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무디 Jun 07. 2022

발리에서 오토바이란

즐기는 자들에게 주어지는 자유!



발리는 오토바이가 필수다. 그 말에 공감을 못하고 그 위험한걸 어떻게 타냐며 절대 절대 안 된다고 말리던 나는 대체 어디로 갔는가. 이제는 자연스럽게 남편의 등에 올라타서 힘차게 출발을 외친다.


처음 발리에 와서 오토바이에 몸을 실었을 때가 생각이 난다. 짐바란의 구불구불 경사진 윗동네에 자리한 한물간 호텔에서 묵었던 우리는 오토바이 없이는 한 발짝도 못 움직인다는 걸 말없이 직감했다. 호텔 관계자에게 부탁하여 빌린 오토바이는 호텔보다도 몇 물 더 간 허름한 오토바이였고, 내 인생 첫 오토바이는 그렇게 낡고 위태로운 뒷자석이었던 것이다. 발리도 처음, 오토바이 렌트도 처음, 모든 게 확실치 않아 그저 되는대로 몸만 건강하게 건사하면 됐지라는 마음이었다. 그래도 그렇지 오토바이를 두 번이나 바꿔야 했던 건 아무래도 너무했었다.


그 당시 나는 모든 오토바이가 이렇게 한번 덜컹하면 꼬리뼈부터 턱끝까지의 모든 장기가 흔들리는 줄 알았다. 단 몇 분만 타도 발바닥엔 땀이 흥건히 차있고 온몸이 경직되어 쥐가 날 정도였다. 오토바이는 역시 탈게 못된다며 생존의 위협을 간당간당 이겨내고 있었다.


그때였다. 남편의 등 뒤에 울상으로 매달려 거의 끌려가듯시피 했던 나를 비웃듯 아이를 앞뒤로 태운 발리 엄마가 나를 쌩 지나쳐가는 것이다. 이어서 몇 명의 유럽 언니들과 발리 언니들이 뒤를 따라 빠르게 지나쳐갔다. 그 원더우먼 같은 모습에 나는 첫 운전면허를 따기 전 모든 핸들을 잡는 이들을 우러러보았던 그 시절처럼, 그들의 뒷모습에 존경의 경례를 올렸다. 그때부터 오토바이는 내게 무서운 존재의 축에서 빠져나와 즐기는 자들에게 주어지는 자유의 상징이 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오토바이를 운전해보겠다며 설치는 무모함을 보여내겠다는 건 아니지만, 등 뒤에서 부리는 여유쯤엔 기꺼이 기분을 내어주겠다는 의미 정도라 할 수 있다.


그렇게 한 달을 타 온 오토바이다. 자칭 적응력 만랩인 사람으로서 이제는 오토바이를 탄다고 잔뜩 땀을 흘리진 않는다. 아니, 이제는 내비게이션 역할까지 한다. 한 손은 남편의 옷깃을 쥐어 잡고 한 손으론 핸드폰 지도를 켠 뒤에 ‘1km 직진 후 좌회전입니다.’  ‘여기서 우회전이고요’ ‘200m 후 도착입니다’와 같은 아주 성실한 인간 내비게이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사람이 유독 더 많은 지역인 스미냑의 도로엔 오토바이 부대가 매일 경주를 뛴다. 수십대의 오토바이가 신호등 맨 앞자리를 가득 메우고 신호를 기다리고 있는 걸 보고 있노라면, 마치 마라톤 경주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사람 수만큼 오토바이가 있는 격이다. 신호가 켜지기 0.5초 전부터 한 두대의 오토바이가 부릉 시동을 걸면 정신을 바짝 차리고 이어 따라 출발한다. 그 무리 속에선 나도 이제 발리 사람이 된 것만 같다.


늘 조심하도록 남편의 뒤에서 함께 동서남북을 봐주는 것이 나의 의무다. 조심한다는 취지로 무서워만 했다면 이 편리함이 주는 삶의 질을 누려보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본래 천성이 겁이 많은 사람으로, 살면서 용기를 내야 하는 일들이 많다.  그것은 나를 경험주의에 노력형 인간으로 만든 근본이라 할 수 있다. 그걸 깨달은 뒤 하나씩 깨어온지도 벌써 10년째, 오토바이도 즐길 줄 아는 꽤 대담한 사람이 되었다.


오토바이의 편리성과 효율성을 한껏 경험해버린 남편이 한국에 돌아가면 오토바이를 사겠다는 말을 하기 시작했다. 여전히 나의 용기가 발휘될지 의문이다.

작가의 이전글 발리의 아침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