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특수아동교사 자격증 덕을 톡톡히 봅니다
캐나다 보육교사 자격증을 따기 위해 커뮤니티 컬리지에 다니던 게 벌써 십 년 전이다. 1년 6개월에 걸쳐 기본 정교사 자격증(ECE)과 유아교사(I/T) 자격증 코스를 수료했다. 마지막 과정은 특수아동교사(S/N) 코스였다. 학기를 시작하기에 앞서 수강을 취소하는 게 나을지를 진지하게 고민했다. 과목을 등록하게 된 것은 순전히 유학원의 꾐에 넘어가서였다. 상담원은 체류기간이 넉넉한 비자를 받는데 유리하다면서 보육교사 자격증 3종을 모두 취득하는 2년 과정을 추천했다. 실정을 잘 알지 못한 나로서는 권유를 그대로 따를 수밖에 없었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기본 정교사 자격증과 유아교사 자격증 두 개만 취득해도 충분했다. 처음의 목표는 유아교사였다. 일반 교사보다 유아교사가 취업이 쉽고 노동비자 후원받기에 유리했다. 영주권을 딴 이후에는 업무 강도가 상대적으로 낮은 일반 교사로 포지션을 변경할 마음도 있었다. 특수아동교사는 아예 고려대상이 아니었다. 영어로 학교 수업 따라가기 조차 급급한 지경이었다. 당장 일반 보육교사로 일하기도 까마득한데 특수아동 교사라니... 당치도 않았다. 설령 대단한 교육자적 열망을 마음에 품고 있다 할지라도 내 처지에 쉽게 도전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었다.
비단 나 같은 영어가 유창하지 않은 외국인 노동자들만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은 아니었다. 특수아동교사 자격증까지 갈 필요도 없이 유아교사 자격증을 따는 현지인도 그다지 많지 않았다. 두 직종 다 일반 교사에 비해 시간당 임금이 높았지만 일은 곱절로 힘들다는 인식이 강했다. 기본 교사 자격증 코스는 일 년이라는 비교적 짧은 기간에 마칠 수 있지만 상위 격인 유아교사나 특수아동교사 자격증을 따려면 최소 6개월에서 12개월이 더 걸렸다. 학비도 추가로 드는 데다 공부 기간도 연장되는 것이다.
이런 경향은 코스를 이수하는 과정에서도 확연히 드러났다. 처음 기본 과정을 시작할 때 교실을 꽉 채우던 학생들이 유아교사 과정으로 넘어가면서 삼분의 일로 줄었고 특수아동교사 과정에 이르러서는 다섯 명도 채 남지 않았다.
유아교사 과정부터는 야간에 학교를 가고 낮에는 어린이집 보조교사로 일했다. 낮에 일하고 밤에 학교 다니는 그야말로 주경야독하는 시기였다.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무척 힘이 들었다. 유아교사 자격증은 필요하니 군소리 없이 땄지만 특수아동교사 자격증의 경우는 딱히 쓸모가 있을 것 같지 않았다. 괜스레 시간과 돈과 에너지를 낭비하는 기분이었다. 중간에 때려치우고 싶은 생각을 여러 번 했다. 나를 포함 고작 다섯 명밖에 안 되는 수강생 덕분에 가까스로 정원 미달을 면하고 수업을 맡게 된 강사에게 어쩐지 미안하여 실행에 옮기지는 못했다. 결국 2년에 걸친 과정을 마쳤고 세 종류의 보육교사 자격증을 취득하게 되었다.
학교를 졸업하고 처음 취직한 어린이 집에서 유아교사로 총 4년을 일하고 나서야 영주권을 받는 데 성공했다. 캐나다에 건너온 지 6년째 되던 해였다. 첫 직장은 경험도 없고 영어도 못하는 무지렁이 같은 나를 취직시켜 주고 노동비자를 기꺼이 후원해 준 의미에서 무척이나 고마운 곳이었다. 다른 한편으로는 노동 비자를 족쇄 삼아 과중한 업무와 불합리한 처우에도 찍소리 못하게 만든 곳이기도 했다.
