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동물의 취향을 묻는다면 망설임 없이 개라고 답할 것이다. 나는 개를 사랑하는 일명 개(犬)과 인간으로서 십 대부터 마흔이 넘은 지금에 이르기까지 개와 함께 살아왔다.
다른 동물을 싫어하는 것은 아니다. 개를 키우고 있으니 다른 반려동물에게 관심을 둘 필요성을 그다지 느끼지 못했을 뿐이다.
철저히 개 중심으로 돌아가는 삶에 고양이가 끼어든 건 캐나다 이주 후 함께 살던 언니가 새끼 고양이 두 마리를 입양해 오면서부터다. 자의는 아니었으나 고양이와도 함께 살게 되었다.
당시만 해도 고양이에 대한 인식은 매체를 통한 것으로 편협한 부분이 없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실제로 고양이를 접한 경험이라 해봤자 거리를 헤매는 길 고양이를 먼발치에서 지켜보거나 동네 세탁소나 채소가게에 상주하고 있는 고양이를 오며 가며 쓰다듬어 본 게 전부였다.
반면 개는 고등학교를 졸업할 무렵 처음 키우기 시작하여(물론 중간에 작별과 공백의 시기도 있었으나) 현재에 이르고 있으니, 생을 통틀어 개와 함께 한 시간이 없이 산 기간보다 길다고 할 수 있겠다. 따라서 개에 관해서라면 잘 안다고 단언할 수 있었지만 고양이는 막연한 미지의 대상이었다.
고양이가 처음 우리 집에 왔을 때는 이제 막 어미젖을 뗀 시기였다. 끝이 뾰족뾰족한 좁쌀 같은 이빨이 연하기 짝이 없는 분홍색 잇몸을 뚫고 송송 올라오고 있었다. 성묘라면 모를까 어린 고양이를 실물로, 이토록 근거리에서 보고 만진 적은 처음이었다. 종을 막론하고 어린 개체에게 있어 귀여움은 보편적인 특성이라 할 수 있겠지만 아기고양이의 사랑스러움은 그 범주를 넘어선 것이었다. 심장이 아플 지경—이란 표현은 단순한 은유적 표현이 아니었고 실제로 유발되는 증상이었다. 고양이를 처음 품에 안았을 때 예리한 칼날이 스치는 듯한 찌릿한 통증이 갈비뼈 깊숙한 곳에서 느껴졌다.
물론 어린 강아지도 귀엽기로는 쌍벽을 이루나 둘 사이에는 미묘한 차이점이 있었다.
개의 귀여움은 단순하고 투박한 감이 있다. 이런 비유가 적절할지 모르겠으나 남성성에 가까운 귀여움이라고 할 수 있겠다. 고양이의 귀여움은 보다 여성적으로 청순가련, 새초롬, 앙큼, 나긋나긋, 곱다, 상냥하다와 같은 특징이 내포되어 있다. 아닌 게 아니라 새끼 고양이의 몸뚱이는 너무나 연하고 보드라워서(강아지의 몸뚱이는 확실히 그에 비해 단단한 편이다) 손길만 닿아도 바스러지지 않을까 싶을 정도였다. 작기는 또 얼마나 작은 지 고양이 새끼인지 쥐새끼인지 분간이 되지 않을 정도였고 우는 소리도 야옹야옹이 아니라 삐약삐약 하는 병아리 소리를 냈다. 보송보송한 솜털로 덮인 작은 몸이 움직일 땐 앙고라 털실뭉치가 바닥을 이리저리 굴러다니는 것 같았다. 유일하게 털이 덮이지 않은 쥐콩만한 코와 가느다란 입술라인과 봉긋봉긋 돋아난 발바닥 젤리는 딸기 우유를 한 방울 떨어뜨린 듯 한 옅은 분홍색을 띠었다. 앙증맞은 것이 점프는 어쩜 그리 잘하고 요리조리 잘도 뛰어다니는지 그 모습을 보면서 아무런 감정의 동요가 없다면 분명 무슨 이상이 있는 것일 테다. 고양이 앞에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리게 되기란 사실상 이때부터 예견된 수순이었다.
