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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형민 Jun 28. 2024

일본이 기억나지 않는다

십 년이나 살았는데 말이지

한국에 돌아온 지 8달이 지났다. 처음에는 종종 여기가 한국이라는 사실을 잊은 채로 정신없이 지냈다. 사람들이 하는 말도 일본어라고 착각했을 정도.


그러다 해가 바뀌고 봄, 그리고 여름이 다가오면서 나의 공간감각도 서서히 변하기 시작했다. 일본에서 보낸 10년이라는 시간이 마치 하룻밤 사이 꿈같다. 어쩌면 정말 꿈이었을지 모른다는 착각마저 든다.


그래도 몸은 아직 일본을 기억하고 있나 보다. 일 때문에 살려둔 일본 핸드폰으로 가끔 전화가 걸려온다. 일본어로 말하는 게 낯설지 않다. 얼마 전에 일본에서 친구가 놀러 왔다. 그와 얘기를 나누는 동안은 여기가 한국인지 일본인지 분간이 가지 않았다.


집에 있는 물건들 중 일부도 일본에서부터 쓰던 것들이다. 일본에서 이삿짐으로 10박스 정도를 보냈었다. 집 거실에는 일본에서 산 커피머신과 로봇청소기(일본어로 멘트가 나온다.)가 있고 와이프가 가려움증에 바르는 약인 낑깡(キンカン)은 우리 침대 옆 테이블에 놓여 있다.


다음 달에 잠시 일본에 다녀올 예정이다. 일 때문이기도 하고, 추억 여행 때문이기도 하고. 그러고 보니 전에는 항공권 티켓팅만 하면 끝이었는데 이제는 ‘숙박’이라는 관문이 하나 더 생겼다. 엔화가 많이 떨어졌다고는 하지만 역시 비싸다. 이 돈이면 동남아 여행 갈 텐데…라는 푸념을 늘어놓지만 한편으로는 설렌다.


일본에 가서는 전에 살았던 동네에도 가보려고 한다. 숙소도 자주 이용하던 교통편인 세이부 신주쿠선(西武新宿線)라인쪽으로 구했다. 우리부부 단골가게인 에이조에 가서 새우 풍미가 느껴지는 츠케멘(つけ麺)을 먹고 집 근처 공원을 한바퀴 크게 둘러 보려고 한다. 역 앞 작은 봉고차에서 팔던 타코야끼(たこ焼き)도 있으면 좋겠다. 갓 구운 타꼬야끼 위에 잘게 썬 파를 올려 먹으면 그렇게 맛을수가 없다. 물론 거기에 시원한 나마비루 한캔도 빠질 수 없지!


한국에 돌아와서 일본이 그리웠던 적이 아직까지는 없다. 사업을 시작하면서 하루 하루 매출 올리는데 온 정신을 쏟고 가족문화에도 다시금 적응하고 있다. 정신 없는 하루를 보내며 집으로 돌아가는 길, 이따금씩 와이프와 일본에서 지내던 때를 회상하고는 한다. 우리 부부가 20대와 30대를 함께 보낸 그 곳. 고향의 향수를 느낀다는게 이런 것일까.


일본은 어느새 제2의 고향이 되어 있었다.


지금은 역사속으로 사라진 JR하라주쿠 구(旧)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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