동안 누워 구름을 감상했다.


집안 정리를 대충 한 뒤, 이 집의 정원으로 내려갔다. 우리 방이 집의 3층이다 보니, 정원에 많이 내려와 보지 못했다. 때마침 오늘은 날씨도 너무 좋다.

일층 할머니가 널어놓은 이불이 바람에 나부끼고, 하늘 위로는 구름 뭉치가 붓으로 옅은 스트로크를 내듯 푸른 하늘 위로 번지고 있었다. 이 풍경을 한참을 바라보다가, 눈을 감고 가슴속으로 새겨본다. 햇살이 눈꺼풀 사이로 스며들고, 바람소리가 나를 간지럽힌다. 도심에서만 자라온 나이지만, 어릴 적 어디선가 이런 햇살, 바람, 구름을 느끼며 행복했던 추억이 있다. 내가 나지도 않은 곳에서 향수가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아이들은 4주간에 걸친 캠프 프로그램을 무사히 마쳤다. 한 달 같 아이들은 열심히 놀고, 먹고, 자고, 자랐다. 무릎팍은 매일 깨져있기 일쑤였다. 작은 튜브 하나로 가져온 후시딘이 이렇게 많이 필요할 줄은 몰랐다. 마지막 한 방울까지 꾹꾹 짜서 아이들의 무릎에 발라준다.

“엄마! 이제 우리 끝났다!! “

둘째는 4주의 대장정을 끝낸 스스로가 대견한 듯이 이야기했다.

“엄마! 이제 진짜 마지막인 거야? 이제 한국에 간다니 믿기지가 않아!”

첫째 아이가 이렇게 이야기한다는 것은 캠프에 대단히 만족했다는 이야기이다. 한국으로 가는 것이 믿기지 않을 만큼 아쉬움이 크다는 이야기이다. 나 역시 이곳에서의 긴 여행이 이제는 끝날 때가 되었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마치 오래된 꿈을 깨고, 현실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을 꿈속에서 이미 인지하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다.


처음 용기를 내어 예약 버튼을 눌렀을 때를 떠올려 본다. ‘지금 아니면 언제’가 단 하나의 이유였다. 첫 아이는 내년에 중학생이고, 나 역시 점점 나이가 들어간다. 3년간 코로나로 꼼짝도 못 했을 때를 생각하면, 언젠가 그런 상황이 닥치지 말라는 법은 없다. 적금 하나를 깨서 항공권과, 숙박, 캠프 예약을 마쳤고, 각종 투어 예약, 그 외 자잘한 현지 비용이 추가되며 다른 적금을 하나 더 깼다. 내 생에 언젠가 가능할지도 모른다고 꿈꾸었던 내 집마련을 위해 막연히 들어두었던 여러 개의 적금 중 두 개였지만, 결국 그렇게 내 집마련의 꿈은 더 멀어져 갔다. 그러나, 나는 이곳에 온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 아이들이 만족했는지, 아이들이 영어를 더 사용했는지, 아이들에게 좋은 경험이 되었는지는 아이들이 평가할 일이다. 이 여행은 온전히 나를 위한 여행이었다. 아이들을 핑계삼은 나를 위한 쉼표, 나를 위한 전환점이었다.


나의 이야기는 해외에서 아이들과 한 달 살기에 대한 기대에는 부흥하지 못하는 이야기 일 수 있다.

한 달의 생활만으로 아이들의 영어가 트이지는 않는다. 오히려 캠프에서 사용하는 영어는 한국에서 배우는 영어보다 못한 매우 일상적인 대화로만 한정되어 있다. 나 역시 한국에서 영어사용을 위해 오랫동안 회화학원을 다니며 준비했는데, 막상 영국에서는 일상적인 대화만 주로 하게 되어 배운 것을 거의 써먹지 못했다. 그리고 앞서 다른 글에서 언급했듯이, 캠프에 보내는 한국엄마는 나뿐만이 아니다. 이런 시골에도 한국아이가 한 두 명쯤은 있기 마련인데,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한국아이와 더 친할 수밖에 없다. 캠프 프로그램도 한국의 열성 엄마들이라면 실망스러울 수 있다. 이곳의 방학 캠프는 대부분 현지 맞벌이 부부의 자녀를 보육하는 개념이 크기 때문에, 한국의 학원이 오히려 배움에는 더욱 최적화되어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약 아이들과 함께 해외 한 달 살기를 망설이는 누군가가 있다면, 아이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엄마 자신을 위해서 떠나는 용기를 가져보기를 권해본다. 아이들과 함께 낯선 곳에서 오롯이 아이들을 관찰할 수 있는 계기가 되고, 무언가 이루어야만 하는 숨 막히는 현실을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마 나뿐만 아니라 많은 40대 엄마들이 현실에 대한 비슷한 고민을 갖고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열심히 살았는데, 내 인생은 뭐지?’, ‘이룬 것이 하나도 없고, 잘 되는 것이 하나도 없어, 앞으로 뭘 해야 하지?’,‘아이들은 커가는데, 이 아이들 교육은 어떻게 하지?’,‘열심히 아이들 키운다고 했는데, 점점 평범하기만 한 것 같은 내 아이들, 어떡하지?’

눈앞의 고민들과 과제들에 숨이 막힐 것 같은 시점에 이곳으로 떠나왔다. 어떤 문제도 해결되지 않는다. 한국에 돌아가면 똑같은 현실은 돌아온다. 하지만 이제 현실을 다시 짊어질 용기와 에너지를 얻고 돌아갈 채비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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