고양이는 개와는 확실히 다른 종족이다. 안을 때의 느낌부터 완전히 다르다. 개의 몸은 전체적으로 탄탄하다. 근육과 뼈의 감촉이 그대로 전해진다. 반면 고양이는 물렁물렁하고 축축 늘어진다. 살 속에 몸을 지탱하는 단단한 물질이라고는 전혀 가지고 있지 않은 연체동물 같다.
개는 덩치를 보면 대략 무게가 가늠이 되지만 고양이는 그렇지 않다. 종자가 개만큼이나 다양하지도 않거니와 설령 특정 종자라 할지라도 체급의 차이가 확연히 드러나지 않는다. 이를테면 개를 소형견, 중형견, 대형견이라 분류하는 것은 일반적이지만 고양이를 두고 소형묘, 중형묘, 대형묘로 구분해 부르지는 않는다.
미스터리한 지점은 바로 고양이의 몸무게에 관한 것으로, 보이는 모습과 실제 무게 사이에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자세히 살펴보면 고양이의 머리 크기는 몸뚱이의 크기와 비례하지 않는다. 머리가 몸에 비해 작다. 몸을 웅크리고 있으면 머리가 부각되는데 그러다 보니 그에 걸맞은 몸집을 예상하게 된다. 일단 몸뚱이를 길게 늘어뜨리는 순간을 포착하면 전체적인 크기가 상당하다는 사실에 놀라고, 축 늘어지는 두툼한 뱃살에 두 번 놀라게 된다. 고양이를 안아보면 상당히 무겁다. 밀가루 반죽처럼 축축 늘어져서 더욱 그리 느껴지는 것 같기도 하다.
개는 순전히 외모적 특징만으로 암수를 구분하기 어렵다. 반드시 성기 모양을 확인해야 한다. 반면 고양이는 체급으로 얼추 예상이 가능하다. 고양이 치고 좀 작은데? 싶으면 무조건 암컷이다. 고양이가 왜 이렇게 커?라는 생각이 든다면 십중팔구 수컷이다. 얼굴 생김새에도 차이가 있다. 암컷은 대체로 선이 곱고 예쁘장하다. 수컷은 생김새가 좀 더 야성적이랄까 선이 굵고 덜 세밀하다. 물론 세상 모든 고양이를 본 적 없으니 어디까지나 주관적인 생각이다. 개중에는 덩치 큰 암컷이나 예쁘게 생긴 수컷도 존재할 것이다. 둘을 굳이 비교하자면 그렇다는 말이고 사실 암컷이든 수컷이든 각자의 귀여움과 매력이 차고 넘치므로 어느 쪽이 예쁜지 따지는 일은 별 의미가 없다.
고양이도 개와 비슷하게 습관이라던가 루틴이라는 게 있기는 하다. 다만 어떤 행동도 한결같지 않다.
일례로 고양이도 인간이 외출했다 돌아오면 문 앞까지 마중 나와 반가움을 표시한다. 한걸음에 달려 나와 몸을 비비며 야옹야옹 울어대고 졸졸 쫓아다닌다. 그러다가도 어느 날은 코빼기도 내비치지 않는다. 뭘 하고 있나 찾아보면 대개 어두운 옷장에 짱 박혀 있거나 높은 곳 어딘가에 앉아 물끄러미 내려다보고 있다. 그런 날은 말을 걸어도 데면데면하면서 투명인간 취급한다. 가까이 다가가기만 했을 뿐인데 귀신이라도 본 마냥 질겁하며 후다닥 도망치기까지 한다. 바로 몇 시간 전까지 다리 사이에 휘감기며 그렁그렁 거릴 때는 언제고 갑자기 낯선 사람 대하듯 태도를 싹 바꾸는 것이다. 도대체 왜 저러는 걸까? 저놈의 뇌 속에 뭐가 들어있을까? 의아할 따름이다. 평상시에 갑자기 아는 체를 하고 애교가 과해질 때는 십중팔구 어떤 목적이 있다. 간식을 달라거나 궁둥이를 팡팡 때려달라는 뜻이다.
고양이의 특성을 단 한 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게 된다.
—종잡을 수 없음.
하지만 결국 고양이에게 매혹당하고 만다. 인간이란 종족은 예상을 벗어난 의외의 모습과 어디로 튈지 모르는 돌발성 행동에 쉽게 매료되기 때문이다. 영악한 고양이는 이러한 사실을 이미 오래전에 간파한 지도 모른다.