영주권 승인이 떨어진 날, 곧바로 사표를 던졌다. 드디어 직장을 그만둘 수 있는 자유, 이직을 할 수 있는 자유, 원하는 조건을 따져가며 직장을 고를 수 있는 자유가 주어진 것이다. 그곳을 관두고 얼마 안 가 이직에 성공했다. 나름 신중을 기해 선택한 곳이었지만 막상 다녀보니 여러 가지 문제가 있었다. 석 달을 채우지 못하고 그만두었다. 이직이 사실 말이 쉽지 실제로 해보면 상당히 골치 아프고 진을 빼는 과정이다. 진정 내게 딱 맞는 꿈의 직장은 없는 것인가 좌절하고 있을 무렵 새로 올라온 구인공고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시에 소속된 공립 프리스쿨(pre-school)이었다. 공고에 제시된 조건이 꽤 마음에 들었다. 시급이 나쁘지 않았고 직원복지도 탄탄했다. 프리스쿨 특성상 업무시간이 짧았으며 무엇보다 방학이 있었다. 다만 한 가지 걸리는 것은 구직 자격을 특수아동교사 자격증 소지자로 한정시켜 놓은 부분이었다. 구인 공고와 학교를 소개하는 사이트 어디에도 특수아동을 위한 시설이라고 직접적으로 명시한 내용은 없었다. 다소 어리둥절했지만 일단 면접은 보기로 했다. 영 아니다 싶으면 잡 오퍼가 들어왔을 때 거절하면 그만이었다. 이력서를 보낸 다음 날 채용담당자로부터 연락이 왔고 인터뷰 날짜가 잡혔다. 며칠 후 면접을 보기 위해 담당자가 보내온 주소로 찾아갔다. 별 기대 없이 방문한 학교는 예상을 뒤엎는 곳이었다. 말 그대로 별천지였다. 넓고 쾌적한 공간과 최첨단 시설과 잘 짜인 커리큘럼 등등 어느 것 하나 흠잡을 게 없었다. 이런 곳에서 일한다면 없던 교육관과 사명감도 뿜뿜 솟을 것 같았다. 채용 담당자에게 설명을 들으니 학교는 우려대로 경도 장애를 가진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기관이었다. 특수아동 관련직이라면 고사하겠다는 처음의 결심은 이미 무너진 지 오래였다. 인터뷰를 보고 시설을 둘러보는 동안 생각은 백팔십도 바뀌어 있었다. 이런 곳이라면 꼭 일해보고 싶다는 강렬한 열망에 사로잡혔다.
학교의 시스템은 단순히 교사의 개인 역량에만 기대는 방식이 아니었다. 두 명의 정교사 외에 두명의 보조교사와 세명의 전문 치료사가 한 팀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중 몇 명을 소개받아 짧은 인사를 나눴다. 흐리멍덩한 눈동자와 영혼 없는 표정을 하고 있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차분하고 조용한 분위기 속에서 하나같이 눈빛이 반짝였고 건강한 생동감이 흘렀다. 나는 타고난 직관의 소유자로서 공간의 분위기와 사람이 발산하는 기운을 읽는 데는 선수였다. 강한 확신이 들었다. 이런 시스템이라면, 이런 직장동료라면 비록 업무가 험난할지라도 어떻게든 해볼 만하다는 확신 말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그곳에 취업하지 못했다. 특정 날짜까지 채용 당사자에게 개별 연락이 갈 것이라는 담당자의 설명이 있었지만 결국 아무 연락도 받지 못했다. 실망은 했으나 결과를 순순히 받아들였다. 채용되기를 염원한 마음과 별개로 결과에 납득이 갔다. 객관적으로 봤을 때 자격증만 있을 뿐 관련 경험은 전무한 데다 영어까지 유창하지 않은 사람을 채용하기에는 무리가 있을 터였다.
비록 취업은 불발되었지만 그때의 경험은 여전히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다. 무엇보다 학교 코디네이터와 총괄매니저, 두사람이 진행한 면접이 인상적이었다. 전혀 강압적이거나 딱딱한 분위기가 아니었지만 과거 경험한 어떤 면접보다도 체계적이고 전문적이었다. 질문 또한 뻔하지 않았으며 본질을 꿰뚫는 내용이었다. 채용에 공을 들이는 느낌이 들었고 그래서 더 신뢰가 갔다. 물론 그놈의 화기애애한 분위기와 사려 깊은 태도가 나로 하여금 채용의 청신호라고 착각하게 만든 부작용이 있긴 했지만 말이다. 훌륭한 교육시설을 둘러 본 것만으로도 만족스러웠다. 좋은 면접의 정석을 경험한 것이 무엇보다 유익했다. 처음으로 특수아동교사 자격증을 따두기 잘했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지 않았다면 이런 곳에 면접이나마 볼 기회조차 없었을 거라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연초를 앞두고 특수아동교사 자격증 덕을 톡톡히 보는 일이 또 생겼다. 캐나다 정부가 보육교사에게 지급하는 국가 보조 수당(Government Enhancement)을 인상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국가보조수당은 전부터 몇 차례 인상되었기에 전혀 처음 있는 일은 아니었다. 이번 발표가 더욱 반가웠던 이유는 수당 인상 외에도 자격증 급수에 따라 별도의 정부 보조금(Government grant)이 추가로 지급된다는 내용이 포함되었기 때문이다.
