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밤의 기타 소리

by 모모루

새벽 2시가 훌쩍 넘어가고 있었다. 저녁나절에 신경 쓰이는 일이 서너 개 있었는데 그때 각성된 신경은 사건이 얼추 해결되었음에도 가라앉을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자야 한다는 압박이 심해질수록 정신은 또렷해질 뿐이다. 이럴 바에는 잠들려는 노력을 그만두는 편이 나았다. 한참을 꿈지럭대던 이불속을 빠져나와 책상 앞 의자에 등을 기대어 앉는다. 사방은 조용하다 못해 시간마저 멈춘 듯하다. 피곤할지언정 오랜만에 맞이한 밤의 정적은 꽤 마음에 든다. 그것도 잠시, 갑자기 천정 너머로 인기척이 들린다. 둔탁한 발소리가 저벅저벅 울려 퍼진다.





캐나다의 주거용 건물은 주로 목재로 짓는다. 그러다 보니 층간, 벽간 할 것 없이 소음에 매우 취약하다. 발소리는 물론이고 하다못해 화장실 물 내려가는 소리마저 들린다. 슬리퍼를 신어달라거나 카펫을 깔라는 메모를 문 앞에 붙이는 정도의 컴플레인은 할 수 있으나 걷는 사람의 자세와 버릇을 뜯어고치지 않는 이상 저런 방법도 딱히 효과를 기대하긴 어렵다. 고유한 건축방식으로 야기된 문제다 보니 웬만한 생활소음은 그러려니 넘기는 분위기이기도 하다. 나 또한 캐나다살이 10년 차에 접어든 지금, 집 안에서 겪는 소음 문제는 포기하고 받아들이는 수준에 이르렀다.

이 집에 거주한 이래로 윗집 사람들은 총 세 번 바뀌었다. 최악의 시기는 어린아이가 있는 가족이 살던 때였다. 밤낮없이 아이가 뛰어다니는 통에 꽤 고생스러웠다. 하지만 한 번도 항의한 적은 없었다. 예민함으로는 어디에도 뒤지지 않는 불혹의 노처녀지만 어린이 집 교사가 직업인지라 어떤 방법으로도 아이를 뛰지 않고 걷게 만들 수 없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3년이 지나서야 그 가족은 이사를 나갔는데 덕분에 단련이 되었는지 이후 어지간한 소음은 무시하고 지낼 수 있게 되었다. 지금 들어와 사는 사람은 누군지 알지 못한다. 서른 가구가 넘게 사는 건물이니 같은 층에 살면 모를까 다른 층이라면 몇 호에 누가 사는지 일일이 파악할 길은 없었다.

아주 느린 속도로 체중을 발꿈치에 실어 찍듯이 걷는 버릇과 둔탁한 소리로 미루어 볼 때 나이가 좀 있고 몸무게가 꽤 나가는 남자일 거라 추측해 볼 뿐이다.

새벽 세시. 그는 갑자기 집안을 서성이고 있었다. 직전까지 조용했던 걸로 봐서는 자다가 중간에 깬 것이 분명하다. 화장실을 가는지 귀를 기울여 봐도 물 내리는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어쨌거나 모두가 죽은 듯 잠든 이 밤, 깨어있는 사람이 나 말고 한 명 더 있었다.





그때 나는 미국 동부의 오래된 도시에 머물고 있었다. 이십 대 중반을 막 넘긴 참이었고 유년기부터 시작된 만성적 우울감이 병증으로 넘어가고 있었다. 멋들어지게 살고 싶은 욕심은 가득한데 그놈의 멋진 삶이란 게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 알지 못해 서글픈 시절이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당장 그날 하루조차 무엇을 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이처럼 아무것도 하지 않는 상태로 시간을 허비하다가는 결국 패배자로 살게 될 거라는 염려는 어느 순간 공포로 바뀌었다. 패배자라니... 그렇다면 나는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사람이 되는 것이었다. 쓸모없는 나는 존재할 이유가 없었다. 어떡해서든 쓸모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데 어찌 된 영문인지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 조차 버거웠다.

내가 나 같지 않았고, 내가 있어야 할 곳은 여기가 아니라고 느꼈다. 그렇다고 내가 있어야 할 곳은 여기라고 특정 지을 만한 대안이 있지도 않았다. 때때로 익숙한 일상이 낯설게 느껴져서 꼭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았다. 두 다리가 허공에 둥둥 떠 있는 듯했고 잠에서 깨면 악몽 속을 헤매는 듯한 기분도 사라질까 싶어 자다 깨기를 반복했다.

딱 그 시기, 가족과 친구를 떠나 난생처음 오롯이 혼자가 되었다. 우울증 환자가 말도 안 통하는 낯선 타지에 고립되는 상황을 두고 바람직하다 할 순 없겠지만 인생 전반에 걸쳐 돌이켜 봤을 때 시기적절했다고 할 수 있겠다. 패배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자꾸만 몰아붙이는 부모와 물리적으로 차단된 최초의 기회였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 시기는 일종의 치유의 시간이기도 했다.





평일 오전에는 지역 대학에 부설되어 있는 어학원에서 영어 수업을 들었다. 대학 캠퍼스의 전경은 몹시 아름다웠고 젊음의 활기가 넘쳐흘렀다. 다양한 국적의 동급생들은 오후 2시에 수업이 끝나면 너도나도 짝을 이뤄 놀러 다니기 바빴지만 나는 늘 도망치듯 학교를 빠져나왔다.