'개'하면 떠오르는 특성은 불변(不變)과 일관성이 기본 바탕에 깔려있다. 대표적으로 믿음, 의리, 충직함, 일편단심 등을 들 수 있겠다. 인간세계에서 상향 평가되는 요소다. 인간의 타고난 이기심 때문에 지향은 하지만 좀체 실현해 내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러한 성품을 본능적으로 타고 태어난 개로서는 그저 생겨먹은 대로 구는 것이지만 덕분에 인간으로부터 쉽게 사랑을 얻었다.
반면 고양이에게는 그와 같은 신의를 기대할 수 없다. 그렇다면 그들은 어떻게 사랑을 얻는가? 역설적이게도 사랑받고자 하지 않음으로써 사랑을 얻는다. 애정을 구걸하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상대가 자신을 사랑할 수 있는 권한마저 자신이 내킬 때에만 허용한다. 자신을 부양할 사람까지 스스로 결정한다. 그 과정에서 인간의 의견이나 사정 따위는 전혀 고려대상이 되지 않는다. 그리 하기로 마음을 먹은 이상 강압에 가까운 끈질김을 발휘해 결국 상대를 굴복시킨다. 관계의 주도권은 항시 고양이에게 있다. 비유하자면 개는 충성스러운 신하이고 고양이는 황제를 치맛 폭에 휘감은 후궁이라 할 수 있겠다.
몇 달 뒤 언니는 처음 데려온 고양이에게 친구가 필요하다며 한 마리를 더 데려왔다. 나는 처음에는 난색을 표했으나 결론적으로 언니의 주장은 옳았다. 둘은 금방 좋은 친구가 되었다. 저들끼리 알아서 잘 놀았으므로 인간이 쥐돌이를 흔들어 대야 하는 수고도 줄어들었다. 두 마리는 무럭무럭 자라 현재 여섯 살과 일곱 살이 되었다. 나이가 한 살 많은 쪽이 수컷이고 어린 쪽이 암컷이다. 수컷 녀석은 특이하게도 꼬리가 짧고 뭉툭한 채로 태어났다. 어디선가 주워들으니 고양이의 꼬리가 짧은 경우는 유전적 기형이라고 했다. 짧뚱한 꼬리도 나름 귀엽고 거추장스럽지 않은 장점이 있다. 먹색 털을 가졌고 눈동자는 옅은 물빛이었다. 성격이 아주 상남자인데 평상시에는 얌전한 편이나 뛰어놀 때는 어찌나 우악스러운 지 물건을 다 때려 부실 기세로 집안을 휘젓곤 한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무던하여 만지거나 포옹을 하더라도 그다지 귀찮아하지 않고 잘 받아주었다.
진정한 꼴통은 암컷이다. 암컷은 전형적인 미묘(美猫)로 외모가 약간 비현실적으로 수려했다. 머리 크기가 어렸을 때와 그다지 차이가 나지 않을 정도로 작아서 머리는 그대로인 채로 몸통만 자란 것 같았다. 그렇다 하더라도 전체적인 크기는 수컷에 비하면 훨씬 아담했다. 둥근 찐빵을 위에서 살짝 눌러놓은 마냥 동그랗고 납작한 얼굴 안에 눈코입이 오목조목 균형 있게 자리 잡고 있었다. 눈동자는 쨍한 파란색이었고 무엇보다 검정 테두리를 두른 분홍 코가 화룡점정이었는데 꼭 쬐끄만 하트를 얼굴 정중앙에 달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털은 은빛에 가까운 밝은 회색으로 윤기가 반질반질 흘렀다. 걸을 때면 길고 나붓한 꼬리를 살랑대며 사뿐사뿐 걸었다. 성격은 아주 제멋대로였고 새침데기였다. 수컷과 달리 만지거나 안는 것을 쉽게 허락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애교 부리는 데는 선수였다. 다리 사이에 몸을 휘감으며 그렁그렁 대거나 갑자기 가던 길을 막아서며 발 앞에 배를 까고 발라당 눕거나 똥꼬 냄새를 맡으라며 엉덩이를 코 앞에 바짝 갖다 대곤 했다. 