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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기. 일본에서 달렸고 한국에서도 달린다.

by 형민

요즘, 달리고 있다. 머리 식힐 겸, 건강도 챙길 겸. 운동이라고는 소질도 관심도 없지만 적어도 달리기는 그럭저럭 즐겨하는 운동 중 하나다.


달리기를 처음 시작한 건 일본에 있을 때부터다. 출퇴근 길 지나치는 공원에는 항상 뛰는 사람들이 있었다. 뛰는게 뭐가 그리 좋다고. 걷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리라 지레 짐작하고 넘겼다.


그런데 매일 같이 이어지는 야근과 스트레스로 몸이 급작스럽게 나빠지는 것을 체감한 순간, 처음으로 운동화를 신고 공원으로 나섰다. 간단한 스트레칭 후 달리는 사람들 사이로 조심스레 나의 발소리를 더했다.


맨 처음에는 1km 뛰는 것도 숨이 벅차올랐다. 러닝이라고 하기보다는 빨리 걷기 수준이었다. 그러던 것이 점차 몸에 익어 가면서 3km, 5km를 넘어섰다.


한 번은 얼마나 더 뛸 수 있을지 숨이 멎기 전까지 뛰어봤다. 체감상 10km 즈음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몸이 아직 단련이 덜 된 탓이었는지 혈뇨가 나왔다. 건강해지려고 하다가 도리어 몸을 망치는 꼴이었다. 그 이후로는 5km를 기준으로 나만의 코스를 만들어 달렸다.


run-01.jpg 일본에서 달렸던 루트


일본에서 마지막 살았던 지역은 도쿄 외곽이어서 주변에 공원이 많았다. 인적도, 차량도 많지 않아 어디든 달리기에 최적화된 곳이었다. 집에서부터 출발해서 공원을 3~4바퀴 돌고 다시 돌아오는 코스, 인근 공원들을 한 바퀴씩 달리고 역 두 정거장 정도를 달린 뒤 복귀하는 코스 등 그날의 날씨와 기분에 따라 5km 루트가 정해졌다.


run-03.jpg 나의 달리기 코스가 되어 주었던 일본 공원

무엇보다 호수를 끼고 있는 공원은 4계절 변화를 체감하기에 좋았다. 봄에는 벚꽃이 만개했고 여름을 지나 가을이면 단풍이 한가득이었다. 신선한 공기와 잔잔한 호수, 지저귀는 새소리까지. 모든 것이 완벽했고 나의 신체와 정신을 단련시켜 주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run-02.jpg 주말이면 달리는 한국 공원

한국에 돌아와서는 달리지 않았다. 달릴 정신이 없었다. 사실 핑계다. 처음 달리기를 시작할 때와 마찬가지로 스트레스와 몸 관리를 위해 다시 뛰기 시작했다. 오랜만에 뛰다 보니 3km부터 시작했다. 지금은 6~7km까지 달리고 있다.


러닝 열풍에 동참하는 사람들 사이에 중고 신입으로 다시 시작한 달리기. 뛰다 보면 일본에 있던 때가 생각난다. 그때도 참 열심히 달렸었지. 영원할 줄 알았던 풍경이 어느덧 사진 속 추억이 되었다. 보이는 장면과 지나가는 사람들, 그들의 미세한 숨소리는 다르지만 저마다의 목표를 향해 뛰는 열기는 동일하다.


내일도 달리러 나가려고 한다. 뛰기 전에는 귀찮지만 막상 뛰다 보면 사건의 지평선을 건너 내가 그리는 미래에 도착할 것 같다. 마라톤에 욕심은 없다. 10km 정도 무리 없이 뛰게 되었을 때 기념으로 일본 공원을 다시 달려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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