보조수당 인상은 자격증 급수와 관련 없이 현장에서 일하는 교사 모두에게 적용되지만 보조금을 받으려면 특정 요건을 갖춰야 했다. 전체 보육교사 중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는 기본 정교사 자격증, 일명 ECE 소지자는 보조금 대상에서 제외되었다. 유아교사, 혹은 특수아동교사 자격증 중 하나를 추가로 가지고 있거나 두 가지 자격증 모두 소지한 경우에만 보조금을 신청할 자격이 주어졌다. 전자의 경우 일 년에 2천 불씩 3년에 걸쳐 총 6천 불, 후자의 경우는 3천 불씩 도합 9천 불의 보조금을 받게 된다. 상당한 액수다.
나의 경우, 유아교사 자격증과 특수아동교사 자격증 둘 다 소지하고 있으니 지급되는 보조금 최대치인 9천 불을 받게 되었다.
남보다 오래 학교를 다니며 자격증을 따기 위해 고군분투하던 시간이 그저 의미 없는 허송세월은 아니었구나, 다시금 깨닫는다. 프리스쿨 면접 경험이 실체가 없는 정신적(?) 보상에 가까웠다면 이번 보조금만큼은 투자한 시간과 돈을 물질적으로 보상받는 기분이 들었다. 이 정도면 특수아동교사 자격증은 쓸모를 충분히 증명한 셈이다.
한인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캘리그래피 수업의 광고를 봤을 때 반가운 마음에 덥석 등록을 했다. 캘리그래피를 무려 한국어로 배울 수 있다니 이보다 좋은 기회는 없었다. 수업은 총 10주에 걸쳐 매주 토요일 오전 아홉 시에 시작했다.
수업에 참석한 지 단지 3주가 지났을 뿐인데 처음의 열정이 무색하리만큼 수업 가는 게 귀찮아지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주말인데 늦잠을 잘 수 없어 불만이었다. 토요일 아침 눈을 뜰 때마다 수업을 등록한 과거의 나를 저주하기에 이르렀다. 도대체 캘리그래피 따위가 뭣이길래 황금 같은 주말 아침을 반납해야 하는가? 그럴 정도의 가치가 있는가? 의문이 들었다. 쓰는 과정도 그리 재밌지 않았다. 두 시간 내내 반듯하거나 구불구불하거나 삐침이 있는 선을 한정 없이 긋다 보면 손목이 뻐근하고 하품이 절로 나왔다. 수업료로 무려 삼백불을 지불했기 망정이지 애저녁에 때려치우고도 남았다.
무슨 개연성 없는 전개인가 싶겠지만 캐나다 정부의 보조금 소식을 들은 날, 나는 캘리그래피 수업을 대하는 태도를 바꾸기로 결심했다. 앞서 언급한 대로 지난 과거의 몇몇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면서 당시에 의미 없고 불필요하게 여긴 노력이 예상치 못한 기회와 혜택을 가져다줬던 경험을 다시 떠올린 것이다.
삶은 끊임없이 가변 하지 않았던가? 중요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 가치 있는 것과 없는 것 사이의 경계는 모호하여 어느 순간 위치가 뒤바뀌기도 했다. 절실히 바라던 것이 무의미해지기도 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기던 것이 결정적 역할을 하기도 했으며 잃었다고 생각했는데 다른 무언가 손에 들어오기도 했다. 이 관점에서라면 생의 모든 지점은 전부 의미가 있었다. 실패와 좌절, 후회되는 순간,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진심과 성과 없는 노력까지도, 이 모든 경험은 언젠가 반드시 돌아와 어떤 방식으로든 삶에 기여를 할 것이었다.
토요일 아침마다 평일 출근만큼이나 나를 옥죄는 캘리그래피도 진가를 발휘할 날이 있을 터였다. 꼭 필요한 순간 써먹을 일이 있겠지. 마음을 단단히 고쳐 먹는다. 당장 일찍 일어나는 게 전처럼 괴롭지 않았다. 선긋기를 할 때도 하품은 나오지 않는다. 캘리그래피 강사가 전보다 선이 반듯하고 일정해졌다며 칭찬을 한다. 자세를 고쳐 잡고 더욱 열성을 다해 선을 쭉쭉 그어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