문제는 기분이 수시로 왔다 갔다 하여 뒤집은 배를 쓰다듬어 주는 손을 핥다가도 어느 순간 왱하고 신경질을 내며 앞발로 방망이질을 해대지 않나 애처로운 눈빛으로 빤히 쳐다보기에 만져달라는 뜻인가 싶어 머리를 쓰다듬을라치면 고개를 홱 돌려 도망가 버리질 않나 도통 어디에 장단을 맞춰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예민하기는 또 어찌나 예민한지 부엌에서 밥을 먹다가도 사람이 들어오면 먹던 밥을 버려두고 가버리는 바람에 먹을 땐 곁에 가지 않도록 항상 조심해야 했다. 무릎 위에 앉는 것도 오직 한 사람, 언니 무릎에만 앉았다. 굳이 따지자면 함께 살아온 시간이 언니나 나나 똑같은데 한 번도 내 무릎 위에는 자발적으로 올라온 적이 없었다. 나를 데려온 사람은 언니지 네가 아니야, 그렇다면 차등대우를 할 수밖에 없어, 딱 이런 식으로 선을 그었다. 그러다가도 언니가 집을 비우면 백팔십도 돌변하여 평소라면 잘 들어오지도 않는 내 방을 뻔질나게 드나들며 이거 해줘라 저거 해줘라 야옹야옹 울어 대는 것이었다.
고양이의 진가가 발휘되는 계절은 따로 있다. 다름 아닌 겨울이다. 고양이가 겨울이라고 딱히 다르게 행동하지는 않는다. 다만 고양이가 뿜어내는 특유의 나른한 기운이 춥고 삭막한 계절을 만났을 때 시너지 효과가 폭발한다고 볼 수 있겠다.
기온은 영하로 뚝 떨어지고 창밖에는 눈보라가 치고 있다. 고양이는 담요나 이불속을 파고들거나 방석 위에 몸을 늘어뜨린 채 꾸벅꾸벅 졸고 있다. 고요한 방 안, 고롱고롱 고양이의 숨소리가 나직이 울려 퍼진다. 옆에 누워 털 속에 얼굴을 파묻는다. 따끈한 온기와 함께 규칙적으로 콩닥대는 작은 심장박동이 전해진다. 천지개벽이 일어난다 해도 고양이는 여전히 게으른 하품을 하며 대수롭지 않다는 표정을 지을 것이다. 힘이 완전히 빠진 보드라운 생명체가 뿜어내는 아늑하고 포근한 에너지가 대기를 장악하면 이내 완벽한 평화가 찾아온다. 천국이 있다면 바로 이런 순간일 테다. 고양이만 있다면 길고 긴 겨울도 견딜만하다.
고양이의 마력 때문에 나처럼 예민한 사람이라면 고양이의 느긋한 에너지가 개의 그것보다 더 잘 맞을 수도 있다는 성급한 판단을 내릴 뻔한 적이 있었다.
생각을 고쳐먹은 것은 평생을 함께 해온 개와의 의리 때문도 있지만 내면 바닥 잠재된 습관적 우울의 존재를 잠시 까먹었기 때문이다. 고양이는 오히려 위험한 존재인지도 몰랐다. 집밖으로 나가기가 더 싫어지고 같이 누워만 있고 싶으니 칩거를 부추기는 꼴이 될 수도 있다. 그런 면에서라면 개가 차라리 나았다. 개를 산책시키려면 어떡하든 몸을 일으켜 바깥에 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결국 둘 다 필요하다는 결론이다. 고양이와 개, 어느 쪽이 더 낫다 우열을 가를 수 없을 만큼 그들은 내 삶에 이롭다. 존재만으로도 축복이라는 소리는 이런 때 하는 말이다. 그렇다. 그들은 아무 일도 하지 않고 가만히 옆에만 있어도 축복인 존재다. 개와 고양이 양쪽과 함께 살게 된 것은 행운이다. 다만 불만이 있다면 우리 집 고양이들이 내 방에는 아주 가끔 들어오고 암컷이 내 무릎에 절대 앉아주지 않는 것이다. 이점만큼은 대단히 섭섭하다. 츄르를 수시로 상납하고 엉덩이도 손목이 나갈 지경까지 때려주는데 왜 나를 차별하는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