나는 캠퍼스로부터 걸어서 30분 정도 떨어진 시내에서 혼자 자취를 하고 있었다. 도시만큼이나 오래된 건물 삼층 구석의 작은 방이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왼편에 화장실이 딸려 있었고 정사각형 방 한쪽 구석에 작은 싱크대와 냉장고가 놓여 있었다. 나무 바닥은 닳고 닳아서 마치 기름칠을 한 듯 반질반질 윤이 났으며 걸을 때마다 삐꺽 대는 소리가 났다. 창가 아래 설치된 고장 난 라디에이터는 온도를 최대치로 올려도 미적지근하여 겨울 내내 집안에서도 두꺼운 점퍼를 벗지 못했다. 나는 학교를 가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온종일 방 안에 틀어박혀 지냈다. 범죄 프로파일링을 소재로 한 미드를 주야장천 봤다. 혼자 사는 여대생이 인터넷 수리 기사로 위장한 범인에게 살해당한 에피소드를 본 날에는 밤새 낡은 나무 문에 달려 있는 빈약한 잠금장치를 노려보며 잠을 설치기도 했다. 새벽마다 추위에 덜덜 떨면서도 건물 관리인에게 라디에이터를 고쳐달라 말할 생각도, 하다못해 담요를 하나 더 사다 덮을 생각도 하지 않았다. 살인마의 공격을 받는 공포에 시달리면서도 범죄 수사물을 그만 볼 생각도 하지 않았다. 당시의 생각 회로는 단단히 고장이 나서 대체로 스스로를 불안한 상황으로 몰고 가거나 불편함 속에 방치하는 식이었다.

관 속에서 깨어나 행동을 개시하는 뱀파이어처럼 낮부터 초저녁까지는 줄곧 자다가 늦은 밤이 되어서야 일어났다. 작은 스탠드 하나만 켜 두고 불빛이 닿는 작은 반경 아래 웅크리고 앉아 있으면 주변은 어둠에 잠겨 흐릿하고 불분명해 보였다. 사물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낮보다 밤이 훨씬 견딜만했다.

밤이 몰고 오는 어떤 기운은 우울감을 꽤나 낭만적으로 변모시키기도 했다. 예컨대 비극의 여주인공이나 우수에 젖은 예술가가 된 듯한 기분에 빠져들게 하는 것이다. 그 기분에 기대어 글을 끄적일 때면 스스로가 약간은 쓸모 있게 느껴졌다. 하지만 가끔은 밤이 길고 길어서 끝이 없을 것 같은 날이 있었다. 나를 제외한 시간과 공간이 멈춰버린 것 같았고 세상의 중심에서 한없이 밀려난 것 같았으며 그럴 때면 바다 위 작은 섬처럼 외로웠다.





기타 소리는 항상 그때 들려왔다. 천장 너머로.

윗집 남자는 종종 기타를 치면서 노래를 불렀다. 똑같은 노래를 한 달 넘게 부르기도 하고, 특정 구절을 몇 시간 동안 반복하기도 했다. 정해진 시간은 딱히 없었다. 이른 아침이든 한낮이든 저녁나절이든 내킬 때마다 기타를 쳤고 그러다 이삼일은 또 잠잠했다. 가끔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늦은 시간에 기타를 연습하기도 했다. 신기하게도 외로움에 사무치거나 비현실감에 시달리는 딱 그런 밤이면 마치 당장의 내 상태를 알고 있기라도 한 듯 여지없이 기타 소리는 울려 퍼졌다. 기타 선율은 낮보다는 훨씬 조심스럽고 나직하게 천장과 벽을 타고 흘러내려와 한없이 가라앉고 있는 나를 흔들어 깨웠다. 혼자 덩그러니 남겨진 게 아니라고, 시간이 멈추고 세상이 정지해 버린 게 아니라고 말해주었다. 하던 일을 멈추고 눈을 감은 채 가만히 귀를 기울였다.





어김없이 문 하나가 벌컥 열리고 쿵쿵하는 발소리가 가까워진다. 다소 거칠게 노크하는 소리. 사람 목소리가 잠시 웅성이다가 문이 탁 닫힌다.

기타 청년의 옆 방 사람이 한바탕 항의를 쏟아내고 나면 사방은 다시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

짧은 소요가 일어나는 동안 정지해 있던 시간은 다시 흐르고 멈춰 있던 세상도 다시 움직였다. 꿈에서 깬 듯 정신이 명료해지면 나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아, 나 살아있구나. 죽은 게 아니고 살아있었어.

이 사실을 확인하고 나면 안도감이 들었다.





위층에선 더 이상 아무 소리도 들려오지 않는다. 방을 서성이던 남자는 다시 잠자리에 든 모양이다.

이 밤, 오래전 그때가 떠오른다.

스프루스 스트릿 19번가 3층의 작은 방,

삐꺽 대던 낡은 마룻바닥,

왼쪽으로 열리던 작은 냉장고,

붉은 침대보가 깔린 침대와 꽃무늬 이인용 소파,

주홍색 스탠드 불빛,

그리고 기타 소리.

괜찮아, 혼자가 아니야, 나를 위로하던 소리.

질풍노도의 청춘 한가운데 위태롭게 서 있던 어린 나에게 마흔을 훌쩍 넘긴 지금의 내가 말을 건넨다.

세상은 무너지지 않았고 너는 그럭저럭 잘 버텼단다. 그러니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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